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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뢰제의 나라

2004.06.25 22:3106.25





latehong@unitel.co.kr지지부진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을 용서하시라. J.R.R. 톨킨이 팬터지에 미친 영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뢰제의 나라』라는, 듣기만해도 시골 내음 물씬 풍기는 제목을 지닌 우리 소설에 대해서 톨킨과, 『반지의 제왕』과, 좀 더 나아가서는 '~적인 팬터지'라는 고리타분하다 못해 곰팡내 나는 소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할 참이다. 걱정이 있다면,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아무리 『뢰제의 나라』가 가진 '우리것'적인 속성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결국 톨킨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서구적 팬터지의 틀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한계를 지니게 되지 않나 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필자는 이 점을 당장 극복해내지는 못할 것 같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 여러분들께 이러한 한계에 대한 사죄와, 이 점을 염두에 두며 비판적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라는 당부 말씀과, 이런 초보적인 꿈틀거림이 그래도 '우리 팬터지'라는 광범위한 사유에 대한 작은 움직임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보내며 글을 시작한다.



 자본주의 세계는 돈이다. 그래서 돈 많이 번 『반지의 제왕』은 떴고, 덕분에 그게 왜 떴는지를 분석하는, 솔직히 독자 혹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작업도 종종 보인다. 물론 겉모습에 치우친 신문 기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관심 가져주는 모습이 보인다. 거기다가 『해리포터』랑 짝을 이루면 이 담론은 더욱 무게 있어 보인다. 그 담론을 좀 더 장엄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제 기사며 보고서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라는 개별 작품을 벗어나서 '팬터지'라는 어휘를 등장시켰다. 이제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당장 '전통'과 '신화'가 등장한다. 기사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왜 우리의 전통과 신화로 무장한 팬터지를…' 운운. 언젠가는 그러저러한 일들에 자극받았는지 전통을 토대로한 문화 아이템을 만드는 사업에 관한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아, 이미 블리자드가 〈디아블로2〉에서 그럴듯한 아이템들을 등장시켜 우리나라 게이머들을 꼬시기도 했구나.

 자아, 이야기를 살짝 바꿔서.

 팬덤 내에선 지난 몇 년간 워낙에 (대대적으로든, 소규모로든) 언급이 많이 되었던 주제인지라, '~적인 팬터지'는 이제 진부해진 감이 없지 않으나, 논의의 지지부진함과는 달리 그 주제 자체는 여전히 주목할만 하다. 그게 '한국적'이든 '서울적'이든 '동작구적'이든 간에 작품이 창작된 배경의 색을 발견하고 거기에 주목한다는 것은 소중한 작업이다. 자기 발견, 혹은 자기 확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특히나 서구적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보급되고 있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연장선을 피하고자 노력해오셨던 몇몇 분들께서는 이 발언에 대해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실은 필자도 좀 그렇다. 그래도 아무쪼록 좀 더 보편적인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임을 이해해주시길) 팬터지 소설 같은 경우는 남의 것의 답습에 그치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결국 '~적인 팬터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문제는 '~적임'에 대한 규정이며, 앞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혹은 〈디아블로2〉를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 그 '~적임'에 대한 규정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기 위함이었다. 그 한계란 가시적인 것,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가진 '전통을 계승한 팬터지'로서의 면모에 대해 언급할 때 논의되는 것은 언제나 북구 신화의 여러가지 소재들 뿐이다. 엘프니 오크니 기타 등등. 하기사 비단 팬터지만 그런 건 아니겠지. '한국적'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건 언제나 한복이요, 불고기며 태권도다. 물론 관광 상품이라면야 그런 것도 이해는 된다. 어찌 며칠의 관광으로 대한민국을 이해할 수 있으랴. 일단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이국의 정취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편이 더 좋겠지. 그렇지만 고도의 지적 유희 중 하나인 글쓰기와 읽기에 있어도 이미지에만 집착하며 '~적임'을 찾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닐까? 프로도를 김 서방으로, 오크를 두억시니(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한 두억시니를 언급하고 있는 게 아님을 알아주시라)로, 엘프를 도깨비로 바꾸?『반지의 제왕』을 『가락지 영감』으로 바꾸면 그건 우리내 전통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소설이 될 수 있으려나?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요는, '~적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는 것의 문제에서 벗어나서 좀 더 심층적인 구조의 문제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거다. 필자가 『반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것은 거기에 엔트와 발로그가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은 우정, 용기, 충성, 약속 따위의 지독히 고전적이고 요즘 내놓았다가는 비웃음당할 것 같은 해묵은 정서를 두려움 없이 배치하였고, 그 정서들을 고전적인 모습으로 탐닉하였으며, 거기에 약간 세련되고 풍부한 '현대 소설스러움'을 섞어 결국 '전통'의 현실화를 이뤄낸 작품이며, 필자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런 노력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소한 독자가 중간계 안에 머물고 있을 때만이라도, 『반지의 제왕』에 담긴 그런 정서는 이름뿐인 허울이 아니라 진정이 담긴 감동으로서 존재하며 그 감동은 서서, 앉아서, 누워서 책을 읽는 독자의 현실에까지 진한 울림을 퍼뜨린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전통에 손을 가져가는 훌륭한 방법이며, 전통이 가진 진정한 힘이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졌다. 우리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다. 강숙인의 『뢰제의 나라』는 바로 이런 전통의 힘을 담고자 노력한 우리 소설이다. 선도의 경전인 옥보추경에 등장하는 천상 세계의 모습에 매혹당해 이후 다져왔던 아이디어를 토대로 쓰여졌다는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내거나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가적 관심과 역량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작품'이라는 저자 소개의 문구가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게 한다.

 전래 동화의 여느 주인공마냥 착하고 성실하고 올곧은 주인공 다함이(화랑 사다함으로부터 따 온 이름)가 문화재 도둑들을 잡으려다 사고를 당한 뒤 저승사자의 실수로 인해 사후세계로 가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겪는 모험을 그린 『뢰제의 나라』는 옛적 전래동화 읽던 아련한 기억들을 꺼내와서 새로이 다듬어 내놓는 듯 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동생이 모인 방 안, 생일 케이크와 엽기토끼 인형으로 시작해서 '경주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농촌 마을'이라는 배경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내는 도입부부터 이러한 특성은 눈에 띄게 드러난다. 작가는 토속적인 이미지들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마냥 무리해서 시골 팬터지를 만드는 대신 (그 영화의 시골은 얼마나 시골스러운가!) 오히려 공간과 인물들을 현실로 끌어온다. 이처럼 능숙하고 과감한 균형 잡기는 독자들의 감정을 작품 속에 효과적으로 위치시키고 있다.

 거기에 다시 작가는 전지적 시점의 전지성을 십분 활용하여 인물 속에 부드럽게 다가서고, 작품 전체 분위기가 어울리는 적절한 어휘나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흡입력을 강화한다. 이를테면,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동생 다예와 함께 살아가는 다함이가 자신의 생일날 엄마를 그리워하며 잠이 들었다가 깬 뒤의 서술은 한 문장에 '엄마'며 '꿈'을 계속해서 반복해 사용하며 교묘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을 조율한다.


 간밤에 엄마 꿈을 꾸었다. 분명 엄마꿈을 꾸긴 했는데, 내용은 없었다. 그냥 속에서 엄마 얼굴을 잠깐 본 것뿐이었다.
 다함이는 자리에 누운 채 시무룩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깐 얼굴만 보여 주고 말다니, 너무 아쉬웠다. 지난 해 여름,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한동안 엄마꿈만 꾸었는데, 어쩐 일인지 올해에는 거의 엄마꿈을 꾸지 않았다. 에라도 엄마를 한번 보고 싶은데, 엄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 갑자기 엄마꿈을 꾸었다. 어제가 다함이 생일이어서 엄마가 잠깐이마나 에 나타난 것일까. 다함이는 벽에 걸린 엄마 사진으로 눈길을 돌렸다. 큰 고분 앞에서 엄마는 여전히 다함이, 다예와 함께 웃고 있었다.



 유전자 변형 식물의 폐해에 대해서 논하는 농촌 사람들과 부적이 무리없이 공존하는 배경과 따스하면서도 할 말 다하는 문체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을 다듬은 다음,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뢰제의 나라'로 들어간다. 이런저런 전래동화들의 기본 구조를 수없이 발견할 수 있는 이 본격적인 모험담에서도 작가의 시각은 일관되게 유지되며, 덕분에 독자들은 사후세계에 이르러서도 그간 이어온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무너진 질서 = 신성의 회복을 위한 의기있는 청년들의 모험담이라는, 마냥 낡아보이기만 하는 구조가 작품 내에서 든든한 힘을 가지고 제시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전통을 포괄하면서 세련되게 이야기를 다듬는, 그래서 필자로 하여금 톨킨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그 솜씨를 지켜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균형, 조화, 자연스러움의 회복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이야기 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자아내는 글쓴이의 펜에도 옮겨 붙은 셈이랄까.

 비록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긴 했으나, 『뢰제의 나라』가 담고 있는 전래적 색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이것은 자가당착은 아니다. 이미 『뢰제의 나라』가 표면적 이미지에만 집착하지 않는 작품임을 이야기했으니까) 간단히 말해서, 작가는 무리하지 않는다. 온갖 설화들을 뒤져서 생소한 개념들을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뒤섞어 제시하는 대신, 작가는 익숙한 것들을 변용하는 데에 주력한다. 복장 자율화 시대에 태어나 연애질에 정신없어 근무를 태만히 한 탓에 시말서를 쓰는 저승사자하며, 신성을 잃고 짐승이 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죽음의 강 건너 혼백을 다스리는 영부와 우레를 중심으로 하는 뢰제의 나라. 이 모두는 익숙한 동시에 새롭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않은 탓에 전승을 잇는대로 갖다 붙여 필요 이상으로 비만한 모습도 없으며,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들을 그대로 답습하여 읽는 이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일도 없다. 현실을 확인하는 동시에 현실을 다른 시각에 바라본다는, 픽션이 지닌 양대 기능을 이만치 깔끔하고 즐겁게 풀어낸 작품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물론 『뢰제의 나라』는 완벽한 작품이 아니다. 특히 이야기의 구조에 의해 희생당한(…) 몇몇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은 이 작품을 즐긴 사람의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는 리뷰로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내키지 않는 태도로 단점을 끌어내 잘근잘근 씹는 대신 본 작품의 미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할 참이다. 전래적 정서를 근간으로 하여 동화의 색채를 짙게 띠면서도 동시에 소설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는 『뢰제의 나라』는 분명 대한민국에서 팬터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의 주요 화두 -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작품이다. 설령 그러한 접근이 톨킨의 그것만큼 완성도를 지니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필자로서는 초심을 가지고 '이야기'의 원형으로 돌아가서 기반을 닦은 뒤에 든든하게 쌓아올린 이 작품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자 한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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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bbath 04.06.25 23:48 댓글 수정 삭제
    흐음, 저자명은 빼셨어도 괜찮았을텐데요. 저자명 + 쉼표 + 작품명은 그냥 습관일 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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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bbath 04.06.25 23:51 댓글 수정 삭제
    …그건 그렇고, 안녕하세요. 원고 마감을 박살낸 갱생 불능의 필자이옵니다. 본문에 넣기는 좀 그래서 덧글로 A/S. 흔히 생각하는 '~적인 팬터지'의 허상에 대해 밝힌 즐거운 글이 있어서 소개 올립니다. 환상문화웹진 워터가이드( http://www.waterguide.net/ ) 1호 세상엿보기 코너에 나비 님의 '~적인 환타지에 대한 자유연상'이라는 글이 있어요. 올해로 3년 묵은 글입니다만 여전히 유효하고, 재미있는 글. 개별 페이지 링크가 안되는 듯 해서 이렇게 덧글로 위치만 가르쳐드립니다.
  • No Profile
    mirror 04.06.25 23:53 댓글 수정 삭제
    저자명 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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