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가울 (kasacosa@hotmail.com)



요즘 각종 범죄학 법의학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CSI 등등으로 인해서 관심을 갖는 분들도 많은 것 같고, 해서 리뷰라고 하기엔 약하고, 말 그대로 제가 읽었던 관련 서적들에 대해 간략한 소개 정도 되겠습니다.





한국의 연쇄살인: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 수사와 심리 분석
표창원,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5년 6월, 12,000원

먼저 우리나라 책입니다.
저자 표창원은 경찰 출신으로 현재 경찰대학에서 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경찰 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현장감이 있습니다.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 법의학이 뒤떨어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한국에 있었던 연쇄살인의 수사과정 및 심리과정을 담은 책인데요. 읽고 나서 한동안 찜찜함에 몸부림 쳤었지요.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순간 실감해버려서요.
대부분 범죄학 책들이 미국 책을 번역해 우리나라 실정과 다른 것에 비해 이 책은 화성 연쇄사건, 지존파 등등 한 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었던 사건들에 대한 세부사항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저자의 시각이었어요. 어떤 경우에도 희생자를 탓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 같은 경우 피해자의 옷차림, 품행 등이 아직도 조사대상이 되는 것에 반해 저자의 태도는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려고 할 때, 단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는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범죄학을 연구한 학자와 또 다른 면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였어요. 대부분의 연쇄살인 범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가정 폭력에 노출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혜택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걸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피해자의 상태를 직접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분노를 과장하거나 폭발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했습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다산초당, 2006년 9월, 13,000원

무엇보다 일단 재미와 흥미가 넘치는 책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법의학 수사를 했는지, 지침서는 무엇이었는지도 보여주고요. 권력가들이 저지른 범죄, 살인범이 밝혀졌는데도 오히려 범인을 찾아낸 사람이 처벌을 받는 모습, 양반가에서 이루어지는 범죄, 여성이 저지른 범죄 등 조선시대 권력층부터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습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진단명 사이코패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
Without Conscience
로버트 D. 헤어, 조은경ㆍ황정하 옮김, 바다출판사, 2005년 12월, 13,800원

가격에 비해서 효율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대신 사례가 넉넉하니 사례를 보기 위해서라면 구입해 볼 만합니다.
저자는 사이코패스 전문가로 사이코패스란 겉은 멀쩡해 보이나 내면은 본질적인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를 뜻합니다. 저자는 단순한 정신병자와 사이코패스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정신병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는 환자를 의미하고,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으나 그 어떠한 죄책감도 동정심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드라마 덱스터의 덱스터가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기 여동생에 대해서는 일말의 감정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Whoever Fights Monsters
로버트 K. 레슬러, 손명희ㆍ황정하 옮김, 바다출판사, 2004년 8월, 12,800원

로버트 K. 레슬러는 FBI에서 근무했으며 미국은 물론 전세계 수사망의 첨단 프로그램인 '흉악범죄예방프로그램(VICAP)'과 '범죄인 성격조사 프로젝트' 등을 창안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FBI에 프로파일링 제도를 만드는 데도 기여해고요. 실제 연쇄살인범들을 면담하며 그들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 소개와 제목만 보고 집으시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프로파일링 기법이나 VICAP 등을 창안하는 과정에 대한 꼼꼼한 이야기, 실제 범죄자와의 면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고요. 내가 이렇게 잘났고, 이런 일들을 해왔소, 라는 점잖은 자랑이 대부분입니다.





잔혹: 피와 광기의 세계사
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콜린 윌슨, 황종호 옮김, 하서출판사, 2007년 3월, 12,000원

1, 2권으로 나왔던 구판과 한 권으로 나온 신판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책 중 하나인데요.
콜린 윌슨은 제대로 된 공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직 독학으로 수많은 독서로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을 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더군요.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인간이 저질러 온 온갖 끔찍한 범죄에 대해 서술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은 희망적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발전하고, 진보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요.
아래 소개할 연쇄살인범 파일과는 완벽하게 대조되는 시각이지요. 두 책은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연쇄살인범 파일
The Serial Killer Files
헤럴드 셰터, 김진석 옮김, 휴먼&북스, 2007년 6월, 19,000원

비싸지만 사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한 마디로 연쇄살인범 오타쿠예요.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연쇄살인범과 연쇄살인범죄에 대해 서술한 책입니다. 이 책은 잔혹과 한국의 연쇄살인, 두 책과 여러 가지에서 대비됩니다. 일단 저자는 피해자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동정심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오직 취미와 학술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사람은 원래 잔인하고, 절대 그 본성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저자는 그 사실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책 뒤편에는 연쇄살인에 대해 잘 정리된 웹사이트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웹사이트들 소개를 보면, 본문에서는 최대한 어투를 자제했지만, 저자가 연쇄살인에 관련된 것들을 얼마나 즐겁게 탐독하고 있는지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이 연쇄살인을 읽을 때와는 성격은 다르지만 무게는 비슷한 찜찜함에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담담하게 서술된 살인 방법들 때문에 몇 번이고 책을 덮고 며칠 쉬었다 읽어야 했어요.
한국의 연쇄살인을 읽을 때 느낀 찜찜함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주는 공포였다면, 이 책은 사람의 본성을 들여다 볼 때의 혐오감에 가까웠습니다.
당신이 심연을 볼 때, 심연도 당신을 본다, 는 니체의 말을 이 책을 읽으며 절절하게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의 사람으로 이런 끔찍함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인류가 발전을 하는 존재든 안 하고 영원히 챗바퀴를 도는 존재든, 둘 중 어느 쪽이든 간에 이 모든 범죄는 사람이 저지른 거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혹은 한동안 계속 되겠지요.
지금까지 있었던 연쇄살인에 대한 자료로는 이 책이 가장 방대한 거 같습니다.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법의학과 과학수사
Bodies of Evidence
브라이언 이니스, 이경식 옮김, 휴먼&북스, 2005년 4월, 29,000원

제목대로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대한 책입니다. 실제 사건들을 예로 들며 어떻게 증거를 찾았고, 범인을 알아냈는 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과는 많이 다르겠지만요.
하드 커버에 일반 책보다 훨씬 크고 두껍습니다. 컬러 사진들도 들어있고요. 사건을 수사하는 장면도 있지만 피해자의 사진도 컬러로 들어 있습니다. 솔직히, 찜찜합니다. 드라마랑은 다르더라고요. 거기 누워있는 사람이 진짜 죽은 사람이라는 것에서 오는 충격 같은 거요.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렵지 않으면서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CSI에서 수사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어서 CSI를 재밌게 보는 분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겠네요. 위에 열거한 책들 대부분이 어떻게 살해했는가에 중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어떻게 그 살인을 밝혀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멍, 상처 자국, 독살, 피 등등이 어떤 단서를 남기게 되는 지 그로 인해 어떻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지 쉬우면서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연쇄살인범의 경우 책들마다 소개가 나오는데, 이 책의 경우 다른 책에는 없는 예시들이 많이 보입니다.

댓글 2
  • No Profile
    가울 08.04.14 21:17 댓글 수정 삭제
    살림지식총서에서 최근에 <DNA분석과 과학수사>를 냈습니다. 좀 딱딱하긴 하지만 읽을만 합니다. 우리나라 DNA분석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지요.
    기억하실 분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 전 프랑스 부부가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프랑스에 다녀온 후 자기 집 냉동고에 애기 사체 두 개가 유기되었다고 신고를 했죠. DNA감정 결과는 놀랍게도 그 아이가 프랑스 부부의 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프랑스 부부는 아니라고 우겼죠. 자기 애를 자기 집 냉동고에 유기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부인이 임신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주변 정황에, 우리나라 과학수사 아직 멀었다, 는 여론 공격까지 일어 꽤 힘들었죠. 그래서 관련 증거르 프랑스에 보냈고, 프랑스에서도 검사했는데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사실 그 프랑스 부부 애들이었던 거죠.
  • No Profile
    검은바다 08.09.04 03:06 댓글 수정 삭제
    범죄심리에 관심 있다면 <프로파일러 노트> 추천합니다. 여전히 예로 든 범죄들은 끔찍하지만, 범죄자, 특히 연쇄 강간(살인)범죄자들의 심리에 대해 꽤 잘 설명한 것 같더군요.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나 <마인드 헌터>를 제외하면 범죄 관련 저서들이 대부분 그럭저럭 읽을만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쪽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서 자주 찾아보는 편이거든요. 즐기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3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