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2016년부터 한 달에 한 권씩 같은 책을 읽고 덧글로 감상을 나눠보는 '덧글토크'를 시작합니다. 한 달 동안 책을 읽은 필진들이 짤막한 감상을 남기고, 덧글토크로 정리되어 올라옵니다. 


덧글토크의 의미에 걸맞게 덧글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눠주신 분들 중 선정하여 다음 덧글토크 선정작 중 한 권을 보내드립니다.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 pena




2016년 1월 선정작:


1_전쟁은여자의얼굴을하지않았다.jpg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프로필 이미지 - 정사각형.jpg




다 읽었습니다.

읽기가 매우 힘든 소설입니다. 형식이나 구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담는 내용을 말하는 겁니다.

한 맺힌 여자의 절규이지만, 오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는 서로와 완전히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주하림 시인의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라는 시집은 고작 여자의 연애 실패담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여자의 고통은 남자의 잣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형식 면에서는 척팔라닉의 랜트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 속 일련의 나열된 사건들은 남자로써 쉽게 받아들였다 하면 거짓입니다.

확실히 남자와 여자는 생각하는 바가 달랐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미에 대한 집착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빨리 공감했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입니다. 남자는 여자와의 경계는 매우 멀고, 두텁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자를 성적욕망에 따라 과장하고,  이상형에 맞게 조립한 캐릭터가 난무하는 라이트노블이나 만화들이 

남성의 시각을 위해 계속 쓰여질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요가 존재할 리 없습니다.

나와 다른 성별의 사유와 체험을 통해, 여자를 '고통스럽게 봤습니다.'


내일 또 쓸게요~





이 책을 읽고 변화하기 쉬울까요?

입으로는 의식있는 척, 깨시민인척 쉽게 페미니즘과 여권상승을 외칠 수 있지만,

걸그룹들의 음란한 안무와 예능에서 만들어내는 거짓된 이미지, 남성 수요가 반영된 서브컬쳐 매체들을

거부하기 힘듭니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인터뷰 모음집으로 여기지만, 이 소설에 군인이 됐던 여자를 차별하는 여자들이 나옵니다.

이런 일은 현재도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 예능인의 멸종(?)과 음식 방송에 여성 쉐프가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건 남성 수요를 반영했듯이 여성 수요를 방영한 결과입니다.

같은 여자의 기호와 편견, 욕구에 따라 다른 여자들이 핍박받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일부 예를 들어, 전부 여성 탓을 하는 게 아닙니다.)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전쟁 성노예로 끌려간 여자들의 고통에 다른 여자들이 무감해하고,  공격적으로 나오는 모습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소설의 소재는 전쟁에 참여한 여성이지만, 문학이라는 베이스에 기대 확대한다면, 고통을 받은 피해자에 대한 매우 힘들고 불편한 진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동시대에 살았더라면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어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는 여자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안락한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컴퓨터를 하고, 원하는 책을 쉽게 구하는 지금이라면 책을 읽고 아 이렇구나! 하고 가볍게 말할 수 있겠지만

동시대에 그들과 이웃으로 지내며 편견의 부당함을 공유하기 쉬울까요?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는데, 훌륭한 예술인들이 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러자 트위터(제가 최근에 시작했습니다.)

에서는 그들 대신 나와 정치색/의견이 다른 이가 대신 죽기를 바라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을 올린 분들은 여성 인권에 대한 좋은 글들도 많이 올렸습니다.


또 트위터에서는 좌파 = 좋은 민주주의, 평화 우파 = 구시대적 발상, 전쟁 이라는

1차원적인 간단한 발상이 담긴 그림파일이 자랑하듯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성 이해에 대한  만병통치약인듯 이 책을 권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자가 의도한 바일까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과 생각이 아주 오랫동안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타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견/생각대로 피아식별하는 차별, 편견이 이 책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좀 더 생각하고 예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받아 후대에 전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역사와 읽는 이를 사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페나.jpg




26일 현재, 아직 다 읽지 못했어요. 개인사정으로 한동안은 아무것도 손에 들 수가 없는 상태였고, 좋은 상황이 아니라서 여건이 허락할 때도 손이 선뜻 가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아직도 초입입니다만, 여성들의 이야기, 고통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정도경님의 많은 작품들이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가 무척이나 자주 떠오릅니다. 살아 있는 고통,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함은 물론이고 전하는 것조차 힘든 이야기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과 살육에 참가했다가 두 개의 바퀴에 짓눌려 갈린 인생들. 장마다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책이에요. 






redfish(적어,김주영).jpg



그 어떤 책도 이토록 전쟁의 '민낯'을 생생히 마주하는 느낌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인류가 존속한 이래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전쟁은 그 명분과 목적으로 정당화 된 경우가 많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채 50년도 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전쟁은 대부분 남자가 주도해 왔습니다. 이 사실이 여성은 평화를 지향하고, 남성은 폭력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많은 여성도 전쟁의 명분이나 목적에 찬성해왔고 또한 전사로 살았던 여성을 비난하는 책 속의 여성들처럼 공격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위치로 인해 여성들이 전장의 최전선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전쟁 전방의 이야기는 주로 남성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전쟁은 후방에서 겪는 괴로움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배경이 되는 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에서는 실제 여성들이 병사로 전방에 투입되었기에 전쟁 전방에서 벌어진 그 모든 일을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시각은 조금 더 개인적이며 감성적이고, 구체적인 동시에 감각적이기에 전쟁의 고통이 매우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 시각 안에는 우리가 경험했던 전쟁 이야기에서 삭제되었거나 축소되었던 작은 생명, 꽃과 풀 그리고 말과 새들의 고통이 담겨 있고 심지어 남성들의 내밀한 슬픔과 고통까지도 담겨있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앞선 세대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일상이 전쟁이었던 시대, 전쟁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야 했던 시대란 어떤 것인지는 이토록 생생한 글을 읽으면서도 감히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시대를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와 함께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밀려오는 군요.


미국 육사를 졸업한 후에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 투입되어 작전을 지휘했던 장교를 알고 있습니다. 출세가 보장되는 길이었지만, 그는 '갈 수록 사람을 죽이는 기술만이 늘어간다.'는 이유로 전역해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말에 담긴 무게와 슬픔을 저는 이 책을 읽고서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전쟁과 죽음에 대한 기억이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팽창하는 제국주의 때문에 전쟁과 내전, 학살을 겪은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동안 이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대륙을 밟던지 세계 곳곳엔 전쟁의 그림자가 있어요.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것과 유사한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간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사망자 수는 450만 명으로, 이는 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 약 6,000만명(세계 인구 2.5%), 콩고 전쟁 사망자 수(540만) 다음으로 많은 숫자입니다.(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 1권)


여행 동안 외국인들은 한국이 안전한지 자주 물어왔습니다. 그들 눈에는 아직 우리는 전쟁의 바로 코 앞에 있는 거죠. 35년 간의 식민통치,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던 3년 간의 전쟁에서 목적과 이념을 제외하고 평범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얼마나 귀기울여 왔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게 됩니다.


지성으로 바라보는 역사는 그냥 텍스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 생명이 고통 받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마음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생각. 대립과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보푸라기처럼 일어서는 이 사회에 사는 동안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는 슬픔. 인종, 종교, 성(性) 등 나를 규정하는 외적인 것을 털어내고 그냥 한 인간으로서 인간을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나에 대한 바람. 복잡한 감상이 많았던 책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많으면 좋겠어요.






lunabell(아밀,루나벨).jpg


정말 괴롭게 읽었어요. 페이지마다 눈물을 삼켜야 할 만큼 고통스럽고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작은 사람'의 승리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고, 이 책이 완성되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작은 사람'의 승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전쟁은 남자들, 대의명분, 전략, 숫자, 국제 정세, 영웅과 관련된 '큰' 이야기들이었어요. 그리고 전쟁을 다루는 책들 역시 대부분 그러한 관점에 걸맞는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해나갔고요. 하지만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역사에 가려진 여성의 목소리를, 거기에 걸맞는 형식으로 담아냄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왔던 삶의 진실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빛나는 무용담도 아니고, 객관적이지만 텅 빈 일대기도 아닌, 꽃과 새와 나무와 사랑과 어린아이와 커피잔과 시와 노래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험담들. 전쟁터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들과 추악한 순간들과 부끄러운 일들도 여과 없이 드러낸 에피소드들. 어느 순간부터는 수많은 설화들을 엮은 구비문학 채록집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이 딸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할게. 우리가 전쟁중에 겪어야 했던 모진 세월을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끔 말이야."라고 입을 떼는 그 여자들의 목소리가, "옛날 옛날에 말이야..."라는 말로 입을 떼면서 딸과 손녀들에게 끊임없이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을 온 세상 여자들의 목소리 전체와 합쳐지는 듯한 기이한 공명감이 느껴지더군요. 아찔한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고 조명받지 못했던 작은 사람들의 고통의 역사 자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죠. 

이 책에서 어떤 여성은 작가에게 '당신도 우리 사람이다. 이 책을 쓰는 당신도 이미 우리처럼 전선의 소녀 병사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진실을 충실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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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혜 16.02.07 20:27 댓글

    저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인터뷰의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여성이고 전쟁반대를 취한 입장에서... 여성이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외에도 '여성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를 원했고 위생병(우리가 주로 나이팅게일을 떠올리는 그 입장)외의 그림을 굉장히 힘겹게 읽었어요. 왜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 타인과 함께 살아갈 이유를 파괴하는 것-이외에도 적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배제적 입장인 여성을 전쟁에 참전시켰는가... 그리고 왜 여성은 전쟁에서 돌아온 '용사'가 아니라 치부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소비에트 연방이 여성에게 취한 입장의 이중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나... 전쟁은 성적 차이(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성은 달마다 월경을 하고, 그게 전쟁 중 멈춘 사람도 있지만 전쟁 중 월경에 당황을 표현 사람도 있죠... 저는 모성천부론 같은것은 믿지 않지만, 여성의 달마다 월경이라는 신체적 본능을 멈추게 만든다면 그것이 충분히 개인에게 심각한 충격이라고 생각해요)를 떠나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 그것은 남성 여성이라는 성차를 떠나 마찬가지란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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