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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꿈의 신발

2004.12.29 23:3812.29





earth_sea@hanmail.net드림워커 첫 번째 추천단편집 [꿈의 신발] 감상

   0. 들어가며
   몇 호 전에 여는 거울의 첫번째 단편선을 이야기하면서 유독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단편이 제대로 뿌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판타지 출판 작가라는 말이 곧 몇 권짜리 장편을 출판해 낸 작가라는 의미로 통하게 될 정도로 지금 현재 출판 판타지는 장편 일색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이영도 님처럼 단편 작품집을 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 단편을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판타지 공모전에서조차 단편부분이 아예 빠져 있거나 혹은 단편 부분이 있더라도 출판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순문학처럼 단편 전문의 문예지가 나오는 것은 너무 요원한 꿈이더라 하더라도, 현재로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판타지 단편을 다양하게 접해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단편이라는 형식의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단편 게시를 위한 사이트를 만들거나 혹은 기존의 판타지 사이트에서 단편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개설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단편에 대한 인식은 낮은 것이 현실이다. 거울 단편선 이야기에서도 이미 한 이야기의 반복이 되겠지만 장편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것이 단편이라고 여기거나, 그저 머리 속에 떠오른 한 장면을 옮겨놓으면 단편이 된다고 여기는 작가들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울이나 드림워커 같은 사이트에서 게시물들 중에 빼어난 것들을(그 판단을 운영진이 하든 혹은 작가 자신이 하든 간에) 뽑아 종이책으로 만드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하겠다. 단편을 생각하는 작가들에게는 우수한 글들을 접할 기회가 될 것이고 독자들에게는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단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또한 인터넷상에 게시된 상태가 아닌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글에 대해 작가 자신이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드림워커 추천 단편집이 앞으로도 해를 거듭해 2권 3권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수록작은 축전인 사이암 님의 글을 포함해서 총 36편, 작가는 총 20분이다. 거울 단편선이 번역글을 제외하면 총 26개였던 것을 생각해 보아도 상당히 많은 양이다. 거울 단편선도 한 권에 실을 내용으로는 분량이 많은 편이라고 여겼을 정도니, 드림워커의 분들이 이 한 권에 되도록 많은 글을 싣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겠다. 외형적으로 가장 다른 것이라면 거울 단편선의 26개의 글들이 모두 다른 분들의 글이었던 것에 비해 꿈의 신발에서는 작가들이 적게는 한편 많게는 세 편까지 글을 싣고 있다는 것이겠다.

   탄탄한 작가들의 좋은 글들을 여럿 싣는 것과 보다 많은 작가들의 글을 싣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한 사이트를 대표하는 글을 모은 것이니 만큼 그 사이트의 작가들의 글들을 되도록 많이 다루어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뽑아 낼 때 자신의 글 중에서 옥석을 가려 하나를 뽑아 내는 과정도 작가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거울 단편선은 여가 알기로 편집장께서 먼저 게시 작품을 알리고 작가의 의사에 따라 글이 교체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필진들의 글을 싣다 보니 글의 수준이 들쭉날쭉하다는 평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는 사이트에서 미처 유심히 보지 않았던 짧은 글이 곱씹을수록 맛깔스러워 단편집을 사기 정말 잘 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독자로서의 좋은 글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좋겠지만, 꿈의 신발을 읽는 동안 앞에서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차례를 보면 같은 작가의 글인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반대로 한 작가의 글이 너무나 달라서 놀란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추천단편선이라는 형식을 빌어 만들어낸 책인 만큼 조금 더 글을 추려 싣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1. 마왕 소환, 취중상담, 프로미스 링 |  아크
   아크 님의 글은 첫 작품인 마왕 소환에서부터 여를 많이 놀라게 만들었? 글의 수록순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글이란 단편선 전체의 인상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글인데, 2페이지짜리 짧은 꽁트라니. 그리 새롭지 않은 아이디어에 그리 새롭지 않은 전개의 글을 보고 난 당혹감이란, 혹시 여가 이 책에 대해서 너무 과한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그 뒤의 글을 읽으면서 드림워커의 추천 단편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가 하는 점을 고민해 보았는데, 아마도 '독특함'이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시된 글의 순서가 혹 작가가 글을 쓴 순서와 일치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뒤로 갈 수록 글이 충실해 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취중상담에서는 첫 글처럼 아이디어만 있는 글이 아니라 나름의 줄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능청스럽게 상대방을 대하는 두 사람의 대화가 마지막에서야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이름이나 분위기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신선하기도 했다. 여는 천사나 악마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편이라 소년이 등장하자마자 이 글의 결말을 알아 버렸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소년과 피토가 짧은 글 안에서도 전형적이긴 하지만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마지막 수록작인 프로미스 링에서는 직선적인 플롯이 아니라 회상 장면을 곁들이면서 주인공의 독백에 중심을 두었다. 엘프 에레네인과 인간 남자 레이의 사랑의 언약과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철저하게 에레네인의 감정에 맞추어 좇아간다. 취중진담이 스토리 위주로 딱딱하게 서술되는 것에 비해서 감정적인 면이 강조되어, 훨씬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다소 감정이 지나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감정적인 글을 많이 쓰지 않으신 분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이 글에서도 엘프 여성과 인간 남성이라는, 일본 판타지나 대중 판타지 장편에서 종종 다루어지는 소재를 선택한 것이나,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종족간의 수명의 차이 때문이라는 전형적인 해석이 조금 아쉽다. 특히 주인공 에레네인은 엘프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너무나 전형적으로 들어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독창적인 해석이 아쉽다. 작가분의 변화가 한 눈에 느껴져, 무척 인상적이었다.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되는 분이다.


   2. Loop, 남겨진 자들의 사랑, 시간 |  rubyan
   rubyan 님의 글 세 편은 전혀 다른 스토리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의 전반적인 느낌은 상당히 비슷하다. Loop는 해킹을 하다가 그 세계를 계속 반복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해커의 이야기, 남겨진 자들의 사랑에서는 한 사람을 사랑한 남녀의 짧은 관계 이야기, 시간에서는 우연히 시간의 흐름이라는 기차에 타게 된 인물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글의 전체에서는 스토리나 혹은 그 전체적인 아이디어에 주안점이 맞추어져 있다기 보다는 장면 장면의 묘사나 주인공의 감정에 더욱 밀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의 형식을 완전히 갖추며 구성의 탄탄함이 가장 돋보이는 글은 가운데에 실린 남겨진 자들의 사랑이다. 그에 비해서 loop나 시간은 평범한 아이디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누군가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이미 그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다루었지 않는가? 해킹을 통해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역시 그 영화에서 다루어졌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SF 옴니버스인 '나호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에피소드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 글과 저 둘의 차이점이라면 매트릭스의 주인공이나 나호가 세계를 구했거나 세계에서 빠져나온 데 비해 주인공은 영원히 그 세계를 반복적으로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점을 부각시켜 글이 독창적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거기에는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남겨진 자들의 사랑에서 보여주는 필력이라면 충분히 그런 역량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되어 더욱 아쉽다.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가 빠져 나올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에 비유했다. 전개하는 데 따라서 독특한 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비해 주인공의 혼란이나 결론까지 이르는 과정이 다소 단순하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글로 만들어낸 것인데, 그 아이디어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강렬하지는 않으니 다른 아이디어나 내용과 결합시키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짧은 엽편의 경우에는 간결함과 강렬함이 생명이다. 자칫 잘못하면 단순하게 잊혀지는 글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분은 감정이나 장면을 묘사하는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장점을 더욱 살려 보시는 것은 어떨지. 한 사람을 사랑한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아이디어보다도 주인공의 감정 서술이 더욱 매력적이었던 '남겨진 자들의 사랑'이 작가분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글이라면, 조금 더 그 쪽을 다듬어 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3. 피리의 도시, 옆집 아이를 조심하세요, 장기이식 |  레디오스
   '피리의 도시'는 꿈의 신발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 중의 하나였다.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고, 그 주제에 십분 공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여는 오히려 이 글에서 대여점보다는 현재의 불법 음원 다운로드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두 가지 문제가 상당히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가 누군가의 지적인 재산에 대해서는 너무나 둔감하다는 것, 지적 재산에 대해서 그 소유주의 동의 없이 너무나 쉽게 그것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대여점 문제와 불법 전재는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카피 레프트 운동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실제로 일부 작가들 가운데에는 인터넷에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면서 독특한 저작권을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 중에는 자신의 글이라는 것만 밝히면 자유로이 다른 곳에 옮겨 게시해도 좋다거나, 자유로이 번역해도 좋다거나, 심지어는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좋다고까지 하는 항목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글이 여러 사람들에게 보다 많이 읽히기를 희망한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그런 표시를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게시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그런 글을 마구 옮겨가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출판된 책을 개인적으로 타이핑하거나, 시각 장애인용 점자 도서를 만들기 위해 제작한 텍스트 파일을 유통시키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점차 이러한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여점의 경우에는 이와 다르다. 사람들이 이용할 공공 도서관은 턱없이 부족하고, 대여점은 사람들에게 심심풀이용 도서를 쉽게 싼 값에 빌려오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다 보니 판타지 장편은 오히려 대여점의 수요에 맞추어 그러한 킬링 타임용 도서를 계속 생산해내야 한다는 어이없는 요청까지 받게 되었다. 실제 몇몇 판타지 출판사에서 찍어내는 10대-20대 작가들의 장편들을 생각해 보면, 출판사도 독자도 그러한 글들에 대해서 어떤 수준 이상을 요구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정의가 오히려 대여점으로 인해 변화한 것이다. 피리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수준 낮은 피리소리에 길들여져서 오히려 진짜 피리소리를 모르고, 당연히 피리소리는 100원의 가치밖에 없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렇게 현실을 지적하는 글은 자칫 잘못하면 주제만이 부각되어 소설적인 매력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글의 전체를 뒤덮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옆집 아이를 조심하세요'는 전체적으로 많이 느슨해진 느낌의 글이다. 피리의 도시에서 느껴졌던 긴장감도 없고, 연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늘어진 느낌이다. 작가분의 여성 취향이 아닐까 싶은, 여주인공이나 다른 글에서 빠져 나온 것 같은 단순화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건 사건이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지 않고 오직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만 살아있다. 굳이 말하자면 여주인공을 만나서 남주인공이 그 소녀를 좋아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글의 분량에 비해서 전체적인 구성이 너무 느슨하다. 비교적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다른 부분을 과감히 덜어냈다면 어땠을지. 장편을 쓰던 작가들이나 혹은 머리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너무 치중한 분들이 이런 식의 글을 종종 쓰시는데, 단편의 핵심은 가장 효과적이고 압축적으로 주제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요즘의 인터넷 소설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는 차치하고서라도, 구성의 방만함은 글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장기 이식'은 구성적인 문제는 전작에 비해서 비교적 적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는 글의 차례를 다시 확인하고 이 글이 레디오스 님의 세 번째 글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옆집 아이...'에 비해서 플롯도 안정적이고 글에서 중요한 부분도 강조되어 있는데도 왜 이미 본 글 같은 느낌을 받았나 생각해 보니 두 글에서 느껴지는 남성적인 면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는 종종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고 느낀다. 그건 글을 읽다 보면 자주 작가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여는 여성 작가들이 남성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제대로 알 수 없다. 단지 지나치게 여성이 본 남성을 다루고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어색함을 느끼는데, 남성 작가들의 경우는 반대다. 여성의 묘사를 보면 작가가 남자라고 확신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레디오스 님도 그런 경우다. 가장 심했던 것이 '옆집 아이...' 였고 장기 이식의 경우에도 그랬다. 모든 것을 잃고 아무 것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고는 해도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신장을 내어주는 장면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던지는 대사는 더욱 그렇다. 전라도에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전라도 말을 TV에서 할 때의 어색함과 같이, 다른 성별이 묘사하는 한 성별의 대사는 때로 전형적이고 과장되어 있다.

  여의 글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을 하나 첨언하고자 한다. 대사를 쓰고 난 후에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길 권한다. 남성이 여성의 대사를 사용했다면 다소 한계는 있겠지만 상상을 동원하면 도움이 된다. 자신이 상상한 캐릭터가, 이런 어조로, 이런 감정으로, 이렇게 대사를 말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4. 운명 한 타래, 날개, 2단3열씨 |  Kain Wnterheart
   신화를 새로 쓴 날개(과욕)을 제외하면 Kain 님의 두 글은 상당히 비유적으로 쓰여져 있다. 짧은 꽁트인 2단 3열씨는 어쩌면 이 사회의 부속품으로 언제든 대치될 수 있는 인간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운명 한 타래는 타인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빗대고 있는 것 같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추락해 죽은 아이카루스의 이야기를 SF적으로 해석한 단편도 흥미로웠다.

  비유를 사용하는 글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장점도 있지만 자칫 작가의 의도가 왜곡될 위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Kain님의 글은 비교적 상징보다는 스토리와 아이디어에 치중하는 판타지 단편에서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꽁트인 2단 3열씨의 경우에는 짧은 글의 분량 때문인지 플롯이 다소 빈약한 느낌이었지만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의 모티브와 미궁이라는 신화적인 요소를 함께 결합시킨 날개는 구성과 전개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신화의 재해석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Kain님의 해석은 무척 신선하고 강렬했다. 자칫 성적인 면에 치중해서 글의 중심이 흔들릴 위험을 안고 있긴 하다. 세 글 모두 상당한 수준이면서도 뭔가 불안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 면만 해결할 수 있다면 상당한 글을 써 내실 분이라고 생각한다. 후작을 기대한다.

   5. 야디레베의 죄수, Reality |  에즈라엘
   서술이 탄탄하고 전형적인 판타지의 요소를 능숙하게 배치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두 글 중에서 묘사만 보면 Reality 쪽이 좀 더 안정된 느낌이었지만 글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오히려 야디베레의 죄수 쪽이 위였다. 탄탄한 서술 때문에 두 글이 동일한 작가에게서 쓰여졌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Reality의 후반부에서 나오는 소설의 배경(혹은 반전)은 다소 평이해서 아쉬웠다. 두 작품 다 글에서 반전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야디레베의 경우에는 읽는 이가 어, 하고 놀라는 면이 있지만 Relity의 경우에는 제목에서부터 혹시 하고 독자가 짐작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야디베레는 감옥에 갇힌 인물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탈옥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가 어째서 가장 흉악범이 들어오는 야디베레에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이미 주인공이 이 감옥에서도 탈옥을 시도하리라는 설명을 해 준다. 그는 이미 탈옥을 결심한 자이고, 작가가 친절하게 부연해주는 바와 같이 그것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반항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번호로 규정되는 이 감옥 안에서도  나무라는 이름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작가의 서술에서만이라고 해도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오직 한 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므로써 그가 번호로 규정되는 이 체계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감옥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어색하거나 비약하지 않고 치밀하게 서술되는 점도 돋보인다.  글의 말미에 알게 되는 반전이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줄곧 체계에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인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완전한 패배이므로 다양한 해석을 가져올 수 있겠다.

  Reality는 앞서 말했듯이 제목에서부터 결말을 암시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글이 너무나  전형적인 판타지 월드, 너무나 전형적인 판타지 몬스터들을 등장시키는 것도 결말을 향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복선이 과다하다 보니 사건 서술이나 진행이 안정적인 것에도 불구하고 글에 재미가 감소해버리고 말았다. 독자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은 독이 될 수 있다. 제목만이라도 다르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6. 마법사와 UFO, 세상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땅에서 |  사해
   이 단편집 전체에서 상당히 눈에 띌 정도로 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 분이다. 예전 작품을 본 적은 없었지만 단편집에 게재된 순서가 창작 시간 순서라면 자신의 문장에 적합한 스토리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 계신 것이 아닌가 한다.

   마법사와 UFO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이러하다고 말하는, 현실 기반의 판타지다. 실제로 이 지구를 배후에서 지배(혹은 운영)하고 있는 것은 마법사들이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긴 것은 다섯 줄을 넘기기까지 하는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은, 곱씹어 읽어 나가면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아름답기보다는 조금 서늘한 내용이다. 이러한 불균형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간결한 문체 쪽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전체가 '나'의 1인칭으로 서술되면서 감정이 많이 개입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건의 서술에도 그만큼 수식이 더해졌다. 수식과 대구는 문장을 아름답고 미려하게 만들지만 자칫 잘못하면 스토리 자체를 흐릿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길이에 비해서 그 내부 스토리는 단순한 편이다. 마법사가 있는 지구라는 설정을 보다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글의 의도였다면 모르겠지만, 이 스토리가 글의 중심이라면 문장에 양념을 조금 덜 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땅에서 는 작가의 문장과 스토리가 보다 긴밀하게 관련된 글이다. 위의 '마법사와 UFO'에 비해서 문장이 간결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대화에도 서술에도 반복이 많고, 수식도 많다. 하지만 문명 국가(라고 생각되는)에서 온 '나'가 고지대의 주술사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인 변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문장이 글에 어울려 녹아 들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라고 지칭되는 '나'가 아직 미개척지로 보이는 지역에서 겪는 이야기란 사실 여러 영화에서도 다루어졌고, 소설로도 쓰여졌었다. 스토리가 이미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남은 것은 그 스토리를 얼마나 어울리는 분위기로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겠다. 그리고 이 글은, 마지막 문장에서의 구도적인 발언이 다소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두 문명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융화 깨달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분은 어쩌면 선택을 하셔야 할 지도 모른다. 두 글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려한 문장에 어울리는 독창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실 때 작가분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라고 보인다. 아니면 지금 과도하게까지 보이는 문장의 수식을 좀 더 추려내고 압축하시거나 말이다. 개인적으로 여는 전자를 바라지만.

   7. 단풍이 물드는 이유 |  이시미
   판타지를 종종 어른들이 폄하해서 하는 말 중에, "공주 왕자 나오는 그 어린애 동화 같은 이야기?" 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판타지 중에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가끔 거울의 필진 중의 한 분이신 미로냥님의 글에서 동화적인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 유니카 님의 글이 종종 동화적인 문체를 구사하시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듯이 만들어낸 판타지는 오히려 드문 것이다.

  그래서 이시미 님의 이 '단풍이 물드는 이유'는 인상적이었다. 글의 마지막이 반전이라기보다는 정말로 동화적인 해석으로 보일 정도였고, 전체적인 문장도 아기자기하다. 작가가 이 글을 다른 느낌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스토리는 조금 달라 지지 않았을지. 게다가 숲 속의 존재- 그래서 인간들이 두려워하거나 아예 모르는 -가 인간의 소녀를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나, 몇 년 후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는 것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전체적인 플롯이 조금 성긴 데다가 동화적인 문장 때문에 긴박감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새로 쓰여진 동화로서는 상당히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매우 즐겁게 읽었다. 작가의 건필을 기대한다.

   8. 인어는 바다를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도시의 용 |  rubycrow
   인어는 바다를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는 거의 중편에 맞먹을 정도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글이다. 반면 도시의 용은 분량도 그렇지만 스토리 줄거리도 간략하고 압축적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다 세계가 독립적이고 확고해서, 그 세계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세계의 모습이, 긴 글에서든 짧은 글에서든 선명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나 서술이 직설적인 것은 아니다. 두 글 모두에 추상적인 서술도 많고 추상적인 대화도 많다. 종족을 배신한 것이 종족 다운 것이 되고, 종족이기를 버린 것이 종족 속에 사는 것이 되는 '도시의 용'에서는 더하다. 그렇지만 두 글 모두에서 작가의 서술이 힘을 가지고 있고, 문장이 강렬하다. 쉽게 얻기 힘든 장점이다.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거의 나와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세계를 전달 시키는 방법 역시 탁월하다. 글의 부분 부분에서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렬하게 와 닿아서 마치 만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 일으킨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인어는 바다를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에서 다루는 근친상간의 모티브나, '도시의 용'에서 주인공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둘 다 여가 그리 즐기지 않는 것이다. 집단 안에 있으면서 자유를 단지 동경하기만 할 뿐 스스로 묶여 있기를 택하는 개인 이야기도, 평생동안 자신이 범한 죄에 눌려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도, 여는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는 두 글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나, 세계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 심지어 여는 이러한 세계를 배경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다. 건필을 기원한다.

   9. 나의 아름다운 기사를 위하여, 무도회…저주받은 공주와 왕자 |  refrain
   전통적인 판타지-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서구 배경의 판타지를 보는 느낌을 '나의 아름다운 기사를 위하여'에서 받았다. 특별히 세계에 작가의 독창성이 들어가 있거나 하지는 않고, 인물 설정 역시도 다소 전형적인 면이 보인다. 특히 여성들을 보고 아마 이 작가는 남성이신 게 분명하다고 짐작할 정도였다.
   '나의 아름다운 기사를 위하여'는 상당히 긴 양의 글이다. 글 전체에 걸쳐 시간 순서대로 한 인물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처음 만나 마침내 그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나타나 있다. 사실 중간에 주인공이 마법 수련을 떠나는 시간만이 빠져 있지만, 읽고 나면 시작부터 모든 과정이 다 나타나 있다는 느낌이 강한 것이다. 여는 이 글이 혹시 '옆집 아이를 조심하세요'의 작가와 동일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바로 저런 점 때문이었다. 단편에서 다루기에 스토리가 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간상으로 긴 기간의 사건을 모두 언급하다 보니 글이 길어지고, 글의 긴밀도가 떨어진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셨겠지만 적당히 강약을 두어 재구성하시는 것이 낫지 않았을지. 쉽게 읽힌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글 자체의 밀도가 낮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정도도 옅다.

   또 이 글이 꼭 판타지의 형식을 가져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히려 그 친구와 엇갈린 사랑을 하게 되고, 그것이 오랜 시간 후에 진실을 알게 되어서 맺어진다- 라는 것, 꼭 이 인물들이 마법사와 기사여야 했을까. 단지 판타지 세계가 먼저 있고 그 안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 느낌이 강하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연애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면 판타지 형식을 빌어야만 할 수 있는 개성적인 부분이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무도회…저주받은 공주와 왕자'는 마치 글의 프롤로그 같은 느낌이 강하다. 앞으로 더 이야기가 일어날 것 같은데 자 그만 여기까지만 들려줄게, 라고 글을 맺어 버린다. 장편 소설의 첫 서두를 읽은 느낌, 긴 글의 일부분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단편은 그 글 안에서 완결된 짜임새를 가져야 한다. 두 인물은 개성적으로 잘 드러나있고 이 인물들의 설정 또한 매력적인데, 정작 주어진 것은 장면 하나 뿐이다. 독자가 뒷 이야기를 상상하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가? 모르겠다. 좀 더 치열하게 글을 써 주시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0. "IF", 망각 |  Feelin
   "If"는 액자식 소설이다. 만약에 이러했다면-이라고 상상하는 여주인공과, 그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 나. 스토리는 모두다 많은 액자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삽입된 스토리들은 과장된 TV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라, 스토리 자체의 재미로 읽는 글이라기보단 구성의 재미를 봐야 하는 글이다.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는가 싶으면 그것이 다시 상상이고, 또 다시 상상인 양파 껍질 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중첩되면서 각각의 스토리에 몰입할 만 하면 다시 깨어난다는 문제도 가지게 된다. 액자를 선택할 때 단순히 병렬적인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점진적으로 증폭되거나 감소되는 이야기를 설정했으면 어떨까? 특히 마지막의 액자는 나름의 반전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데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글을 읽고 났을 때 여운이 남는 결말이 아쉽다.

   "망각"은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는 데만 신경 쓰면서 현실을 외면하다 보면 소중한 것까지 잊어버릴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의 말미에서 망상이라는 술이 등장하면서 글의 전체적인 느낌이 바뀐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었는지 모호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가 꿈 속에서 소중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것이 사실은 망상에 불과했다는 것일까? 마지막에서 술의 이름을 지정하지 않고 나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글의 중반, 환상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대사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는 것도 아쉽다. 대사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 역시, 술에 취해서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과장되어 있다. 대사를 선명하게 압축시켰으면 더욱 좋았겠다.

   11. 네 안의 천사 |   azderica
   이러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라는 인용문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 글은, 잔혹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이고 또 그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가정 폭력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 핍박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천사를 낳기 위한 시험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인내는, 안타깝기조차 하다. 그러나 감정이 많이 들어간 서술 속에는 명사로 끝나는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띈다. 글의 내용이 안타까운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서술이 그 감정을 오히려 초과하고 있어 버거운 느낌까지 든다.

   고난을 참고 견디다가 끝내 남편을 살해한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것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하고 죽는다. 그런 어머니가 천사가 되었다는 것은, 조금은 씁쓸하지 않는가. 더없이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아이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천사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고 그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조차 못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분한 비극이다. 조금 감정을 절제해서 글을 써보시는 것은 어떨까. 담담하게 쓰여진 비극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감수성을 더욱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독자가 미처 감정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작가가 서술을 앞서 나가버리면 독자는 소외될 위험이 있음을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12. 거울성 이야기, 시간의 연인, 고발자 |  은림
   글의 편차가 상당히 큰 분이라는 느낌을 이번 단편선에서도 받았다. 시간의 연인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데 비해서 동화적인 구조를 한 거울성 이야기나 신데렐라 이야기의 재구성인 고발자는 다소 들뜬 느낌이다. 작가가 스토리에 휩쓸려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글로 형상화 시키는 데 솜씨가 있는 분이다. 거울에 실렸던 이세 공주의 이야기가 그랬고 여기 실린 시간의 연인이 그렇다. 하나의 모티브에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데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 모티브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플롯이 흔들리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소재가 가장 중요한 글이라면 소재를 가장 부각시킬 수 있는 압축된 스토리가 필요한데,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주욱 늘어놓는 구조를 주로 택하시는 것이다. 거기에 감정이 과도하게 들어가다 보니 "고발자"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가 의아해 할 정도로 화자가 흥분하고 있는 글이 되어 버렸다. 신데렐라의 동화는 사람들에게 대중적이니만큼, 여러 가지 색다른 해석이 가능한 글이다. 이 글에서처럼 사실 신데렐라가 문제의 근원이었다는 해석, 사실은 계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해석은 그리 새롭지 않은데, 새롭지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이게 할 조미료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언니의 서술이 과장된 느낌을 갖게 되고, 독자가 글에 녹아들기 보다는 겉돌게 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의 연인 같은 경우에는 스토리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아서 오히려 성공적인 글이 되었다. 시간을 사랑하고 마침내 시간과 손을 잡으려 했던 여자의 죽음. 나름의 방식으로 손을 잡으려 했다는 마지막 대사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서술자인 '나'를 제외하고 주인공인 여성의 성격이나 친구의 성격도 비교적 선명하게 잡혀있다.

   단편은 장편이 아니다. 단편을 주로 쓰시는 작가분이니만큼 그 점은 잘 알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플롯이 아니라 스토리에 치중하다 보니 작가의 개성적인 소재가 오히려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과감하게 덜어내고 농축시키는 연습을 더욱 부탁드린다.

   13. 맺으며
   서른 여섯 개의 글 중에 스물 일곱개, 정확하게 3/4의 글을 다루었다. 모든 글을 다 다루고 싶기도 했지만 이 글이 단편선에 대한 감상인 만큼, 단편선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피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루지 않은 글들이 여기서 다룬 글보다 부족했다는 뜻이 아님을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단편선을 읽으면서 계속 여는 거울 단편선과 비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각 글의 개성으로 말하자면 거울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데 비해서 단편선을 다 읽고 난 느낌은 드림워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구나 하는 불확실한 추측이었다. 거울 단편선에 비해서 아이디어가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반전의 묘미에 주력한 글들이 눈에 띈다는 것, 그리고 가끔은 판타지 단편선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글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거울의 필진의 90% 정도가 여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드림워커의 작가들은 어떨까? 작가들의 본명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중성적인 이름도 눈에 띄어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다. 다만 이름으로 짐작해 보건데 적어도 거울보다는 남성 필진들이 많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여성 작가들의 서술이 보다 세밀한 면이 보이는 데 비해서 남성 작가들(로 추측되는 분들)의 글은 힘있는 서술을 특징으로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이트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보지 못하는 단점을 남성은 볼 수 있기도 하고, 각 성별의 특징을 글 속에서 정확하게 살려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편협한 예가 되겠지만 남성 작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에서는 글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에 지적을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여성이 만화 주인공처럼 평면적이고 부자연스럽다라는 것을 지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성 작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에서는 순정 만화에 등장할 법한 남성 캐릭터가 나타나는 것을 눈치채기 힘들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가 읽은 꿈의 신발은, 상당히 많은 여성 작가들이 눈에 띄는 데도 불구하고, 남성적인 작품집이었다. 아이디어, 반전, 강렬함. 상대적으로 감정 묘사의 치밀함이나 플롯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다소 경시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울과 드림워커의 작가들이 서로의 글들을 많이 접해 보셨으면 한다. 서로의 사이트 안에서 올라오는 글들에 자족하며 살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기존의 분위기가 어떻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솔직한 점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감상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거울 단편선의 감상 말미에 드렸던 바람과 똑 같은 바람을 꿈의 신발에도 드린다. 드림워커의 추천 단편집이 이번 호를 끝으로 그만두지 않기를, 앞으로 매해 수준 높은 판타지 단편들을 알리는 책으로 자리매김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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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림 04.12.30 01:50 댓글 수정 삭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이글 드림워커에 링크해도 될까요?
    아, 그리고 참고로, 차례는 작가의 글쓴 연배순이 아닌, 편집자(저예요--;;) 임의로 읽으며 지루해지지 않도록 배열을 조절한것입니다.
    그리고 드림워커의 글들이 개성이 눈에 띄는 건 어쩔수가 없어요. 플롯이나 개연성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엔 심사위원 자체가(그것도 접니다 ㅜㅡ 그것도 혼자예요ㅜㅡ) 수준미달이예요. 모쪼록 많이 배워서 좀더 나은 지기가 되도록 노력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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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림 04.12.30 01:55 댓글 수정 삭제
    아, 그리고 여담으로 변명을 하자면, 일단 전체 추천 단편중에 발탁된 작품 약 60여편 가량에 권고를 드렸지만 연락두절 또는 의사가 달라서 허락을 받지 못하고 허가 받은 단편만 실었습니다. 아무래도 남성작가분들이 조금 더 적극적이신건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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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스 04.12.30 19:07 댓글 수정 삭제
    네, 퍼가시진 마시고 링크로 부탁드립니다.
    은림님 혼자서 심사위원을 맡고 계시군요. 정말 수고가 많으시겠어요. 덕분에 좋은 글들 많이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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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 04.12.31 08:55 댓글 수정 삭제
    세세하고 정성어린 감상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소년가 아니라 소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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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byan 04.12.31 10:51 댓글 수정 삭제
    정성어린 따뜻한 감상에 감사드립니다. ^^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감상글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