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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세 번째 중단편선으로, 오자가 몇 개 눈에 띈다든지 하는 일부 단점들이 눈에 보이긴 하지만, 거의 정식 출판물로 취급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솔직히, 대여점 위주로 팔려나가는 속칭 ‘양판소’들 보다야, 이 책이 훨씬 책 같은 책이다.

그러나 웹진 모음집이란 역시 동인지일 수 밖에 없고, 이 책도 그 예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인지라고 하면 요즘은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아 성애적으로 변질된 아마추어 만화 동인지가 연상되기 쉬울 정도지만, 이 책은 개화기 이후로 내려오는 전통적이고 사전적인 의미의 동인지에 가깝다. 근래의 말초적이며 상업 지향적인 만화 동인지와 동일한 척도로 가늠하게 되면 이 책의 작가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책이 동인지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좀 느슨한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같은 웹진에서 활동하며 약간의 공통 분모가 있는 경향성을 띄긴 하지만, 이 책의 작가들은 하나의 뚜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거기에 맞춰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개별적으로 활동한 내용을 모아 보니, 거기서 미약한 경향성이 발견된다는 것 정도에 가깝다.
물론, ‘환상문학’ 웹진이니만큼, 대체적으로 환상문학에 속한다는 경향성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장르적 경향성 외에 ‘동인지’라고 할 만큼 뚜렷한 작가 간의 공감대가 없는 것은 사실이고, 심지어는 환상문학에 포함하기는 약간 애매한 것들도 일부 눈에 띈다.

작품 내용으로 말하자면, 경향성이야 어쨌건 전체적으로 괜찮은 글들만 모여 있고, 문학, 혹은 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탐독해 봐도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책이다. 앞서 말한 약한 경향성 때문에, 한 책에서 비교적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환상문학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상당히 무겁고 어려운 글들을 전반부에 집중 배치한 편집 방향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다.
환상문학은 그 자체가 상당히 사변적이며, 펄프 픽션 쪽이 대세인 에픽 판타지에 비해 소비자 층이 적다. 한마디로, 사람을 많이 가리는 장르란 뜻이다. 그 덕에 작가층과 독자층이 거의 일치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면에 있어서 환상문학 장르는 순수 문학, 혹은 양판소와 다를 게 없다. 늘 보는 사람만 보고 그 사람들이 다시 재생산하는, 전체적으로는 변주만 거듭할 뿐 발전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장르.
이 책은, 그런 자기 순환적인 장르 중에서도 특히나 자기 중심적인 글들을 전반부 쪽으로 몰아서 편집해 놓아서,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 결코 편하다고 할 수 없다. 후반에는 상당히 평이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도 많지만, 전반부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문학에 연마되지 않은 두뇌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역일 정도로 거친 자갈길에 가깝다. 덕분에 좀 더 완급을 조절해서 리듬 있는 편집이 되었다면 전체적인 책 수준이 더욱 올라갔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 수록된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펴 보자. 이미 발표된 지 꽤 된 책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까발리기가 있어도 크게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대체로 충격적인 반전 같은 자극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 적은 편이다.


첫 번째 작품인 ‘하얀 이빨’은 환상문학이라기보다 SF에 가까운 단편이다.
비록 처음은 맥락 없고 비 일상적인 사건이 나열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체가 하나의 추리소설처럼 이가 잘 맞아 있으며, 어느 정도 열린 결말을 통해 뒷얘기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준다. 밀도 있는 이야기 구성과 건조한 인텔리적 감성은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 상당한 감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지식 밑천이 얕은 사람은 등장인물들에 공감하기가 힘들며, 자칫 현학적으로 보일 부분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썰렁한 농담을 다시 동결 건조한듯한 주인공의 유머 감각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몽중몽’은 꿈에 대한 해석… 이라기보다 오히려 꿈 그 자체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글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를 기본으로 해서 동서양의 각종 신화를 넘나들며 어지러이 흘러가는 장면들은, 더할 나위 없이 몽환적이기는 하지만 따라잡기가 상당히 난해해서, ‘하얀 이빨’ 이상으로 많은 지식과 사고력을 요구한다. 이 책에는 유달리 작가 중심의 사변적인 작품, 나쁘게 말하면 지적인 자위행위에 가까운 글이 많은데, 이것도 그 하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는데 성공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학에 익숙舊?못한 일반인은 쉽게 즐길 수 없는 작품이다. 마치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면서 작가의 힘찬 필력을 자랑하듯 내달리기만 하는 작품.

‘판타스틱 입맞춤’은 단편이라기보다 장편(掌篇)에 가까울 만큼 짧은 작품이다.
두 연인의 일상을 어슷썰기로 쪼개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글. 엉덩이 밑바닥부터 마초인 나로서는 그저 쇼 윈도우에 늘어선 핸드백을 둘러 보는 듯한 정도의 느낌밖에 가지지 못했기에, 특별히 뭐라 평할 수가 없는 작품이다.

‘걸어 다니는 화석’은 내용만 보자면 그리 밝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책 전반부의 쓸데 없이 묵직한 글들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나른한 오후 같은 느낌을 준다. 화석화되는 개인에서 그들을 어여삐 여기는 관조자에게로 자연스레 글의 시점이 옮겨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상에 삽입된 비 일상이라는, 환상문학의 고전적인 틀을 잘 지킨 작품.

‘연애편지’에서 시도된 화법에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순수 문학 쪽에서는 이미 흔하게 쓰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 액자를 씌운 이런 글은 게임기 버튼이나 두드려대며 소일하는 내가 쉽사리 접하지 못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글 호흡은 따라잡기 어렵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글 읽는 내내 왠지 모르게 ‘이공계 찌질이’를 연상시키는 동류의 향기가 솔솔 났는데, 어쩌면 독자에게 ‘무언가’를 공감시키기 보다는 ‘독자와의 공감’ 그 자체가 글의 의도였을지도.

‘변신!’은 표제 글로 선택된 작품답지 않게, 밋밋하고 텁텁하다.
인간의 신체적 변화를 둘러싸고 순차적으로 서술해나가는 방식은 소설이라기보다 뭔가의 설정집을 연상케 한다. 실제 내용도 기승전결이라는 전통적 구성보다 그저 사건의 나열에 불과한 것 같고, 한 시대의 뜨거운 도덕적 패러다임 변화가 될만한 일들을 그저 작은 하나의 사건, 혹은 몇 줄의 설명만으로 넘어가는 단락단락은 어설픈 느낌도 든다. 소재가 독특한 것 외에는 크게 봐 줄만한 부분이 없지만, 그 소재마저도 이미 10여 년 전에 비슷한 것을 접한 적이 있었던 나로서는 그리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덧붙이자면, 헤르만 헤세의 ‘변신’과는 제목 외에 전혀 관련이 없다.

‘바지니에게’는 대충 ‘데미안’이 코끼리 코 잡고 10여 번 맴을 돈 것 같은 글이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분량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그 볼륨만큼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분위기가 데미안과 무척 유사하지만, 시점이 여러 등장인물 사이에서 계속 돌아다니기 때문에 어지러우며, 등장인물들은 성장하지도 전진하지도 않고 그냥 자기 자리에 서서 존재를 어필할 뿐이다. 10대의 껍질을 쓰고 20대의 강단을 간직한, 40대의 중후함이랄까. 그런 확고한 자아들에게 그럴듯해 보이지만 의미 없는 사회상을 덧씌워 어지럼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혼란스런 사회를 보여주어 막 세상으로 진출하려는 청소년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잘 닦아서 윤기가 나는 사과에 오렌지 껍질을 덮어둔 듯 어색하기만 할 뿐이다. 어지럼증 외에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문장과 작가의 등장인물에 대한 사랑뿐이었다.
불명확한 주제 의식이 잘 연마된 문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글.

‘적백화면’은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 봤을 감각을 극대화시킨 작품.
그러나 초반의 광고 묘사 말고는 그 감각이 선명하게 와 닿지는 않아서,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이 책에서 꽤 유쾌하게 읽은 것 중 하나가 ‘다이어트’다. 발상도 즐겁고 진행도 경쾌하다. 어쩐지 ‘판의 미로’를 연상케 하는, 일상과 비일상의 접점 없는 교차가 멋지게 부각되고 있다. 이 책의 꽤 많은 글들이 그렇듯이 장르적으로 따지자면 전형적인 SF지만, 거울 웹진에서 시시콜콜히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민주가 왜 그랬을까?’ 역시 유쾌하다. 게시물에 붙은 덧글들이라는 깜찍한 형식은, 유행하는 인터넷 용어 난무와, 큰 흐름과 상관 없이 오락가락하는 찌질이 글들이 겹쳐지면서 실재감을 증폭시킨다. 찌질한 덧글들을 따라가다 어느 새 어이 없이 사건을 접하게 되는 느낌이 좋다.

‘환상진화가’는 이 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완성도를 자랑하는 글이다. 꽉 짜여진 구성과 섬세하게 가다듬어진 묘사, 기발하다고까지 할 순 없지만 충분히 감각적인 소재가 맞물려, 깊은 몰입감을 자아낸다. 영화화하면 꽤 멋진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 가라사대’는 기발한 상상을 문장으로 잘 그려낸 단편이라 할 수 있다. 나름 즐거웠지만, 버지니아 울프 자체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참맛을 느끼기 힘들었다.

‘명예롭지 못한 소녀’는 흡혈귀에 대한 선명한 묘사로만 따지자면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가 울고 갈 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딱히 잘 와 닿지 않는 것이 좀 아쉬웠다. 주제를 글이 아니라 제목에서 찾아야 하는 수고는 독자에게 그리 달콤하지 못한 과실이다.

광기에 찬 ‘플라스틱 프린세스’는 철저한 1인칭 시점이다. 덕분에 이상의 집합체인 ‘그애’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아주 청소년적인, 내면 지향적인 작품. 다른 한 축을 든든하게 받쳐 줘야 할 바이러스가 너무 노골적이고 평면적인 것도 큰 흠이다. 덕분에 초중반까지 반짝이던 주인공의 광기가 종반에는 생명을 잃고 흐물흐물 세상에 녹아 들어가 버렸다.

‘황금알 먹는 인어’는 전형적인 지적 자위행위다.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장면을 글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걸로는 아무리 잘 해 봐야 ‘형사 Dualist’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제목은 글 내용에 대한 위장막 외에 아무 것도 아닐 뿐. 중단편선의 말미를 장식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글이었다.


이렇게 총 15편의 글은 완성도와 취향이 제 각각이어서, 전체적으로 반짝이지만 결코 매끄럽지는 않은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흡족한 글이 많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고, 특히 문장과 문단의 단말적인 완성도에 비해 글 전체의 구성과 주제 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앞서 말한 불편한 편집 방향까지 더해, 쉽게 손을 대기 어려운 책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별 볼일 없는 것은 쓰레기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렇게 길고 구차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 책이 그렇게 중언부언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증이리라. 이리저리 억지로 들춰낸 단점 외엔 모두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한동안 편한 글만 읽던 내게, 모처럼 두뇌의 고양감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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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보는 사람들만 보고 그 사람들이 재생산하고, 변주가 별로 없다고 하셨는데, 재생한하고까지는 동의하지만 변주가 별로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릅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부분들이 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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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T 08.03.11 01:12 댓글 수정 삭제
    '그들만의 리그'인 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나요? 몇몇 대중적으로 나오는 인문/과학 서적들을 제외하면, 특정 분야로 깊이 들어가는 학문 관련 서적들도 다 그렇죠. 관련 학자들만 보고, 그 분야를 전공할 사람들만 보고, 다시 그 안에서 재생산되고. 미술도 그렇죠. 미대를 나온 사람이 학원 강사가 되어 입시 미술을 가르친다고 규정해버리면, 미술도 변주없는 예술장르라고 말해버릴 수 있고요.
    '그들만의 리그' 때문이라면 변주가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한 근거로 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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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T 08.03.14 18:59 댓글 수정 삭제
    리뷰만 쓰시지 거울은 잘 안 오시나봐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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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혼 08.03.16 15:14 댓글 수정 삭제
    //레몬에이드
    변주가 별로 없다고 한 것이 아니고, 변주는 계속하지만 발전은 별로 없다고 썼습니다.
    발전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점에 대해서는... 글쎄요, 저는 최소 1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환상 소설 장르에서 그렇게 뚜렷한 발전을 발견하기 쉬울까 하는 쪽입니다. 물론 시대상의 변천에 따른 변화는 계속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과 사회의 '안쪽'에 대해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장르인지라, 단시간에, 그것도 동시대 사람에게 쉽게 눈에 뜨일만한 발전은 찾기 힘들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걸리버 여행기'나 '변신' 같은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잘 읽히고 있고, 만일 이것이 고전이 아니라 '신간'이었다 해도 사람들이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봅니다.

    //TVT
    '그들만의 리그'는 메이저와 마이너의 개념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개념으로 썼습니다. 따지고 보면 완벽하게 메이저인 분야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선수와 관객이 명확하게 나뉘는 축구, 야구 등과, 선수가 곧 향유자인 서바이벌 게임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적하신대로 학술쪽도 '그들만의 리그'로 볼 수 있지만, 학계는 관심 없는 일반인들도 거기서 나온 결과물은 많이 향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 과학이나 공학 쪽이 현저하지만, 사회학이나 언어학 등 인문 과학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 같은 순수 예술 분야는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요.
    변주와 발전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거울은 1~2주에 한 번 정도 옵니다만, 다른 분들 의견을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다 싶어서 일부러 덧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변주라는 말에 대한 오해는 그렇다 쳐도 발전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 안하거든요. 그리고 토론 발제가 아니라 리뷰인 이상, 리뷰어가 자기 의견과 다른 덧글에 일일이 토를 다는 것도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리뷰 역시 의견의 한가지일 뿐 절대적인 '판결'은 될 수 없으므로, 본문에서 길게 설을 풀었으면 그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다르더라도 조용히 지켜보는 게 좋지 않은가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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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T 08.03.18 00:05 댓글 수정 삭제
    왜 아무 덧글도 다시지 않았는지, 듣고 나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었기 때문에 무시하는 건가, 싶어서 불쾌했었습니다.
    변주는 있고, 발전은 없다고 쓰셨는데, 혼동했습니다.
    하지만 순문학은 그렇다고 쳐도 '양판소'는 분명 얕잡아보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그에 비유하셔서 발전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묻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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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혼 08.03.28 22:25 댓글 수정 삭제
    양판소의 언급에 대해서는,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순수 문학과 함께 언급했습니다. 두부의 부드러움을 비유하기 위해 비단과 진흙을 예로 들었다 해서, 두부가 곧 진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발전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예술인 문학이나 음악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당대에는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것처럼 보이더라도, 거시적으로 보면 그저 변주에 불과한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까요.

    그 중 특히 '환상 문학'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발전되느냐 한다면, 글쎄요... 그건 문명의 패러다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인터넷이 일반화되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최민주가 왜 그랬을까' 는 발전의 일면일 지도 모릅니다. 동서양의 각종 신화가 혼합된 '몽중몽' 역시 환상 문학 초창기라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작품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과연 '환상 문학'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법이나 유행의 변화인지는 뭐라 단정하기 힘듭니다.

    저는 이런 변화나 발전에 대해서는 좀 보수적으로 보는 입장인데, 발전을 확인하려면 좀 더 근본적이고 뚜렷한 경향성이 발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데 미국의 수퍼 영웅 만화는 큰 변화 없이 수십 년 간 이어져 왔습니다. 색채나 필법은 발전되었지만, 보통 사람과 다른 '수퍼' 파워를 가진 '영웅'의 무용담이라는 근본적인 내용은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요. 그게 크게 한 번 바뀐 건 X멘 등으로 대표되는 '집단 영웅' 체계고, 이것은 '수퍼'나 '영웅' 보다는 그 주인공의 인간적 고뇌에 초점을 맞추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변화는 이후에 일본의 망가와 교류하면서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다시 크게 바뀌고 풍성해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수십 년, 아니면 적어도 수 년간 축적된 결과를 바탕으로 알아볼 수 있는데, 지금의 한국 환상문학은 그런 발전을 뚜렷히 알기는 아직 미흡하다고 봅니다. 물론 이외수의 '벽오금학도' 같은 기존 문단 작품과 거울의 작품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발전이냐 하면, 글쎄요, 비록 거울이 이 분야에서 수 년 간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차이가 발전이라고 확신하기는 이르다고 봅니다.

    대중 문학의 아랫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대본소 무협지는 큰 변혁을 겪으며 양판소로 탈바꿈해 그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그야말로 환골 탈퇴였죠. 작가와 독자, 내용 모두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그 크나큰 변화 속에서도, 위상과 사회적 역할과 문학적 수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저 변화되었을 분이죠.

    거울의 작품들은 활동 방식은 물론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온라인, 인터넷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기존 문단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환상 문학이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졌다거나, 질적으로 더 성장했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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