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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비톨트 곰브로비치, 정보라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15년 1월

잠본이 (zambony@hanmail.net http://zambony.egloos.com)



■ 들어가는 글
 폴란드의 문필가 비톨트 곰브로비치(1904~1969)가 생전에 집필한 3편의 희곡 및 1편의 초고를 수록한 희곡집. 이 작가의 작품들은 이제까지 프랑스어 중역으로 소개 되었으나 본서는 특별히 폴란드어 전공자의 손을 거쳐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된 판본이다. 비단 곰브로비치뿐만 아니라 폴란드 문학사나 현대 아방가르드 연극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재미있는 점은 정작 곰브로비치 자신은 연극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자기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없었으며 거기에 투입되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굉장히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그가 쓴 희곡들은 소설이나 수필과 마찬가지로 ‘읽는 글’의 기능에 더 중점을 두고 집필되었으며 그 때문에 무대장치나 소품, 음악, 연기 등에 관한 자세한 플랜 없이 대강의 뼈대만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공연 연출가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라 할 만하다. 또한 그의 희곡에는 항상 사회와 갈등하고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반영한 인물이나 상황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그 인물이나 상황이 빚어내는 부조리한 느낌이 독자들을 사정없이 휘감는다는 특징이 있다. 아래에서는 수록된 각 작품의 개별적인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부록으로 실린 초고 『역사 - 이야기』는 더 깊은 수준의 독해를 요하므로 본 리뷰에서는 아쉽지만 생략하도록 한다.)

①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Iwona, księżniczka Burgunda, 1938)
 왕위 계승자인 필리프 왕자는 산책 도중에 이보나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이보나는 외모도 별로 특별하지 않고 또래들이 열광하는 연애나 스포츠에도 관심이 없으며 세상 모든 일에 초연한 듯 항상 침묵을 지킨다. 무슨 말을 들어도 어떤 것을 봐도 언제나 퉁명스럽게 차가운 무관심만을 표하는 그녀는 사람들의 악의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구석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과 왕실의 허영에 권태감을 느끼던 필리프는 자연의 법칙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에 순간적인 객기를 발휘하여 이보나를 약혼자로 선언한다. 왕과 왕비, 시종장과 친구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자애로운 왕실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이보나를 잘 대해주려 하지만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왕실의 법도도 권위도 존중하지 않고 개인적인 욕구조차 표현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존재하기만 하는 이보나는 마치 거울처럼 사람들의 숨은 내면을 끄집어내어 되새기게 한다. 왕은 젊은 시절에 갖고 놀다가 살해한 여자를 떠올리고 왕비는 어설픈 시를 쓰며 몰래 즐기던 취미가 탄로날까봐 두려워한다. 필리프 또한 이보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와의 무익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점점 괴로워하게 된다. 정작 당사자인 이보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왕실 가족들은 저마다의 이유 때문에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죽이려는 모략을 꾸미기 시작한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 같은 인물 이보나를 매개로 하여 왕실과 그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부조리극. 그녀가 숙모들의 말대로 ‘혈액순환이 느려서’ 어쩔 수 없이 느릿느릿하고 냉담하게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반항심이나 자존심 때문에 의식적으로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그녀가 기존 질서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들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인 것은 사실이다. 작가는 그러한 냉담함을 생전 처음 직면한 왕실 가족들이 갖은 수를 써서 그녀의 환심과 감사를 끌어내려 시도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오히려 평소에 숨기고 있었던 야비함과 잔혹함을 드러내게 되는 과정을 익살스러우면서도 애처롭게 보여준다.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놀랄 만큼 허약한 기존 체제는 어떠한 타협도 해석도 거부하는 이질적인 존재와의 만남으로 인해 붕괴될 위기에 처하고, 그 위기를 감지한 구성원들은 결국 자기들 나름대로의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이질적인 존재를 파멸로 몰아넣음으로써 질서를 회복한다. 이 이야기는 체면과 평판을 극단적으로 신경쓰는 왕실 가족과 그러한 가치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보나의 대조를 통해 상류계급의 뒤틀린 가치체계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부조리한 결과를 가슴 서늘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왕이 성대한 가든파티를 열어 이보나에게 이름뿐인 작위를 하사하고 ‘위에서부터, 오만하게, 장엄하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과정은 마치 사람들을 단합시키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펼쳐지는 사육제와도 같다. 그 희생 제물로써 우스꽝스럽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이보나는 마지막 순간에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② 결혼식(Ślub, 1953)
 프랑스 북부의 전투 지역에 투입되어 사선을 넘나들던 폴란드 군인 헨리크는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눈을 뜬다. 친구 브와지오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헨리크의 앞에 옛날에 살던 집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집은 여인숙으로 바뀌어 있고 헨리크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비루한 하층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여인숙에서 일하는 하녀의 얼굴은 헨리크가 예전에 결혼하고자 했던 마니아의 얼굴이 아닌가! 정체불명의 주정뱅이가 쳐들어와 소란을 부리자 아버지는 자신이 신성불가침한 존재이며 ‘너의 그 더러운 손가락으로 나를 건드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다음 순간 집은 왕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왕과 왕비로 변하고 헨리크 또한 왕자의 신분을 얻는다. 아버지는 왕의 권능을 발휘하여 헨리크에게 신성한 결혼식을 치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적국의 대사로 둔갑하여 되돌아온 주정뱅이는 헨리크에게 왕을 폐위하고 스스로 지배자가 되어 결혼식을 치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꼬드긴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헨리크도 반역의 기미를 느끼고 아들을 멀리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버지를 폐위시킨다. 강력한 힘을 가진 독재자가 된 헨리크는 화려하고 장엄한 결혼식을 거행하려 하지만 주정뱅이의 간계로 브와지오와 마니아가 포옹하는 모습을 보는 바람에 질투를 느끼고 스스로의 권능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자신의 결혼식을 보다 완전하고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헨리크는 브와지오를 은밀히 불러들여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셰익스피어 희곡, 그 중에서도 특히 『햄릿』을 연상케 하는 장중한 고전파 비극인 동시에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상황 속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고뇌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뒤섞어가며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현대 부조리극의 성격도 겸비하고 있다. 왕실 내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다룬다는 점, 주요인물 중 한 명이 왕위 계승자라는 점, 결혼식이 일종의 성장을 촉진하는 관문이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처럼 취급되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결혼식이 장례식으로 변질된다는 점은 전작 『이보나』에서 이어받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확장,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젊음의 객기에 휩쓸려 별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는 필리프와 달리 헨리크는 어느 정도 세상물정을 아는지라 끝없이 고뇌하며 이리저리 망설이는 인물이다. 또한 ‘결혼식’의 의미가 『이보나』에서보다 훨씬 더 신성하고 중요한 어떤 것으로 격상되어 있으며 결말에 희생되는 사람도 원래부터 미움을 산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친하다가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주인공이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인물의 희생이 체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그를 사실상 죄수나 마찬가지의 상태로 타락시킨다는 점도 다르다. 객지에 가서 싸우다가 한참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해버려서 절망한다는 헨리크의 심정은 세계대전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남미에 체류하다가 유럽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결국 조국 폴란드에는 돌아가지 못하고 여생을 마치는 작가의 처지를 연상케 한다. 스토리 전개상 비약이 심하고 순간적으로 현실이 왜곡되어 모든 게 바뀌어버리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극중 사건이 헨리크의 꿈일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저도 모르게 인위적인(즉 연극적인) 대사를 장엄하게 내뱉다가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내가 왜 이런 식으로 지껄이는 거지?’라고 끊임없이 되묻는 헨리크의 모습은 브레히트의 소격(疏隔) 효과를 연상케 한다. 그런 특성상 다른 두 작품보다 훨씬 이해하기 어렵고 읽는 데에도 더 노력이 필요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야기 전체를 헨리크의 꿈으로 해석할 경우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미스터리가 많은 ‘주정뱅이’의 정체에 대해 파헤쳐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는 억압된 암흑면을 상징하는 무의식의 표상인가? 아니면 겉보기엔 과격해 보여도 실은 가장 합리적인 길을 일러주는 자아의 분신인가? 그 해답은 아마 작가도 모르겠지만, 숨은 의미에 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는 있을 것이다.

③ 오페레타(Operetka, 1966)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귀족사회. 소문난 난봉꾼인 샤름 백작은 젊은 아가씨 중의 으뜸인 알베르틴카를 유혹할 방법을 짜내기 위해 고심한다. 하지만 시장 상인의 딸인 그녀와는 접점이 없는지라 정식으로 소개받아 사귀는 것은 곤란하고, 소개도 받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들이대기에는 지켜야 할 법도가 너무 많다. 결국 샤름 백작은 도둑놈을 고용하여 알베르틴카가 벤치에서 잠든 사이 그녀의 물건을 훔치게 사주하고 그 현장을 포착하여 그녀와 대화를 시작한다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다. 계획대로 잘 풀려나가서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만 잠결에 느낀 도둑놈의 손길을 연인의 애무로 착각해버린 알베르틴카는 화려한 새옷을 사주겠다는 샤름의 제의에 ‘옷을 입히는 것보다 벗기는 것을 원한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한편 샤름의 부모인 히말라이 대공은 파리 패션계의 거장 피오르를 초대하여 성대한 패션쇼를 열고자 하는데, 피오르 본인은 과연 역사를 추월하여 미래의 패션을 창출하는 일이 가능한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우연히 그들과 만난 기수 후프나기엘은 패션쇼에 초대된 손님들 사이에 경쟁을 붙인 뒤 그 중에서 선정된 디자인을 피오르가 응용하여 새로운 패션에 반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하지만 후프나기엘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대공의 시종이었다가 쫓겨난 선동가로, 귀족을 가장하고 행사에 숨어들어 하인들을 포섭함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곰브로비치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발표한 최후의 희곡. 전 2작과 달리 왕실은 등장하지 않으나 대공과 공주, 백작 등으로 이루어진 상류사회를 무대로 한 것은 여전하며, 허례허식과 사치에 물들어 터무니없는 짓을 일삼는 귀족들의 실태가 보다 세밀하고 유쾌하게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귀족들 아래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마구 굴려지는 하인 계급의 모습도 추가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귀족의 하인들이 주인의 후광을 업고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광경이나 그러한 하인들이 속에 쌓인 불만을 터뜨려 마침내 혁명에 나서는 과정 등이 짧지만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보나』에서 하인 발렌티가 툭하면 방해물 취급 받고 별다른 역할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참 많이 진보한 것이다.) 아무리 지저분한 괴벽이라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귀족이 하는 경우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엉덩이가 저들과 똑같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각종 패션과 관습과 예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던 귀족들이 혁명이 일어나고 목숨이 위태로워진 뒤에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전등이나 테이블이나 길 가던 아줌마 등등으로 변장하고 이리저리 숨어 지내는 모습이 압권이다. 전 2작이 기존 체제의 융성을 배경으로 모든 게 잘 되어가던 중에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 데 비해 이 작품은 혁명과 전쟁으로 기존 체제가 이미 붕괴된 이후 혼란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누군가의 강림’이라는 뜻밖의 전개를 보여주며 희망과 절망이 기묘하게 뒤섞인 미지의 미래로 달려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위적인 패션과 순수한 나체의 강렬한 대비가 그러한 결말에 연결되는 복선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 맺는 글
 직접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곰브로비치의 희곡들은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기보다는 작가 본인의 심리상태와 실존적 고뇌를 변화무쌍하게 요리해 보이는 인간 실험실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정해진 해답을 주기보다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독자들은 혼란에 빠진 채 기묘한 기분으로 책을 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혼란이야말로, 그 기묘한 기분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효과에 가까운 것이라고 납득한 뒤에,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텍스트를 두 번 세 번 읽어나간다면 그때마다 뭔가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혼식』에 나온 아래의 대사는 마치 헨리크의 입을 빌려 작가가 독자에게 시공을 초월한 도전장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너도 나도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서로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나가자는 도전장 말이다.

‘난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이해 못 해!
너희들 중 누구라도 이해한다고 장담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거다!
너희들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
바로 나처럼!
우리는 단지 우리들끼리 서로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서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거야’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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