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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후의 날 그후

2008.03.01 00:4603.01





blog.naver.com/garlenggarleng@naver.com  
   1945년 7월, 트리니티 핵실험. 그 직후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그 경악스러운 위력에 망연자실해서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을 인용해 “나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일화가 있다. 19세기는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대한 믿음이 최대화되었던 시기다. 과학과 이성이 인도하는 인간의 정열과 활력 앞에 고대로부터 인간을 속박해 온 그 모든 미망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불렸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 상흔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다시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이 핵의 섬광과 함께 끝난 이후, 그 대파괴를 목도하면서 서구 지식층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를 간신히 깨달았다. 근대성의 핵심을 이뤄 온 ‘이성’에 대한 확신은 전례가 없었던 참화와 함께 용도 폐기되었고, 뒤이은 동서의 대분열을 거치면서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자기혐오에 가까운 반성으로 변했다. 이 책, [최후의 날 그후]는 그 막대한 파괴를 지켜 본 20세기의 SF 작가들이 ‘핵이 동원된 거대한 전쟁’―――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메가 워Mega war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를 주제로 하여 쓴 중단편 모음집이다. 21세기가 오고 핵에 의한 대량 살상의 공포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시대착오적인 주제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로저 젤라즈니를 비롯한 현대 최고의 SF 작가들이 쓴 이 작품집에서는 단순히 대전쟁 이후의 암울한 미래상을 경고하는 이상의 함의가 담겨 있다.


   本-
   세상을 파는 가게The Store of the Worlds
   이 단편은 양자 역학의 다중 세계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든 순간마다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여지에 따라서 세계가 무한히 ‘가지’를 친다는 이론이 그것으로, 이 작품에선 일정 기간 동안 손님이 원하는 세계에서의 삶을 체험하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가 등장한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를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에 있어서, 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낙원으로 여기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흔한 클리셰가 되었지만 로버트 셰클리는 이 작품에서 다중 세계 이론을 통해서 그러한 갈망을 보다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대한 섬광The Big Flash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정신적 공황을 메우기 위해 인류는 많은 도구를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도 히피 문화와 더불어 대중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역시 록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대중문화가 성립되면서 수많은 뮤지션들이 반전 평화를 노래했고, 그러한 움직임은 베트남 전이 한참일 무렵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노먼 스핀래드는 그러한 이미지를 반대로 뒤집어 보였다. 대중문화를 이용한 여론 조종과 집단적 광기 유발의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현대판 롯Lot
   성경에 등장하는 타락의 도시, 소돔은 그 만연한 죄악 때문에 야훼에 의해 불꽃과 유황의 비로 징벌 받았다고 전해진다. 재앙을 피해 달아나던 아브라함 일가족 중 롯의 아내는 뒤에 남겨 두고 온 재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도망 중 뒤를 돌아보다가 그대로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배경을 현대로 바꿔 다시 변주된다. 뒤로 멀어져 가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리라고 믿었던 도시. 그 도시가 조만간 핵의 불길에 싸여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남기고 온 일가족을 보면서 어떤 독자들은 그 우매함을 비웃을 지도 모르고, 어떤 독자들은 그 집착을 동정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쪽 모두, 이 작품이 꽤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퀴The Wheel
   불의 발견은 인류 문명의 씨앗이었다. 바퀴와 문자의 발명은 그 씨앗에서 돋은 첫 번째 싹이었다. 그리고 문명이 초래한 최대의 비극- 메가 워 이후 인류는 극단적인 기술 혐오에 빠져들고, 그 빈자리에 샤머니즘이 재래한다. 다소 단순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준작.

   터미널 해변The Terminal Beach
   J.G. 밸러드는 [크리스탈 월드]를 읽었을 때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읽어내기 어려운 작가다. 담아내고 있는 함의가 복잡해서가 아니라(가벼운 글이 결코 아니기도 하다) 난해한 플롯과 추상적인 문장, 휙휙 바뀌는 시점은 독자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읽을 가치가 있다. 메가 워의 피해가 그나마 국지적인 범위에 머물렀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전망을 배경으로, 잔존 방사능이 여전히 대기 중을 뜨겁게 떠도는 해변에 홀로 남은 ‘수소탄 인간Hydrogen Man’의 모습은 일종의 세기말적인, 퇴폐적이고 비애에 찬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크리스탈 월드]에서 선보인 바 있는 몽환적이고 열에 들뜬 묘사가 인상적.

   내일의 아이들Tomorrow’s Children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막대한 피해를 입은 유럽의 모습을 기본으로 해 그 피해 상을 몇 배로 부풀린 형태를 모델로 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메가 워 이후’라는 화두에 대해 누구나 연상할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는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인류라는 종의 단절 가능성과 그 극복에의 희망을 일차적으로 그리고 난 뒤, 그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보다 ‘다른’ 형태로 진보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묘파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스위스의 농부 빌리 마이어 앞에 내려온 플레이아데스 성단 출신의 외계인 셈야제는 그에게 대재앙 이후의 암울한 미래상을 담담한 어조로 설명하고서 인류의 미래를 우려하는 마이어에게 “걱정 마십시오, 인류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무한히 번영할 것입니다.”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빌리 마이어의 접촉 기록이 조작이라는 견해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지금이지만, 저 말 자체는 곰씹어 볼 만 하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휴 드러몬드가 미국의 실질적 지배자 로빈슨에게 제시해 보이는 인류의 미래가, 새로운 형태의 인간성을 긍정하는 세계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의 씨앗이 될 지에 대해 작가 폴 앤더슨은 끝내 판단을 유보한다.

   누가 상속자인가Heirs Apparent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메가 워 이후, 마지막 공산주의자와 마지막 자본주의자의 대립 구도를 기본 배경으로 해서 종국에는 유목 민족과 정주 민족의 갈등이라는, 이념적 차원의 대립보다 훨씬 오래되고 심원한 원형적 형태의 갈등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에는 반 조직적, 반 기술적 성향이 잠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러한 성향은 문명을 너무도 쉽게 폭주시키는 인간의 경향성에 대한 원초로부터의 경고가 아닐까? 읽고 난 뒤에는 독자로 하여금 그러한 자문을 하게끔 만든다. 작가가 미국 태생이라 그런지 공산주의자 측의 입장이 너무 설득력 없이 그려졌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 “…아시아에서 찾아온 끝없이 어두운 날개가 평원에 내려앉았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언뜻 ‘사상 최고의 정복자’ 칭기즈 칸의 지휘 하에 몽고 기병들이 유럽을 말발굽으로 짓밟을 때 기사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바빌론의 물가에서By the Waters of Babylon
   작가, 스티븐 베네는 이 책에 작품을 실은 작가들 중 유일하게 핵의 파괴를 보지 않고 죽었다는 사실이 우선 독특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는 뛰어난 과학적 통찰력으로 재앙 이후의 먼 미래상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SF에 대해 별반 관심도 지식도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수월히 읽힐 만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신화 SF의 바운더리 사이에 위치한 인상적인 작품.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There Will Come Soft Rains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To the Chicago Abyss
   별개의 작품이지만, 각자 다른 주제를 변주하면서 마치 한 작품처럼 읽힌다(두 작품 사이에는 13년의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는 더 이상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평원에 홀로 남겨진 빈 집―――아마도 중성자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을 지키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 하인들의 하루를 담담하게, 그러나 약간 슬프게 그리고 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주인 일가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혹은 주인 일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맞춰 지정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빈 집의 모습은 애상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는 반대로 인간들은 대다수 살아남았지만 모든 물자가 극단적으로 부족해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 세계에서 ‘담배’나 ‘전화기’, ‘구두’ 같은 물건은 탐욕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간절히 원하지만 누구도 손에 넣을 수 없는, 아련한 전설 속의 상징물처럼 여겨진다. 그 희구에 지친 나머지, 사람들은 옛 시대에는 너무도 풍족했던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입에 담는 이에게 린치를 가함으로써 그를 잊고자 한다. 91년, 한국의 어떤 가수는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발렌타인 데이, 까만 머리 까만 눈의 사람들의 목마다 걸려 있는 넥타이, 어느새 우리를 둘러싼 우리에게로 오지 않는 것들, 우린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라고 읊조리며 스스로 만들어낸 물질에 의해 소외되는 인간을 노래했다. 메가 워 이후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풍족함은, 빈곤함은, 물질은, 정신은, 과연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인간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 것인가를 반추해 보게 만드는 작품.

   루시퍼Lucifer
   창세기에 의하면, 무위의 혼돈만이 가득하던 허공에 홀로 존재하던 야훼가 처음으로 행한 창조는 간단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빛’은 일반적으로 선, 계몽, 지식, 진리, 그리고 신성을 의미하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다.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화가 될 수도 있는 이러한 상징성을, 로저 젤라즈니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한 때 수많은 이들이 서로 사랑했고, 증오했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았던 도시. 참화가 휩쓸고 간 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 가운데의 거대한 건물에서 홀로 전선을 잇고 발전기를 돌려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주인공의 모습. 단 93초 간 불빛을 밝혀낸 뒤 “내가 널 살려냈어!”라고 환호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독자들은 야만의 어둠에 대항하는 인간 의지의 숭고함을 읽어낼 테고, 또 어떤 독자들은 새롭게 바뀐 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지 못하고 옛 문명의 기억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된 자의 숙명을 읽어낼 것이다.

   동쪽으로 출발!Eastward Ho!
   서사를 이끌어 가는 톤이나 디테일에 있어서는 저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세계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대다수인 이 책에서, 이 작품은 가장 이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전쟁의 피해가 비교적 국지적인 선에서 그쳤으며, 빠르게 문명 복구가 이뤄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게 없지만, 메가 워의 재앙은 대도시를 이루고 살던 백인들에게 주로 닥쳤고 평원에서 부족 사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살고 있던 미국 원주민들이 강대한 연합을 이루어 신시대의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서부 정복시대 당시 백인과 원주민 간의 관계를 역전시켜 놓은 듯한 사회상 묘사나 원주민 추장 이름이 ‘수소폭탄 세 개’라는 등의 디테일이 눈길을 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대체 역사 소설 같은 느낌으로 읽히는 작품.

   성聖 재니스의 향연The Feast of Saint Janis
   이 책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상당히 어둡다. 그러나 그 어둠은 절망과 암울에 웅크리고 있는 이의 어둠이 아니라 열정과 혼돈에 찬, 완만한 멸망의 내리막을 향해 가며 춤추는 군중들의 어둠이다. 사회공학적인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대중의 퇴폐와 혼음을 부추기는 정부와 그 정부에 의해 간택된, 대중을 구원하는 ‘성녀.’ 대대로 재니스 조플린의 이름을 이어 받으면서 마약과 술로 스스로의 영혼을 깎아 가고, 그 깎여진 잔해로써 숱한 군중들을 열광케 하고, 환희케 하는 노래를 만들어내 선사하는 여가수들. 마이클 스완윅은 이 작품에서, 생전 전설적인 명성을 날렸으며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블루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격정적인 생애를 대재앙 후 세계의 헤게모니를 아프리카에 넘겨준 미국에 투영해서는 독특한 사회적, 문화적 성찰을 선보인다. 대단히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는, 여러 번 재독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그대를 어찌 잊으리, 오 지구여……If I Forget Thee, Oh Earth……
   거장에 의해 쓰여진 소품. 그러나 이 짧은 분량 속에는 방사능의 열지옥으로 변한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의 작은 콜로니에서 명맥을 유지해 가는 인류의, 모행성에 대한 더 없이 간절한 그리움이 잘 그려져 있다.

   소년과 개A Boy and His Dog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누가 상속자인가}지만, 가장 뛰어난 작품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난 거리낌 없이 이 작품을 꼽을 것이다.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서 이미 [1984]쯤은 휴양지로 보일 정도로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바 있는 할란 엘리슨은, 이 작품에서 한번 더 그 두려울 정도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서두에 붙어 있는 “40세 미만의 어린이는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부모의 지도를 받을 것. 여성이 읽는 것은 자유지만 살아서 독서를 끝낼 수 있을 지는 책임지지 않음.”이라는 경고문은 확실히 과장된 것이지만, 대단히 강렬하고 탁월한 작품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結-
   서두에서 잠시 언급했다시피, 동서 냉전은 종식되었고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종말의 공포는 이제 희미해졌다. 2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기존에 믿어져 온 모든 가치가 부정되고, 그 폐허에서 탄생한 포스트 모더니즘도 이제는 후기(後記)로 넘어왔다. 21세기의 여명 속에서 인류는 전쟁이나 기아 같은 물리적인 차원의 위협 대신 세계를 통합하는 새로운 흐름―――정치적으로는 파시즘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미국적 질서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의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주로 나타나지 군사적 차원에서는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시의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념의 갈등이 사라지고 이익의 대립이 그 자리를 대체한 이후, 용도폐기되었던 이성은 무덤에서 부활했다. 그러나 그 이성의 모습은 근대와는 달랐다. 이성과 합리성 자체가 인성의 증거이며 존엄한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그 시절과는 달리, 현대에 부활한 이성은 근본적으로 인지 가능한 모든 대상을 범주화, 세분화하고자 하는 ‘태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논리성’과 ‘합리성’은 어떤 종류의 도덕이나 윤리도 하찮게 여겨지게끔 하는 냉혹함으로 탈바꿈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당시의 기준으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 끝에 내려진 결단’이었던 핵전쟁이 어떤 광기와 파국을 유발했는지는 생각해 볼 가치가 있으며, 한발 더 나아가 메가 워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읽으며 이성의 어두운 단면을 반추해 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리라고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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