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pilza2.compilza2@gmail.com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환상문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사변소설 장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을 소개하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소련 당시를 비판한 풍자소설로도, 환상적 사실주의 소설로도, 심지어 장르 판타지 소설로 읽어도 재미있고 의미깊은 명작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다뤄보겠습니다. 제 능력 이상의 작품을 평한다는 게 힘이 부치긴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해보겠습니다.

1. 예술의 승리, 미하일 불가꼬프

문학을 비롯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오늘날 대량생산으로 인해 창작물이 범람하는 세태를 바라보는 시점은 크게 둘로 나뉘어지곤 한다.

질이 낮은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유행하고 훌륭한 작품이 묻혀져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예전엔 묻혀질 많은 작품이 알려질 수 있으며 좋은 작품은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거라는 낙관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도 있다.

후자 쪽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의견에 한층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있으니 바로 [거장과 마르가리따]가 그런 작품이다.

미하일 불가꼬프는 러시아 SF의 효시 [개의 심장]을 통해 스탈린과 공산주의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작품활동은 물론 생계 자체를 위협당하며 불운하게 살았다.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 썼지만 작품을 발표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결국 사후에야 공개된 [거장과 마르가리따]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비로소 ‘거장’다운 대접을 받게 되었고 이 작품 역시 걸작이란 찬사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은 러시아(당시 소련)의 탄압으로 불행과 고통으로 얼룩졌으나 그의 작품은 시간을 넘어 마침내 명작으로 인정받고 소련이 무너진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게 되었으니, 이른바 예술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동적인 부분이다. 비록 작가 자신이 그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말았지만.

2. 거장과 마르가리따

명망있는 소설가 베를리오즈와 시인 이반은 회색옷을 입은 낯선 이(악마 볼란드)와 만난다. 그의 예언대로 베를리오즈가 전차에 목이 잘려 죽게 되자 이반은 정신없이 그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되려 체포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병원에 갇힌 이반은 옆 병실에 갇힌 ‘거장’과 만나게 된다. 거장은 이반에게 자신은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담은 소설을 집필하다 문단과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받고 실의에 빠져 결국 정신병원에 오게 되었고 사랑하던 여인과도 헤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편 볼란드는 시종을 이끌고 모스끄바의 극장에서 흑마술 공연을 펼치게 된다. 악마의 마법으로 공연은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펼쳐져 관객의 호응을 얻지만, 공연 후 시내는 온통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3. 풍자와 도피로 이끄는 악마의 웃음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이 소설의 구조를 간략하게 살피자면 이반과 볼란드 일당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고 그 사이에 빌라도와 예수의 이야기(아마도 거장의 소설내용으로 추측되는)가 삽입되며, 2부로 와서는 볼란드의 부름을 받고 온 거장의 연인 마르가리따와 거장의 이야기로 이어져 마침내 그들이 다함께 모스끄바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향하면서 끝맺는다.

빌라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도 문학적 가치는 있겠으나 기독교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는 관계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여기서는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환상적인 소재와 장치 등 장르 판타지쪽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

일단 이 소설은 판타지라 불러 마땅할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언과 흑마술을 구사하는 악마, 그 악마가 부리는 말하는 검은 고양이와 흡혈귀 메이드, 이들이 부리는 갖은 마법과 재주(*1), 마법의 크림을 몸에 바르고 하늘을 날아가는 여인, 악마들의 무도회, 하늘을 날으는 말 등 각종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소재가 난무한다. 심지어는 알몸에 앞치마만 두른 소녀도 나온다(판타지완 상관없을지 몰라도 성적 판타지완 상관이 있다). ‘알몸 에이프런’(*2)의 원조는 바로 이 작품이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이러한 환상적 장치는 풍자를 위해 사용되고 있어 보인다. 작가와 비평가를 비롯한 (당시 소련을 다뤘으면서도 오늘날까지 설득력을 주고 있는)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평단에 대한 분노와 비판, 허영과 물욕에 눈이 먼 부유층에 대한 조롱, 악마의 유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고답적 선악관의 파괴(오늘날이야 악마가 주인공이고 천사를 나쁘게 그리는 작품이 많지만 이 작품은 1940년에 쓰여진 글이다) 등.

이러한 당대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현실에서의 일탈과 낭만적 도피로 이어진다. 시대에 고통받고 절망한 예술가는 결국 악마의 힘을 빌어 도시를 뒤엎고 능력을 얻은 소설가의 연인은 비평가의 집을 때려부수며 세상에게 버림받은 소설가는 자신의 연인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버리는 길을 택한다.

그런데 왜 악마일까. 소련을 악이라고 생각했다면 거장을 구해주는 건 천사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카니발리즘 소설(*3)의 대표작으로 뽑힐 정도로 통쾌한 조롱과 유쾌한 장난으로 웃음을 주는 본작에서 그런 역할을 주도하기에 당시의 천사는 경직되고 성스러운 존재였기에, 아마도 그래서 악마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더구나 본디오 빌라도를 변호한 거장의 소설은 당시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상식으로 취급받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세상에 반기를 든 거장을 구해줄 존재라면 악마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은 ‘악마라도 좋으니 와서 이 세상을 뒤집어다오!’라는 작가의 절규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해지기도 한다. 수많은 인물들이 악마 일당으로 인해 곤경을 당하는 부분은 시종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무작정 웃을 수만은 없는 우울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거듭 읽으면서 마치 악마의 웃음처럼, 정말 시원하고 즐겁게 웃으면서도 마냥 기쁨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깊은 어둠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꼈다.

정녕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련 독재정권에 통쾌한 복수의 일격을 날린 ‘거장’ 미하일 불가꼬프의 유서이자 예언서이다. 이 작품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예술의 영원성은 퇴색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4. 추신(번역본에 대한 사과를 덧붙여)

본서의 번역본은 두 종이 있으나 모두 절판된 지 오래라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을 소개한 것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낀다. 본인 역시 두 권짜리인 한길사 판본의 상권만 손에 넣을 기회를 만났을 뿐 결국 소장하지 못했다. [푸른 꽃], [우주 전쟁] 같은 경우는 대여섯 출판사에서 중복출간되면서 이 작품이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건 비극이다(현재 한길사 웹사이트의 문의에 대한 응답을 보면 재고가 없으며 재판 계획도 없다고 함). 본서의 조속한 복간 혹은 재출간을 바라며 글을 마친다.



1. 볼란드 일당이 펼치는 마법과 재주는 매우 다양하여 돈비를 뿌린다든지, 그 지폐가 종이조각이 된다든지, 목이 잘라졌다 붙는다든지, 갑자기 불을 일으킨다든지 등등 수없이 많다. 특히 말하는 검은 고양이 베헤못(성서에 나오는 그 거대생물에게서 따온 것이 분명한 이름이다)은 오늘날 애니메이션의 동물 캐릭터(벅스 버니 같은 악동에 가까운 이미지)를 연상시킬 만큼 말재주가 좋고 영악하다.

2. 알몸 에이프런(裸エプロン): 일본에서 비롯된 용어. 말 그대로 알몸에 앞치마만 두른 것으로 소수 남성의 전폭적 인기를 얻고 있는 패션 아닌 패션이다. 적절히 가림으로써 성적 흥분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여성의 복장이다.

3. 카니발 소설: 순간적인 일탈과 소동에 의한 보수적이고 경직된 현실의 혼란과 붕괴를 그린 소설을 카니발 축제에 비유하여 붙여진 용어라고 한다. 카니발의 원형인 식인축제나 주술적 의미까지 생각해보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그린 소설 역시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댓글 1
  • No Profile
    pilza2 06.08.08 11:01 댓글 수정 삭제
    문예출판사에서 재간되었습니다. SF칼럼니스트 김태영님의 해설도 들어갑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