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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브람빌라 공주

2006.06.30 23:2406.30





pilza2.compilza2@gmail.com

1. 호프만의 광기

E.T.A. 호프만은 시대를 앞서간 걸출한 창작으로 인해 오해를 많이 받았던 작가이다. 그는 일련의 공포소설로 인기를 얻었고 상당수 작품에서 인물들의 광기, 현실과 환상의 혼란 등을 그려 작가 자신이 광인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낮에는 법조인으로 밤에는 작가로 활동한 이중생활 역시 그의 이중성을 증거하는 게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사실 그의 작품 중에는 이중인격이나 도펠갱어를 소재로 한 것도 많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들어서자 그의 작품은 재조명받았고 특히 오늘날 장르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음이 드러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그는 장르적인 관점에서 E.A. 포의 직계 조상(?)이며 SF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악마의 묘약』, 『브람빌라 공주』에 나오는 이중인격 혹은 자신과 동일한 분신(도펠갱어)은 오늘날 스릴러/판타지/호러의 주된 소재(심지어 복제인간으로 해석한다면 SF까지)이며,
『적막한 집』은 비이성적 공포와 수수께끼로 시작하여 이성적인 해답이 제시되며 끝나는 현대 추리물의 구조를 제시했고,
『브람빌라 공주』에서 선보인 소설과 연극의 융합, 혹은 연극적(영상적) 소설이란 양식은 멀티미디어 세대인 오늘날에 더 걸맞는 것 같으며,
『스퀴데리 부인』은 범죄 소설이자 탐정 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 현대 추리물의 효시라 할 수 있을 뿐더러,
『모래 사나이』는 아마도 세계 최초의 로봇 미소녀를 선보였다. 인조인간을 다뤘을 뿐 아니라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그렸다는 점에서도 SF의 원조이며, 가상의 인간(혹은 가상세계)에 빠져드는 인물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대를 200년은 앞서갔다고 볼 수 있겠다.

2. 브람빌라 공주

공주의 옷을 수선하던 소녀 지아친타, 그리고 그의 애인인 고전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 지글리오 파바. 그들이 사는 마을에 사육제가 열리고 브람빌라 공주의 화려한 행렬이 궁전에 들어온다. 같은 시기에 공주의 약혼자인 코넬리우스 왕자가 행방불명이 되고, 지글리오는 브람빌라 공주가 꿈에서 본 자신의 연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기괴한 가면을 쓰고 공주를 찾아나선 지글리오와 왕자가 자신에게 청혼하기를 기다리는 지아친타. 어지러이 펼쳐지는 카니발 속에서 얽히고 설킨 이들의 앞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3. 현실과 환상이 뒤엉켜 펼치는 한바탕 축제

이 작품은 길고 길지만 끝나고 보면 너무나 짧은 하룻밤의 꿈만 같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부분이 악몽이다. 카니발이 펼쳐지는 마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의 언행과 지글리오의 방랑은 마치 술에 취한 듯 어지럽고, 본인들은 진지하나 더없이 우스꽝스러운 가면극(결투를 포함한)은 연극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일 뿐 아니라 어느 것이 현실이고 환상인지조차 알 수 없는 작품색은 당시엔 비판적이었을지 모르나 오늘날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사조에서는 주로 보이는 모습이다. 호프만은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충분히 계산하고 환상적이며 신화적인 결말을 유도해내었다. 중간에 슬쩍 나왔던,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던 '오피오흐 왕과 리리스 왕비 이야기'가 중요한 복선이자 이야기의 중심 열쇠가 되면서 대단원에 걸맞는 완결을 맺게 된다.

흔히 현실과 환상의 혼재를 다룬 작품을 평할 때 호접몽, 사이버스페이스만 들먹이며 무식을 감추기 바쁜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보고 경탄해야 마땅하다(물론 장자가 호프만보다 아득히 오래전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상물의 비평에 호접몽을 갖다쓴 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작가가 의도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혼란스러운 인물과 종잡을 수 없는 대사와 개연성이 없어보이는 일련의 사건을 보고 있자면 술에 취한 것처럼 혼란스럽고 꿈 속처럼 어지럽다.

그러니 이 작품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는 순간 이미 작가와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지글리오와 코넬리우스 왕자는 동일인물인가부터 시작해서 고민을 하다보면 끝이 없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왕과 왕비의 이야기처럼 신비한 전설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소설 속의 내용은 작품의 주된 사건인 사육제처럼 그저 한 바탕 연극 같은 축제마당일지도 모른다.

축제에 와서 이것저것 분석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축제에 빠져서 신명나게 웃고 즐기는 것. 이 작품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반응일 것이다.

4. 환상은 날개, 해학은 몸통

이 작품은 호프만의 후기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전 작품과의 유사점도 많이 드러나는데, 특히 꿈과 현실을 분간 못하는 주인공, 그를 괴롭히는 건지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는 신비한(괴팍한?) 인물의 등장, 주인공의 분신인지 이중인격인지 모를 존재의 등장 등 상당부분이 『모래 사나이』와 흡사하다(마지막 항목은 『악마의 묘약』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의 작품이 (주로 주인공의 광기에 의한) 파멸과 비극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는 점(『적막한 집』 역시 광기로 시작하여 이성적인 해결을 맞았지만).

이러한 E.T.A. 호프만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구를 이 작품에서 찾는다면 단연 작품 내에 나오는 판타지는 날개이고 해학은 몸통이라는 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작품에는 고딕 호러 계통이 많지만 어느것도 그저 음울하고 무섭게 그리지 않는다. 광기에 빠진 인물의 비극을 그리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해학이 늘 빠지지 않았으니, 마치 술을 마시고 기분좋게 취한 듯한,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유쾌한 몽환이 주는 환상적인 감동이야말로 호프만 소설의 정수가 아닌가 싶다.


덧1. 이 작품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삽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당시 유명한 작가 칼로의 동판화를 삽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소설에 맞게 삽화를 그린 게 아니라 호프만 자신이 칼로의 작품 중에서 자기 작품에 어울리는 판화를 골라내어 넣은 것이라고 한다. 즉 삽화가 먼저이고 소설이 나중이라는 이야기인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과 같이 특정 그림을 주된 소재로 하는 소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쓴 일종의 그림에 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삽화를 먼저 고르고 그에 맞게 글을 쓴 경우라면 같은 독일 작가 발터 뫼르스의 『밤』이 있다.

덧2. 첫 번째 소제목은 레온 드 빈터의 소설 『호프만의 허기』를 패러디한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E.T.A. 호프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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