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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바텍, 윌리엄 벡퍼드

2006.04.28 22:1904.28





lunaticsun@msn.com

바텍
윌리엄 벡퍼드, 정영목 옮김, 열림원, 2003년 5월

고딕 장르의 역사를 논할 때 가볍게라도 언급하고 지나가는 작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바텍]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월폴이나 래드클리프 등으로 대표되는 고딕 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수도, 신비주의 환상 문학의 대표작도, 동양풍 판타지의 고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동시에 이 모두를 적당히 버무린 ‘잡탕’ 소설이거든요. 장르와 장르가 손을 맞잡는 오늘날의 작품이라면 모를까, 이런 애매모호함 때문에 [바텍]은 국내에 소개되는 어떤 작품 목록에도 쉽사리 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라비아 풍의 신비한 줄거리에 고딕 소설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이 뒤죽박죽인 이야기가 매력적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지은이 윌리엄 벡퍼드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잠시 훑어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겠군요. 벡퍼드는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로 태어나 매우 폭넓은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기괴한 고딕 양식의 저택을 직접 설계하고, 그곳에 처박혀서 온갖 골동품과 미술품 등을 사 모으며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는군요.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오타쿠’ 소리를 들을 만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쾌락의 궁전을 짓고 오감을 고루 만족시키며 살아가는 바텍에 대한 묘사는 다름 아닌 지은이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자잘한 욕망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바텍과 가산을 탕진하는 줄도 모르고 기호에만 매진하던 벡퍼드는 상당히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벡퍼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모든 욕망이 바텍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겠지요.

   이렇게 창조된 바텍은 아라비아의 칼리프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자입니다. 그는 쾌락의 궁전과, 높이 솟아올라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는 천오백 계단이 있는 탑,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바텍의 앞에 한 괴인이 나타나고, 그 때문에 생겨난 호기심은 광기와 끝없는 갈증으로 나타납니다. 괴인의 정체는 악마로 밝혀지고, 지하에 있는 불의 궁전으로 초대하겠다는 악마의 말에 그는 기꺼이 신을 버리고 악의 길을 걷기로 맹세합니다. 바텍만큼이나 욕심이 많고 사악한 그의 어머니 카라티스는 이 계획에 적극 찬성하며 악마의 환심을 사기 위한 희생제를 올립니다. 불의 궁전을 향해 떠나는 바텍의 여정은 험난하고, 전보다 더한 욕망을 이끌어내는 요소가 도처에 그득합니다. 처음 보는 환경에 놀라고 지친 칼리프 일행은 신실한 노인의 환대에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바텍은 노인의 딸인 누로니하르에게 정신이 팔립니다. 과연 바텍과 카라티스는 지하의 왕국을 지배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분명 이 작품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지식에 대한 욕망을 경계하려는 교훈적인 목적에서 씌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글의 어조는 가히 반어적입니다. 탐욕스럽고 사악한 주인공들에 비해 신앙심 깊고 선량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매우 희극적으로 그려집니다. 지은이는 결코 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아서, 작품 속에서 언제나 비웃음 당하고 놀림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인물들이지요. 이와 대비되는 바텍과 카라티스의 오만함은 점점 극에 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전부 이루어질 것 같으니 작가가 불공평하다고 할 밖에요. 하지만 바텍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을 제어하는 카라티스의 이성적인 욕망이 그 극점을 향해 치달아갈 때 이들에게도 종말은 찾아옵니다. 바벨탑의 오만함에 신이 진노하듯, 심판의 시간이 닥친 거지요.

   결국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작품들처럼 엄중한 교훈으로 끝을 맺으면서, [바텍]은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을 경계하는 한편 원초적인 욕망이 갖는 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처럼 말린 악마를 마치 홀린 듯 발로 차대는 바텍과 자신도 모르게 그에 휩쓸리는 군중들은 원초적인 욕망이 얼마나 순식간에 확산되고, 사람들을 휘어잡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무시당하는 선량한 등장인물들보다 바텍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욕망을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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