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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생

『파우스트』는 외국의 문예지가 라이센스 발매된 흔치 않은 경우로, 소설 관련의 경우는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알프레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이 단발적으로 나온 외에 그 예시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상 문예지 외에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소설잡지 자체가 없던 우리나라에서 『파우스트』는 일정 부분의 주목을 받았고, 출판사가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라이트 노벨'을 다루는 잡지로 알려졌던 덕에 창간호는 초판이 매진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대신 많은 독자들에게 기대와는 다르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파우스트가 문예지 중에서는 라이트 노벨쪽에서 활약하는 작가도 있고 그쪽 성향의 작품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현재 NT노벨, 익스트림노벨로 규정되는 라이트 노벨쪽의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는 파우스트 자체가 추리/미스터리 잡지인 『메피스토』의 증간으로 시작되었으며 추리소설상인 메피스토상 수상자가 다수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편집자(는 평자 작의적인 호칭이다)인 오오타 카츠시 씨 혼자만의 취향에 따라 선별된 작가와 작품이 수록되는 바람에 이쪽 취향의 독자도 무시못할 수가 존재하는 일본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을지 몰라도 훨씬 시장이 좁고 소위 '오타쿠 취향의 독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한국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트 노벨 잡지로 잘못 알려져 독자들이 『더 스니커』, 『전격hp』 같은 부류로 생각하고 읽었으니 당혹감을 느끼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실 파우스트는 일본에서도 『신현실』, 『팬텀』과 비교하는 게 더 온당할 테니까.
학산출판사도 그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닌지, 창간호부터 라이트 노벨이란 표현을 최대한 쓰지 않고 '일러스토리'를 썼으며 장르소설을 강조하며 2호부터는 듀나, 이종호 등 장르소설판에서 인정받은 작가들을 영입하며 선입견 제거를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2. 경향

사실 일본에서의 『파우스트』의 위치는 상당히 애매한 것으로 가령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문예지'라고 스스로 홍보하고 있으나 이는 군상, 신조 등 주류문단의 문예지와 비교한 것일 뿐 대중문학과 라이트 노벨쪽 잡지와 판매량을 비교하면 훨씬 뒤떨어진다. 결국 주류문단과 라이트 노벨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참여작가 역시 주류문단에서 환영받는 마이조 오타로, 사토 유야와 라이트 노벨 작가로 분류되는 니시오 이신, 타키모토 타츠히코에 게임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나스 키노코, 하라다 우다루 등이 섞여 있어 상당히 독특하다.
그러니 창간호에 실린 선정우의 칼럼에서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미스터리 작가들과 노벨 게임 작가들이 주요 작가진으로 이루어진, 메이저 출판사에서 낸 조금 마이너한 성향의 소설지'라고 보는 게 좋다.
한국판은 여기에 더해서, '장르소설'임을 강조하며 독자 특집으로 미스터리 매니아와 호러 매니아를 모아서 좌담회를 여는 등 라이트 노벨이라는 틀을 벗고 장르소설 잡지로 인식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장정과 내용 등에서 원판과 크게 달라질 수 없는 라이센스판의 한계를 고스란히 갖고 있어 현재는 약간 고전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앞으로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적어도 학산측에서 장기적으로 갈 생각인 듯 하고, 일본판이 6호에서 1년 넘게 발행이 중지된 상태(7호가 2007년 여름 발매예정이었으나 아직 나오지 않고 있음)에서 편집장 오오타 씨가 『코믹 파우스트』에 이어 또 새로운 소설지를 내겠다고 한 바 있어 앞날이 불안한 상황이라, 이 상태에서 한국판이 6호 이상을 낸다면 일본판을 추월하게 되므로 그 수록작이나 구성을 더 자유롭고 독자적으로 꾸밀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므로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술했듯 이 잡지의 탄생과 구성 자체가 편집자 오오타 카츠시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어 수록 작가 뿐 아니라 작품 역시 그의 취향을 반영한 듯한 경향이 짙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파우스트』 수록작들을 일컬어 파우스트계(系)라고 부를 정도로 뚜렷한 특성이 있다. 만화와 게임을 중심으로 한 오타쿠 문화와 서브 컬처에 관련한 소재가 자주 나오며, 미스터리와 모던 판타지의 형식을 통해 청춘의 심리와 일상의 탈출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또한 파우스트가 야심차게 내건 신전기라는 장르도 사실상 (신본격에 비하면) 크게 유행하지 않았기에 파우스트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3. 개별작품

창간호는 라이센스의 한계 때문인지 일본판과 가장 흡사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창간 특집 좌담회가 추가되었고, 일본판의 칼럼 중 몇이 바뀌었다. 소설은 한 편밖에는 추가된 것이 없다.
이런 창간호 수록작들이 과연 편집부의 주장대로 '젊은 독자들의 가슴 속을 직격할 충격과 전율의 신감각 문학 핵폭탄'이며 '새로운 주제와 스피디한 주제로 무장'한 작품일까? 안타깝게도 인터넷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감상과 서평들에서 느껴지는 당혹과 실망의 목소리에 동조할 수밖에 없음이 서운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글을 쓰는 현재 4호까지 발행한 상태) 읽은 『파우스트』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은 아즈마 히로키의 평론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였다.

* 드릴홀 인 마이 브레인 / 마이조 오타로
마이조 오타로식 세카이계 작품? 세카이계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과 변주에 그가 즐겨 사용하는 제재인 임사체험을 가미하고 라이트노벨식 히어로물을 패러디했다.
남자아이의 머리에 난 구멍을 여성의 성기에 비유하여 사춘기의 혼란스러운 성정체성을 다룬 점이 특이할 만 하다.

* 붉은색 모스크뮬 / 사토 유야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까지 평가절하당하고 있는 사토 유야(그나마 일본에선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하며 명예회복한 듯 하다). 이 작품 역시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역시 사토 유야의 전문인 고향(=지방, 시골)혐오와 피해의식,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통한 '강자=지배자'에 대한 원시적 동경을 다루고 있다.
마이조와 함께 사춘기의 병적인 강박관념을 엽기적인 소재를 통해 다루고 있는 파우스트계의 대표작이다.

* 있거나 혹은 없어도 / 강병융
기념할 만한 한국 작가의 작품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평자 개인적으로는 창간호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실망스러웠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평이하게 늘어놓고 끝났다는 느낌.
이미 냈던 단편집 『상상 인간 이야기』의 번외편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사전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는 있지만 『파우스트』의 독자들 다수가 알지 못할 자기 작품 번외편을 내는 무성의함부터 시작해서 내용까지 실망의 연속.
혹자의 지적대로 이 글에서 유일하게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부분은 지은이가 지어넣은 주석이다. 이 점은 『HappySF』 수록작 beHEADing과 마찬가지지만 거짓 사실주의의 본령에 충실한 이쪽 주석이 더 낫다.

*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 ~다정한 마법은 쓸 수 없어~ / 니시오 이신
『파우스트』의 첫 연재작이지만 독립된 이야기라 이것만으로도 무리없이 읽고 즐길 수 있다. 가장 라이트 노벨다운 작품.
이 작품의 제목 '신본격'은 새롭게 본격적인 마법소녀물을 선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그렇게 읽히도록 의도했을 수는 있지만), 신본격 추리물의 형식을 도입한 마법소녀물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에선 살인사건 혹은 독특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가 나타나고, 주인공 쿠기가 사건의 수수께끼 혹은 마법사의 약점을 추리로 풀어내어 리스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적을 물리친다는 기본 구조를 갖고 있다.
장점이라 할 수도 있지만 흠이 될 부분은 똑똑하다 못해서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주인공 쿠기 키즈타카. 단순 똑똑하다기에는 생각구조 자체가 성인에 가까운 초등학생이라는 점은, 작품 자체의 현실성을 가볍게 무시한 전체 분위기에 휩쓸리면 신경쓰지 않게 될지 모른다.

* 로스타임 / 이이노 켄지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했던 게임 디자이너였던 그가 오랜 침묵 중에 내놓은 소설. 꼬리를 무는 황당무계한 사건 속에서, 우유부단한 남자가 목숨을 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창간호 수록작 중에서는 사토 유야와 함께 반응이 안 좋은 쪽에 속하지만, 다섯 작품 중에선 가장 명확하고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고 하면 지나치겠지만, 미소녀 게임의 주인공에 어울릴 법한 만한 우유부단한 남자가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여 연인의 사랑을 얻는다는, 게임적이면서도 모범적인 모험물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 Don't Trust Over 30 / TAGRO (만화)
권말에 수록된 만화. 어느 정도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되지 않았나 싶지만 이를 보편적인 고민으로 받아들여주게끔 하는 솜씨가 좋다.
자신만의 걸작을 낳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나 현실의 문제로(생계해결을 위해) 익숙한 스타일의 평작만 낳는다는 이야기는 프로 창작자라면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문제이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창작자(아버지)와 작품(아들)의 관계를 작가 자신의 관계와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주석]
*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알프레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 둘 다 1997년경 해난터 출판사에서 발행되었으나 2호 정도 나오고 절판되었다고 한다. http://galaxian.egloos.com/3276548
* 더 스니커(ザ·スニ-カ-) : 카도카와 서점에서 발행하는 라이트 노벨 격월간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렌탈마기카』, 『무시우타』 등이 연재.
* 전격hp(電擊hp) : 미디어웍스에서 발행하는 라이트 노벨 잡지. 우리나라의 NT노벨로 출간된 작품 상당수가 여기에 연재 후 단행본으로 발매되었다.
* 팬텀(ファントム) : 오타쿠 관련 글로 유명한 작가 혼다 토오루(本田透)가 기획·감수한 소설 무크로 '라이트 헤비 노벨'을 표방하며 창간했다.
* 신현실(新現實)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와 소설가, 문학 비평가, 만화 원작자 등 다양하게 활동하는 오오츠카 에이지(大塚英志)가 공동 편집한 문예지로 『파우스트』와 성향이 유사하다.
* 세카이계(セカイ系) :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공의 관계와 갈등이 세계 전체의 문제와 직결되는 스토리 유형. 주로 위기에 처한 세상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게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연인이라는 식의 설정.

[참조문헌]
* 위키백과 : 파우스트 외 다수 항목
http://ja.wikipedia.org/wiki/ファウスト_(文芸誌)
* [칼럼:한국] 「한국판 파우스트 vol.1」:「라이트노벨의 개관과 파우스트」&창간 특집 좌담.
http://mirugi.egloos.com/1319178
* 파우스트 계열과 라이트노벨?
http://tale.egloos.com/191178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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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 07.09.30 14:38 댓글 수정 삭제
    장르 잡지인 데다, 단편을 많이 취급하고 있어 계속 보고 있습니다.
    전 일본 작품은 도통 취향이 아니고, 다 비슷비슷한 톤의 냉소/조롱을 보이는데 그닥 절절하게 와 닿지는 않더라고요.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장르 잡지는 현재 파우스트와 판타스틱 둘 뿐이니, 좋은 작가들을 많이 찾아 섭외하면서 꾸준히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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