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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지프 캠벨, 이윤기 옮김, 민음사, 2004년 9월



정원사 (gardener_77@hotmail.com)



‘신화’라는 이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며, 어디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어떤 것을 주로 읽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신화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출발지점으로 빠뜨릴 수 없는 책도 있게 마련. 20세기 최고의 신화해설자로 불리는 조셉 캠벨의 저작이 그 목록의 제일 앞쪽에 위치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글은 쉽고 재미있는 데다, 힘이 넘치는 달변을 구사하며, 기본적인 바탕이 문학적인 만큼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 그 카리스마와 명쾌함에 휘둘려 신화학에 발을 담그자마자 ‘캠벨 교도’가 되어버려서야 곤란하지만, 그런 사람이 제법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캠벨의 글에는 매력이 있고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캠벨이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린 만큼 국내에도 그의 주요 저작이 세 종 소개되어 있다. 제일 먼저 평민사에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이 번역 출간, 1996년 대원사에서 [세계의 영웅 신화: 아폴로, 신농씨, 그리고 개구리왕자까지]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다시 원래대로 이름을 바꾸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정리한 책 [신화의 힘](1985)은 1992년 고려원에서 출간, 재판되다가 최근 이끌리오에서 다시 냈다. 그리고 작년에는 까치글방에서 대작 [신의 가면](1959~67) 4부작을 완간했다.

   이 여섯 권 중에서 [신화의 힘]은 입문서로 적절하지만 대담 형식이어서 부담이 없는 만큼 재미도 떨어지는 편이고, [신의 가면]은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데다 4부작 각 권의 양이 만만치 않아 부담스럽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집필시기상으로 가장 앞서고, 조셉 캠벨이 어디에서부터 비교신화학을 시작했는가를 잘 알 수 있으며 널리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영웅)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쉽게 다가설 수 있다. 내용상으로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신의 가면]의 전주곡에 해당한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캠벨의 저작을 한 권만 읽으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여섯 권을 다 읽을 생각이라면 역시 이 책을 제일 먼저 읽는 게 좋다고 본다(솔직히 왜 [신화의 힘]쪽이 더 유명한지 알 수가 없다). 놀랍게도 가장 최근에 나온 민음사의 책은 현재 품절 상태지만, 대원에서 나온 책은 구할 수 있으며, 조금만 기다리면 어디에서 내든 다시 나올 테니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니 이제 이 책 이야기를 좀 해보자.

  

   1904년에 태어나 1987년에 타계한 조셉 캠벨은 영문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아서 왕 전설과 어린 시절에 읽은 아메리카 인디언 민담의 기본주제가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줄곧 신화의 ‘원형’이라는 주제에 매달렸다. 그는 정신분석학, 특히 융의 심리학에서 답의 일부를 찾았고, 꿈과 문학과 신화를 한 줄에 꿰어 해석하기 시작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는 이런 그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캠벨은 여러 신화 중에서도 소위 ‘영웅 신화’로 분류되는 계열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세계 곳곳의 문화에 나타나는 영웅 신화를 상호 비교함으로써 영웅의 원형,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집단심리를 읽어내려 한다.

   캠벨이 내놓은 주장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주 단순하게 토막쳐보면 뼈대는 이렇다. 세계 여러 곳의 신화와 민담을 보면 비슷한 영웅들이 나온다. 이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놓고 들여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그 패턴은 이러이러한데, 알고 보면 통과의례의 그것과 거의 같다. 그것이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을 투사하며, 사람들이 실제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고난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지금의 영화와 소설도 같은 영웅들을 보여준다. 끝. 이 얼개에 수많은 영웅 신화의 예를 살붙여 재미있게 다듬어놓은 것이 이 책의 정체다. 개구리 왕자를 이야기하다 크리슈나신으로 건너뛰고, 나바호족의 민담 이야기인가 싶으면 서왕모 설화로 연결되고, 칼레발라와 그리스 신화와 설교하는 목사와 불교의 설법이 연이어 나온다. 범위만 방대한 것이 아니라 이 예에서 저 예로 건너뛰며 줄거리를 엮어나가는 솜씨가 워낙 훌륭해서, 신화의 일부분을 그대로 따다가 인용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데도 때로는 “그 신화가 이런 이야기였던가?” 하는 어리둥절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건 칭찬이면서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조셉 캠벨이 인용하고 끌어오는 어느 신화가 재미있어 보여 그 신화를 직접 찾아 읽어보는 경우도 있을 터이고, 이런 점 때문에 그의 글은 훌륭한 입문서가 된다. 하지만 캠벨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필요는 없다. 그가 끌어온 신화들은 캠벨의 요리 안에서는 일관된 것들이지만, 하나 하나 따로 보았을 때에는 훨씬 복잡한 텍스트다…….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수많은 예가 주는 재미로 사람들을 신화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이 책은 또 한 가지 매력을 지닌다. 바로 문학/혹은 대중문화와의 연관성이다. 캠벨 본인의 출발점이 문학이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의 신화분석은 민담, 전설, 동화, 서사시, 소설, 심지어는 영화까지 범위를 넓힌다. 조지 루카스가 캠벨의 책을 읽고 스타워즈를 구상했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에피소드일 텐데, 실제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어보면 루크 스카이워커의 여정이 얼마나 이 책에 나오는 영웅의 원형에 부합하는지 금새 알 수 있다. 특히 1부 영웅의 모험(1장 출발―――2장 입문―――3장 귀환―――4장 열쇠)에서 보여주는 공식은 반지의 제왕이나 나르니아 연대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니 드래곤 라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 시련을 겪고 돌아온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분석할 때 언제나 적용 가능하다. 꼭 정답은 아니라는 점만 명심한다면 이건 굉장히 재미있는 유희가 될 수 있다. 뿐인가, 캠벨은 학자이기보다는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이며, 모든 대가의 작품이 그렇듯 글 자체가 문학적이고 또한 시적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캠벨의 교조적인 면을 싫어하는 필자도 그의 저작은 대부분 읽으며, 다른 이들에게까지 추천한다는 모순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재미삼아 귀를 기울여 보는 콩고 주술사의 잠꼬대 같은 주문이나, 점잖은 취미로 읽어 보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노자 경구집의 얇은 번역본이나, 이따금씩 깨뜨려 보는 아퀴나스 논법의 견고하기 그지없는 껍데기나, 기괴한 에스키모 요정 이야기의 빛나는 의미이거나간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매한가지다. 곧 변화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은 아무리 읽고 들어도, 여전히 체험해야 할 이야기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는 도전적이리만큼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프롤로그 중에서

   차례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을 때 차례부터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함께 싣는다. 특히 1부의 구성은 영웅의 원형 패턴과 거의 들어맞는다.

   프롤로그/단일 신화
      1. 신화의 꿈
      2. 비극과 희극
      3. 영웅과 신
      4. 세계의 배꼽

   1부/영웅의 모험
      제1장 출발
         1. 모험에의 소명
         2. 소명의 거부
         3. 초자연적인 조력
         4. 첫 관문의 통과
      제2장 입문
         1. 시련의 길
         2. 여신과의 만남
         3. 유혹자로서의 여성
         4. 아버지와의 화해
         5. 신격화
         6. 궁극적인 선물
      제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2. 불가사의한 탈출
         3. 외부로부터의 구조
         4. 귀환 관문의 통과
         5. 두 세계의 스승
         6. 사는 자유
      제4장 열쇠

   2부/우주 발생적 순환
      제1장 발산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2. 우주의 순환
         3. 공(空)의 바깥: 공간
         4. 공간의 안: 생명
         5. 여럿으로 갈라지는 하나
         6. 창조의 민화
      제2장 처녀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인 모체
         3. 속죄의 자궁
         4. 미혼모의 민화
      제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시절
         3. 전사로서의 영웅
         4. 애인으로서의 영웅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6. 구세주로서의 영웅
         7. 성자로서의 영웅
         8. 영웅의 죽음
      제4장 소멸
         1. 소우주의 끝
         2.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신화와 사회
         1. 변신자재자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3. 오늘날의 영웅
댓글 2
  • No Profile
    hermod 03.09.27 06:21 댓글 수정 삭제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한 책이죠^^
  • No Profile
    정원사 03.10.01 14:53 댓글 수정 삭제
    아, 이런. 실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캠벨의 책은 네 종이군요. '신화의 세계'를 깜박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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