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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녀 이야기

2003.09.26 17:2309.26





fanafic20@lycos.co.kr*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미 페미니즘 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이라는 [시녀 이야기](황금가지에서 나온 환상문학전집의 네번째 책)를 골라보았다. 선택하게 된 이유는 어디선가 여성의 성과 권력의 관계…… 어쩌고 하는 평을 얼핏 보고 내심 충격적인 내용을 기대를 반쯤 가졌기 때문이지만,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로 전개되는 책의 내용과 분위기는 특이했다.

   21세기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인류는 종족 번식을 위협받고 미국이 존재하던 곳엔 독재 정부 길리아드가 성립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엄격한 신성정부이자 전제정치를 펼치는 정부 아래, 여자들은 계급화되어 구분되고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자들은 원래의 이름을 빼앗기고 ‘시녀’라는 존재로 붉은 센터에서 소정의 교육을 거쳐 고위 관리층의 ‘사령관’들의 집에 보내어져 ‘출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빨간 옷을 입고 얼굴은 하얀 가리개로 가린 채 ‘사령관’의 ‘아내’들
―――특히 아기를 못 가지는―――대신 사령관의 아기를 낳는 것이 목적이 되어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면 ‘비여성’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콜로니’로도 보내지지 않는다. 가끔 ‘아내’들과 합의하에 다른 남자의 아기를 출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가족들과 원래의 이름을 빼앗기고 ‘오브프레드’란 이름을 새로 받은 한 여자가 어느 ‘사령관’의 시녀로 생활하는 모습을 여자의 ‘입장’과 ‘눈’으로 서술하고 있다. 첫 장을 펼치면 나오는 구절이 ‘우리는 한때 체육관에서 쓰던 곳에서 잠을 잤다……’로 시작하면서 예전에 있을 법한 일들을 잠시 추억하면서 시작된다.

   법을 어긴 사람들은 ‘장벽’에 교수형당해서 매달린다. 모든 것은 엄격히 통제되고 쾌락을 위한 생활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길리아드. 여자의 자궁은 말 그대로 ‘번식’을 위한, 건강한 아이를 가지기 위한 밭이며 ‘하녀’와는 다른 개념의 ‘시녀’는 교육을 받고 특정한 날엔 ‘사령관’과 의식을 치루어야 한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땐, 세상을 콘트롤하는 것은 남자고 여자는 단지 남자의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도구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여자들이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제어당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남자들도 ‘계급화’되어서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길리아드’의 ‘지배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제국의 피해자들이 아닐까.

   책의 주인공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 ‘사령관’의 ‘시녀’로서 저택에 머물게 된다. 이 사령관의 아내는 한때 유명했던(그녀가 TV에서 보았던) 성가대의 일원이었고 지금은 나이들고 아이를 못 가지는 ‘여자’이다. ‘아내’들은 ‘시녀’들을 경멸하면서도 아이를 위해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남편에겐 순종만을 할 뿐이다.
   시녀지만 하녀와 비슷한 생활(필자가 볼 땐 잡일을 하지만, 좀 더 몸을 가꾸고 말없이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모습은 ‘하녀’와 비슷해 보였다)을 하면서 장보러 나가 ‘장벽’에 매달린 범법자들의 모습을 보고, 항상 기도와 신앙심을 요구하는 생활을 하던 주인공의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무 감정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사령관’이 그녀에게 금지되어 있는 감정을 품기 시작하고, 그녀 또한 그 변화에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응하던 중 사령관의 아내로부터 은밀한 제의를 받는다. 그 제의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녀의 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좋은 쪽의 변화일지도 모르는 그것들이 그녀를 더 옭아매어 종국엔 국가법 위반으로 검은 차에 오르는 장면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은 사라진다.

   굳이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지금껏 정리한 것이 내용의 흐름이다.
   시종일관 회색빛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독백과 함께 주변 사람들―――원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때의 친구 모이라. 하녀 코라와 리타, 하인 닉 등―――에 대해 간단히 그려지는 묘사들이 재밌었다. 심리 상태를 간단한 행동과 말로서 전달해주는 건조한 문장들은 이 책의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켜준다.

   사령관과 스크래블 게임을 두면서 추억의 잡지들인 [보그] 나 [엘르] 같은 패션 잡지들을 대가로 몰래 보고 핸드로션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처음엔 그저 우울함 뿐이었다. 특히 아기를 가지기 위해 ‘의식’을 치루는 장면은 참으로 기괴했다(기발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페미니즘 소설이란 평은 아마 여자들이 계급화되고 다뤄지는 점들부터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순전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여자들이 많은 피해를 받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남자고 여자고 다들 피해자란 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여성은 어느 위치에서나 ‘여자’로서의 이점을 활용하고 남자들도 ‘사령관’이 아닌 이상 여자들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다. ‘장벽’에 매달릴 사람들을 재판하는 광경을 보면 획일화된 잣대에 맞춰서 죄를 규정짓고 사형을 선고한다.
   시녀가 잡혀가는 장면을 끝으로 세월이 흐른 후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 란 이름으로 길리어드 연구학 심포지엄의 속기록 중 일부분이 나온다. 길리어드의 지배자들의 그들의 통치방식에 무척이나 만족하는 모습은 우울했던 이야기의 내용보다 훨씬 더 분노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분노보단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하다.


   이야기에 나오는 ‘예전’의 생활은 현재 우리의 생활 그대로이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사람들의 감정과 쾌락이 지나쳐버리고,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는 현 세태. 그래서 이야기에 나오는 ‘길리아드’란 정부가 출현할 리는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필자는 꽤 오싹해졌다(책의 소개에 보면 섬뜩한 미래의 예언서이자 충격적인 디스토피아…… 어쩌고 하는 구절이 나온다).

   어쨌거나, 우울하지만 꽤 인상깊은 책을 소개하게 되어서 기쁘다. 기존의 환타지, 환상문학과는 전혀 다른 장르이긴 하지만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 또한 ‘환상’이란 단어가 아닌가.
   앞으로 새로운 느낌과 내용의 책들이 좀 더 많이 출판되어 나오길 바라면서 [시녀 이야기]의 소개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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