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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언 연대기 : 용기사 3부작
앤 맥카프리, 김상훈 옮김, 북스피어, 2007년 7월


pilza2 (pilza2@gmail.com http://www.pilza2.com)



 〈용기사 3부작〉이라 불리는 이 세 권짜리 시리즈는 전체 〈퍼언 연대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창작 시기는 제일 먼저이지만 다른 대하 시리즈가 그렇듯 과거와 미래 이야기가 추가되면서 연대기 전체에서는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소설로 치면 5권에서 10권까지도 나눌 수 있을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한다(번역 후기에 따르면 원고지 10,000매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를 단 세 권으로 묶어낸 출판사의 용단도 대단하고, 장정과 주석도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연대기라는 부제만큼이나 긴 세월을 다루지는 않는다. 전술했듯 전체 연대기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1권 [드래곤의 비상(이하 1권)]은 새로운 용굴령과 용굴모가 된 플라르와 레사를, 2권 [드래곤의 탐색(이하 2권)]은 역시 둘이 중심이면서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저마다 두각을 드러내고, 3권 [백색 드래곤(이하 3권)]은 2권 중간쯤에서 모습을 드러낸 차기 태수 잭섬과 파트너인 드래곤 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새로운 고전(원전은 오래 전 선보인 고전급이되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최근에 번역 소개 되었기에 쓴 표현이다)을 접하게 되면 고금의 수많은 판타지 장르의 거대한 물결을 보는 듯하다. 2차 세계를 무대로 한 하이 판타지라는 축을 중심으로 기계문명이 고대문명으로 나오는 다잉 어스(Dying Earth, 동명의 소설에서 유래한 서브장르), 고대 전설이나 비현실적 소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사이언스 판타지, 외계 행성에서 펼쳐지는 행성간 로망스(Planetary romance), 드래곤과 인간의 교류 및 교감 등 다양한 서브장르의 요소가 풍부하게 등장한다. 상당히 치밀한 설정은 판타지와 SF 장르의 접점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로맨스 요소도 적절하게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독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이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서 그러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초기작이며 대표작인 용기사 3부작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는 역시 발견과 변화, 그리고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붉은 별에서 오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힘들게 살았던 퍼언 주민들에게 100년 이상의 평화는 나태함과 정체를 가져왔다.
 그러다 1권의 시작과 함께 다시 위기가 찾아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새로운 발견과 도전을 통해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2권에서도 고대인이 남긴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발견하고 잊혔던 사실을 재조명하면서 급속도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3권은 미지의 대상으로 여기며 방치되어 있던 남부 대륙을 개척하고 고대인의 유적지를 발견하면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작중 시간의 흐름은 잭섬의 나이를 고려하면 20년 정도밖에 안 될 텐데 이전까지 흘렀던 수백 년 이상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지구 인류로 따지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혁기인 셈이다.
 또한 수많은 금기나 법칙이 깨지기도 한다. 이 소설의 금기와 법칙은 마치 처음부터 깨지기 위해 만들기라도 했다는 듯이 차례로 사건이 벌어지고 예외가 생겨나며, 갈등과 모험 끝에 문제가 해결된다.
 예를 들자면 하인 여성(고귀한 신분을 숨기긴 했으나)이 용굴모가 되고, 여왕 드래곤이 비행을 하고, 시간을 뛰어넘고, 불도마뱀을 길들이고, 땅벌레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고, 유일무이한 백색 드래곤이 나타나고, 용기사 겸 태수인 인물이 생기고, 잊혔던 대륙을 개척하는 등 소설은 전체적으로 예외와 이변, 기적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고 연대기의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해졌지만 상업적 성과가 기대를 따르지 못해 더 이상의 출간은 힘든 모양이다. 용과 인간이 함께 활약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하지만 본작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되는 〈테메레르 시리즈〉가 훨씬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안타깝다. 필자가 테메레르 시리즈를 읽지 않아서 원인 진단은 하기 힘들지만 아마도 마케팅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가령 테메레르 시리즈는 피터 잭슨의 영화 판권 구입을 홍보했으나 2014년 아직까지 영화 제작 소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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