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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암살주식회사

2006.06.30 23: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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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조직은 매우 비밀스럽게 운영됐다. 나 역시 그들이 먼저 접촉해오지 않았다면 그런 조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조직을 암살국이라고 불렀다. 의뢰인이 암살을 의뢰하면 암살대상에 대한 의뢰비를 책정하고 선불로 의뢰비를 받는다. 의뢰비를 받으면 암살대상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들의 조사결과 대상이 암살당할 만한 윤리적 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행동에 들어갔다.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의뢰비는 통상적으로 의뢰비의 1/10 정도의 조사비를 제외하고 의뢰인에게 환불된다고 했다.

러시아계로 보이는 그 남자의 설명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는 암살국이 얼마나 신뢰받는 조직인지 강조하며 의뢰비를 떼일 염려는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그가 책정한 의뢰비를 지불했고, 얼마 안가 뉴스를 통해 자살로 판명된 한 죽음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다시 그를 만날 일은 없었다.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없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접근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해가 흐르고 난 다시 그 혹은 그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대신 백만장자 사회주의자로 유명한 윈터 홀이 나에게 접근해왔다. 한 사교클럽에서 만난 그는 훌륭한 지식인이었으며 신사였다. 홀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너무 시간이 늦어 대화를 끝마치고 마차를 잡으려 할 때 홀은 언젠가 자신의 집에 한 번 초대하겠노라 했다.

얼마 후 나는 홀의 집에 초대되어 가게 됐다. 유쾌한 대화들과 멋진 요리들로 식사를 한 뒤 서재로 들어온 내가 담배를 하나 다 피울 때 쯤 홀은 갑작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암살국에 대해 아시나요?”
“암살국이요?”
“예, 암살국이요.”
홀의 입에서 암살국이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선 당장은 시치미를 뗐다.
“처음 듣는 것 같군요. 암살국이라니 그런 국도 있나요?”
“모르신다니 실망입니다. 저는 한 때 암살국이라는 조직이 실제 할 거라 생각하고 그 뒤를 좇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직이 실제 한다는 사실 또한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그런 조직이 있습니까? 놀랍고 또 두렵군요.”
난 짐짓 무서워하는 표정까지 지었다.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암살국의 마지막 고객이었으니까요. 제 의뢰 이후로 암살국은 어떤 새로운 의뢰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해체됐지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다시 한 번 암살을 의뢰할 암살국이 사라져서 아쉬운 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홀의 말은 날카로웠다. 난 당황했다.
“다시 한 번 이라뇨.”
“당신의 의뢰는 받아들여졌지요. 서류에 따르면 암살국은 정확히 2만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맞지요?”
“정말 자세하게 알고 계시는 군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한 사항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제가 암살국의 마지막 고객이었다고 했지요. 그렇게 된 것은 제가 암살국의 보스인 이반 드라고밀로프의 암살을 의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한 번 만나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저는 며칠 밤낮을 그와 논쟁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논쟁 끝에 나와 이반은 이반이 행동이 윤리적으로 정당치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저는 거기서 끝나기를 바라고 암살국의 해체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반은 자신이 암살당해야만 한다며 신변을 정리해 저에게 넘긴 뒤 부하들에게 자신의 암살을 명령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저도 어떻게든 계약을 취소하고 말려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더군요. 뒷일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무튼 그 의뢰를 끝으로 암살국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반의 신변을 정리하면서 만난 암살국의 암살자들은 모두 지적이고 신사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한편 윤리의 광신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철저했으며, 빈틈을 찾기 어려웠죠. 물론 이반은 스스로에 대한 암살 의뢰를 받아들이므로 살인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증명했지요. 그 사실을 논쟁을 통해 증명한 저 역시 그에게 그의 암살을 의뢰했으니 윤리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겠군요.”
내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자 홀이 말을 이어갔다.
“이 이상은 알려해도 알 수 없을 것이고, 알려드릴 생각도 없습니다. 더 이상 암살국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실 겁니다.”
그가 말을 끝마친 뒤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해 뭐라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암살주식회사
루이스 싱클레어의 짧은 개요를 구입한 잭 런던의 유작. 로버트 L. 피쉬에 의해 완결 지어졌다. 눈에 확 띄는 제목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문득 지금 우리 곁에 암살국 같은 조직이 존재한다면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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