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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타십 트루퍼스

2005.01.28 20:5001.28





toonism@magicn.com

이미 폴 버호벤의 동명 영화가 국내에 공개된 적이 있기 때문에, [스타십 트루퍼스]라는 제목을 들어본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만.)

축약해 설명하자면, 지구인이 거미 종족과 전쟁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각각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종족과 저그 종족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스타크래프트]의 표절이라고 하는 분들이 가끔 있는 모양입니다만, 소설보다 40년 가량 늦게 나온 영화마저도 [스타크래프트]보다는 일 년 먼저 개봉했다는 것을 상기해야지요. 알 분은 다 아시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스타십 트루퍼스]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려보시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런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이 있다―――민간인, 군인. 이 소설 속의 시대에도 인간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참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민간인, 참정권을 가질 수 있는 군인. 20세기 말, 수많은 정부가 붕괴되고 권력은 사실상 공백 상태로 남게 됩니다. (1959년 작품임을 잊지 맙시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은 퇴역 군인들이었지요. 그들은 자경단을 조직하고, 몇몇을 사형시키고, 자신들의 위원회에는 퇴역 군인들만을 선출합니다.

이쯤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군인 정권을 떠올렸습니다만, 이 가상의 미래에는 대한민국과 같은 (나쁜 의미의) 독재정권은 탄생하지 않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자발적이고 힘든 사회봉사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복지를 우선으로 생각한다’고 인정받게 되며, 참정권을 가지게 됩니다. 군 복무를 회피한다고 해서 커다란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정권을 포기하고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되지요.


전쟁을 긍정하고 폭력을 인정하는 작가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스타십 트루퍼스]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조니 리코의 고등학교 선생인 뒤보아 선생, 사관학교 교관인 레이드 소령. 이들이 담당한 과목은 ‘역사와 윤리 철학(History and Moral Philosophy)’으로,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윤리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과목은 군인 출신만이 담당할 수 있는 과목이며, 그 내용 또한 정말 군인답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옛날―――그러니까 20세기 후반, 공원은 밤에는 다닐 수 없었답니다. 비행청소년 때문이지요. 성인이 되기 전에는 큰 처벌을 받지 않기에 그들의 비행은 전혀 개선되지 않습니다. 범죄→약한 처벌의 순환이 계속되면서 갈수록 그들의 범죄는 흉악해지죠. 그러다 성인이 되자마자 저지른 (이제는 정말 흉악해진) 범죄로 인해 그들은 큰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때리면 되는 것이지요. 강아지를 기를 때, 어릴 때 때려서 교육시키면 강아지가 큰 다음에도 사고를 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상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셔도, 이 책을 보는 데에는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작가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말입니다. 말을 잘 하는 궤변가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거라고나 할까요. 그 사상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즐길 만 합니다.


과학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발전한 과학기술의 묘사일 겁니다. 과학이라는 것이 전쟁 덕에 발전한다는 말도 있는 바, 이 소설에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병기들이 나옵니다. 노바(新星) 폭탄이라는 것도 있던데, 아마도 별 자체를 박살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폭탄인 듯합니다만, 주인공이 보병인 관계로 이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보병인 조니 리코가 사용하는 첨단 병기는 바로 강화복(Powered Suit)입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엄청난 높이를 도약할 수 있으며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전투복이죠. 얼마 전에 미군이 이와 비슷한 전투복을 개발 중이라는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즐거움은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1/3을 넘는 분량을 신병으로서의 힘든 훈련 과정 묘사에 할애했고, 나머지의 절반가량을 군 생활과 전쟁 수행 과정 묘사에 할애했습니다. 적절한 비교가 될는지 모르지만, 영화 [실미도]에서는 많은 부분이 그들의 훈련과정 묘사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을 주고 재미를 느끼게 하더군요.


저는 2년 2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반 년 가량 지난 후 [스타십 트루퍼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자마자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이 책은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부대에 보급되어야 한다.’ 내용이 군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군훈련소에서 6주간 정신교육을 받은 후보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가 더 ‘군인정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 한 몸 바쳐 국가에 충성하련다’라는 마음이 갑자기 샘솟았다는 건 아니고, ‘그야말로 군인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게 최고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가끔씩은 이 책을 국방부(인지 병무청인지)에 추천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헛소리였습니다.


※ 참고 : 이 책은 1998년에 그리폰북스에서 [우주의 전사]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가 재판에서는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행복한책읽기에서 2003년에 [스타십 트루퍼스]라는 이름으로 재발간하였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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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lias 05.02.26 01:36 댓글 수정 삭제
    실제로 로버트 하인라인은 군인 출신이기도 하지요. 그의 군대식 사회 구성 및 설명은 혀를 내두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