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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누군가를 만났어

2007.05.26 23:1105.26





lunaticsun.netlunaticsun@msn.com여는 말

리뷰를 시작하면서 처음에 무슨 말을 쓸까 한참 고민했다. 국내 작가들의 SF 단편이 메이저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아니면 이런 일이 정말 이례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한탄?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작년에 무크지 [Happy SF] 2호를 읽으면서 창작 SF 단편들이 무려 여섯 편이나 실려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5월에 월간 [판타스틱]이 창간되면서 장르 단편을 지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장르 팬들에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이 책 [누군가를 만났어]는 거울 웹진에서 주로 활동하는 세 작가의 단편을 모았다. 어느 정도 자신의 작풍을 구축한 작가들인 만큼 새로운 세계가 셋이면 셋, 아니 그 이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만나보자.



배명훈: {이웃집 신화}, {누군가를 만났어}, {임대전투기}, {철거인 6288}, {355 서가}

배명훈의 작품에서는 인간 냄새가 진하게 난다. 거기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예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아쉬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녹아 있다. 물론 그의 작품에도 장르가 무색하지 않은 소재와 사건들이 등장하며, 때로는 바닥이 들썩일 만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이야기들은 한 맥락으로 집중되며,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매력이다. 지금 이 순간 어느 행성이 폭파되고, 평양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1억 6천만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등장인물들 각자의 삶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잔잔한 감동’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헐리웃 영화의 과장된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먼, 지나치게 무겁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은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고 있는 따뜻한 단편들이다.

- 이웃집 신화
첫 장을 여는 이야기로 제격인 작품이다. 눈에 띄게 야한(?) 전개 덕분인지는 몰라도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힘이 상당하다. (여담이지만, {스윙 바이}를 읽고 나서 작가가 은근히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주택가 층간 소음이라는 다소 일상적인 소재에서 출발해 ‘그 소리’를 중심으로 1층 남자, 2층 남자와 여자, 옆집 남자에게 순차로 렌즈를 이동시키고 있는데, 마치 ‘그 소리’를 둘러싼 동네의 쑥덕임이 들려오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작중에서 옆집 남자는 여자에게 인도 신화에 나오는 남녀 간 교합을 통해 해탈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놀랍게도 그 신화는 정말 이웃집 ‘신화’가 된다. 마무리의 SF적 살짝 비틀기가 애교 있다.

- 누군가를 만났어
사실 이 작품집을 처음 대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표제를 기막히게 잘 골랐다!’였다. “누군가를 만났어”라고 말할 때의 그 알 수 없는 설렘, 무슨 이야기인지 막 시작될 것만 같은 기대감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해 작품집의 성격과도 잘 맞는다. 작품은 이런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고고심령학이라는 독특한 설정부터가 눈에 들어온다. ‘뻥 한번 제대로 치는’ 작가의 재주가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데, 그 정의(定義) 앞에 받았던 제법 그럴 듯하다는 인상이 ‘고고심령학 수련이 깊을수록 얼굴에 귀기가 서리는’ 대목에 이르면 얼굴 전체에 번지는 웃음으로 발전한다. 역시 대단한 입담이다. 또 SF에 흔한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놀람이나 충격, 경외심 같은 강렬한 감정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는 것이 인상 깊다. 이렇게 일회적이 아닌 여운을 주는 작품은 오랜만이다.
이야기의 처음은 ‘떠남’으로 시작된다. 심한 말을 하고 돌아선 연인은 ‘진짜 우주’를 만나러 화성으로 떠나고 화자는 ‘별들의 평원’으로 도망친다. 그곳에 각기 다른 것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이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은 이야기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의 후반에 가서 화자는 다시 혼자가 되지만, 드디어 누군가를 만난 그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떠남으로 시작해 만남으로 끝난 이야기. 그가 별들의 평원에서 만났던 건 누구였을까. 그 옛날, 바로 그 장소에서 만나 포옹했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 임대전투기
정체가 불분명한 잘생긴 남자와 어촌 처녀의 사랑 이야기. 여자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짝사랑해온 동네 총각이 있고, 남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으며 언제 그녀를 떠나야 할 지 모른다. 이쯤 되면 진부한 TV 미니 시리즈 한 편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남자가 사실은 외국인도 아닌 외계인이라면? 그가 이 어촌에 온 것이 단지 임대 전투기에 지불할 ‘돈이 떨어져서’라면? 원래 픽션에서 주인공은 이 정도로 쩨쩨한 상황에는 처하지 않는 법이거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혹은 기계)들은 그런 문제에 가차 없다. 하다못해 남자는 여자에게 통역비(!)까지 지불해야 한다. 작가의 ‘뻥’은 점점 심해져서, 임대 전투기의 비상 매뉴얼이 추천하는 대금 마련 대책에 이르면 독자는 그저 폭소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넓은 우주라도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걸까. (우주 전체가 소비하는 포르노 시장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지?’―――이런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완수한 남자는 다음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원래 사람이 소비하고 소유하는 모든 것은 빌린 것이라지만, 그가 빌린 모든 것을 돌려주면 지향점을 상실하게 되는 걸까? 폭소에 이어지는 허탈감 속에 은근히 아프게 꼬집는 맛이 숨어있는 글이다.

- 철거인 6628
‘철거인 6628’은 민소의 애물단지 자가용이다. 6628은 민소의―――보통 남자들에게 ‘내 차’가 가지는 의미에서의―――애인도 분신도 아니다. 그러나 이 별 것 아닌 녀석의 유리창을 통해 별을 올려다보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하는 사이 이 애물단지는 그와 닮아간다. 곤란한 일이 발생할 때 툭하면 ‘너 때문이야’라고 애꿎은 차를 원망하지만, 이는 소심한 주인공의 혼잣말 비슷한 것이다. 그에겐 대놓고 자신을 탓할 용기조차 없었던 걸까. 특별히 쓸 데가 없다며 방치해둔 것이 단지 주차장의 자가용뿐일까.
평양에 핵폭발이 일어난 그 하룻밤 사이 주인공의 내면에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비록 ‘구멍가게나 지키면서 오락이나 하고 있을걸’이라고 후회를 하긴 하지만, 소극적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생명의 위협도 마다하고 연인을 향해 질주한다. 이제는 언제나 주차장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6628도 함께다. 이 충직한 철거인은 이제까지 웅크리고 있다 겨우 밖으로 나선 주인공의 외피(外皮)를 감싸며,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러 달리는 그와 뜨거운 심장을 공유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느껴지던 속도감이 마지막 6628의 질주와 겹쳐지면서 좋은 마무리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본서에 실린 배명훈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를 만났어}를 거쳐 이 작품에 이르게 되면 아무래도 따로 읽었을 때보다 임팩트가 덜한 느낌이다. 필자가 {누군가를…}을 ‘떠남―――만남’의 흐름으로 읽어서인지는 몰라도 이 작품과 아주 다른 내용으로 읽히지 않았다.

- 355 서가
앞의 네 작품과 비교했을 때 다소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어떻게 생각하면 호러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는 유령 말고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이 읽는 책마다 따라다니는 갈색 펜의 등장을 두고, 처음엔 주인공의 짜증에 공감백배하며 읽기 시작하지만 읽어나갈수록 점차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계속 가슴을 누르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쯤 되면 이건 공포다. 특히 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대학원생 독자라면 몇 달 남지 않은 생애를 값있게 보내려는 주인공의 의지가 좌절되는(“내 인생 마지막 일인데!”) 장면까지 읽고서 새삼 소름이 돋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김보영: {종의 기원}, {미래로 가는 사람들} 起ㆍ承ㆍ轉ㆍ合

김보영의 작품들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종의 기원}은 독자의 인식 체계를 한바탕 뒤집어 놓고, {미래로 가는 사람들} 연작에 이르면 박상준의 ‘고품격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평을 절감하게 된다. 그의 작품들을 읽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인식의 전환과 그에 따른 세계관의 전복이다. ([Happy SF] 창간호에서 송경아가 ‘세계를 한 번 들었다 놓는 것’이라고 표현한 그것이 김보영의 작품들에도 있다.) 그에 의해 전복된 세계에는 여타의 SF처럼 신기한 것, 경이로운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익숙한 풍경도 그의 시각을 거치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진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의 낯선 시각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구부러지는 세계관이 독자들을 감탄케 한다.

- 종의 기원
‘로봇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한 세계’라는 소재는 SF에서 종종 사용된다. 인간이 보기에는 악몽 같은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꽤나 ‘인간적’이다. 로봇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을 하고, 사업을 하고, 종교라는 복잡 미묘한 활동을 하기도 하며, 어떤 로봇은―――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꿈까지 꾼다. 그들의 문화는 신의 모습을 본따 창조된 종족의 신화, 과학에 가해지던 종교의 박해, 인종 차별을 연상케 하는 기종 차별 등 인간 문화의 변천 과정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인간적’인 로봇의 시각으로 본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 환경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 생물의 정의에 대한 논쟁(“스스로 성장하는 생물은 없어!”), 로봇의 탄생과 소멸……. 작가는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측면을 부각시키며 역전된 세계를 정교하게 구축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로봇 인류의 역전된 세계관은 생물과 비생물, 유기물과 무기물의 경계에서 특히 두드러져 새삼 생명의 신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금도금한 로봇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연약한 유기물은 어떻게 적대적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싹을 틔우며 자라나 성장하고 변화하는가. 작중에서 로봇들은 유기물을 깨우려 시도하고, 그것들이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흥분하고 환희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독자의 감동 또한 작중 로봇들이 느끼는 감정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전자책 [멀리 가는 이야기]에 수록된 {종의 기원,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언급한 작품은 본작에 비해 보다 철학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어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 미래로 가는 사람들
▷ 起― 우주의 끝을 찾아내는 법: 우주의 끝으로 가는 여행의 시작이다. 시간 여행자란 언제나 다른 차원을 방문하는 외계인인 걸까? 시간이 흘러 사라졌던 인간들이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분명 비슷한 진화 과정, 문명의 발달 과정을 거쳤을 터인데도 성하는 다른 우주에 와 있는 것만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해석한다. 셀레네가 성하에게 우주선을 “생각해 봐라. 우주가 팽창할 리 없잖아.”라고 당연한 듯 말하는 장면에서 다른 독자들도 필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앞으로의 여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배경지식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 承―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해야 할 일: 앞의 이야기와는 달리 하나의 완결된 단편으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원시 인류에 비해 고도로 지성이 발달한 미래인이나 외계인이 문명을 전파하고 종교의 창시자가 된다는 상상이 이것으로 처음은 아니다. (실제로 초고대 외계 문명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작은 신들 간의 전쟁과 마지막에 살짝 가해지는 반전이 유쾌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붉은 꽃의 열매를 먹는 우주선의 연료이자 특이한 생명체인 에키온의 설정이 독특하다.
▷ 轉― 광속도에서 일어나는 일: 속도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광기가 에키온의 의지 때문인지, 그들의 순수한 자기 결정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들은 광속도에서 그들이 찾는 것, 그들이 보게 될 것이 무엇인지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광속도에 도달한 그들은 우주의 끝에서 세월을 흘려보내고, 우주의 죽음과 함께 떠나보냈던 영혼들을 만난다. (“그래서 죽을 생각을 했나요?” …… “아니, 다시 만날 생각을 했어.”) 초자연적인 진행이지만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고 대단히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마지막의 영혼으로 가득 찬 우주에 대한 묘사 때문인지 「미래로 가는 사람들」 연작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다.
▷ 合― 네 번째의 축으로 가는 법: 우주의 죽음 앞에 성하는 계속해서 여행하기를 꿈꾼다. 그가 알고 있는 우주의 껍질을 뚫고 우주의 바깥, 4차원의 세계로 가기 위해 그는 클러스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클러스터-에키온-성하’라는 존재가 되어 스스로를 확장하여 온 우주와 통합하는 것은 제목의 합(合)에 바로 들어맞는다(전에 [멀리 가는 이야기]에 수록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왜 작품 순서가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합인지 궁금해 하다가 정반합의 ‘합(合)’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고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기승전결과 동일한 의미라고).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성하의 영혼도 새로운 삶을 꿈꾸며 각 우주로 흩어지는 장면에서는 데자뷰가 일어났지만 우주의 끝을 향한 여행의 마무리로서는 깔끔했다. 하지만 역시 앞의 흥미진진했던 이야기에 비해 진부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아쉽다.



박애진: {선물}, {신체의 조합}, {누가 나의 오리 벤쟈민 프랑크푸르트를 죽였나},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 {완전한 결합}

박애진의 작품에는 언제나 지향점이 있는 느낌이다. 그 지향점을 위해 그는 어김없이 작품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등장시킨다. 그 관계를 무엇이라 정의할 지는 읽는 자의 해석에 달려 있지만, 작품 속의 관계들은 대부분 제대로 맞물려 있지 않아 계속 괴롭게 삐걱대는 소리를 낸다. 그는 그러한 소리를 작품에 담는다. 그런데 그 비틀린 ‘관계’ 속에서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들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잔인한 탐색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그들이 좇고 있던 것의 허구성을 깨닫고 이를 부정하는 식으로 좌절되고 마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중 가장 최근작인 {선물}의 결말은 다른 네 작품에 비해 보다 온건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좌절은 끝없이 침잠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환상이 깨어짐을 고통 속에 직시하고, 그 고통을 겪음으로써 아픔에 강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박애진의 작품에 존재하는 ‘깨어짐’은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깨어짐에 뿌리를 뒤흔드는 강렬함이 있다.

- 선물
어려서는 버림받고, 성장해서는 그들이 속한 세계와 어울리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난다. 그리고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 둘은 서로에게 불완전한 동반자, 함께 있다고 해서 결핍된 것이 완전히 채워질 리는 없다. 혜연은 언제나 피가 부족하고 재민은 여전히 외롭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타인과의' 대화 보다는 허공에 대고 자기 이야기만을 되풀이 하는 보통 사람들 또한 이 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관계를 몰랐던 재민도 이제 그것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머물러 준다는 것. 단절과 고독에 지친 관계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뭐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줄 하나를 선물이라 여기고 부여잡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신체의 조합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세계는 어둠이 없는 세상, 그러나 언제나 신체의 조각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고, 사람들이 소멸하되 생성되지는 않는 세상이다. 완전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이 로드무비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동료의 신체를 먹어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다른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서로의 신체를 잡아 뜯어 제물로 바치는 세상이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그는 의식이 없는 곳에 가고 싶어 했다. ‘의식이 없다’는 것은 신체 조각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대화는커녕 어쩔 수 없이 몸이 닿는 것조차 꺼리는 현상에서의 이탈을 뜻한다. 그러나 맹목적인 파괴가 자행되는 이 세상은 그가 바라던 이상향이 아니었고, 여기에 오기 위해 고통을 감내했던 주인공은 이제 “넌 다쳐선 안 돼”라고 말해주던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원래 세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마지막에 그가 통로를 부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애초에 이런 두 세상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자신과 같이 좌절할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일까, 이런 것을 만들었을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을 조롱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단순한 절망감의 표출일까? 모호한 의문이 남는다.

- 누가 나의 오리 벤쟈민 프랑크푸르트를 죽였나
제목에서 [누가 울새를 죽였나]가 연상되어 흥미를 느꼈던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아버지들’과 ‘형제’가 사는 마을. 그 외에는 ‘오리’뿐이다. 남성 집단 속에서 ‘오리’로 인식되는 여성, 벤쟈민에게 비정상인 소유욕을 표출하는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동생은 한편으로는 비틀린 성(性) 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진실과 허구의 인식 문제도 부각된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말한다―――“내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그의 진실로는 오리를 인간처럼 취급하며 옷을 입히고 다정하게 대하는 ‘그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형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 존재했던 왜곡된 관계는 작품의 마지막에서야 동생의 입을 통해 밝혀지지만, 그것이 주인공이 알고 있는 진실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독자의 환상은 깨어지지만 주인공은 그 허구성을 눈치 채지 못한다. 오리에게는 혀가 없고, 상처 입어 버둥거리는 가엾은 가축일 뿐.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상실과 파괴로 인해 주인공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 작가의 가장 초기 작품 중 하나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앞서 본 {선물}의 결말의 경우에는 이 작품을 포함한 다른 네 작품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양상과 또 다르지 않은가. 작가의 세계에서 관계는 비슷한 선상에서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
보석을 화분에 심으면 마치 씨앗이 열매 맺듯 인형이 태어난다고 하는 설정이 무척 흥미롭다. 누구나 어렸을 때 자신의 인형을 하나씩 갖게 되지만 그것을 잃는 시기와 경위는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싫증이 나서 버리거나 무관심으로 잃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죽여 버리기도 한다. 그에 반해 성인이 되어서도 인형을 소중히 간직하여 비웃음을 사는 리아로는 유일하게 공감해주는 다르쉬를 만나자 그녀에게 이타적인 우정을 베푼다. 그러나 그녀의 거짓이 들통 나자 리아로의 환상은 깨어진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과의 유대를 꿈꾸었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 자라나면서 순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세계이다. 그녀는 자신이 꿈꾸었던 관계는 환상이며,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인형을 잃는 것이 필연적임을 깨닫는다.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짐짓 자랑스럽게 “나, 인형을 죽였어”라고 말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물론 고통스런 상실로 인한 상처와 공허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다시는 울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비로소 어른들의 세계와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출발이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그리움의 공유일지라도(“10년이 넘도록 카를 봐왔지만, 그 애가 우는 건 처음 보았다”).

- 완전한 결합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정교한 설정이 돋보이는 이 작품의 세계는 정자(주트), 난자(샤하), 자궁(아메)으로 이루어진 삼성(三性)의 세계다. 세 사람이 아니면 아이는 생길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알맞은 조합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다른 성을 찾아다닌다. 시작부에서 길로스와 리론이 사랑을 통한 삼성의 ‘완벽한’ 조화를 찬양하는 장면은 이 모든 사람들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삼성의 구조는 심각한 모순 위에 존재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금방 청춘을 잃고 일찍 죽어버리는 아메. 사회는 그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지만 애초에 다른 두 성에 비해 수명이 짧은 존재, 부양받아야 하는 존재인 그들이 그것으로 행복할 리 없다. 그리고 리론에게 “뭘 더 바라는 거야!”라고 외치는 사스카처럼 다른 성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스카는 리론과의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처음으로 ‘완전한 결합’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지만, 우연히 다시 보게 된 리론의 변해 버린 모습은 그 말의 허구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 때에는 이미 그들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던 체제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후였다. 어느 한 당사자를 희생해야만 유지되는 체제의 환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이 당연하다. 그래서 마지막에 사스카와 문타, 레아를 포함해서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아메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주크와 샤하, 더 큰 대가를 바라는 아메의 ‘완전한 결합’이 허구였음을 인정하고 삼성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들이 결국 대안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맺는 말
 
단편집의 장점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맛볼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는 개성 강한 세 작가의 작품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서의 가치를 더 높여주고 싶다. 스토리텔링에 강한 배명훈, 낯설고 강렬한 시선의 김보영, 독특한 색깔을 추구하는 박애진의 작품들을 차례로 만나면 단편 15편이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님에도 지루해할 틈 없이 마지막 장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하지만 마지막 수록작 {완전한 결합} 다음에 작가 인터뷰나 편집 후기라도 실어주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국내 장르 단편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책 뒤에 실린 광고까지 열심히 읽는 성격이기에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스페이스 오페라부터 환상소설까지, 부담 없이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작품부터 씁쓸한 여운이 남는 작품까지 다양해서 여러 독자들의 취향을 골고루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났어]가 보다 많은 독자와 만나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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