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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코랄린], 닐 게이먼

2007.08.31 22:4108.31





pilza2.compilza2@gmail.com

새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날, 코랄린 가족은 새 집으로 이사를 온다. 집 주위를 탐험하던 코랄린은 창고처럼 버려진 손님방 구석에서 갈색 문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들어간 문 저편에는 집과 똑같이 생긴 공간에 단추눈을 한 다른 부모님이 있었다.

그들은 맛있는 걸 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나, 위화감을 느낀 코랄린은 원래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부모님은 보이지 않고, 다른 엄마가 부모님을 거울 안에 가두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제 코랄린은 부모님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1. 아이의 시선
부모님은 왜 원하는 걸 다 들어주지 않을까?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주지 않고, 사고 싶은 걸 사주지 않고, 같이 놀아주지도 않는 부모님이 때론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원하는 걸 다 줄 테니 자기랑 같이 살자고 한다고 부모님을 버릴 아이가 있을까? 더구나 그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원하는 대상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을 느끼는 차갑고 이기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엄마는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이다(바퀴벌레를 먹는 것보다도 더!).

더구나 자신이 원하는 게 금방 이루어지는 세상은 지루하다. 간절한 바람과 노력으로 소원을 이루었을 때의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코랄린은 그것을 알기에 바빠서 자신에게 소홀한 부모님의 진심을 깨닫고 붙잡힌 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앞에 무엇이 일어날지 몰라 두렵더라도 스스로의 지혜를 믿고 용기를 갖고 헤쳐나간다면 극복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새학기가 시작할 때의 두려움을 떠올려볼까? 낯선 교실과 낯선 아이들, 낯선 선생님까지. 거기다 깨끗하기만 한 새 교과서는 마냥 부담스럽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 모든 게 흥미진진한 모험의 무대가 된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여기면 설레이고 기대가 되지 않을까.

노력과 용기라는 진부한 듯한 낱말을 실제로 체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련을 극복했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하기 어렵다. 부디 코랄린과 같이 모험을 즐기는 마음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기 바란다.

2. 어른의 시선
이 작품은 어린이를 위해 쓴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녹록치 않다. 성과도 굉장하여 2003년 휴고상 중편부문, 2003년 네뷸러상 중편부문, 2003년 로커스상 청소년도서 부문, 2002년 브램 스토커상 아동도서부문을 수상했다. 사실상 판타지/공포 소설이 탈 수 있는 대부분의 이름있는 상을 석권한 셈인데, 과연 어떤 점이 '어른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일까.

우선 전제로 두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어린이가 환상적인 세계에서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곧잘 비교되는 모양이지만 모든 아동 모험물 사이의 유사점을 도출하지 않는 한 둘의 직접적 비교는 온당치 않다는 점이다. 우연히 어떤 통로를 통해 낯선 세상으로 가서 모험을 한다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그것은 모든 모험물의 기본 얼개이니 비중을 둘 가치는 없고, 본작에서의 '다른' 세계는 현실세계의 장소 및 인물과 흡사하면서도 일그러지고 변화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좀 더 직접적인 알레고리의 투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앨리스의 환상세계는 현실과 접점을 찾기 힘든 이질감과 부조리함 자체가 시련이 되지만, 본작의 세계는 명확한 존재이유(다른 엄마의 지배)와 극복할 과제(부모와 아이들의 영혼 되찾기)가 존재하며, 이런 모험이 현실에서의 고민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촉매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아동보다는 어른의 취향에 가깝다.

또한 기괴함과 낯섬이 (앨리스에서는 풍자와 유희로 작용하지만) 본작에서는 익숙한 대상의 변화로부터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 '대상'에는 그저 비슷해 보이는 집 안의 구조 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를 비롯한 주위 인물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까지 포함하는데, 얼핏 자신에게 잘해주는 듯한 다른 부모의 속내가 인간으로 자신을 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유물로 다룬 것임을 알았을 때 코랄린의 불안은 극에 이른다. 본작의 공포가 말초적인 충격이 아니라 이러한 불안심리로부터 기원한다는 점도 성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다른 세계는 얼핏 거울을 보듯 원래 세계와 흡사하지만 인물들은 조금씩 일그러져 있고 감춰진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다른 엄마는 주인공의 즉물적이고 순간적인 욕망(맛있는 음식, 같이 놀아주는 부모)을 구현하는 대신 대가를 요구(진짜 부모님의 박탈에서부터 종내는 코랄린의 영혼을 앗으려 할 것이다)하는데, 이러한 유혹과 대가를 가진 거래라는 점에서는 『파우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뛰어난 학자임에도 유혹에 넘어간 파우스트와 달리 순수한 아이인 코랄린이 유혹을 이겨내고 시련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본작의 시선은 더 이상적이다. 실제 어린 아이라면 충동적으로 부모를 버리고 먹을 것을 택할 수도 있을 텐데(직접적 언급은 없으나 거울에 갇혔던 세 아이들도 코랄린과 흡사한 경위로 다른 엄마와 만나 그의 유혹에 넘어갔던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유혹의 거부와 자기극복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통과의례의 절차를 통해 아이의 성장을 그렸기 때문에 환상/공포소설인 본작이 아이들에게 현실감 없는 공포보다도 다 읽은 후에 생기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본다.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인 결말부분을 보면, 다른 세계에서 목적을 이루고 탈출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현실에서 공포의 '여지'를 뿌리뽑고 마는데, 여운을 남기거나 반전에 의한 충격으로 끝맺는 것이 성인을 위한 오락으로써의 공포물로는 좋은 결말인지언정(속편을 위한 준비도 되고) 아이들의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것이 아동소설 원래의 목적에는 맞지 않기에 가능한 결말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도피에 의한 욕망의 충족을 거부하는 진보적인 태도는 어른들의, 공포의 근원을 자력으로 해결하여 불안을 해소했다는 부분에서는 아이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데, 본작이 아동과 어른 양쪽에게서 지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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