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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환상소설첩: 근대편

2005.07.30 03:0607.30



pilza2.compilza2@gmail.com단편이 유독 발전했고 그 비중도 크다고 말해지는 우리나라 문학계. 그러나 매년 신작만이 아니라 기존 발표된 작품을 모은(영어로는 리프린트) 단편집도 상당히 많이 나오면서도 그들 대부분은 한 작가의 글을 모은 선집이나 '~문학상'의 이름을 붙인 올해 최고작(Year's Best) 개념이고 특정한 주제나 소재에 맞춰 작품을 가려뽑은 단편집(영어로는 앤솔러지)이 거의 없다는 점은 소설을 다양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장르소설의 애호가라면 밀실살인(추리), 유전공학(SF), 숲의 정령(판타지) 등과 같이 특정 소재를 다룬 단편집이라든가 러브크래프트나 젤라즈니 헌정과 같은 특정 작가의 성격이나 작풍을 모사한 작품 모음집과 같은 다양한 앤솔러지가 있음을 알기에 더욱 우리 소설과 멀어지게 만들지 않나 생각된다(이와 흡사한 시도가 한국문학에서 있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이런 현실에서 특정 주제에 맞춘 한국소설 앤솔러지가 그것도 그 주제를 '환상'으로 잡고 나왔다는 데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단편집은 어디까지나 엮은이(편집자)의 기준에 따라 환상소설이라 생각되는 글을, 일제시대 때 발표된 작품 중에서 고른 것이다. 그 시대 특성상 소련 시절에 나온 SF나 판타지가 그렇듯 도피나 풍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환상소설을 쓴 경우가 많았다.

꿈 - 나도향
> 전통적 귀신담의 형식을 차용했다.

처염 - 임노월
> 기이한 연애담으로 역시 민담이나 설화와 흡사한 구성과 소재를 사용했다.

핍박 - 현상윤
> 광인을 다룬 심리소설. 사회적 무능력자에 대한 멸시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쥐 이야기 - 이기영
> 쥐를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 사회를 비판한 동물 판타지다.

기아와 살육 - 최서해
> 환상소설이라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당대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초현실적 장치를 사용했다는 점은 인상깊다.

적멸 - 박태원
> 환상적 사실주의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분류해도 손색없는 독특한 작품.

꿈 - 이광수
> 동명의 나도향 소설과 흡사하게 전통 설화 차용, 고전적 귀신 이야기 등의 형식을 갖춘 한국적 환상 혹은 공포 소설이다.

날개 - 이상
>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지만 이를 환상소설로 분류해도 좋을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역시 문학평론가인 엮은이가 보는 환상소설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낄 수밖에.

광염 소나타 - 김동인
> 예술의 가치를 극단적인 수법으로 물어보는, 알레고리 독법이 필요한 소설이지만 ('날개'와 마찬가지로) 환상소설인지는 의문스럽다.

공상구락보 - 이효석
> 공상의 발현과 몰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이 선집에 들어갈 만한 작품.

동물집 - 안회남
> 환상적 요소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엮은이는 현실에 대한 낭만적 도피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90년대 중후반의 한국소설은 거의 다 환상소설이다.

이 중 '기아와 살육', '날개', '광염소나타'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반대로 이런 선집에서는 알려진 작품을 실은 게 단점으로 작용했다. 또한 엮은이가 생각한 환상소설의 개념과 범위가 장르문학계의 생각과 크게 달라서 선집에 포함된 까닭을 알기 힘든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도 말했듯 시도 자체가 드문 주제별 선집인 데다가 주류문단에 몸을 담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가 환상소설에 대한 변호를 했다는 점(해설에서 엮은이는 자신이 옹호하지 않는 유형의 소설이라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에서라도 장르소설쪽의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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