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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그리스/로마 신화 축약본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로 프쉬케와 에로스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나오는데, 어머니의 명에 따라 아름다운 프쉬케를 벌하러 갔다가 실수로 사랑의 화살에 찔려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프쉬케를 비밀스러운 궁전에 데려다 놓고 밤의 어둠 속에서만 방문한다. 그러나 에로스는 프쉬케를 가엾이 여긴 나머지 두 언니를 궁전에 초대하도록 허락하고, 호화로운 궁전에서 잘 살고 있는 프쉬케를 질투한 언니들은 밤에 몰래 남편의 얼굴을 보라고 부추긴다. 약속을 저버리고 에로스의 얼굴을 보아버린 프쉬케는 떠나버린 에로스를 찾아 고난의 길을 걷고, 마침내 에로스의 도움으로 아프로디테의 모진 시험에 통과하여 신의 반열에 오른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판본이 있다. 어떤 판본은 믿음을 저버린 프쉬케가 버려지는 것으로 끝나고, 어떤 판본은 후반의 고난과 행복한 결말이 더 강조된다. 동일한 이야기의 다른 판본이라고 믿을 만한 민담도 여럿 수집되어 있는데 보통 이런 판본에서는 괴물을 가장하여 아름다운 셋째딸을 궁전에 데려다놓은(이 부분은 [미녀와 야수]를 연상시킨다) 존재가 굳이 신으로 나오지 않으며, 프쉬케가 신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C.S. 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는 신화와 민담 양쪽 줄거리를 모두 끌어안으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쉬케가 아니라 프쉬케의 첫째 언니, 모든 신화와 민담에서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망친 인물로 나오는 그 여성이다.

소설은 고대 어느 왕국의 첫째 공주 오루알이 살아온 나날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아버지인 왕에 대해, 왕국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웅기트 여신(바로 아프로디테다)에 대해, 여신에 반대하는 합리적인 그리스인 교사 폭스에 대해, 그리고 왕의 두 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막내동생 이스트라(오루알은 그녀를 ‘프쉬케’와 동일한 의미인 ‘사이키’라고 부른다)에 대해 말한다. 오루알은 추녀였지만 똑똑하고 힘이 센 여자였고 나이어린 막내 동생을 온 마음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며 백성들로부터 숭배받던 사이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여신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점 때문에 성스러운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오루알은 온몸을 바쳐 희생을 막으려 하지만 아버지와 사제들에게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생인 사이키도 자신의 희생을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하고 시신을 수습하러 간 오루알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사이키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녀는 현세와 다른 규칙 속에서 행복하게 살던 사이키를 현세로 끌어내리려 한다. 남편을, 신을 배신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말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오루알이 사이키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점이지만, 결과는 같다. 오루알의 사랑 때문에(그것 또한 시기심이라면 시기심이기는 하다. 그 사랑은 독점욕이며 이기적인 사랑이기에) 사이키는 남편을 잃고 긴 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사이키가 더 이상 그녀 옆에 없다는 점, 그리고 자신 때문에 사이키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루알에게 남은 인생은 지옥과 같다. 그녀는 스스로를 몰아세워 여자로서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 강하고 무서운 여왕으로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동생을 빼앗아간 신들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신전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합리적으로 교육시킨다. 평생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그리고 늙은 그녀는 평화로운 왕국을 여행하면서 생각지 못한 것에 맞닿뜨린다.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이스트라 여신에 대한 숭배, 우리가 지금 아는 것과 같은 신화와 민담과 노래……. “이스트라의 언니들이 질투 때문에 동생을 고난의 길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들. 이스트라 여신상에는 베일이 씌워져 있다. 그 베일이 벗겨지는 날이 곧 고난이 끝나는 날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훨씬 짧은 2부는 자기 구원과 신성에 대한 이야기로, 웅기트 여신의 얼굴이 드러나고 어느 것이 오루알의 진실인지가 드러난다……. C.S. 루이스라는 작가의 종교관이 강하게 표출되는 만큼 순수하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1부에 비해서는 아쉬움이랄까 망설임이 남지만,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상케 하는 장엄한 결말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니아 연대기]가 그랬듯 이 소설 역시 지극히 기독교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신비적이고 신화적이다. 다만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나니아 연대기]는 많은 신화 원형을 차용하기는 했으나 신화 다시쓰기는 아니었다. 신화를 문학으로 다시 쓴다는 것은 많은 작가를 끌어당기는 도전이지만 그 도전에 성공한 작품은 드물다. 이 작품은 성공 이상의 것을 해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프쉬케 신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프쉬케 신화와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끝까지 읽고 책을 덮으면서 독자는 이 둘이 오히려 다르지 않은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고서야 마침내 C.S. 루이스가 과연 톨킨에 필적할 만한 작가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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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06.03.31 23:15 댓글 수정 삭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환상 문학 중의 한 권입니다. 동시에 이 책 때문에 C.S.루이스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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