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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chizedek@naver.com

   나름대로 감개무량하다면 감개무량할 2005 거울 중단편선이 나왔다. 실제적으로 참여한 바 없고 참여할 리도 없는(...) 본인도 감탄사와 환성이 절로 나올 지경인데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와 기쁨과 떨림은 이루 말할 수 있을까.

   2004 책자가 있으니 당연히 비교가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디자인이겠고, 그 다음이 책의 부피다. 아주 많이 무거워지고 두꺼워졌다.

   2005 거울 중단편선 하나로 한국 환상소설의 현재를 짚어볼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거울을 비춰보는 거울상의 역할만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편집장님의 단단한 포부대로 아마추어 단편소설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공간이 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쇼케이스 현장이기도 할 2005 중단편선.

   이 책자를 처음 신청할 적에, 나는 적이 걱정하고 있었다. 진산님과 비슷한 걱정이 아니었는가 싶다. ‘실체를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작가를 죽인다. 읽는 눈이 뜨이고 평가 척도가 높아질수록 몸을 사리게 되기 쉽다. 게다가 거울과 같이 정적인 분위기의 곳에서는 튀지 않으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있다는 합평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리 탐탁해 보이지도 않았다. 작가들이 모여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개성과 특질은 가지치기 당해 품질은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일률적인 인공품이 생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처음 얼마 동안(물론 본인만의 착각이겠지만) 비슷한 느낌이 드는 소설도 있어서 실망스러웠다. 왜? 재미없었으니까.
   잡지가 재미없으면 사람들은 사보지 않는다. 거울이 단편선을 제작한 후 1년여를 지나면서 질적 발전을 이룩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것이 ‘작가들의 비슷한 성장들’을 의미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잠시간의 우려는 기우로 지나갔다. 거울은 내 우려를 대단히 즐겁게 극복한 듯 싶다. 그리고 그 모습이 2005 중단편선에서 뚜렷이 보인다. 2005 책자는 절반정도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경력을 떠나서 새롭게 거울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의 합류도 즐거운 일이었다. 거울의 양의 확대 뿐 아니라 다양성 확대에까지 이바지함이 크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목록을 ida와 fool이라는 새로운 작가들로 앞세운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2005 거울의 특징은 발전의 역동성에 있다. 거울은 웹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시작점이나 성격상 동인 집단의 폐쇄성도 함께 한다. 나는 처음 거울이 오래 가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웹진임에도 불구하고 자유게시판은 겉보기에는 항상 침체 상태인 듯 싶고 독자반응도 시원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작가들의 열정은 뜨거웠으며 웹진 관계자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힘들어 보이기만 했던 2년여 동안 길을 쭈욱 닦아오면서 단단히 잡았던 기반 위로 아름다운 집이 지어졌다. 그것이 일반적인 커뮤니티들이 걷는 확장-발전-침체의 길이 아니기에 더 아름답다. 이들은 이 아름다운 집을 다른 이들에게 세 내어주기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둘러보는 방문자도 기꺼이 포용한다. 그래서 2004보다 단단해진 2005 책자는 그 질에서나 다양성 면에서나 확대되었다. 단순히 환상소설이라기 보다 장르문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해진 이야기거리, 그리고 작가 개개인의 글만듦의 철학 차이가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한다. 지난 이야기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향연이었다면 이번엔 좀 더 원숙해진 주제엮음이 엿보인다. 긴 서술에서 잠깐 엿보이는 아마추어리즘도 오히려 거울의 생동감을 나타내는 듯 매력적이다.

   [우수한 유전자]와 [잘 가거라 내 아들…]은 거울 신세력의 대표주자이다. SF라는 이름을 달아서 어색치 않을 이 작품들은 전체적으로는 거울의 다양성을 높여주며 개인적으로는 읽는 재미를 높여줬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줄 잘 아는 작가들이다. [Jumping Child]와 [심연]은 이미 원숙한, 프로의 냄새가 보이는 작품이다. 평범한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 줄 아는 작가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옥션]과 [소금 엉덩이]를 추천작으로 뽑고 싶다. 赤魚는 사람을 창조할 줄 안다. 그의 인물은 짧은 단락 안에서이미 입체성을 뛰기 시작하고 사람간의 관계성 속에서 주제를 구현할 줄 안다. 빛나는 재능을 지닌 작가다. hermod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작가다. 짧은 이야기 안에 풍자가 혹은 드라마가 있다. 그의 작품은 조용하지만 깊게 마음을 적신다. 다음 작이 기대된다.

   나는 이번 단편선에서 흠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편이 하나의 작품이라면, 그 단편을 이어놓은 작품집 역시 하나의 작품이다. 2005 거울 단편선은 하나로 봤을 때 뛰어난 작품성을 보인다. 각각의 소설들이 제자리에 맞추어 위치하기에 약간의 시간과 긴 줄 읽기를 힘들어하지 않을 조금의 인내심만 있다면 모두 즐겁게 볼 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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