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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누군가를 만났어

2007.07.29 01:5807.29





메이저 출판사에서 창작 SF가 나왔다. 무관심 때문이겠지만 소리소문 없이 세상에 내보낸 신인 작가의 단편 모음집엔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꽂힌다. [누군가를 만났어]? 그래, 나도 한번 만나보자. 행책 SF 총서때 부터 느끼는 거지만 표지 센스 하나는 눈물난다. 이건 마치 고등학교 공통과학 참고서쯤 쓰면 적당하게 보이지 않는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그렇게 물으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말해주겠지만 실로 예쁜 표지에 빠져들면 헤어나오질 못하는 법.

{이웃집 신화}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처음엔 요상한 공포 분위기로, 다음엔 불쑥 튀어나온 인도 신화로 눈을 잘 가려놓는다. 처음 책을 집었을때가 밤 세 시가 넘어갈 즈음이었는데, 작가가 세운 인도 신화가 결국 눈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제대로 읽는 건 내일로 미루자.

자, 오늘은 잠도 안오니 맘 다잡고 끝을 봐보자. 작가는 마지막 장까지 눈을 가려 놨더니 갑자기 까꿍하고 보여주고 급격히 닫아버린다. 오호.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이번에는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은 고고심령학을 눈가리개로 써 버리는구나! 다음은 표류한 선원과 어촌 소녀의 사랑이라는 진부한 클리셰다.

반전에 이은 급전직하적 결말은 내가 추구하던 그것이 아니던가! 이제 막 인지력이 생긴 한살난 갓난애도 아니건만 까꿍놀이만 보면 열광해 버린다. 그렇다. 단편의 80%는 반전과 결말인 것이다! (...)

그렇기에 같은 작가의 다른 두 편의 글은 왠지 어울리지 않게 보인다. 평양에 떨어뜨린 핵이 사실은 외계인의 빔이 아닐까 한다거나, 고물자동차 6628이 우주선이 아닐까 생각한다거나, 355 서가의 전술학 목록 속에 광속 비행의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

{종의 기원}과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우연히도 책에 실린 글 중 내가 넷상에서 읽은 유일한 두 편이었다. 글의 작가와 뭔지 모를 교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잠시 접어두고라도 요즘 모니터에서 글을 읽을 때마다 도무지 집중하지 못하는 눈을 끝까지 잡아둔 건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게 아닐까.

{미래로 가는 사람들 合}은 연작을 아우르는 결말을 담고 있었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내심 마지막에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정도의 센스를 기대하고 한장 한장 넘겨봤지만(아니, 그 전에 스크롤을 내렸었지만) 작가는 좀 더 무난한 결말로 맺어버렸다. 중간 중간 흩어져 있는 센스에 비해 아쉬운 맺음이었다.

{선물}과 {완전한 결합}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린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음직한 관계를 뱀파이어와 세개의 성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겠다. 불행하게도 난 실제의 관계를 맺는데도 서툰 편이라 감정을 싣는 게 힘들 긴 했다. 훗.

“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아? 상대방과 함께 있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는 거지.”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는 법이다.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는 빨간색 톤의 성장소설 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울지 않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끝으로 책이 깔끔하게 끝난다. 보통 붙어있는 편집자의 말, 꼭꼭 챙겨서 읽어주는 편은 아니지만 막상 불쑥 등장하는 속표지에 당황하고 말았다. 깔끔해도 너무 깔끔해.





황용 님은 리딩판타지(readingfantasy.pe.kr)에서 활동하고 계시며 현재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거울과 리딩판타지는 사이트 교류의 일환으로 매달 단편 등을 교환해 왔습니다. 이 달에는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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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07.08.07 16:49 댓글 수정 삭제
    오래전에 봤던 것이라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하는지 ^^;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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