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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_sea@hanmail.net  0. 들어가며

   거울의 1주년을 맞아 여(余)는 거울이라는 사이트가 앞으로 한국 환상 문학의 한 근간으로서 성장해 주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장편연재가 이루어지는 사이트들도 많고 출판작가를 숱하게 배출한 사이트 역시 많이 있지만, 저력 있는 단편 작가들을 볼 수 있는 사이트는 많지 않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 우려하는 마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순문학에서 단편과 장편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단편에서의 입문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이 수많은 문예지(지방 간행의 문예지를 포함해서)에 글을 게재하는 형식이든 혹은 신문사 등에서 개최하는 신춘문예를 통한 것이든, 한 작가가 등단하는 데에는 단편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드문 것이다. 각종 대학에서 문예창작과가 생겨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성균관대학교 문예창작과,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등을 포함해서 많은 신설 문예창작과 출신들도 단편을 써내는 작가군으로서 계속 배출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한 학교의 창작론 수업도 대개는 단편소설을 먼저 써내는 것이지, 단행본 1권 이상의 장편을 써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단순히 장편을 읽고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 아니라 단편이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을 보는 데 좋은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혼돈하거나 어떤 것이 다른 것의 전체집합인지 설이 분분한 SF만 보아도 예전부터 일관되게 출판사들이 단편 중에 수작들을 골라 번역하지 않았던가. 도솔의 [마니아를 위한 SF 걸작선]은 예전 고려원의 SF 단편 시리즈들과 많이 겹쳐지긴 하지만, 시공사의 [오늘의 SF] 시리즈, 황금가지의 [오늘의 SF걸작선] 시리즈들은 비교적 시간이 흐르지 않은 최근의 단편들까지도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선을 보인다. SF문예지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판타지 장르에서는 다르다. 판타지의 출판 작가들은 대개 장편소설을 출판하면서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다. 공모전을 거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황금 드래곤 문학상처럼 단편소설을 판타지 공모전의 한 부분으로 싣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수상작이 출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같은 장르문학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과학동아에서 실시하는 ‘과학소설 창작문예’가 장편을 제외하고 중편 이하 분량의 글들만을 심사 대상으로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단편소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장편소설만을 양산할 때에 어떤 글이 나올지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채워진 10권 가까운 분량의 장편 소설들은, 비슷비슷한 인물들에다 집약되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한숨이 나오고, 이 글을 과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있는가 의심하게 된다. 작가의 습작이 단편에서 출발하든 장편에서 출발하든 상관은 없다. 장편의 개성과 단편의 개성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장편의 길이는 단순히 손 가는 대로 마음대로 써서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10권이 넘는 장편의 마지막 권에서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많다고 하는, 2부, 3부 계속해서 나오는 이 시리즈물들 앞에서 한숨이 나온다. 물론 너무나 방대한 세계관에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다 보면 부피가 커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각 시리즈별로 분명히 가치를 가지며, 그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적인 주제 역시 존재한다. 토지나 혼불의 내용을 2-3권에 압축한다면 그 글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는 장편소설의 길이가 길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단편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을 비판하려 하는 것이다. 장편은 잘 쓰는데 단편은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 내키는 대로 길쭉 길쭉 계속 늘여 쓰기만 한 사람은 결코 단편을 짜임새 있게 써낼 수 없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거울의 1호 단편집을 보면서 여는 이 작가들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잠시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환상소설이란 곧 엄청나게 많은 권수의 장편소설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는 독자들이나, 장편소설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쓰면 그게 단편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나 다를 게 없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여는 이번 단편집에서 비교적 수작으로 꼽히는 글들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글 역시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난무하는 쉽게 쓰여진 단편들을 생각해보면 고마운 수준이다. 표제작으로 꼬눼?글 스무 편, 독자 우수 단편으로 선정되었던 글 네 편, 편집부 선정작과 찬조작, 일본의 번역글까지 스물 일곱개의 단편이니 웬만한 단편집 하나의 분량을 훨씬 상회한다. 단편집을 구입할 때에 개중 10% 정도의 수작만 발견해도 보물을 얻은 느낌인 여는, 이번 단편집이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모든 글을 두 세 번에 나누어 감상을 말할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또 말할 거리가 없는 글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이번 호 한 편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편의상 독자 우수 단편들은 제외시켰다. 논하지 않는 글이 다른 글에 비하여 수준이 낮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 없으시길 빈다.
    

   1. 아도니스 - 가연

   가연 님의 글은 거울의 창간 이후로 뚜렷이 구별되는 듯하다. 예전에 언급한 적 있는 {어른들은 왜 커피를 마시지?} 시절의 글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설정으로 돋보이는 글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플롯이었지만 묘사가 다소 치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하여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다가도 혹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자신의 벽을 뛰어넘으려 노력하다가 자신의 장점도 잃어버리고 이도 저도 아닌 수준에 머물러 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도니스를 읽고 나서 여는 무척 놀랐다. 이렇게 전적으로 묘사에 기대는 글을 쓰다니. 기댄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여는 이 글의 묘사에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제로델 준남작의 이야기는, 그에게 심취해버린 사람들의 묘사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제로델은 여성들의 눈에는 각자의 이상을 투영한 존재다. 나이 많은 남편에게 소유물처럼 휘둘려온 어린 부인에게 제로델은 조심스럽고 수줍으며 배려심이 많다. 마치 모든 사람을 홀려놓는 드라큘라 백작처럼, 그는 모두에게 가장 이상적인 애인이다. 심지어 그들 중에 누구도 제로델을 독점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로델이 자신 외에 수많은 애인이 있다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제로델이 감옥에 갇히자 그에게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주기 위해서 협조하기까지 한다. 동료들에게는 신임을 받고 있다. 유일하게 그의 편이 아닌 자는 세 명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왕이 가드 공작부인의 부탁에 휩쓸린 것을 생각해보면 전반부에 제로델을 만나고 나서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은 그의 형과 그를 모함한 가드 공작부인 뿐이다.

  그러므로 이 기이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이 글의 가장 핵심이다. 하나 하나의 인물들을 만나면서 제로델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휘둘렀는지를 확인하게 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가드 공작부인조차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다른 이들처럼 그를 공유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독점하려고 했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리고 그를 관찰해가는 신부조차도 마지막에는 그를 진심으로 도우려 들게 된다. 사람들의 감정 변화는 완만하지만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부인들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그에게 반한 마음이 이해가 된다.

  유일하게 그를 변명하지 않은 형만이 최후까지 남는다. 그는 왜 변명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동생이 분명히 그 재판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아니면 그는 동생의 본질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었을까. 효자이며 충성된 신하이고 믿음직한 동료였던 그가 실제로는 그 아름다운 외모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던 것일까. 그 어느쪽이든 글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형의 그림자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 글은 묘사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묘사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글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플롯은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고, 특별히 흐름을 변화시킬 사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공작부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뜻을 번복하고 사실은 자신이 그를 사랑했음을 밝히는 것도 반전이라든가 전환점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오직 한 인물이 다른 이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마지막까지 주변의 인물들을 전혀 죄책감없이- 오히려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면서- 이용하고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 개봉했던 '바람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그 영화가 춤추는 장면에 심취하고 음악에 빠져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빈약한 스토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데는 실패했듯이, 아도니스 역시 그러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글이라, 앞으로의 변화를 더욱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느라 장점을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2. 감정세공사 - askalai

  askalai님의 글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문장의 글투부터가 장르에 잘 어울리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한국 환타지 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으니 이미 검증된 출판작가라 할 수 있고, 번역가로서도 유명한 분이니 문장에 입을 대는 것이 오히려 결례겠다.

  게다가 작가는 판타지 독자들이 어떠한 소재에 매료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장르를 많이 읽어 그 코드에 익숙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안정된 문장과 독특한 소재가 결합되니, 독자들이 반할 만하다. 그러나 때로 단편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부분만이 글의 특징인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독특한 소재도 많고 문장도 매력적인데, 읽다 보면 글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글 안에 제시된 소재들을 아우르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글을 읽고 나면 매력적이었던 글의 소재에 대해서는 기억하지만, 이 글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어지고 만다.

  감정세공사는 드물게도 그러한 단점이 나타나지 않은 글이었다. 일관되게 감정세공사라는 기묘한 부분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접근한다.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열정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익숙함으로 변하고 조금은 권태로운 순간도 거치며 서로에 대해서 익숙해지는 단계가 진짜 사랑이 아니냐고 스윽 간판을 든다. 가장 감미로운 순간의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섬뜩해진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진지한 마음이라고.

  소재가 한정되고 글의 분량도 짧지만 그 덕분에 글의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없이 제시된 설정도 보이지 않는다. 작가분의 역량이 제대로 드러난 글이라 하겠다.  


  3. 마법사의 아침식사 - 아비게일

  작가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도 글의 지은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거울의 필자 중의 한 분이신 미로 님이라든가 명비 님처럼 독특한 분위기의 문체를 구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댕!님 같은 경우에도 특정 분위기에서 작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유니카 님처럼 발랄한 메르헨 이야기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아비게일 님은 그 어떤 경우도 아니다.

  아비게일 님의 글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은 압도적으로 소재 때문이다. 드래곤이나 용의 글을 즐겨 쓰는 사람이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글에서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것도 제작법이라든가, 그 향이라든가, 맛이라든가가 나온다면, 그 글은 십중 팔 구 아비게일님의 글이다. 대화에서 음식의 비중이 크다면 거의 확실하다. 그래서 여는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미처 작가의 이름을 보지 못하였는데도 금새 알아챘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중세 배경의 판타지를 쓸 때 작가는 종종 게임을 연상시키는 설정을 드러내고는 한다. 이 글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마법사의 체계가 초반부에 제시되는 것이나, 마법사와 신관이 황태자와 함께 퀘스트를 떠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아마도 게임을 매우 즐기시거나 혹은 TRPG 를 즐기시는 게 아닐지.

  비교적 단순한 플롯이다. 극적인 반전도 없으며, 한 마법사가 예전의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가 결론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구성 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그가 예전에 먹었던 스프다. 스프와 빵과 계란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마치 파티원들 같다고, 옛날 동료가 했던 말을 하며 웃음짓는 노마법사의 회고는, 분명히 꽤 따뜻한 기분을 준다. 조금 심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는  배고픈 밤에 이 글을 읽고 나서 결국 냉장고 문을 열어야 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아비게일님은 문예창작과를 나오셨다고 했다. 솔브라는 장편을 출판하신 경험도 있다. 순문학의 분위기도 알고 장르문학의 특징도 알 수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즈음의 글에는 장르문학이나 순문학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게임과 TRPG의 특성이 더 많이 보이는 듯하다. 가볍고 깔끔한 글도 매력적이지만 조금 더 깊이있는 글을 쓰시면 어떨까 하고 바란다.


  4. 그 안드로이드는 마법사 - 아르하

  예전에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에서 내었던 단편집 중에 '판타지는 없다'라는 글이 있었다. 판타지 작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판타지 작가들의 문제를 꽤 날카롭게 비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단편집을 분실해 버려서 그 글의 작가분이 누구셨던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이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른 거라면 '판타지는 없다'에서 그 사건이 가장 중심이 되는 반면, 이 글에서는 진아라는 소녀를 추적하면서 알게되는 배경적 사건이라는 정도다. 정형화되어 인물도 사건도 비슷비슷해지는 지금의 '공장제 판타지'들이 계속 사람들에게 판타지으의 전부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정말 독특한 판타지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이야기하는 것일까

  판타지 소설에서 판타지 작가가 등장하는 경우는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판타지 소설을 쓰던 인물이 자신이 쓰던 세계속에 떨어져 버리는 이세계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단편 속에서도 작가들은 종종 등장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글은 그 중에서도 특히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판타지 작가의 딸인 '진아'(이 부분에서 여는 조금 웃었다.)를 찾아 나가는 길은 메르헨과 판타지 소설을 합친 듯한 세계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자들이 세계에 개입해서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소설 창작이 곧 세계의 창작이라는 상징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진아'를 찾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한 소녀를 집에 데려오게 되고, 주인공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변화한다.

  사실 이 소설의 플롯이 복잡하지는 않다. 환상은 때로 그 순간만큼은 현실이 된다는 진아의 말은, 작가가 진아의 입을 빌린 것일까.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진아와 그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는 지금 주인공이 꼬마 안드로이드와 벌이는 일과 다를 게 없다. 그가 진아를 찾는 것은 자신의 거실에서다. 꼬마 안드로이드를 데려오는 순간에 그의 현실은 환상과 뒤섞여 버리는 것이다. 공주를 찾는 과정을 지나 탑에서 만나는 것은 진아지만, 그 이름은 오래 전 죽은 환상소설가의 딸의 이름이고, 자신의 속을 썩이는 꼬마 안드로이드의 이름이다. 두 존재의 이름이 같다는 의미가 뒤섞이고, 그는 자신이 추적한 진아의 과거를 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지금 겪는 현실이다. 탑 속의 진아가 사진 속의 진아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도 본질은 같은 인물이듯이, 그가 데리고 있는 사고뭉치 소녀 역시 책을 소중히하고 주인을 그리워하는, 어쩌면 머지 않은 장래에 자신이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낼지 모르는 진아다.

  아니 어쩌면, 화자가 환상소설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아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듯이 그가 떠난 후 환상 소설을 계속 쓰게 될지도. 환상소설작법 같은 얼토당토 않은 규정- 판타지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관 - 같은 것 전혀 신경쓰지 않은, 새로운 글을 말이다.  


  5. 크레바스 보험사 - 적어

  생명을 연장해 주는 보험. 시간이 사실은 연속적이 아니라고 하는 가정은 몇 번이나 환상소설의 작가들에게서 제시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단절된 수많은 시간의 공간을 관통한다고 하는 오래전 TV드라마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가다 과거의 시간에 불시착해버린 소설까지. 사람들은 흐르는 시간을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부터 사실은 시간이 불연속인 것이 아닐까 공상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해온 공상이기 때문에 그 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힘들다. 그러나 작가는 이 글에서 시간의 단절, 시간의 크레바스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고객을 구출하는 한 보험사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코믹한 분위기로 만들어 버린다. 과거의 시간에 떨어져 소멸될 위기를 겪고, 일행 중 몇 명을 잃고 나서야 겨우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소설에 비하면 참 완만한 전개다. 후미에 나오는 노인이 사실은 주인공과 동갑이라는 사실에 조금 섬뜩한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그 느낌이 강하지는 않다.

  단편이라기보다는 꽁트라고 해야 맞을, 이 단순한 글이 가진 매력은 그런 것이다. 어떠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것이 지탱하는 글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다른 군더더기는 거의 다 떨어내었다. 보험사 직원들은 자신들만이 다른 시간대를 살면서 늙어가는 것에 회한의 감정을 가질 수도 있을텐데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과감히 단순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탁월한 아이디어만이 멋진 꽁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사람이 한 적 있는 공상이라고 해도 어떤 식으로 옷을 입어 단장되는가 따라 전혀 다른 글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이야기한 적 있는 작가의 '돌아오는 여름이 다시 여름인 것처럼'과 같이. 작가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6. 나하의 거울 - 가는달

  맵씨있는 문장을 담담히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한껏 드러난 글이다. 나하의 거울은 작가가 글의 말미에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진음과 가음의 이야기이며 또한 예술의 본질을 깨닫고자 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서두는 한 노인이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노인의 줄기 근원에 있는 채해라는 사람에 있다. 한자이름이 많고 계보가 복잡하게 얽혀 단숨에 읽어내기는 다소 어렵지만, 채해라는 사람이 한 귀족의 덧없는 소리에 진심으로 음악의 본질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 멋스럽다. 구전되는 전설을 보는 듯이 장중하기도 하고, 예술을 따르는 과정이 흔히 그렇듯 덧없고도 버겁다. 작가가 끈질기지 않으면 이 여정을 흔들리없이 추적하듯이 촘촘히 서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침묵이라는 화두를 쫓아가는 음악가. 그리고 마침내 인간으로서 들을 수 없는 것까지 들어버린 채해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그 아내 나하는 그로서 음악을 연주하며, 그 계보는 나하에서부터 출발한다. 본질을 깨달은 이가 죽어버려서 진음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본질을 깨달은 이의 죽음까지 목격한 그 아내 나하를 통해 흘러 내려오는 것인가.

  아쉬운 것은 이 맛깔스러운 글이 수많은 고유명사들로 인해 다소 산만해 졌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나하와 채해, 노인에 관한 것인만큼 그 중간의 인물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간략하게 설명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나하에 대한 것도 정말로 작가가 진음과 가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면 그 핏줄에 대해서 신비하게 남겨두는 것도 좋지 않았을지. 마태복음 서두를 보는 듯한 누가 누구에게서 누가 누구에게서 이어지는 계보와 그들 주변의 인물들 이야기는 분명 이 글에서 멋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조금 버겁다.

  그리고 마지막 후미의 진음과 가음 이야기는 없어도 좋지 않았을지. 그 정도는 독자의 몫에 맡겨 두어도 좋았을 듯 싶다. 아이도 노인도 나하의 거울, 나하의 후예라고 하는 한 줄로서도 독자는 이 문장 없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을 듯하다.


  7. 왕의 결혼식 - 추선비

  매우 매력적인 글이다 . 혼자 죽음을 피해 나온 주인공 나연이 낯선 세계에서 만나는 기묘한 경험. 결말은 주인공의 죽음이지만 이 글에서 돋보이는 것은 분위기다. 몽환적인 대사와 낮게 깔린 서술이, 이 기묘한 내용의 글 전반을 통일성있게 아우른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주제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의 죽음이 하나의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설정은 섬뜩하만큼 독특하고, 탁월했다. 웅얼거리는 것 같은 음악이 이 글 전반에 흐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낮은 합창, 허밍으로 되어 있는 의미없는 음조, 그것은 장송곡의 분위기와 닮았으며 그래서 이 글에 매우 잘 어울린다 .

  개인적으로 추선비 님의 독특한 분위기를 매우 좋아하는 터라, 신작을 늘 기다리고 있다 . 간만에 만난 멋진 콩트였다. 건필을 기원한다.


  8. 할머니 나무 - 은림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황금 드래곤 문학상의 단편상을 수상한 글이다. 판타지 공모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단편 부분을 공모해서 관심있게 지켜 보았었는데 출판은 되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글을 많이 써본 분이거나 혹은 아주 숙고해서 쓴 글인 듯 단아한 문장이 매력적이었다. 죽음 대신에 나무가  되는 핏줄의 주인공은 이미 손자까지 있는 할머니지만, 늘 나무가 되는 것에 알 수 없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가 나무가 되었던 기억 때문이며, 태어나자마자 뿌리내리지도 못하고 죽은 손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고 나무가 되는 길을 택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흐르다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온 가족들을 통해 화해의 길을 맞이한다. 그것은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로 오해한 적도 있고 다툰 적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은 하나라고, 가장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바로 가족이라고, 침착하게 말하고 있는 작가의 어조는 장르보다는 차라리 순문학에 가까워 보인다. 배경을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로 둠으로서 현실에 기반을 두며, 바로 이 현실에 환상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독자는 동경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나무가 된다는 것도 멋진 일이야- 라고.

  하지만 우연이었을까. 이 글을 접하고 나서 얼마 후, 여는 한 만화를 만났다. 일본판의 제목은 '관용소녀', 한국어판의 제목이 '나만의 천사'라고 되어 있는 만화다 .그 중의 한 에피소드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서는 나무가 되는 병에 걸린 노인들의 쉼터에 가게 되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무가 되는 병에 공포스러워 하는 주인공에게 노인들은 너무나 담담히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며, 가능하면 어떤 나무가 되고 싶다고 두근거리며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이 만화에 대한 오마쥬였을까. 아니면 우연히 두 개의 소재가 일치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식물이 된다는 설정은 이 만화 외에도 몇 번 나타났었다. 반체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나무로 만드는 SF도 있었으니까. 식물이란 놀랍다. 움직이지도 않고, 그곳에 서 있을 뿐이지만 그들은 힘써 자라고,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또 최소한의 모습으로 겨울을 보낸다. 그런 매력적인 존재를 보고 한 번쯤 이런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법도 하니까.

  그러나 여전히 이 글은 매우 매력적인 글이다. 소재가 중심이 되는 글이긴 하지만 이 글을 관통하는 가족애라는 주제 역시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사용된 소재였다고 해도 맛깔스럽게 풀어낸다면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만약 작가분이 그 관용소녀를 읽고 그 소재를 가지고 오신 것이 혹시라도 맞다면, 조금 다른 접근을 할 수는 없었는지 아쉽다. 나무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감정은 병원에서 나무가 될 준비를 하는 노인들과 좀 닮았다. 독특한 해석이 아쉽다.


  9. 꽃의 변용 - 명비

  명비 님의 단편 중에 가장 멋진 글 중의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 여자의 20대 후반까지의 삶을 노래하는 듯한 특유의 문체로 맛깔스럽게 풀어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여자의 주변에는 신내림을 받는 무당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신내림을 받는 모습, 춤을 추는 모습들이 마음 깊이 각인되어 계속 되새김 된다. 처음 어린 마음에 조금 가슴에 품었던 소년에서부터, 너무 고와서 샘까지 나던 이웃의 계집아이, 참으로 단정하고 깨끗이 살던 서울살이의 이웃 아가씨까지. 그들은 모두다 무슨 이유에선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지 못하고 신내림을 통해 무당이 된다.

  주인공의 삶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 진정으로 사랑한 첫 남자와는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가 아직 얼굴도 채 익히지 않은 남자와 처음 살을 맞대고, 여자는 이후에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한다. 작가는 그것이 여자의 살음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여자의 살음은 곧 그 남자들과의 사랑이었노라고. 그런데도 여자는 혼자 서울에 살면서 무엇 하나 꽉 쥐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저 꽃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과 함께 살고 사랑하고, 또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스무 살 넘을 때,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산다. 얼굴에 큰 흉터를 남긴 일도 있고, 여기 저기 상처도 남았으니 여자가 살아온 게 그리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사연 많은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여자의 살음이었다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그저 한순간 한 순간 받아들이고 스치는 것이다. 여자의 일생은 그래서 꽃 같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들과 여자는 일순간 하나가 된다. 자신의 것을 쥐지 못하고 신이 되어버리는 여인네들은 감정을 쏟아낼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에게는 없다. 그러나 여자는 그네들보다도 더 신같이 보인다. 사내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이 때로 낯설고,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지친 기색 없이 그저 곱고 단아하게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명비 님 글의 매력이 십분 드러난 멋진 단편이었다. 단편집 안에서 손에 꼽는 수작이었다.


  10. 옆집 사는 뱀파이어 - inkdrinker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깡통따개를 빌린 것이 알고 보니 옆집에 살고 있는 뱀파이어였다. 게다가 피를 빨면 수면유도물질이 나온다고 하는 데다가, 물려도 뱀파이어가 되지 않는단다. 주인공은 잠을 자기 위해 기꺼이 자발적으로 피를 빨린다. 아니 피를 빨아달라고 강하게 부탁한다. 예의가 바르고 수줍음까지 보이는 귀여운 이웃은 주인공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배가 부른 데도 불구하고 피를 빨아준다.

  유쾌하게 전개되는 글이라 무척 즐겁게 읽었다. 아마도 장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기존의 뱀파이어라는 개념을 확 뒤집어버린 이 글을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 즉 뱀파이어가 피를 빨면 인간도 뱀파이어가 된다더라 하는 '통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에 이 글의 재미는 반감한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다뤄지는 경우도 많으니, 대부분은 그런 개념에 낯설지 않게 반응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여는 요즘 본의 아니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옆집에 이런 귀여운 뱀파이어가 살고 있다면 독점계약이라도 맺어서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11. 맺으며

  일단 표제작 중에 이미 단평을 통해 언급하지 않은 글들을 위주로 이야기했다.  서른개에 가까운 글 중에 채 절반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미진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 읽을 독자들에게 재미를 뺏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슬쩍 변명을 해본다.

  내년의 단편집을 벌써 기다려본다. 13호 이후에 몇 호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여는 이 글은 다음 단편선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꼽곤 한다. 필진들도 점점 늘어나고 독자 단편란도 풍성해진다. 단편소설에 목말라있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증거겠다. 여는 거울이 좀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더 많은 판타지 애독자들이 이 사이트들을 알고, 좋은 단편 소설이 얼마나 많은지를 느꼈으면 좋겠다. 판타지 소설은 한 권에 천원이라는 이야기가 이제는 슬슬 안 들렸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책장에서 거울 단편선이 1호부터 10호 이후까지 죽 줄지어 꽂혀 있고, 사람들이 이 첫 해를 회고했으면 좋겠다.

  거울 필자들의 건필을 충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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