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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마음의 역사

2005.11.25 23:2111.25




은림 (silvaf.zio.to fenner7@hanmail.net)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정리된 철학이나 사상의 역사가 아닌 우리 자신들이 지금 갖고 있는 제대로 이름 붙일 수조차 없는 복잡한 감정들에 역사를? 놀랍게도, 이 책이 그걸 해냈다. 그것도 감정적 접근이 아닌 명쾌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작자는 자신의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보다 앞선 심리학자의 책을 먼저 소개하며 “멀린 도널드라는 심리학자는 저서 <현대의 마음의 기원>에서 주로 고고학자료에 의존해서 마음의 진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라고 썼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은 그와 반대인 심리학에서 아이디어를 빌리려는 고고학자로서 이 글을 쓴다. 고 말한다. 그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체개적이며 객관적이고 작가 자신의 가설이나 상상을 조심스럽게 배제한다.



   작가는 초기 인류부터 현세 인류까지 두개골과 뼈, 그들이 상처를 치료한 형태, 부장품, 식습관, 언제 어디서 살았는지 등등을 일일이 그림과 도표로 상세하게 적어 마음의 발전 단계와 비교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지금 우리의 생각과 행동 방식과 거기서 반추되는 감정이 우리 부모 세대와 다르듯이, 더 멀리 가 조선시대, 고려시대, 빅토리아 시대, 그리스 로마 시대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더 길고 넓은 시간을 뛰어 넘어 원시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마치 연극처럼 시대에 따라 인류가 등장하고 무대 위에서 행동하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떠한 것들을 이루었나 보여주고, 그리고 퇴장하여 미싱 링크를 암시하고 또 다른 인류가 무대에 오른다. 그들은 다음 단계의 발전도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독자를 배려하여 세밀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사실 내가 책의 제목에서 기대한 것은 그것들보다는 좀더 세밀화 된, 우리가 느끼는 분노나 사랑 등의 격정적인 감정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를 알고 싶은 거였지만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좀더 총체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여기서의 마음은 초기 인류에겐 살기 위한 일반적 통합 지능 영역의 반사작용에 불과할 뿐 마음이라고 구체적으로 부를 만한 것은 없었고, 안이 텅 빈 대성당 구조물이 그것과 닮았다는 예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세분화되는 지능(기술지능, 언어지능, 사회적지능, 자연사 지능)으로 벽돌을 쌓아 대성당의 방을 이루지만 그것들은 아직 따로따로 기능할 뿐 한꺼번에 두 가지가 함께 움직이거나, 두 가지가 섞여서(예를 들어 자연사 지능과 기술지능이 합쳐져 그냥 뾰족한 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돌에 나무를 묶어 도끼로 만드는 것 따위)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대성당 방들의 벽돌은 두껍고 문도 창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서로 꽉 막혀 있던 지능들 사이에 창이 만들어서 서로 쌍방 교류하게 되고 인류의 단계별로 조금씩 창이 커지고 문이 생겨 모든 것들이 좀더 유기적으로 빠르게 조합 운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선 각각의 구석에 박혀 있던 모든 방에 열린 문이 생기고 창들 열리며 그 가운데에 새로운 이미지와 사상, 상상력의 근원을 이루는 초표상의 거대한 방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현세의 인류의 마음이다.



   작가는 또 재미있는 생각 하나를 제시한다. 모든 생명이 자신의 원시 모습부터 현재에 이르는 진화 과정을 성장과정에 축소시켜 암시해 놓듯이 (우리 인간이 올챙이 모양으로 양수에서 나와 원숭이 같은 몰골에서 사람 모양이 되듯이) 우리의 지식과 생각의 발전 단계 또한 갓난아이부터 성장기까지 과거의 진화 단계를 암시하고 있다고.

   이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게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를 더 하자면 아이와 인형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확하게 옮겨 적지는 않고 비슷하게 예를 들자면―――아이에게 곰 인형을 주면 아이는 그걸 곰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솜과 염색된 털가죽으로 만들어졌고, 곰의 어떤 재질도 습관도 생명 생태도 반영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이에게 진짜 곰이다. 그리고 진짜 곰 또한, 아이에게 자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이 아니라 친숙하고 정감 어린 ‘인형같은’ 곰이 된다.

   이 이야기를 퇴화시키면, 원래 바위는 바위고 사람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따로 대성당의 지능의 방에 갖힌 다른 생각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생각 사이에 창이 생기자, 사람은 바위를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어 숭앙하게 되고, 반대로 사람을 바위처럼 무생물로 생각할 수도 있어 동족을 죽일 수도 있게 되었다.

   또 이것을 조금 발전시키면 기계는 쇠와 전기와 기타 재질로 만들어진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움직이는 부산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서로 교류하는 수많은 문과 창을 가진 개방된 대성당의 중앙 방에서 그것은 인간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 또한 기계와 같은 것으로 격하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인식과 감정의 유동성과 발전 단계를 적절히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했다.

   책의 목차는

   고고학자에게 사람의 마음에 대해 묻는 이유
   과거의 드라마
   현대인의 마음
   마음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제안
   유인원과 원숭이, 그리고 미싱 링크의 마음
   첫 도구 제작자의 마음
   초기 인류의 다중지능
   네안데르탈인처럼 생각한다는 것
   인류 문화의 빅뱅 : 미술과 종교의 기원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마음의 진화

   에필로그 : 농경의 기원

이다. 책은 현대인의 마음에까지 닿지는 않지만 가장 가까운 원시인에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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