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pilza2.compilza2@gmail.com

1. 조지 맥도널드

판타지가 장르로 구분된 것은 2차 대전 후 나온 두 대작([반지의 제왕]과 [나니아]시리즈)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톨킨과 루이스를 배출한 영국 환상문학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두 사람의 문학적 스승격인 조지 맥도널드와 만나게 된다.

그는 동화작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판타지 장르의 ‘선조’이며 낭만주의 문학의 계승자이고 또한 경직된 당시 기독교를 비판한 사상가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북풍의 등에서]와 [공주와 고블린] 등 아동을 위해 쓴 글 뿐이고 아쉽게도 판타지 장르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릴리스]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2. 북풍의 등에서

주인공 다이아몬드는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가난한 마부의 아들이다. 어느날 밤, 방으로 삼고 있는 허름한 헛간 다락방에서 긴 푸른색 머리카락을 가진 신비로운 여인 ‘북풍(北風)’을 만나게 된다.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젊은 모습으로도 늙은 모습으로도 자유로이 변할 수 있는 북풍은 다이아몬드를 데리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다음날 늘 자던 잠자리에서 깨어난 다이아몬드는 꿈이었는지 현실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매일밤 북풍과 함께 세상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면서 그는 점차 인생에 대한 많은 소중한 가치를 배워나가게 된다.

어느날 그는 소문처럼 듣게된 ‘북풍의 등’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상향 혹은 신비로운 곳이라고 알려진 북풍의 등. 북풍은 그 청을 거절했지만 마침내 다이아몬드는 북풍의 등에 가게 되는데…….

3. 삶의 가치와 죽음의 직시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담이요 순수한 영혼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선악과 미추, 믿음, 인생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우화다. 동화라고 하기엔 묵직한 느낌이 있으나 섬세한 묘사와 신비로운 시와 노래 덕분에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받아들여질 만큼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도입부는 가장 전통적인 설화와 같이, 평범한 아이가 신비하고 뛰어난 존재의 인도로 낯선 세상을 경험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다른 작품 [공주와 고블린], [공주와 커디]에 나오는 할머니와 같이 북풍은 주인공을 이끌고 보호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마법과 신비의 힘을 가진 환상의 인도자이다. 다만 북풍은 때론 차갑고 메섭게 세상의 진실과 인생의 현실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소년은 북풍을 따라 다니면서 세상의 많은 걸 보고 여러가지를 배운다. 특히 외모를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북풍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이끌리는 다이아몬드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어린 왕자]가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 작품은 외양과 내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진실하고 중요한 것인지 거듭 묻는다(이 점은 [공주와 고블린], [공주와 커디]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년의 여행은 그저 낭만적인 세상유람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런던의 뒷골목에서 가난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를 도와줄 때일 것이다. 어떤 세상에서도 여전히 어둠과 추함이 존재함을 배운 다이아몬드는 힘들고 슬픈 사람을 도와주는 미덕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한다.

그렇게 이 소설은 가난한 영국 사회과 환상적인 바깥세상, 평온한 북풍의 등과 힘겨운 현실, 아이가 보는 세상과 어른이 보는 세상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얼핏 가난하고 힘든 삶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 여행은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어 그 차이를 두드러지게 할 것 같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북풍과 함께 보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어둠과 추함이 존재함을 배운다. 그래서 금기와도 같이 유혹하던 ‘북풍의 등’의 실체를 마침내 보고 돌아온 소년의 삶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소설의 전체 내용을 봐도 소년이 북풍과 함께 여행을 하는 전반부보다 북풍의 등에 다녀온 후 북풍과 만나지 못한 채로 지내는 이야기가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본작에서 ‘북풍’은 흔히들 ‘죽음’의 비유이자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는 일제시대 쓰여진 시의 ‘님’과 ‘연인’을 무조건 조국으로 해석하는 교과서식의 상투적 해석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일종의 사후세계라고 여겨지는 북풍의 등. 그곳에 다녀온 다이아몬드의 경험은 임사체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지 맥도널드가 말한 사후세계는 어떤 곳일까. 이는 직접 소설을 읽을 분들을 위해(사실 그게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하니까) 신비와 궁금증으로 남겨두고 싶다. 다만 왜 다이아몬드가 그곳을 다녀온 후 더욱 밝고 활기차게 살아갔는지, 왜 소설의 마지막에 미소를 지었는지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소설의 마지막 역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짐작은 가능할 것 같다).

삶의 가치와 덕목을 깨우쳐 몸소 실천하고, 죽음을 체험하고 돌아와 더는 두려움과 호기심에 흔들리지 않는 소년은 마치 깨달음을 얻은 성자와도 같이 변한다(동생에게 불러준 초현실적이고 철학적인 노래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처럼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으되 죽음에의 동경을 버리지 못한(물론 한스는 절망으로 인해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어서 다이아몬드와는 다르지만) 이 어린 성자는 누구보다 편안하게 북풍의 등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과 고통이 결코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삶과 죽음 역시 그러함을 이미 알게 된 이상.

4. 번역본에 대하여

번역은 웅진닷컴과 현대지성사 두 곳에서 삽화를 포함한 완역판으로 나와 있다. 번역의 경우는 한쪽이 아주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으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상태, 해설 등 여러모로 웅진닷컴 쪽은 저연령층, 현대지성사판은 상대적으로 고연령층을 위해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웅진닷컴판은 활자가 크고 삽화에 임의적으로 채색을 했으며 본문 후 아동을 위한 감상질문서가 있고 현대지성사판은 상세한 저자소개가 있고 삽화와 활자가 비교적 작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