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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타이거! 타이거!

2004.06.25 22:3706.25





lunaticsun@msn.com※ 주의: 최대한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제 리뷰는 스포일의 위험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0. 이 책에 무엇인가를 덧붙인다는 것은 사족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렇다.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이 작품에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결국은 사족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도대체 필자는 왜 여기에 또 하나의 사족을 달려 하는가?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비록 작품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 할지라도 그 기념비를 세우고 찬양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독자에게만 있는 거라고. 그것이 아무리 어설프고 쓸데없는 행위일 지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족이라 하면서도 다른 독자들에게―――그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서―――뜻이 담긴 질문을 던지는 역자의 글은 참으로 적절하며, 그렇기 때문에 필자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1. 프롤로그로 들어가 보자. 베스터는 작품의 중심인물이자 우리의 에드몽 당테스인 걸리버 포일을 등장시키기 전에 먼저 25세기 전반을 지배하는 존트(Jaunt)라는 개념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트는 일명 ‘정신 감응 이동’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시각화와 정신 집중에 의해 순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다. 작품 속에서 장난스레 등장하는 ‘Cogito ergo jaunteo(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트한다)’라는 어구는 이 같은 능력이 인간의 의자와 사유에 바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존트라는 개념은 이야기의 한복판, 혹은 기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하필이면 존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개념은 우리가 텔레포트라고 부르는 것과 너무 닮아있다. 25세기라는 배경에 어울리는 뭔가 획기적이고 과학적인 다른 소재는 없었단 말인가?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레 그 해답을 얻게 된다. 우선은 먼저 말했듯, 이 능력이 인간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정신―――의지, 사유, 믿음―――의 능력을 고도로 증폭시키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던 어느 숭고한 의식이 깨어나 발동하게 된다면? 우리의 걸리버 포일이 해냈듯 공간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영원한 극복 대상인 시간마저 뛰어넘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발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존트는 이 작품에서 걸리버 포일로 하여금 자신의(혹은 인간의) 잠재력을 깨닫고 대각성을 체험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자, 이제 우리는 우주 한복판에 버려진 비참한 한 사내를 보게 된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깊은 어둠 속에서 그는 되뇐다.

   내 이름은 걸리버 포일, 내 나라는 지구,
   내가 있는 곳은 깊은 우주, 그리고 내 목적지는 죽음.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격렬한 증오와 복수심이다. 그가 별들 사이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우주선 보가 호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뒤마가 그려낸 복수의 화신 에드몽 당테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사실 그 두 사람의 복수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의 유사성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당테스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차가운 가면을 쓰고 적들을 농락하며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그들을 망가뜨린 것에 비해, 걸리버 포일의 증오는 이미 이성적인 차원을 넘어서 거의 강박감까지 느끼게 하는, 결코 식혀지지 않는 호랑이의 그것이다. 게다가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걸리버 포일에게 있어서 그의 복수극은 허무하게 끝날망정, 결과적으로는 그의 성장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당테스로서는 꿈도 못 꿀 경지라고 하겠다. 따라서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줄거리가 단지 통쾌한 추리·복수극에서 머물렀다고 한다면 이 [타이거! 타이거!]는 추리·복수극으로서의 흥미로운 요소에 일종의 성장 소설로서의 성격도 겸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 흥미로운 복수극에서 독자는 매우 멋진 캐릭터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단순 무식’의 전형이자 복수의 화신인 우리의 걸리버 포일, 탐욕과 명예의 화신 프레스타인, 아름답지만 추악한 올리비아, 지적인 이상주의자 지즈벨라, 죽음을 한 번 경험했기에 현실적인 다겐함, 양심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로빈. 베스터 소설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 강렬한 인물상의 제시라고 할 때, 우리는 [타이거! 타이거!]에서 각각의 신념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해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베스터의 인물들이 강렬한 색채를 띠게 되는 요인은 우선 탁월한 심리 묘사에 있다. [파괴된 사나이]에서의 파웰과 벤 라이히의 첨예한 심리적 대립, 무의식의 작용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구성을 기억하시는지? [타이거! 타이거!]에서도 베스터의 이러한 장점은 여과 없이 드러난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인물의 형상화가 관념적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이고 확연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걸리버 포일이라는 놀라운 인물의 창조와 그 묘사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베스터가 이 작품의 모티브를 따왔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The Tyger}에서 형상화된 찬란히 불타 오르는 범의 분노를 그대로 살린―――아니, 그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듯한 이 강렬한 인물은 ‘분노하는 인간’의 전형이며, 또한 끊임없이 성장하는, 투박함 속에 숭고함을 숨긴 원형적 인물이다.

   TYGER, ty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한밤의 숲 속에서 찬연히 타오르는
   범이여, 범이여,
   그 어떤 불멸의 손이며 눈이
   그대의 무시무시한 균형을 자아냈는가?

   4.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알프레드 베스터 특유의 그림 기법이다. 텍스트의 시각화―――이것을 처음으로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이다. 이미 [파괴된 사나이]에서도 그림 기법의 일부를 접할 수 있었지만 이 기법이 이 작품에서 살려내는 효과에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했기에 그 놀라움은 더하다. 온갖 감각이 뒤죽박죽이 된 채로, 색깔의 파도가 덮쳐오고 사유가 빛을 발하는 것을 보는 충격을 그저 텍스트만으로 어떻게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라는 이 대담한 시도 앞에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고 두뇌에 각인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오감으로 대체시키는 일까지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그 스스로 걸리버 포일이 되어서 그가 느낄 혼란과 경이감을 함께 체험하는 것이다(기회가 된다면 꼭 원작의 타이포 그래피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이 신선한 충격과 함께 독자는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문학 작품과 시각적 이미지의 절충 가능성과 그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끝으로, 우리는 이 작품의 말미에서 한 가지 중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즉, 인간에게 무한한 잠재력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하는가의 질문이다. 과연 인간에게는 무엇이든지 허용되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자멸의 방치인가, 자율성의 존중인가? 인간은 스스로를 망칠 수도, 발전시킬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질문에 예, 아니오로 답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베스터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아닌 고장난 로봇의 입을 빌려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왜 안 된단 말인가? 대다수의 인간들에게서 진실을 앗아가 그것을 은폐하고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단지 ‘상스러운 인간의 전형’일 뿐이었던 포일이 호랑이가 되었든 모든 인간은 스스로 위대해질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데.

   좋다. 모든 것을 긍정하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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