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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소자 이해불가

2006.11.25 00:5511.25





kwon.tistory.comdruidkwon@empal.com

[연소자 이해불가]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일반 서점에서도 잘 팔리지 않는 책이 단편집이다.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팔리고 있는, 아마추어들의 글을 모은 단편집은 더더욱 잘 안팔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네 번째 단편집을 낸 곳이 테일즈이다. 여러해전 누군가 처음 일종의 기념사업으로 단편집을 만들어보자고 말을 꺼냈었다. 그 이후로 테일즈에서는 이 무모하고도 귀찮고도 부담스러운 사업을 꾸준히 이끌어오고 있다. 그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대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소자 이해불가]는 여덟명의 아마추어 작가가 쓴 열편의 다양한 단편을 실고 있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면…….

마법사들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와이즈의 {모험을 하지 않는 마법사들}은 산만하게 여러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중심을 찾기 힘들었다. 글 안의 여러 에피소드들은 재미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에피소드들 자체가 주는 재미를 느끼기에 글이 너무 짧은 느낌이 들었다. 짧은 단편 안에서 여러 에피소드들을 다루기 보다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저니리의 {마법사 이마노미}는 무엇보다 흥겹게 볼 수 있었다. 단편집을 통틀어서 제일 많이 웃게 만들었던 글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해피엔딩과 개성이 넘치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음부터는 조금 더 진지하게 쓰겠다는 작가 후기에 대고 진지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음편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저니리의 {Duliet in the Starship}은 [연소자 이해불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편이었다.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길고 긴 시간을 여행하는 우주선에 탄 한 사람의 인간과 그 인간의 시중을 드는 안드로이드 듈리엣. 이들의 여행은 언제 끝날지 기약없이 계속되고 있다. 기약없이 계속되는 여행 속에서 듈리엣은 자신의 주인이 던진 질문에 대해서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시간을 들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며 대화를 나눈다. 그 중 듈리엣이 내놓은 외로운에 대한 오랜 생각의 결과는 감동스러웠다.

한 여성의 샤먼으로서의 첫 걸음을 그린 마하의 {반지}. 사랑과 결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 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짐짓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비파의 {What You Wish}.

이스의 {눈부신}은 작가의 화법이 어렵게 다가왔다. 친절한 이야기의 부재가 아쉽다.

디어사이드의 {Happening}은 경쾌한 필치로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저주로 인해 갑자기 여자가 되어버린 남자.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런 사정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죽마고우와의 결혼을 추진한다. 이전 사정에 대한 설명의 부재와 수동적인 여성으로 남아버린 여주인공(?)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같은 작가 디어사이드의 {개구리 왕자의 진실} 역시 경쾌한 필치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동화를 뒤집고 비틀어낸 재미가 쏠쏠하다.

에르키나의 {히민}은 해가 뜨지 않자 해를 찾아나선 숲의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엘프, 드워프, 나무귀신, 트롤, 용과 같은 신화적 존재들의 여정을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하듯 풀어냈다.

이성화의 {Made in the UK}는 23세기 슈퍼컴퓨터 엘리자베스14세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완전한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엘리자베스의 끊임없는 업그레이드가 무엇을 통해 이뤄지는지 소름끼치는 결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끝으로…….
아무리 아마추어의 글을 모은 단편집이라고 해도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 산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 재미있고 없고, 잘 써지고 못 써지고에 대해서 아마추어란 이유로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면죄부를 줄 수 없더라도 격려를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계속해서 이끌어가고 있는 모습이 장하지 않은가. 올 여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연소자 이해불가의 재고는 넘치도록 쌓여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아직 [연소자 이해불가]를 사지 않았다면 테일즈의 홈페이지 tales.pe.kr로 가서 구입문의를 해라. 읽어보면 이게 또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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