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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계인? 외계인!

2007.09.29 00:2009.29





lunsticsun.netlunaticsun@msn.com외계인? 외계인!

 ‘외계인(外界人)’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주 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이웃들, 언제라도 음흉한 생각을 품고 하늘에 나타날 수 있는 침략자들,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다른 내 친구.
 소위 SF 영화들의 단골 소재인 외계인. 왜 어렸을 때 본 영화 속의 외계인들은 죄다 화성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다들 ET의 친척처럼 생긴 그들은 틈만 나면 지구를 정복하겠다고 나서거나, 그 와중에도 꼭 ‘어린이의 친구’ 노릇을 하는 배신자를 내보내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타자(他者) ― 그냥 사람 사이에도 적용되는 것이지만 ― 에 대한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분류 공식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예도 드물 겁니다. 어느 쪽이든 전혀 다른 존재에 대한 호의와 두려움이 반반 섞인 호기심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비슷한 이미지를 우려먹는 통에 어쩌면 다소 식상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외계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시들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기존의 전형적인 설정에서 탈피한, 보다 다양한 특색을 지닌 외계인들이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으니까요. 케로로 중사는 ‘고도로 발달된 외계 문명에서 온 침략자’라는 고식적인 패턴이 ‘어린이의 친구’ 이미지와 역설적으로 결합된 캐릭터로 연령대를 초월한 인기를 끌고, 지구 역사의 숨겨진 수호자일지도 모르는 닥터 후도 기나긴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지 않던가요.
 그렇기에 거울 작가들이 풀어놓는 15가지의 이야기에 등장할 외계인들은 또 어떤 모습일지, 그들은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해 올지, 그들과의 근사한 만남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시작할까요.



「134340」- karidasa

 외계인 앤솔로지의 첫 장을 여는 데 적격인 작품입니다. 인류가 우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후로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의 행성 중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이 있느냐는 오랜 관심사였지요. 글은 명왕성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낙천적인 태양인, 유쾌한 목성인, 아웃사이더 명왕성인 등 각자가 지닌 성격과 개성은 다르지만 큰 충돌 없이 지내 왔던 태양계 주민들 공통의 골칫거리로 급부상한 지구인들.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는 주제에 호기심만 왕성해서 끊임없이 주위 행성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지구인에 대한 외계인들의 비판적인 시선과 불평을 접하고 나면 ‘외계인? 얼마나 신기하게 생겼는지 두고 볼까?’라는 생각이 쏙 들어가고 맙니다. 하긴 지구인들이 명왕성을 요상한 일련번호로 부르든(제목 ‘134340’은 명왕성을 가리킨다고 한다), 태양계에서 축출 ― 당시 언론에서 실제로 썼던 표현에 의하자면 ― 하든 다 지구인들끼리의 이야기이지 우주적 관점에서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편협한 지구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외계인 이야기를 읽어나갈 뻔 했네요. 자, 이제 마음도 다시 가다듬었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색안경은 고이 접어두고 매력적인 우리 이웃들을 만나러 가 볼까요.

「블랙 아몬드」- roland

 누구나 단시간의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사회, 합법화된 정제 마약과 술에 찌든 정키들을 다룬 글이지만 중반부까지는 지나치게 어둡거나 처지지 않으면서 일인칭 화자가 구사하는 말 자체에 냉소적인 유머가 잘 스며들어 있어 느낌이 좋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 시작부터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을 비난하는 베키의 잔소리와 마약쟁이를 경멸하는 주인공의 속마음이 이 아웃사이더들의 면면을 잘 보여줍니다. 소문만 무성한 약 ‘블랙 아몬드’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결말이 상당히 강합니다. 마약에 취해 ‘신의 은총’과 같은 황홀경에 빠졌을 때의 묘사와 주인공이 마지막에 처한 상황이 극적으로 대비되면서 인간의 나약한 면이 부각됩니다. 약에 취해 사는 정키들을 경멸하고, 블랙 아몬드가 데려다 줄 ‘천국’에 구역질을 느끼며 강한 정신력으로 거부하는 주인공조차도 구제불능의 알코홀릭이라는 설정이 의미심장했습니다.

「박시은 특급」- 곽재식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조그만 천문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최초로 외계 문명의 메시지를 잡아내는 영예를 안은 주인공! 그렇지만 이 사실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과 떠들썩한 언론 플레이에 정작 주인공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게다가 주변의 질시와 의혹어린 시선에 따돌림 당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랑하는 그녀에게까지 정신 이상자로 낙인찍히게 생겼으니……. 처음에는 남의 험담이나 하는 박승유가 얄미웠을 뿐이지만 이제는 억울함을 넘어 자신도 자기 기억을 의심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박시은이 출연한 한 편의 단막극 〈멋지게 세이 굿바이〉. 이제는 어떤 미친 짓을 해서라도 자기 기억을 검증해줄 사람을 찾고 싶은 주인공의 답답한 심정과 비례해 그녀와의 거리는 벌어지기만 하고…….
 몇 년 전 「달과 육백만 달러」를 처음 읽었을 때도 느꼈던 점이지만, 곽재식 님의 글에는 특유의 생동감이 흘러넘칩니다. 글자로 표현되어 있을 뿐인 일상의 대화도 어찌 그리 실감나게 그려지는지, 덕분에 내내 흥미진진하게 읽히고 감정이입도 쉬운 편입니다. 주인공의 미칠 듯이 억울한 심정에 공감하며, 주변에 있는 얄미운 누군가를 닮은 박승유를 욕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면 마지막에는 이 모두를 날려버릴 커다란 한 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무리의 통쾌한 역전극을 이끌어내기 위해 빛의 속도 개념을 사용한 것은 약간 개연성에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지만 ― 주인공이 청문회에서 외계 문명이 몇 광년 거리에 있다고 진술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복선이라기에는 갑작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 결말의 통쾌함은 사소한 의문 정도는 덮고도 남을 만큼의 힘이 있습니다. 깨끗한 홈런 한 방으로 역전승을 거둔 우리의 주인공. 얄미운 적과의 내기에서는 이겼지만 글쎄요, 과연 그녀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요?

「옆집의 영희 씨」- 정소연

 운 좋게도 좋은 오피스텔을 싸게 빌린 수정. 그것은 옆집에 ‘그들’ 중 하나가 살고 있어서 아무도 세를 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지구를 방문한 그들에게 우리의 친절을 보여주자고 틀에 박힌 공익광고 표어를 외치지만 정작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볼 기회가 있다고 해도 모두 다르게 생긴 모습이 무섭고 징그럽다며 꺼립니다. 두꺼비를 닮은 그의 이름은 약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이영희’. 우연히 시작된 영희 씨와의 티타임은 어색한 침묵과 당혹감이 가득했지만, 두 사람은 서서히 길지 않은 대화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정소연 님의 작품답게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차분한 어조로 낯선 존재와의 만남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뚜렷한 기복이 없는 글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랄까, 정(情)이랄까 소박한 감정을 지루하지 않게 담아내는 것이 나름의 개성이 아닐까 합니다. 영희 씨의 고향에 있다는 화산의 이야기에 묻어나오는 은근한 그리움, 수정이 느끼게 된 어렴풋한 친밀감이 오로라처럼 잔영을 남기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말뿐이 아니라 침묵과 그림과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 매우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Running」- 디안

 가벼운 작품이 아님에도 분량이 적어 깊이 있게 파악하기 힘들고 서사 구조가 뚜렷한 것도 아니지만 전작보다는 편하게 읽힙니다. 속도감 있는 빠른 전개에 감각적인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낡은 우주선을 타고 한없이 빠르게 달리다 인간을 초월하여 가벼워진 영혼, 우주를 갈라 어둠의 절반인 빛을 실어 나르는 우주 택배원의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우주화」- 가는달

 거울 초기부터 활동하신 가는달 님의 작품으로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글입니다. ----를 돌아다니며 적막한 우주에 꽃을 피우는 외계 생명체와, 그에 비하면 둔하기 그지없지만 보통의 인간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당한 ‘나’. 전혀 다른 존재와의 대화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꽃이 피었다 지고 영원에 가까운 생명이 이어지는 과정을 인간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의 좌절, 남과 다른 자신을 이해해주었던 안내자를 잃은 저릿한 슬픔 등이 감각적인 묘사와 어우러져 정교하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끌어나갑니다. 단번에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탁월한 감각과 정서 표현으로 다 읽고 나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이번엔 외계인이냐?」 - 가연

 “뱀파이어에 인어에, 이번엔 외계인이냐?”
 “그 둘을 빼면 내가 사귄 사람들 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였어! 그리고 뱀파이어랑 인어가 어땠다는 거야!”

 여기, 독특한 상대만 골라 사귄다는 오해(?)로 주변사람들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 한 바람둥이가 있습니다. 단지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이런 비난을 받게 된 주인공 지인은 억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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