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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gmail.com많은 이들이 이 시리즈를 두고 공포 소설을 제대로 다룬 최초의 단편집이라고 하지만, 사실 필자가 일전에 거울을 통해 소개한 [공포]라는 이름의 단편집이 있었다. 다만 여기에 수록된 글들은 한 편을 제외하면 장르소설로서의 호러를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한국인이 느끼는 공포’를 실감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와 함께 거론해도 좋을 것이다.

외국이라도 아주 나은 건 아니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호러 장르는 아직 규모가 작아서 판타지 혹은 미스터리/스릴러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호러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장치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누자면 초현실/환상에 따를 경우 판타지, 살인/유혈/서스펜스에 따를 경우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로 나눌 수 있다.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적이 귀신이냐 살인마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 두 권의 시리즈에는 이 양쪽에 해당하는 작품이 섞여 있고 몇몇은 양쪽 어디에도 해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가령 {상자}나 {통증}의 경우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초현실적인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일방통행}이나 {들개}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존재가 가능하며 되려 그런 사실감이 불안함과 공포를 배가시킨다. 반면 어느 장르에도 포함 가능한 경우, 즉 {깊고 푸른 공허함}이나 {압박}에 나오는 실험이나 작용이 현실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실로 가정할 경우에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1편에는 분량이 짧고 유혈에 의한 공포를 주는 작품이 많고, 2편은 비교적 분량이 길고 심리적 불안감을 자극하는 작품이 많다. 사실 이렇게 된 원인은 [파우스트] 4호에 실린 공포 작가 대담에 따르면 장르팬들의 원성을 자아낸 18세 이하 불가 판정 사건 이후 작가들이 ‘스스로 몸을 사린’ 결과라고 하는데, 고어한 표현을 잃은 대신 개별 작품의 완성도는 더 높아진 느낌이다.

전통적인 공포/괴담의 소재인 귀신/유령은 대폭 줄어든 느낌으로, 해설에서도 그 점을 중요하게 언급했는데 아마도 최대한 배제하려는 편집 의도의 결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귀신/유령 계열의 존재가 나오는 작품은 {은둔}, {캠코더} 정도로 그 외에는 공포를 주는 대상이 살인마나 괴물 같은 존재일 뿐 아니라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소재와 작가의 개성을 원하는 장르팬들에게는 더 환영받을 일이라고 본다.

흉포한 입 | 최민호
제목은 코마츠 사쿄가 연상되지만 내용은 스티븐 킹의 [금연 주식회사]를 연상시킨다. 글의 소재와 형식이 서스펜스에 더 걸맞다는 느낌.

모텔 탈출기 | 박동식
공포 장르로 분류하기가 곤란한 부분도 있지만, 두 작품집을 통틀어 유일하게 블랙 유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특필할 가치가 있다.

길 위의 여자 | 최민호
가장 영상화하면 좋을 것 같은 작품. 특히 괴물 같은 존재가 신고 나오는, 어울리지 않은 신발이 주는 소리를 통해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적인 공포를 주는 부분이 강렬한데, 이런 표현은 역시 직접 시청각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레드 크리스마스 | 안영준
호러 카테고리에서는 의외스러운 글이지만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는 약자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한국적 공포, 현실적 공포를 원하는 해설의 목소리에 잘 부합하는 글이다.

벽 곰팡이 | 황희
벽 곰팡이의 비정상적인 번식 속도를 제외한다면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그렸으며, 인종차별이 주는 공포라는 새롭고 독특한 소재를 잘 요리한 점도 좋다.
댓글 2
  • No Profile
    날개 08.02.02 20:19 댓글 수정 삭제
    저도 1보다 2가 더 완성도가 높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3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No Profile
    저는 둘 다 비슷하게 좋았어요. 그래서 3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묻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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