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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포], 김다은 외

2006.09.30 01:2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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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숨기고 한 결혼. 그것이 우연한 계기로 폭로될 위기에 처했다면? 새로 입주한 아파트 윗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면? 사스니 광우병이니 유전자 조작이니 하는 와중에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공포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집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공포'라는 제목 하에 하고 있다. 또한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별 단편집(앤솔러지)일 뿐 아니라 그 주제를 공포로 잡았다는 점에서 특이한 작품이다.

다만 제목이 공포라고 해도 수록작들이 호러 장르에 속하는 글은 아니다. 출판사의 의도는 '한국인이 느끼는 공포'를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스며든, 생활 속에서 느끼는 공포의 양상을 찾아보고자 하기에 유령이나 괴물이나 살인마가 나와서 무섭게 만드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류의 장르 공포물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대 한국이 가진 어둠과 강박관념을 파헤쳐 현대인에게 스며든 공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호러 장르의 애독자들도 일독할 가치는 있다. 귀신과 카드빚 중 어느쪽이 더 무서운가? 에 대해 모두들 후자라고 답한다더라 식의 우스갯소리도 있거니와, 도시화된 문명사회에서 느끼는 공포는 신체의 안위이 아니라 정신적·재정적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이기에. 물론 여전히 태풍 같은 자연재해에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오늘날 생존이라는 말이 ('생존경쟁' 등의 쓰임을 보면 알지만) 자연을 극복하고 야생동물 같은 적을 이기고 살아남는다는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기업의 경쟁, 개인의 성과나 출세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듯이, 이 작품집은 이렇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맞게 현실적이고 문명화된 공포를 다루고 있다.

김다은 - 마담
이 글은 불공평한 남녀의 '혼전 과거'문제와 윤락업소에서 일한 여성의 입장을 날줄과 씨줄로 엮는다. 그리고 이들이 만든 그물에 얽혀 궁지에 몰린 여성의 공포와 분노를 다룬다.

박덕규 - 비밀의 방
출세하지 못한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라는 현대 사회의 강박관념을 한 인간에 투영한 작품……을 의도한 모양이지만 연애 이야기가 얽혀서 이도저도 아닌 알 수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박성원 - 긴급피난
이 작품집에서 가장 재미있다. 미스테리(정확히는 범죄소설쪽) 장르로 봐도 무방할 정도이고, 적절한 긴장감과 반전도 충실하여 장르팬들이 제일 환영할 작품.

박철우 - 신라의 달밤
새로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과 공포, 분노를 다루었다. 현대 사회가 낳은 어두운 부분을 코믹하게 그려내었다.

김나정 - 우리 모두 천사
저출산 시대, 이혼이 그렇게 되었듯 입양은 이제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자주 보고 겪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사회의 변화를 문학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의 가치가 있다.

이정은 - 먹어 봐
조류 독감 소식으로 멀쩡하던 닭을 모두 잃은 양계업자의 이야기.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공포, 생계의 터전을 잃은 영농업자의 공포와 절망이 겹쳐져 현대의 우울한 초상화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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