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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는 전설이다

2005.07.30 03:0907.30





latehong@unitel.co.kr

보통 영화 이야기를 할 때 하는 말이지만, 내용과 형식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어떻게’는 ‘무엇을’만큼 중요하고, 둘은 떼어놓을 수 없다.

   장르 문학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나는 곧잘 그 분량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정말이지 작품의 분량은 많은 것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은 그 길이가 아니면 제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 내용을 두 시간 안에 다 넣으려 한다면 잘해봐야 ‘MTV 스타일(컷! 컷! 컷! 컷! 컷!)’ 뮤직비디오나 되고 말 텐데, 그런 길이와 속도감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장중한 감흥이 사라지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혹자는 로저 젤라즈니의 [내 이름은 콘래드]를 두고 [앰버 연대기]에 비해 통 하는 일 없이 작게 끝나버리는 이야기라고 투덜거리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 이름은 콘래드]의 ‘소박한 여행’은 바로 그 중ㆍ장편에 해당하는 길이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불사신 콘래드의 외계인 안내담을 다섯 권짜리 장편 소설로 써내면 분명히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돼야 할 것이다(아니면 다섯 권 내내 ‘쟤는 왜 지구에 왔을까? 나는 쟤를 보호해줘야 하나?’라며 고민만 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든가. 끔찍하다).

   그런데 곧잘 한두 권으로 끝나곤 하는 외국의 작품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작품들―――창작 부문이 가장 활성화 돼 있는 팬터지와 무협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될 텐데―――은 네댓 권을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듣기로는 그것이 대여점 수요에 판매량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형적인 시장 존립 형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는데, 이유야 어쨌거나 지금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고, 다만 결국 그 분량의 문제가 내용의 측면에 이르기까지 큰 아쉬움을 던져주는 경우가 많기에 아쉽다는 말을 하고플 뿐이다. 우리네 팬터지 시장에 암묵적으로(혹은 명시적으로. 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존재하는 그 분량의 문제는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집 [나는 전설이다]에 눈길이 가는 것은, 열한 편의 작품으로 이뤄진 이 한 권의 책이 지금 우리가 창작 팬터지 시장에서 잃어버린 미덕이 어떤 것인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이야기의 중심을 밀고 나간 뒤 끝맺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또한 정확히 알고 있다. 즉, 리처드 매드슨은 이야기를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는 오히려 제약 없이 풍성해질 수 있고.

   표제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인 {나는 전설이다}는 정체불명의 이유로 인간들이 죽어나가고 흡혈귀들만 남은 지구에서 마지막 생존자 로버트 네빌이 벌이는 생존 투쟁을 담아낸 작품이다.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매혹적인 소재가 가진 여러 가지 측면을 탐구한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두 존재, 로버트 네빌과 흡혈귀들이며, 전개 역시 두 존재를 축으로 이뤄진다. 작가는 로버트 네빌을 통해 흡혈귀가 실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 것일까, 라는 흥미로운 허구적 가정을 전개해 나가면서, 동시에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한정된 거주지를 가지고 혼자 살아나가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과학적 탐구'와 '심리적 공포'는 일견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 두 축 사이에 배치된 로버트 네빌의 과거 경험, 즉 독자들이 알고 있는 실제의 삶은 두 가지 축을 밀접하게 연결시키며 읽는 이의 몰입을 더해간다. 작품 초반에는 난데없이 황량한 세상에 내던져진 것 같던 로버트 네빌을 보여주다가 그가 투쟁을 하면서 정신적인 벼랑에 내몰릴 즈음에 아직 다른 사람들이 살아있던 과거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그 과거의 기억이 다시 현재의 투쟁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리처드 매드슨이 이런 이야기를 함에 있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사실, 다시 말해 그가 자기 작품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잘 알고 그 중심을 잃지 않은 채 내용을 재단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로버트 네빌이 겪게 되는 공포가 혼자 남았다는 공포, 그리고 그렇게 혼자서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공포임을 각인시켜 나가며, 흡혈귀에 대한 과학적 탐구 역시 그 공포와 맞물려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지점에 대한 탐구가 끝났을 때이다. 이제 자신이 어떤 존재와 대면하고 있는지 잘 알게 된,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방법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인물이 남았는데, 여기서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하고 어떻게 끝맺어야 할 것인가? 작가는 여기서 온갖 안이한 결말들―――흡혈귀와 싸워 마침내 그들을 멸종시키는 액션물이 되는 것, 혹은 그 일상적 공포에 짓눌려 자살하는 것 등, 이야기의 축 하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수많은 결말들―――을 피하여 이야기의 두 축을 한데 모으는 방식을 선택한다. 혼자 남은 자의 공포를 뼈저리게 알고 있으며, 심지어 그런 공포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의 앞에 자신과 똑같은 인간처럼 보이는 존재가 등장했을 때, 흡혈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의심을 어떤 방식으로 다뤄나갈 것인가? 이후의 내용을 모두 말하는 것은 가혹할 테니 간단한 얼개만 이야기하자면, 작가는 이 새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예정된 질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나가고, 결과 역시 새로운 요소의 힘을 빌리는 대신 이미 로버트 네빌이 알고 독자가 아는 사실 속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끝내 버린다. 실로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골수까지 빼먹고 버리는 흡혈귀 같은 작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전설이다}는 결코 예기치 못한 극단적인 전개로 독자를 잡아끄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예정된 결말로 치닫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록 뒷내용을 쉽게 예상할 수는 없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발견하게 되는 내용이 지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결국 {나는 전설이다}의 힘은 하나의 아이디어에 다른 자잘한 곁가지를 붙여 내용을 풍성하게 해나가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가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을 간결하고 치밀하게 잡아내는 데에서 나온다. 그리고 리처드 매드슨은 정말 그걸 잘 한다. 214페이지의 분량 속에 군더더기라 할만한 부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뭐가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같은 책에 수록된 열 편의 단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자 한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이 단편들에서 모두 {나는 전설이다}에서 리처드 매드슨이 보여줬던 단호한 아이디어 전개 솜씨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눈 파는 일 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제공할 수 있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잡아낸 뒤 그 요소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끝맺는다. 덕분에 이 단편들의 밀도나 만족감 또한 최근에 소개된 이런저런 장르 문학 단편들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라 할 만 하다.

   가격 대 성능비, 혹은 분량 대 밀도의 문제에 있어서 최상급이라고 할만한 [나는 전설이다]를 읽은 뒤 남는 의문은 오직 하나, 리처드 매드슨이 과연 긴 글을 다루는 데에도 이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그의 다른 작품들이 소개되기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그가 장편은 별로 쓰지 않는 작가라고 한들 아쉬울 것은 없을 듯 하다. 자신의 이야기에 휘둘리고 늘어지는 게 문제이지 자신의 아이디어가 가진 힘 안에서 짜임새 있게 작품을 조각하는 건 작가로서의 미덕에 해당하는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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