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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compilza2@gmail.com   팔백만의 신이 있다는 나라 일본은 옛부터 수많은 민화와 기담, 괴담이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이를 계승하고 활용한 작품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그만큼 이야기를 모으고 전해주는 전통을 잘 이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이 일종의 문학적 자산이 되어 후대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부러운 부분이다. 이미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를 다룬 영화나 만화는 무수히 많이 창작되어 한때 서양에서 일본하면 (스모가 아니라) 닌자를 연상할 정도였다.

   장르 쪽의 시각으로 보자면 가령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장르인 무협이 일본에는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작품의 발표 및 수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불모지’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본 자체에서 그와 흡사한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인데, 사무라이와 닌자를 중심으로 한 시대역사물, 일본의 괴물들이 등장하는 전기(傳奇)물들이 우리나라에서 무협이 차지하는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한국 최고 인기 만화라며 거창한 선전과 함께 일본에 진출한 만화 [열혈강호]의 참패 이유는 역시 이 만화가 무협 장르이며 장르의 공식을 활용하고 패러디하는 부분이 많은데 무협 자체를 잘 모르는 일본에서 그게 먹힐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일본에서 자국의 전통 설화와 기담을 이어받은 작품은 매우 많으며 오늘날에도 활발히 창작되고 있다는 점은 귀감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장르 쪽을 보자면 쿄고쿠 나츠히코를 비롯한 추리물, 이토 준지를 비롯한 공포물, 아베노 세이메이로 대표되는 음양사를 다룬 퇴마물, 만화 민속탐정 시리즈를 비롯한 민속학과의 연계물 등이 있다.

   여기 본작 [이야기꾼 여자들] 역시 그러한 전통의 유산을 이어받아 창조적으로 계승한 본보기이다. 일본 독자들이라면 그런 부분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별도의 문화적, 전통적 배경과 맥락을 알 수 없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건 본 번역서의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수록작 중 재미가 있으며 배경설명이 필요한 작품을 몇 골라보았다(물론 본 필자가 모르는 부분이 더 있을 것이다).

   초록 벌레
   벌레를 삼키고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았다는 일본 민담에서 기인한 이야기다.

   내가 아니야
   사람을 본뜬 인형이 살아나 본래 주인 행세를 한다는 류의 일본 괴담이 있다. 또한 인형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괴담은 아직까지도 유행하고 있으며 일본 TV에서 신사 등에 전시한 인형의 눈이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하여 보여주는 일이 최근에도 있을 정도로 일본에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걸을 수 있는 낙타
   그림 속의 존재가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은 고대 중국에서 이어져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전우치전에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

   사각의 세계
   민담과의 연관성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작품. 번역의 의의, 어떤 번역이 좋은 것인가, 완벽한 번역이란 존재할까 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둠의 통조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괴담인 산장 이야기의 형식을 차용한 이야기. 산장 괴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조.

   스이코
   유일하게 주석 설명이 된 이야기로 스이코는 곧 캇파를 뜻한다. 캇파는 가장 유명한 일본의 상상동물로 과거 서유기를 소재로 한 일본의 만화나 그림책 등에서 사오정을 캇파의 모습으로 그린 경우도 있었다(그게 그대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온 경우도 물론 있었고).

   매화나무
   사람이 죽은 곳에 나무가 자라거나, 나무가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민담이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는 벚꽃나무지만 매화나무도 간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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