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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잃어버린 세계

2004.12.29 23:4312.29





toonism@magicn.com나는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반쯤 어른인 소년에게
혹은 반쯤 소년인 어른에게
한 시간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테스트를 해 봅시다. 아서 코난 도일. 이 이름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베이커가 221번지 B호, 입에 물고 있는 파이프, 사냥모자. 코난 도일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보통은 셜록 홈즈를 떠올리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코난 도일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추리소설을 즐겨 읽던 저로서는 ‘코난 도일 = 셜록 홈즈’라는 도식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3년 4월, 행복한책읽기에서 놀라운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잃어버린 세계], 책 한쪽에는 ‘코난 도일의 SF 1’이라는 말이 쓰여 있더군요. 아까 말했듯 ‘코난 도일 = 셜록 홈즈’라는 도식을 갖고 있던 저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만 썼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SF에까지 손을 댔을 줄이야(물론 그 당시에는 SF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세계]라면, 몇 년 전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소설 [주라기 공원]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바로 공룡(과 기타 공룡시대의 동/식물군)에 대한 이야기인 겁니다. 100년 전에 쓰인 책인 만큼, DNA를 조작해 공룡을 재생한다느니 하는 당혹스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남미 오지에 있는 한 고립된 분지에 그들이 살아남아 있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요.

   굳이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듣고 싶으시다면, 귀찮으시더라도 이 링크를 눌러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는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을 때 (다들 다르겠지만) 두 가지 정도의 읽는 방법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그 책의 작중 인물이 되어 그 모험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제3자의 관점에서 코난 도일의 위트를 느끼면서 읽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세계]의 작중 인물이 되어 그 모험을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상상의 산물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그럴 법하게 묘사되어서, (절대 있을 수 없는, 100년 전의 상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금 이 모험에 같이 뛰어들었다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물을 마시고 있는 공룡을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에서 바라보는 , 달빛 아래에서 쫓아오는 공룡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나, 유인원과 인간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칭하는 인종에게 경배를 받는 , 라는 걸 상상합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에서,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청소년들이 고생물학자의 길을 택했다는군요.

   홈즈를 보신 분은 느낄 수 있겠지만, 홈즈 시리즈의 서술자 왓슨은 상당히 침착하고 진지합니다. 그에 비해 이 작품에서의 서술자 에드워드 멀론은 매우 흥분을 잘 하며 위트에 넘칩니다. 물론 두 작품의 서술자는 코난 도일이겠지요. 코난 도일이 이렇게까지 위트에 넘치는 활기찬 글을 쓸 것이라고는, 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답니다. 책 어디를 펴 보아도 재치가 넘치는 문장뿐이랍니다. 어디, 아무 데나 펼쳐서 확인해 볼까요. ……즐거운 부분을 옮기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상황 자체, 설정 자체가 즐거운 것들이라, 옮겨서는 아무래도 그 느낌이 살아남지 않을 것 같아요.

   뭔가 철학적인 고찰이라든지 상징 따위를 찾아보지는 맙시다. 그냥 즐기는 겁니다. 작가 스스로도 즐기기 위해 쓰지 않았을까요. 글을 쓰고 나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친구들과 등장인물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고 거리를 뛰어다녔다는군요.(혹시 인류 최초의 코스프레?)

  이 글 제일 위에 있는 네 줄의 문장은 [잃어버린 세계] 서두에 있는 글입니다. 물론 한 시간에 읽기에는 조금 무리입니다만, 반쯤 어른이고 반쯤 소년인(그러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제게는 너무나도 들어맞는 책이더군요. 아마도, 상상을 할 자신이 있고 경이감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들어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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