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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깔리다사

2004.07.30 21:3507.30

메가두따, 샤군딸라

깔리다사, 박경숙 옮김, 지식산업사, 2002년 5월



정원사 (gardener_77@hotmail.com)



   1500여년 전, 북인도는 동서에 걸친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굽타 왕조의 통치하에 번영과 풍요를 누렸다. 힌두교가 나오고, 숫자 0이 발명되고, 아잔타 석굴이 만들어졌으며, 산스크리트(싼쓰끄리뜨)어가 공용어 겸 엘리트 언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시기다. 이 굽타 왕조의 제 3대 왕이었던 찬드라굽타 2세는 영토를 크게 넓힌 무인이면서 동시에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여 ‘시인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 그의 궁정에는 9보(寶)라고 일컫는 아홉 명의 시인이 있어 작품활동에 후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중에 깔리다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방랑객으로 유명하며, 괴테와 실러에게 영감을 주었고, 인도인들이 세익스피어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호언하는 시인.
  
   당연한 듯이 적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찬드라굽타 2세의 궁정시인이라고는 하지만 깔리다사가 우자이니를 특히 자주, 잘 묘사하고 있으니 우자이니 출신이거나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며, 비크라마디티아(위끄라마디띠야. 태양이 내딛는 발걸음이라는 뜻. 찬드라굽타 2세의 별호) 왕을 그리는 희곡을 쓴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측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추측이 맞다 해도, 위대한 방랑객으로 유명한 시인이 어떤 식으로 궁정의 후원을 받았을까. 방랑을 끝내고 궁정에 정착했던 것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후원을 받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잠깐씩 궁정에 들러 작품을 바쳤을까? 방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느낌대로 혼자 걸어다녔을까, 아니면 혹시 말이 방랑이지 편안하고 호화로운 유람을 다녔던 건 아닐까. 깔리다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추측할 단서도 하나 없는 지금은 모든 것이 안개 속에 잠겨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런 느낌 때문에 깔리다사를 신화 서적 코너에서 소개하는 데 대한 죄책감이 다소나마 덜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와, 이 작품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독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신화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그리고 있으며 다른 전승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는 해도 깔리다사의 작품은 ‘개인의 문학 작품’이라는 인상이 확연하다. 문학성도 인정받지만 신화/전승/서사의 복합이기도 한 마하바라따나 라마야나와 전혀 다른 것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작품인 일리아드, 오딧세이와도 다르다. 오히려 비교하자면 소포클레스나 유리피데스 같은 그리스 시인들이 신화에 기반하여 상상력을 펼친 희곡 작품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도문화에 밝지 않은 외국인의 입장을 변명으로 삼을 수밖에 없겠다. 유용한 주석과 부록도 많이 실려있으니 말이다(웃음)
  
   필자도 겨우 석 달 전에 알고 놀란 일이지만 깔리다사의 대표작은 두 작품이, 그것도 영어 중역이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완역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 지식산업사에서 [세계의 고전: 인도편]이라는 이름하에 나란히 낸 [메가두따](깔리다사/박경숙, 지식산업사, 2002년 5월)와 [샤꾼딸라](깔리다사/박경숙, 지식산업사, 2002년 5월). 인도에서 팔리(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있는 역자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역시 인도에서 미술을 공부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삽화를 그렸다. 훌륭한 주석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역시 읽기 쉽게 정리한 인도 신화 책을 몇 권은 읽고 보는 편이 좋겠고, 기왕이면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를 읽고 보기를 권한다. 그나마 나와있던 축약본도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실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메가두따
  
   메가두따란 구름megha의 사자(使者, duta)를 뜻한다. 풍요의 신 꾸베라를 섬기는 한 약샤가 잘못을 저질러 저주로 신통력을 빼앗기고 신혼의 아내와 헤어져 1년 동안 인도 중부 라마기리 산중에 유배되는데, 이곳에서 우기를 맞아 북으로 흘러가는 구름에게 부탁하여 히말라야에 남겨둔 아내에게 소식을 전한다는 내용을 취한 서정시다. 남인도에는 ‘메가삼데사’라고 불리는 이본(異本)이 존재하며 양쪽 다 내용과 양은 비슷하다고 한다.
  
   깔리다사가 젊은 시절에 쓴 이 작품은 뛰어난 관찰력과 절묘한 묘사력, 감각적인 표현으로 절찬받고 있으며, 후세 ‘두타 문학’의 선구이기도 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총 121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편 [뿌르와메가]와 후편 [우따라메가]로 나뉜다. 전편에서는 구름이 약샤의 전갈을 가지고 히말라야까지 가면서 지나갈 곳들에 대해 그리고, 후편은 히말라야 집과 그곳에 있을 아내의 모습과 마음에 대한 묘사가 중심이 된다.
  
   시, 그것도 서정시를 다른 나라 말로 옮겼으니 감정적으로 와닿기는 쉽지 않다. 시 곳곳에 나오는 표현이며 인도 풍습에 관해 친절하게 주석을 달았고, 맨 뒤에 관계된 여러 신화를 짧게 정리하여 시로 읽고 문학적 감동을 받기보다는 인도 신화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로 이용하기에 더 좋아보인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바탕 지식을 갖추고 주석까지 꼼꼼히 읽은 다음 두 번, 세 번 읽으면 새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샤꾼딸라
  
   괴테가 극찬했던 바로 그 작품. 원제는 [아비즈냐나샤꾼딸라(샤꾼딸라를 알아보는 증표)]인데 1789년 영어로, 1791년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샤꾼딸라]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원래 [마하바라따]에 들어있는 이야기에 깔리다사가 살을 붙이고 재구성하여 7막의 희곡으로 만들어낸 이 작품은 산스크리트 문학의 꽃으로 불린다.
  
   겸손한 왕 두샨따는 사냥을 갔다가 성자의 양녀이며 요정의 딸인 샤꾼딸라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하여 각자 홀로 마음을 태우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약속하지만, 사랑에 빠진 샤꾼딸라는 두르사와스라는 성자를 홀대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이 너를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저주를 받고 만다. 다른 이들의 애원에 마음이 조금 풀린 성자는 왕이 증표로 주고 간 가락지를 보면 기억을 돌이키리라 예언하는데, 흔히 그렇듯 아이를 배고 왕에게 가던 샤꾼딸라는 가락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탄에 젖은 샤꾼딸라는 설화나 민담, 혹은 동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줄거리지만 이 희곡은 실로 우아한 데다, 뭐니뭐니해도 재미가 있다. 희곡이라는 장르를 별로 즐기지 않는 필자가 정신없이 읽었을 정도니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메가두따]보다 이해하기 힘든 표현도 훨씬 적다.
  
   [샤꾼딸라]에는 부록으로 ‘산스크리트 문학’ 개관과 간단한 발음규칙이 실려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어 표기법상 ‘꾸베라’가 아니라 ‘쿠베라’로, ‘마하바라따’가 아니라 ‘바하바라타’로, ‘싼쓰끄리뜨’가 아니라 ‘산스크리트’로 옮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역자는 원어 발음을 중시하여 전자와 같이 표기했으며, 그에 따라 이 리뷰에서도 책 내용에 관계된 표기는 모두 그대로 적고, 익숙한 표기대로 적은 경우에는 괄호 안에 원어 발음을 병기했다. 문제는 ‘v’자 발음이다. 된소리로 쓰느냐 거센소리로 쓰느냐 정도의 차이는 알아보기 어렵지 않지만 ‘va’를 기존의 ‘바’가 아니라 ‘와’로 읽기 시작하면 같은 이름도 상당히 달라 보인다. 쉬바를 쉬와로, 바루나를 와루나로 읽는 식이다. 외국어 발음을 완벽하게 옮기기는 불가능하다 해도 우리식으로 하면 더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영어식으로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역자의 판단이다. 이제까지 익숙해진 발음이 있고, 앞으로도 표기규정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는 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이며, 고마운 부록이다.
  


   덧붙임. 깔리다사가 쓴 것이 확실시되는 작품은 [메가두따]와 [샤꾼딸라] 외에 다섯 편의 작품이 더 있다. 서사시로는 라구 왕가의 역사를 노래한 [라구왕샤], 전쟁의 신인 스깐다의 탄생을 읖은 [꾸마라삼바와] 두 편, 희곡으로는 뿌루라와스 왕과 요정 우르와쉬의 사랑을 그린 [위끄라모르와쉬야](깔리다사를 이야기하며 언급한 작품), 아그니미뜨라 왕과 아름다운 여인 말라위까의 사랑을 그린 [말라위까아그니미뜨라] 두 편, 그리고 서정시로 계절을 노래한 [르뚜상하라]까지다(모두 메가두따/샤꾼딸라의 발음규칙을 적용. 원문병기는 생략). 2년 전에 두 권을 낸 것을 끝으로 [세계의 고전]이라는 시리즈도 이어지지 않고 있는 이상 다른 작품이 소개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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