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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뱀=DNA

제레미 나비, 김지현 옮김, 들녘, 2002년 3월



정원사 (gardener_77@hotmail.com)



   “오늘 사라진 열대우림에 에이즈/암 치료제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보존운동에서 비교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카피다. 열대우림의 식물조성은 온대와 전혀 다르다. 어떤 식물종은 아주 좁은 지역에밖에 서식하지 않으며, 그 지역이 파괴되는 순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열대식물로부터 새로운 돈벌이를 계속 찾아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카피는 아마존 우림이 지구 산소의 몇퍼센트를 공급하고 있다는 말보다 훨씬 와닿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현대과학은 그 식물들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춘 원주민들을 무시한다. 아마존 사냥꾼들이 수천년 동안 독화살용으로 이용했던 근육마취제 쿠라레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1940년대 이 쿠라레가 수술에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은 과학자들은 화학적으로 쿠라레 유도물을 합성, 특허를 내고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 물론 원래 개발자인 원주민들은 ‘여러 식물을 조합하여 가열하는 동안 나오는 향기롭지만 치명적인 증기를 피해 72시간 동안 끓여야 하는(본문 중에서 인용)’ 물질을 ‘운좋게’ 발견했을 뿐이라고 치부하고서 말이다.

   사실은 서두를 다르게 시작하고 싶었다. 소위 서구적이며 현대적이지 않은 문화와 지식은 모두 원시적이고 후진적이며 진보해야 할 것으로 간주되던 때가 있었다고.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듯, 과거형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상황은 원주민의 지식을 무조건 쓸모없고 열등한 것으로 보던 몇십 년 전보다 더 괴상하다. 현대 수학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공학적으로 응용할 수 있으면 그 이론은 ‘옳다’고 인정된다. 그런데 아마존 원주민들의 지식을 가져다가 실용적으로 써먹으면서 그들의 지식은 미신으로 치부한다. 이 얼마나 기이한 모순인가. 미신을 기피하는 데는 어떤 미신이 있다(베이컨). 제레미 나비의 [우주뱀=DNA](제레미 나비/김지현, 들녘, 2002년 3월)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현대과학의 한계선을 넘어서, 그 사각지대 안으로 들어가보는 것. 질문해보는 것이다. 어떤 지식을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제레미 나비는 글의 내용면에서만이 아니라 형태면에서도 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려 애썼고, 때문에 이 책은 추리소설처럼 차근차근 저자의 내면세계를 따라간다. 1장은 이 책을 쓰기 7년 전인 1985년, 현지조사를 위해 머물던 아마존의 끼리샤리 마을에서 겪은 일을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엄청나게 방대한 아마존 식물에 대한 원주민들의 지식에 감탄한 저자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아느냐고 묻자 사람들은 식물이나 동물, 땅이나 숲에 대한 모든 지식의 원천은 ‘아야우아스께로’라고 대답한다. ‘아야우아스께로’란 ‘아야우아스까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되는데 곧 일반적으로 말하는 샤먼이다. 아마존 사람들은 아야우아스까를 마시면 이미지를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다고, 이를 ‘숲의 텔레비전’에 비유한다. 저자는 당혹감을 느꼈고, 실제로 이 음료를 마셔봄으로써 강렬한 체험을 하기도 했지만 연구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았다. 환각을 통해 식물학적인 지식을 배웠다는 언급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가는 학계에서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그러나 공식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후에도 계속 이 수수께끼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떻게 전자현미경도 없는 사람들이 아마존의 8만가지 식물 종들 중에서 환각 성분의 뇌 호르몬을 함유하는 관목 잎사귀를 가려내고, 이것을 소화 효소가 환각효과를 차단하지 않도록 효소 활성화를 막는 물질을 함유한 덩굴과 조합하며 이것을 통해 의식을 변형시키는가, 그런 지식을 모두 환각 속에서 배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에, 환각경험 속에서 본 현란한 뱀들의 모습에. 그리고 7년이 지나 책을 쓸 기회가 오자 전력을 다해 그 의문에 달려들었다.  

   저자는 “자연은 기호로 말하며 그 언어를 이해하는 비밀은 형태나 모양의 유사성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는 카를로스(아마존에서 만난 아야우스께로)의 말과, 입체영상을 보려면 ‘초점을 흐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잣대삼아 수많은 문헌을 파고들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에 마주친다. 자신이 환각상태에서 보았던 뱀과 전세계 신화에 등장하는 ‘우주뱀’, 그리고 서로를 휘감고 있는 이 쌍둥이 뱀과 DNA 사이에 나타나는 또렷한 유사성……. 분자생물학자가 아마존 샤먼 출신의 화가가 그린 그림에서 콜라겐의 삼중나선이나 풀어진 형태의 DNA 등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미있지만 쓸데는 없는 지식쯤으로 가볍게 여길 수도 있었을 이 발견으로 저자는 한 가지 방향을 잡게 된다. DNA가 모든 생명체 안에 있다면 그것은 곧 식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생명의 핵심원리’가 있다는 의미이며, 그것이 바로 아마존 샤먼들이 이야기하는 우주뱀일지도 모른다. 즉 어쩌면 분자생물학을 파고듦으로써 아마존 샤먼들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고, 혹은 역으로 샤먼들의 말을 통해 분자생물학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후 내용은 지그재그로 신화와 현대과학을 오가며 진행된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실마리가 다른 실마리를 물어온다. 분자생물학도 사실 DNA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내놓은 ‘유향포자 가설’, 한 사람 몸 속에 있는 DNA의 실을 모두 풀어 늘어놓으면 지구를 5백만번은 돌고도 남을만큼 길다는 것, 세포를 채우고 있는 소금물의 염분 농도는 바닷물과 비슷하며 뱀 숭배에 대한 주류 학설 몇 가지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사실들. 현대과학이 환각은 물론이고 시각의 메커니즘조차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사실과 DNA가 초미세 레이저에 비할 만한 규칙성을 가진 포톤을 방출하고 있다는 점. DNA의 90프로 이상을 차지하나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정크 DNA’……. 이렇게 나열해놓으면 파편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단서들을 가능한 한 쉽고 찬찬하게 풀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저자의 가설은 윤곽을 드러낸다. 만약 ‘아야우아스까로’ 같은 환각제가 일종의 ’초점 흐리기‘를 가능케 해줌으로써 DNA가 방출하는 바이오포톤을 감지하게 해준다면? 인간의 DNA가 어떤 정보를 방출한다면 다른 생물의 DNA 또한 그러하지는 않을까? 생물학자들이 오만하게도 ‘정크(쓰레기)’라고 부르는 부분은 그 정보를 송수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제레미 나비는 여기까지 와서도 바로 그렇다, 이것이 진리다! 라고 외치지는 않는다. 시종일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온유하게 ‘아마존 샤먼들의 말은 바로 그런 뜻이 아닐까?’라고 물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놀라운 깨달음이라 여긴다 해도 이런 내용이 현대과학의 근본에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 시도가 샤먼들의 지식을 제한시키고 어느 정도 왜곡시키는 작업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이 책은 명확한 대답이 아니라 독자들과 학계에 던지는 가설이고 질문이며 한계를 넘기 위한 호소에 머문다. 그러나 그 안에서 혹자는 경이감을, 혹자는 영감을, 혹자는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식과 재미는 물론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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