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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이란, 작가가 발견한 새로운 현실의 존재를 풍부하게 암시하고 드러내는 유력한 방법.”
―――방민호, [환상소설첩] 해설 中

   더 이상 환상 문학의 독자들은 주인공이 다른 차원의 세계에 떨어져서도 순식간에 마법과 검을 배우고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내용에서 환상을 느끼지 않습니다. 말만 판타지 세계이고 중세 유럽의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들이 정의와 사랑이 폭력으로 쟁취될 수 있는 것인 양 행동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환상적’이지 않고 일상적이고, 식상한 것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을 환상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환상은 완전한 허구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새로운 리얼리티를 투영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환상 문학의 연장선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환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매우 사실적인 환상 소설을 만나게 됩니다.

   마법사와 요정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매우 어둡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물론 허구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교활하게도 처음부터 그런 판타지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의 안개 낀 영국에서 환상적인 것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설로 요정의 존재를 듣고 자라나지만, 그 외에는 완전한 근대인의 사고방식을 보여줍니다. 마법이 전승ㆍ기록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시점에서, 영국의 자칭 마법사들마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을 제외하고는 실제적인 마법을 믿지 않습니다. 마법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마법의 존재를 믿지 않는 거지요. 그들은 실제적인 마법을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기꾼이라고 비난합니다. 마치 오늘날의 회의주의자들처럼. 그리고 실제로 신비한 능력을 사용하는 이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그가 마법적 능력으로 사람들을 돕거나 영국 마법을 부활시키는 사명을 완수하는 대신, 사교 파티에서 눈요기 거리를 제공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마 노렐 씨가 21세기에 태어났더라면 명절마다 TV에서 숟가락 구부리기 쇼를 해 보였어야 했겠지요. 더더욱 심해지는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이 한 질문으로 집약됩니다―――“마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드디어 현실에 환상이 개입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독자들은 지독한 현실감과 함께 그 현실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은, 사실 환상을 실재로 느끼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이 지니고 있기는 힘든 장점인 놀라운 정합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작품의 세계는 실재하는 나라와 그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완전한 이세계를 하나 창조하는 것보다는 수고가 덜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독자들이 다른 차원에서 검과 마법을 휘두르며 싸우는 전사들의 이야기와 산업화된 영국에서 자질구레한 마법을 행사하는 소심한 마법사의 이야기 중 어느 쪽을 더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지는 자명합니다. 오히려 실재하는 역사에 환상을 접목시켜,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현실로 느끼게 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이 작품을 위해 10년의 공을 들인 수잔나 클라크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정합성을 자랑합니다. 작품 내에 긴 각주로 삽입되어 있는 총천연색 전설들과 실재할 법한 마법학 논문들, 문헌들은 가짜 사실주의의 대를 잇는 듯 하군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쓰기 위해 일종의 설정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법 서적을 따로 펴낸 조앤 롤링과도 좋은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다. 나폴레옹이 활약하던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이라는 실제 역사에 영국 마법의 전통이라는 이야기를 교묘히 얽어놓아 실제로 그러한 마법의 역사가 이어져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재주는 찬탄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주인공들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름답고 강력한 마법사나 전사가 아닙니다. 나약한 소년이었지만 심신이 성장하여 위대한 영웅이 되는 인물도 아닙니다. 주인공 노렐 씨와 조나단 스트레인지는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인간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는 보통 사람이고, 노렐 씨 주위에서 쉴 새 없이 아첨을 떠는데다가 사기꾼, 기회주의자인 조연들은―――그들이 개그 캐릭터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흔히들 보여주는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립 구조 대신, 인간의 복잡 무쌍하고 다양한 심리 상태와 행동 양식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도 선이나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현실의 인간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사실적인 면모는 더욱 부각됩니다. 노렐 씨와 스트레인지는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고 상처를 주지만, 이들의 관계는 숙명의 라이벌임과 동시에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지기로서 얽히고 섥힌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들에게 대항하는 강력한 마법의 존재인 요정 역시 그 본성이 장난스럽고 제멋대로일 뿐, 결코 악이라고 규정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게다가 이들의 대립은 주인공이 마왕을 퇴치함으로써 승리로 결말지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작품의 말미에서는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를 말할 수 없게 되고, 해결된 문제 뒤에 또 다른 문제가 이어지며, 주인공들 사이의 애증어린 관계는 더욱 미묘해집니다. 결국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오래된 문구는 ‘우리는 그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칠 수밖에 없다’로 대체되는 거지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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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05.03.19 00:22 댓글 수정 삭제
    ...짜릿한 소설에 짜릿하지 않은 소설평. (그렇다고 평자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고요...경향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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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드반크 06.02.02 00:10 댓글 수정 삭제
    이런 소설 또 없나 모르겠습니다. 한번 보니까 은근히 제길 다 봐버렸군 이란 생각이 들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