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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캔터베리 이야기

2004.01.30 22:1501.30





fanafic20@lycos.co.kr언제나 읽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필자는 우연히 이 책을 권유받아 읽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책을 본 첫 느낌은 ‘싫어하는 책받침 양장이군. 하지만 책은 예쁘네’였고 두 번째 든 생각은 ‘들고 다니려면 팔이 상당히 아프겠다’였다.
   꽤나 두꺼운 책이었다. 거금을 들여서 책을 샀고(사실 빌려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 읽고 나선) 보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제프리 초서? 누구지?’ 하고 찾아보니 영미문학계에선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다. 첫 이야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데카메론]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데카메론]이 훨씬 이야기가 많지만 말이다. 제프리 초서는 단테의 [신곡]이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영향을 받았다
―――라고 소개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기 시작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캔터베리 성지 순례를 하는 공통된 목적을 가진 각계각층 사람들이 템즈강 남쪽의 서더크의 타바드 여관에 모여서, 즐겁게 순례를 하기 위해 여관 주인이 한 제안에 의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풀면서 여행을 하기로 한다. ‘종교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은 즐겁게 순례를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사회자는 이 제안을 한 여관 주인이다. 약 30명의 순례자들이 이 제안에 찬성하여, 돌아가면서 24개의 이야기를 하는데, 각 계층의 대표자가 하는 이야기들로 서술되어 있다.

   영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은 서로 대조되는 면도 많고 이야기 또한 서로 대조되는 것이 많다. 초라한 농부부터, 번쩍번쩍한 기사, 왕 앞에서조차 모자를 벗지 않는 변호사, 출신을 알 수 없는 요리사, 고귀해 보이는 수녀, 거칠게 보이는 방앗간 주인, 지식인인 학생 등등 그 당시 존재했던 사회적 신분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 한 가지 목적 ‘성지 순례’를 위해 같은 길을 간다는 이유로 서로 상반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꽤 의미심장한 일이 아닌가.
   순간, 이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얘기를 한다면 도대체 몇 개의 이야기를 해야만 할까란 의문점이 생겼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는 24개뿐이다. 그 중 하나는 서문으로 멈춘 채 있다(초서는 뒷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서문에서 보면 캔터베리로 가는 길에 두 개, 오는 길에 두 개를 하는 걸로 정해져 있고, 대충 따져보자면 100개가 넘는 이야기를 해야했음에도, 여관주인은 본인이 적어도 하나씩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4개의 이야기를 풀어 쓴 것은 생각해 보건데 각 사회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적어 놓은 게 아닐까하는 것이다. 뭐. 이야기의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야기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사회자인 여관 주인은 아주 자의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으면 마구 끊어버리고 욕을 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도 즐거워한다. 사회자로서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이 작품의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데카메론]이 귀족들만의 천일야화였다면, 이 작품은 말하는 사람의 신분에 구별이 없는 천일야화였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 시대의 신분 계급의 힘이랄까, 권위랄까 하는 점이 느껴지는 건 초서가 처음 순례자들을 소개할 때 사회적 지위에 따라 묘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사라거나 수녀라거나 고귀한 신분들은 매우 이상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저런 점을 제쳐두고라도, 캔터베리의 이야기는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기사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한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친구 사이였던 두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역시나 기사다운 이야기라 느꼈다. 고귀함과 명예가 극대화되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기사의 이야기로 이 순례 수건돌리기는 시작되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방앗간 주인과 청지기의 이야기는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참고로, 이 책은 총 10부로 이루어져 있고 24개의 이야기 중 초서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들을 쭉 읽어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결혼과 아내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중심이며, 중간에 끊겨진 이야기도 있고 여관 주인에 의해 끊긴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것은 다분히 종교적이고, 결말 또한 그러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자는 [캔터베리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었지만, 역시 좀더 감정이 풍부하고 더 신랄한 데카메론 쪽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또 하나 이 이야기들을 하는 인물들과 이야기의 내용 중 몇몇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뒤집고 보면 꽤나 어울리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꽤 재미있다. 원서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원서에는 꽤나 언어적인 아이러니(특히 단어에서 오는)들이 있는 것 같다. 이중적인 의미의 단어라거나 은밀한 표현을 띄고 있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고 숨은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 대표적 예로 {바스 여인의 이야기}는 남편을 다섯 가진 여자의 이야기인데 성(性)의 주제에 관해 여러 어휘를 사용함으로서 이를 나타내었다고 한다. 사실 언어의 이중적 의미라거나 말장난 같은 점은 원서를 읽어보지 않으면 직접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아, 이런 점도 있었구나’라는 건 역자 후기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번역서의 한계라는 점도 있고, 이 언어가 이 얘기에서 이러저러한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재미이겠지만, 이야기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었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24개의 이야기 중 사랑스러운 여인이 나오지 않은 편은 극히 드물며, 수습기사의 이야기 중엔 징기스칸 왕에 대해서도 나온다. 필자는 이 편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는 제쳐두고, 여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순종적이고 남편을 충실히 섬기는’ 여자는 아름답지만 제멋대로인 여자보다 훨씬 이상적이다, 라는 느낌이 팍팍 풍겨 나온다. 시대가 시대이니―――란 생각도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자면 기사가 섬기는 여왕에게 ‘여자가 가장 원하는 것’을 알아오라는 과제를 받아 길을 떠났다가, 한 노파를 만나 답을 얻는 대신 노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노파 자신을 아내로 삼아 달라는 소원을 들어주게 되는데, 이 노파가 기사를 설득하는 말이 재밌다. ‘추하고 못났지만, 남편만을 섬기는 정숙한 아내를 원하시나요. 아니면 세상 어느 여인보다 아름답지만, 다른 남자들과 관계가 많은 아내를 원하나요.’ 기사는 한참 고민하다가 정숙한 아내를 택하고, 그 대가로 노파는 아주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다―――라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정숙하고 순정적인 아내’가 이상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묘한 기분이 되었다.
   여성 비하라거나 그런 걸 말하고자 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이 아니므로 이 책의 다른 이점으로 넘어가 보자.
   사랑과 결혼,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탁발 수사에 관한 이야기라거나 나쁜 방앗간 주인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재밌었던 점 중 하나가, 고귀한 이야기 다음엔 우스운, 책에서는 경박한(방앗간 주인이나 장원 청지기 몇 명은 막돼먹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회적 신분이 대조되는 사람들이 하나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점이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이 책을 활동적으로 만든다. 모든 이야기들이 비슷해져버리면 높낮이가 없어져 그저 그러한 종교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이 되기 쉬운 점을 잘 커버했다고 보인다(사실 서술이나 순서가 액티브하게 바뀌어도 꽤나 종교적인 냄새가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미완성 작품이라고 한다.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필사본은 전혀 없다는 말이기도 한데, 국내에 번역된 이 책은 여러 판본 중 최고로 평가를 받는 엘리스미어의 필사본이라고 한다(원문은 운문 형식이라고도 한다).

   캔터베리 순례자들과 함께 잠시나마 여행을 함께 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분은 이 책을 집어 들길 바라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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