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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askalai@gmail.com)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신화 텍스트는 형태상 문헌 신화와 구전 신화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나 이집트처럼 이미 그 신화의 모태 문명이 사라진(혹은 변한) 경우에는 100퍼센트 문헌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고, 인도나 중국이나 한국처럼 오래 전부터 문자가 있으며 아직 살아있는 문명일 경우에는 대개 문헌 신화와 구전 신화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문자가 없는 집단들의 구전 신화는 연구자들에게 ‘채록’되고 ‘가공’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헌 신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구전 신화가 신화학의 연구대상으로 편입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20세기 초까지 신화라고 하면 문헌 신화만을 가리켰고, 그 문헌을 보고 해석하는 시각은 시간적으로 둘 중 한쪽 입장을 취했다. 하나는 신화를 과거에 놓고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화를 ‘존재하지 않는’, 즉 현재의 시공간과 무관한 초월적인 시공간에 놓고 해석하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강력하게 대두되었던 역사학파처럼 “신화는 곧 과거의 진실한 역사적 기록”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전자에 속하며, 현재도 성서고고학자들 중에 이쪽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 반면 엘리아데나 지라르나 캠벨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되 각기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분석한다. 이 두 가지 입장은 때에 따라서는 서로 전혀 배치되지 않기도 한다. 트로이가 실제로 발굴되었다 해서 일리아드나 오딧세이 이야기를 문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 앞의 두 시각 모두에 반기를 들고 나온 학자가 있었으니 지금 이야기하려는 말리노프스키였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사실상 한가한 서사시도 아니며 목적없이 공허한 상상으로부터 분출되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화는 착실한, 그리고 매우 중요한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다. ([원시신화론] 중에서)

레비스트로스와 더불어 인류학사에 이름만큼이나 눈에 띄는 이론적 족적을 남긴 말리노프스키를 두고 보통은 기능주의자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지만, 나는 그를 아득한 과거에 있었던 신화도, 현재의 생활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신화도 아닌 ‘지금, 여기’의 신화를 보려한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앞서 말했다시피 20세기 초까지 신화 연구는 신화를 과거에 그러했던, 혹은 언제나 그러한 진실을 담은 이야기로 보았고 따라서 그 대상은 문헌 신화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말리노프스키가 주목한 것은 구전 신화, 그것도 채록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신화였다.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신화를 보고 듣고 이야기함에 있어서 그가 강조한 것은 신화를 이야기 자체만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전체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러시아 민담 채록본을 읽으면 숲속에서 노파를 만나는 장면(이름이 나오지 않아도 보통 이런 노파는 마귀할멈인 바바야가를 가리킨다)을 이해하기 힘들고, 켈트 신화에서 검은 까마귀(전쟁의 여신 모리아를 가리킨다)가 나올 때면 주석을 보아야 하지 않던가. 모든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고향에서 암묵적으로 소통되는 암호들을 품고 있게 마련이고, 외부인은 그런 암호를 풀기 위해 이야기하는 사람들까지 알아야 한다. 신화를 맥락 속에서 읽는다는 것은 그런 이해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를 실증하기 위해 말리노프스키는 멜라네시아의 트로브리안드 섬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한다. 현지 조사field work라는 연구방법에 있어서 말리노프스키가 현대 인류학에 기여한 바는 엄청나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가 될 테니 짚고 넘어가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아직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던 트로브리안드 섬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생활을 관찰하고 참여하고 기록한 말리노프스키는 1926년에 이 책, 원시신화론(말리노프스키/서영대, 민속원, 1996년 6월, 원제 [원시 심성에 있어서의 신화Myth in Primitive Psychology])을 냈다.

구성은 간단하다. 1장(일상 생활에 있어서 신화의 역할)에서는 기존의 신화 연구를 짧게 리뷰한 다음 살아있는 신화로서 트로브리안드에서 이야기되는 설화들을 통해 기존의 이론들이 이들과 맞지 않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2장(기원에 관한 신화), 3장(죽음과 생명윤회의 신화), 4장(주술에 관한 신화)에 걸쳐 트로브리안드 사람들이 어떤 때에 어떤 신화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풀어놓고, 이들의 사회와 문화와 생활에 비추어 그 신화들이 ‘왜 이야기되는가’를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신화가 사람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부응한다는 부분이 강조되어 말리노프스키=기능주의라는 등식에 일조하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굳이 그런 논의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언급에서 보듯 기존 연구에 대한 그의 비판이 결코 신화를 가볍거나 하찮게 보아서 나온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신화는 무의미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문화에 봉사하는 활동적인 힘이며, 지적인 설명과 예술적인 환상이 아니라 원시 신앙과 도덕적인 지혜의 실용적인 헌장인 것이다. ([원시신화론] 중에서)

다시 말하지만 [원시신화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살아있는 신화를, 그 신화가 살아가는 토대와 맥락 안에서 이해한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 방법은 이후 여러 학문 분과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으며, 신화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로 ‘원시’라거나 ‘미개’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쓰는 면은 있지만, 한 집단의 생활상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그들이 어떤 신화를 언제 어떻게 왜 이야기하는가를 파고든 연구성과로서 이 저서에 견줄만한 결과물은 거의 없다. 또 신화 해석의 한 가지 다른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는 적지 않으며, 트로브리안드 섬이라는 생소한 지역의 설화를 접하는 것도 재미있다. 다만 두께(본문만 따지면 100쪽이 안된다)와 값(정가 6000원)만큼 부담없는 내용은 아니어서 상당한 집중력과 반복 독해를 요구한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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