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소설 L함수의 연산법

2005.01.28 20:4901.28





latehong@unitel.co.kr 김지훈의 『L함수의 연산법』은 몇 안 되는 국내 창작 SF소설을 꼽을 때 곧잘 포함되는 책 중 하나이지만 사실 이 작품이 어떤 근거에서 SF소설로 분류되는지 궁금하다. 제1회 한국 인터넷 문학상의 심사위원 중 SF 번역․기획․해설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박상준 씨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심사평에서도 SF의 맥락에서 이 작품을 읽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덕분에 각종 인터넷 서점―특히 장르문학 분류에 있어서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알라딘―에서 SF로 분류되었다는 정도가 그 근거일 텐데, 막상 작품을 접하고 보니 SF로서의 농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물론 하드SF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고(비록 심사평에는 하드SF의 독자들도 만족시키리라는 후한 격려사가 포함되어 있으나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긴 힘들지 않나 싶다), 그 부족하다는 SF 농도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처한 미소만 짓고 물러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L함수의 연산법』이 오래 전부터, 그리고 특히 최근 2년간 이럭저럭 소개되어 오고 있는 영미 SF들의 맛과는 상당히 다른 맛을 띠고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이 작품을 SF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SF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 되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괜찮은 작품을 SF의 안에 넣어두고 싶은 팬덤의 욕망(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비교적 소수자’인 장르 팬덤은 종종 이런 경향을 띠곤 하니까. 세계문학을 팬터지의 맥락에서 짚어내는 팬터지 팬덤이나, 대중 소설에서 ‘추리소설적 기법’을 운운하는 추리 팬덤이나. 이상한 일도, 지나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을 나타내는 일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L함수의 연산법』은 ‘L함수의 연산자’인 주인공 민이 필 그룹에 입사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업무에 관한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식으로 제시하면서 전개된다. 자세한 설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테고, 이해를 위해 간단히 말하자면 ‘L함수’란 정신감응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L함수의 연산자’는 앨프리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에 등장하는 에스퍼(esper),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존재인 셈이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에서 그 물질과 관련된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에스퍼의 설정과는 다소 다르지만, 여하튼 기본적으로 『L함수의 연산법』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상당히 낡은 SF의 소재인 셈이다. L함수의 연산과정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으며 그저 ‘L함수를 연산했다’라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사실상 명칭과 배경만 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L함수’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함수의 역함수’라는 설정도 나오고, 이것이 전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역시 이것이 긴밀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L함수의 역함수는 그저 L함수와는 반대로 상대의 기억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가 설명의 전부다. 또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수학적 용어와 이론들을 사용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심지어 “그는 삼단논법으로 추론된 타원함수의 연속성처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라든가 “내가 빠진 잠은 아홉 개의 분절로 이뤄진 선형 계획 알고리즘이 예기치 못한 조합을 만나 무수히 많은 해를 쏟아내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와 같은 직유법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 역시 작품 전체의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낡은 소재의 가벼운 활용이 작품의 무게를 덜거나 SF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앨프리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가 SF 축에도 못 낄 멍청한 작품이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사실 『L함수의 연산법』을 정말 달라보이게 하는 것은 그 이야기 밑에 깔려 있는 정서다. 민이가 L함수의 연산을 통해 하는 일이란 몇 종의 물체를 전달받아 그 물체에 관한 이런저런 기억들을 추출해내는 것인데, 그 과정은 과학적 탐구라기보다는 무당의 한풀이에 가깝다. 물체에 서린 기억들을 읽어내며 그 기억 속의 등장인물들과 동화되고, 심지어 그 동화 과정 속에 빠져들어 탈진하는 민의 모습은 퇴마물에 쉬이 등장할 법한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과 다소 동떨어진 몇몇 에피소드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이 사실상 ‘한풀이 정서’에 놓여져 있으며, 그 갈등요소를 변화시키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민의 교감이기에, 『L함수의 연산법』은 SF보다는 오히려 팬터지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러한 작품의 정서는 작가의 독특한 문장에도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한국 인터넷 문학상의 심사평에서는 “급하게 마무리한 탓인지 문장이 채 깨끗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점은 옥에 티이다.”이라는 한 문장으로 가볍게 이 작품의 문장을 지적하고 있지만 같은 작가의 최근작인 『스키마』를 읽어본 바에 따르면 오히려 그 문장은 미숙함이라기보다는 개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인물의 연상, 상상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이 작품의 문장은, 일견 부자연스러워 보이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특히 유머러스한(혹은 그렇게 느껴지길 바라며 쓴 것 같은)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순진할 정도로 썰렁한 수사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정도이다. 게다가 그 썰렁함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고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그러나 그런 문장이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인 민의 감성을 드러내고 작품 전체의 정서를 좌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되새겨 볼 때, 『L함수의 연산법』의 문장을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작가와 작품의 독특한 개성으로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즐겨볼만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캔 커피를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먼저 말을 꺼내면 그 사람은 인류가 진화하게 된 정확한 원인을 설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L함수의 연산법』中

 소녀는 다시 막내 비서를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라는 호칭을 듣는 막내 비서는 이 소녀 앞에서 최신 유행곡 두 곡 이상은 불러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노래를 못 부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할 것만 같았다.
『L함수의 연산법』中

 학교 교칙에 따르자면, 일정 수준이상의 영어실력 없이는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영어실력이 수준 이하라고 평가된 학생들에겐 회를 뜰 때의 사시미처럼 날이 잘 선 칼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두레박을 매단 동아줄을 가차 없이 끊어 버렸다.
 예외는 없었다. 필름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이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지우는 학교의 방침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 앞당겨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번 추석물가가 정부의 예상보다 올라갈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스키마』中

 그러나 그 문장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즉흥적인 발상들이 작품 전체의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즉, 작품 곳곳에는 다른 부분과 정확히 맞물리지 않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상당수 남아있는데 이것이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의도적인 구멍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처리된 탓에 전체 얼개의 이해에 대한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여겨진다. 특히 결말부분에서, 작가는 기존에 사용된 몇 가지 소재들을 끌어와서 L함수 역함수의 연산을 회화적으로 그려내지만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지나치게 갑작스런 전개 및 결말 탓은 오히려 이 부분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L함수의 연산법』은 알려진 것처럼 국내의 창작 SF판에서 한몫을 차지할만한 SF 감성을 지닌 것도 아니며, 든든한 짜임새로 무장한 팬터지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보기 좋게 담아내면서, 지나치게 순박하기에 도리어 종종 생뚱맞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문장을 이용해 자신의 정서를 부단히 밀고 가는 작가의 끈기는 근래에 보기 드문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적어도 그 끈기를 따라가 볼만한 즐거움 정도는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