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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탠드

2008.01.25 22:2101.25





revinchu@empal.com   종말, 그리고 끝의 시작



△ 스티븐 킹의 역작 중 하나인 『스탠드』. 황금가지 전 6권으로 출간되었다.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남자가 가족들을 데리고 차를 몰고 있었다. 그 남자의 안색은 안 좋아 보이고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침이 인류 종말의 서막이었다.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스티븐 킹의 역작 『스탠드』(황금가지 출판,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전 6권)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1권 바이러스’ 편 앞표지에는 책 본문에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샐리는 남편을 따라 15년 된 자가용 시보레가 서 있는 차도로 나섰다. 동 틀 무렵 그들은 네바다 주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고, 찰리는 연방 기침을 해 대고 있었다.

그것은 인류 멸망을 알리는 기침이었다.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고 인류가 이륙한 문명을 모조리 파괴하는 병의 시작. 그 병의 이름은 캡틴 트립스였다. 결국 종말은 인류가 자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악마가 나타나서 병을 퍼트린 것도 아니고, 신이 나타나서 홍수를 퍼부은 것도 아니니까. 전염병인 세균 무기를 만든 것은 미군이었고 그것이 불의의 사고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홀을 더 내려가니 한 남자가 닫힌 문에 등을 대고 기대고 앉아 있었고, 표지판이 그의 목둘레에 신발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의 턱이 앞으로 숙여져 표지판에 적힌 글을 가렸다. 스타키는 손가락을 남자의 턱 밑에 대고 머리를 뒤로 밀어올렸다. 그러자 그 남자의 눈알들이 고깃덩어리인 양 자그맣게 철퍽 소리를 내며 머리통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표지판에는 빨간 매직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이 ‘효과 만점이라는 건 다들 아셨겠지. 더 질문하실 분?’ ― 스탠드 1권, 372쪽

  네바다 사막의 생화학전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 블루가 명명된 세균. 그것의 증상은 독감과 비슷하지만 치명적인 살상력은 99.4%에 이른다. 또한,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감과 유사하기 때문에 처음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게다가 모두 독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균이 퍼져나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이토록 섬뜩하리만치 무섭게 묘사된 종말을 본 적이 있는가? 그야말로 모두가 감기에 걸려 죽어버리고 마는 세상이라니.
  『스탠드』 1권은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게 되었고, 각각의 주인공은 그전에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비쳐준다. 어쩌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야 하는 부분인데 오히려 이 부분이 재미있다.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묘사가 시원하면서도 자연스럽고 또 그게 오히려 설득력을 가져서 무섭기까지 하다. 인간의 목숨이 순식간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그럴싸하게 잘 그려냈다. 스티븐 킹의 역량이 최고조에 달할 시점에서 쓴 초기 장편 중 하나이므로 그의 왕성한 필력도 잘 느낄 수 있다.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나 주위 묘사 그리고 상황 들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갑작스런 전염에 의해 인류가 종말을 맞는 모습은 그동안 상상해 왔던 핵폭발의 위험이나, 환경 위기, 혜성 충돌, 외계인 침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인데 어떤 면에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르는 풍경이기도 하다. 갑자기 눈이 머는 현상이 일어나고 전염성으로 의심되자 군대가 출동해서 사람들을 가두고 나중에는 군인은 물론이고 도시 전부가 눈이 멀어 모든 행정이 무너지고 인간들이 원시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탠드』에서도 처음에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인들이 강제로 도시를 격리시킨다. 그러나 결국에는 99.4%라는 치명적인 전염률 때문에 군인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어버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종말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남은 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스티븐 킹이 그린 종말의 풍경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실적이다. 만약, 터무니없이 허황되었다면 그토록 긴장감 있고 흡인력 있는 초반 전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리얼리티를 지향하고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가진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자신이 즐겁고 또 독자가 즐거워 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암울한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긴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종말 이후에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벌이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주제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양상은 훨씬 복잡해졌고 이야기는 지리멸렬해졌으며 재미없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이 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종말의 풍경을 그리고자 했다. 선과 악의 맞대결이라는 간결하고 선명한 이야기를 말이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밤공기 속에서 거의 맛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그것을 맛볼 수 있었으니, 사방에서 몰려오는 그을음투성이 뜨거운 맛이었고, 마치 신께서 야외 파티를 준비 중이신 관계로 모든 문명이 바비큐가 돼 버릴 것 같았다. 이미 숯의 바깥쪽이 뜨겁게, 하얗게 쩍쩍 갈라졌고, 숯의 안쪽은 악마의 눈처럼 시뻘겠다. 거대한 것, 장엄한 것이었다.
  그가 모습을 바꿀 시기가 가까워졌다. 그는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었고, 어느 장엄한 모래 빛 야수의 출산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궁으로부터 밀려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 야수는 벌써 자궁 수축의 진통 속에 드러누운 채, 분만을 예고하는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올 때마다 천천히 다리를 움직이며, 태양같이 뜨거운 눈으로 텅 빈 공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 스탠드 1권, 383-384쪽


  그 암시는 1권 말미에서 나타난다. 복잡하게 쓸 것도 없이 간단한 그 이름 다크맨. 수많은 이름을 가져왔지만 이 시대에는 랜들 플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1권 마지막 장인 23장에 등장하는 그 자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선한 무리와 악한 무리가 종말 이후의 세상에서 벌이는 대립 구도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이것이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보여 지는 종말 이후의 모습들을 소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까지. 작가가 어떻게 이 소설을 기획하게 되었는지는 『죽음의 춤』이라는 책을 아직 번역되지 않아 모르겠지만,(작가는 서문에서 공포문화비평서인 『죽음의 춤』이란 책에 『스탠드』의 탄생 비화가 언급되어 있다고 밝혔다.) 분명 성경에 나오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들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성경에 묘사된 종말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도 한번쯤은 소설로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는데 작가도 같은 욕구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스티븐 킹은 그것을 멋지게 성공해냈다. 1, 2권에서 보이는 종말의 모습은 오히려 지나치게 사실적이기까지 해서 후반부에 나오는 선악의 대결 구도가 어색해지고 종교적인 언급이 이상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이 때문에 앞에 1, 2권만 읽고 끝까지 영적이거나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적인 이야기들로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후반부에 들어가서 종교적 이야기에 불일치를 느끼고 실망하는 경우까지 생겨난다.



  △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 올해로 61세를 맞이한다. 아니, 작가는 작년에 60세를 맞이한 소감 글에서 60세부터 거꾸로 나이를 먹겠다고 밝혔으니 59세인 것일까?


  애틀랜타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의 정면에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로 적힌 낙서.
  ‘사랑하는 주님께. 제가 머지않아 주님을 만나 뵐 것 같습니다. 주님의 친구 미국 올림. 추신. 이번 주말쯤에 빈방을 넉넉히 준비해 두시면 좋겠어요.’ ― 스탠드 2권, 95쪽


『스탠드』 2권 ‘학살’은 전염병이 어느 정도 퍼진 상태의 세상을 보여준다. 잔인하고 섬뜩한 인간의 내면이 그대로 보여 지면서, 실제로도 저런 상황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공감이 든다. 사람들은 종말이 일어나면 서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진실을 스티븐 킹은 소설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것도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면서 속도감 있게.

  1권과 마찬가지로 2권도 볼륨이 상당하다. 그만큼 분량이 많지만 금세 읽어 내릴 수 있다. 이야기의 속도는 아주 빠르고 문체 역시 간결하고 리듬감이 있어서 탁탁 치고 나갈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야기가 2권에 걸쳐 펼쳐지지만 눈을 돌리게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빠져들게 만든다. 이야기가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을,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닫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2권에서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새롭게 길을 떠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그들이 전부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는 언제 이들이 모두 모이게 될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1권 말미에서 등장했던 다크맨은 또다시 2권 말미에 그 모습을 잠깐 드러낸다. 신비로운 모습을 가진 그의 모습은 앞으로의 대결을 암시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둘째, 나 자신의 꿈들. 토론을 마치고 나서 어젯밤 전까진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 아기처럼 곤히 잠들었고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고. 어젯밤 처음으로 그 늙은 할머니 꿈을 꿨어. 이미 일기에 적어 놓았던 것 이외에 더 추가할 말은 없어. 다만 할머니가 근사하고 온화한 기운을 발산하는 듯 보였단 말은 해 둬야겠어. 해럴드가 빈정댔는데도 스튜 씨가 왜 그리도 네브래스카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지 이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오늘 아침 난 완벽하게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나면서 만약 우리가 늙은 할머니, 마더 애버게일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일 거란 생각을 했어. 그분이 정말로 그곳에 계시다면 좋겠어.(그런데 말이지, 난 그 마을 이름이 헤밍포드홈이라고 굳게 확신해.)
  기억해 둘 것 : 마더 애버게일!  ― 스탠드 3권, 310-311쪽


  『스탠드』 3권의 부제는 ‘애버게일의 노래’이다. 3권에서는 다크맨에 반대되는 선한 무리의 대표 애버게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전까지는 꿈에서만 등장했던 애버게일이 어떤 인간인지 자세한 내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지루하기보다는 흥미로웠고 이렇게 한 캐릭터마다 각각의 사연과 개성, 그리고 사고관, 내면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스티븐 킹의 능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스탠드』의 매력이자 재미의 한 축이며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였다. 또한, 주인공 중 한 명인 닉이 드디어 애버게일과 조우한다. 닉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독자들에게 가장 호감을 많이 사는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라 짐작되는데 착하고 침착하며 영리한 캐릭터임은 물론이고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한다는 장애를 안고 있음에도 종말의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멋진 캐릭터 때문에 소설에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여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된다. 꼭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이들의 삶을 그저 지켜보고 싶은 마음. 또는 소설 속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창조되었고 친해지고 싶은 유명 스타와도 같이 보인다. 현명하면서 때론 감정적이 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영락없이 실제 우리 세계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들 같기 때문이다. 추가로 3권에서 기억해 둘 것은 프래니의 일기장이다.


  스튜: “랠프 형님?”
  랠프: “글세. 나도 그다지 맘에 들진 않지만, 닉이 지지한다면, 따르겠어. 찬성.”
  스튜: “래리?”
  래리: “솔직한 답변을 원하십니까? 저는 그 아이디어가 끔찍하게도 역겹다고 생각하고, 꼭 공중변소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 게 바로 높은 자리에 있으면 감당해야 하는 종류의 고민인 것 같군요. 높은 자리란 지독하게도 산뜻한 곳이네요. 저는 찬성에 투표합니다.”
  스튜: “발의가 통과되었습니다. 5대 2.”
  프랜: “스튜?”
  스튜: “응?”
  프랜: “제 투표 결과를 바꾸고 싶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로 톰 컬런 씨를 그곳에 보낼 거라면, 뜻을 한데 모으는 편이 낫겠습니다. 제가 너무 설쳐서 미안해요, 닉.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거 알아요. 당신 얼굴 표정으로 알 수 있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왜 이런 의견이 나와야 하는 걸까요? 여학생 클럽의 댄스파티 위원회처럼 편한 자리는 분명 아니로군요. 그건 확실하네요. 프래니는 찬성에 투표합니다.”
  수전: “그렇다면 나도 동감. 공동 전선을 이뤄야지. 닉슨 대통령이나 혼자서 독불장군 행세를 하는 법이니까. 자기는 나쁜 놈 아니라고 말하면서. 찬성합니다.”
  스튜: “수정 투표로 7대 0이 됐습니다. 손수건 여기 있어, 프랜.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의사록에 남기고 싶소.”
  래리: “그런 꼴사나운 기록을 남기려 하다니, 회의를 폐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전: “나도 그 심정에 동의합니다.”
  스튜: “폐회해야 한다고 투덜이와 투덜이 엄마가 발의를 하고 동의했습니다. 찬성하시는 분들, 손 드세요. 반대하시는 분들, 캔 맥주가 머리로 날아가는 거 각오하시고.”
  폐회 투표는 7대 0으로 찬성. ― 스탠드 4권, 288-289쪽


  『스탠드』 4권의 부제는 ‘다크맨’이다. 이 4권에서는 소설 속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쓰레기통맨의 여정이 첫 부분에 담겨 있다. 원래 처음에 출간되었던 삭제본에서 특히나 많이 삭제되었던 부분이다. 그만큼 실제로 다른 부분들에 비해 지루하고 재미없는 부분이었으나, 쓰레기통맨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다크맨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부분 등에서 중요한 파트 중 하나일 것이다. 없어도 무방한 부분이지만, 있다고 해서 크게 문제 있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으로 보였다.
  4권에서는 다크맨을 중심으로 모인 도시의 모습도 일부 비쳐주고 있다. 그 다음은 볼더에 모인 애버게일을 중심으로 한 자유지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크맨을 중심으로 악한 무리가 모인 도시와 반대되는 이곳에는 드디어 주인공들이 전부 만나게 된다. 1권부터 3권까지 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했던 주인공들이 마침내 한 자리에 다 모인 것을 보면 독자로서 왠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임시위원회까지 만들어 볼더 자유지대를 위해 다양한 사안을 의논한다. 4권에서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서기가 쓴 것을 발췌한 형식으로 묘사 없이 각 캐릭터들의 발언만을 담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쉽게 읽히고 또한 토론의 내용 또한 재미있었다. 각 캐릭터의 성격대로 적절하게 나오는 대사들과 주인공들이 여러 대사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참 재미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어리게만 혹은 어리석게만 보였던 캐릭터들이 어느새 성장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방황하고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찌질하던 래리가 어느새 임시위원회에서 인정 받을만한 무리의 리더가 되다니. 처음부터 책을 읽어온 독자는 정말 뿌듯한 감정마저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캐릭터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정이 갈 수밖에 없다.


10시경 스튜 레드먼, 글렌 베이트먼, 랠프 브렌트너가 그들 무리에 조용히 찾아와 전단을 나눠 주면서, 오늘 밤 여기에 없는 사람들한테 전단의 내용을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렌은 약간 절뚝거리고 있었는데 폭발로 날아든 가스레인지 손잡이가 오른쪽 종아리 살점을 한 덩어리 도려냈기 때문이었다. 등사한 포스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유 지대 집회 * 문칭거 회관 * 9월 4일 * 오후 8시.’
  그것이 그 자리를 떠나는 신호인 듯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 갔다. 대개는 전단을 손에 들었지만, 꽤 많은 이들이 구겨서 내버렸다. 그들은 모두 잠을 이루려고 집으로 돌아갔다.
  또는 꿈을 꾸려고. ― 스탠드 5권, 313쪽


  『스탠드』 5권의 부제는 ‘배신자들’이다. 부제만 보고는 큰 반전이나 중요한 내용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소설을 차례대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므로 부제가 스포일러가 되거나 그렇지는 않다. 배신이라는 행위를 벌이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타당하게 잘 그려졌던가? 한 명은 1권부터 차분하게 그려왔기에 자연스럽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도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 같다는 방황을 하기 때문에 더욱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다른 캐릭터는 후반부에 등장했고 내면 묘사도 혼란스럽기만 했으며 이번 권에서 나오는 과거 이야기도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선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이유와 묘사가 있었다면 후자의 캐릭터는 영적인 요소가 결합된 배신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이 소설의 전체 구조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적인 종말의 묘사와 신비롭고 암울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종말 이후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프래니.”
  스튜가 몸을 돌려 프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인데, 스튜어트?”
  “너는…… 너는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에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
  프랜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머뭇거리더니 침묵에 빠졌다. 등유 램프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프랜의 눈빛이 매우 우울하게 보였다.
  “나는 모르겠어.” ― 스탠드 6권, 445쪽


  그리고 대마의 마지막 권. 6권은 다른 5권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 분명 5권에 걸쳐 진행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분량이 필요하리라. 그러나 사실 분량이 모자른 감도 있다. 이야기의 결말 방식이 만약 달랐다면 몇 권에 달하는 분량이 더 필요했으리라. 그러나 이 소설은 종말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장황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선과 악의 최후의 대결이 어떻게 끝맺음을 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종말을 맞는 것도, 선악의 대결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도 결국 모두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또 다른 자신인 혹은 친구 같은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내면의 모습들을 지켜본다.
  모든 소설은 결국 인간을 이야기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종말 이후의 세상에서 선악의 대결이라는 배경 속에 인간을 던져놓았다. 어떤 작가는 소설이란 인간을 어떤 시뮬레이션에 돌려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말세 속에 인간들을 던져 놓은 것이다.
  결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어느 정도는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다. 사실 소설 속에서 톨킨의 작품인 『반지의 제왕』을 언급하는 부분이 두 세 차례 있었고 그 영향 때문인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상황 등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만약 종말을 맞는다면?’ 이라는 아이디어에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도 세심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이 소설의 진짜 재미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끝이 결코 장엄하거나 대단하게 끝나지는 않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고, 독특한 결말이 나올만한 장르의 소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다.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끝내 인간들이 과연 잘못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읊조리는 부분이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살아남아 다시 세상을 재건할 것이다. 또다시 혼란이 찾아오고 전쟁이 일어나겠지만, 어쩌면 인간들은 과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캐릭터인 해럴드가 중반부에 지적했듯이 일단 그들 중에 누군가가 역사서를 써야하겠지만.
  책 뒤표지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전 세계 3억 독자를 사로잡은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 이 작품을 보노라면 공포의 제왕이라는 말보다 이야기의 제왕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작가다. 물론 그는 공포 소설에 뛰어난 작가지만, 이 작품은 공포보다도 다른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종말의 묘사와 매력적이고 사랑스런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이 경이롭기까지 함은 물론이다. 6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은 아마 세상에 흔치 않을 것이다. 어째서 『스탠드』가 스티븐 킹의 초기 대작 중에 하나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고, 또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매체가 소설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 너무나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아직 소설로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은, 이런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우리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61세가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꾸준하게 자기 생일도 빠짐없이 한 자, 한 자 글을 적어 마침내 소설을 완성하는 작가. 30년 동안 꾸준하게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 지금 시대에 태어나 이런 작가와 동시대에 호흡하고 있고 또 그의 작품들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또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 스티븐 킹의 신작 『DUMA KEY』의 표지. 미국에서 1월 22일 출간 예정.

  『스탠드』 6권의 마무리는 평을 살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무난하다고 느꼈지만 100% 만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1권부터 다크맨이 공중 부양 등 영적인 능력을 선보였고 2권에 들어서면서 마더 애버게일과 다크맨은 각자 사람들에게 똑같은 꿈을 꾸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런 영적이고 신비한 요소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신비한 능력과 영적인 것이 이야기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너무 허무하기만 할 테니까.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이야기이고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 따라 결말이 결정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손’ 같은 부분은 개인적인 취향 문제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런 것이 없이 넘어갔어도 그냥 보이지 않는 섭리 등으로 은근히 나타내는 게 더욱 매력적이고 소설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이 아닌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표지는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각 권마다 표지가 바뀌는 점도 좋았고 디자인이나 편집도 괜찮았다. 6권으로 분책은 전부 구입하기에 책값이 만만치 않게 만드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분량이 정말 많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오타도 적은 편이었다.
  번역은 일단 깔끔하고 맛깔났다. 스티븐 킹의 문체를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 역자가 많이 노력한 티가 났다. 특히 욕설이 많은 소설이었는데 그것을 날것 그대로 잘 번역한 것 같았다.(사실 처음에는 낯설어서 붕 떠 보이고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읽어나갈수록 익숙해지고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러워졌고.) 역자의 인터뷰를 보니 절대 완화 하거나 표현의 수위를 낮춘 것이 없다고 하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독자 입장에서 왜곡된 글을 읽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원서를 볼 수 없을망정, 원서의 내용 그대로를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전체 6권이 마침내 전부 번역된 무삭제본 『스탠드』.(예전에 『미래의 묵시록』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은 삭제본이었다고 한다.) 왜 독자들이 최고로 꼽는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애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다 읽고 나서 책을 쭉 꽂아놓으니 그 분량이 장난이 아니다.(다크 타워 시리즈를 논외로 치면 스티븐 킹의 단행본 중에 가장 많은 분량을 가진 소설이다.) 그런데 이토록 정말 긴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다 읽은 기분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작가의 놀라운 필력, 엄청난 흡인력, 개성 넘치는 캐릭터, 사실적인 묘사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읽고 싶어 하던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인 스티븐 킹이 이야기하는 종말의 이야기.



△ 스티븐 킹이 뽑은 2007 최고의 미국 드라마 1위. 『로스트』.

  영상으로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예전에 MBC TV에서 <미래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을 방영한 적이 있다고 하나 못 보았고, 현재 DVD로 발매 계획도 없다. 새로운 드라마로 기획되어도 현재의 기술력과 자본이면 엄청난 드라마 시리즈가 한 편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스티븐 킹의 『스탠드』에 많은 영향을 받은 『로스트』 같은 드라마도 있지만 말이다. 로스트 제작진은 실제로 스티븐 킹과 친하고 스티븐 킹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실제 드라마가 많은 영향을 받았고(상황 배경은 다르지만, 유사점들도 상당히 많다.) 또 스티븐 킹이 최고로 선정한 드라마 역시 『로스트』라고 한다.(현재 『로스트』는 시즌2까지 보고 안 봤는데 이 소리를 듣고 당장 시즌3까지 보겠다고 결심했다. 스티븐 킹이 최고로 꼽는 드라마라고 하니 왠지 꼭 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또한 『스탠드』를 다 읽고 나서 허탈한 감정을 어느 정도 무마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아쉬운 감정도 많이 든다. 이제 어느새 정든 캐릭터들과 이별이라니 말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한다. 작품의 끝이 그런 암시를 보여주듯이, 이제 아직 읽지 못한 스티븐 킹의 다른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스티븐 킹은 꾸준히 지금도 쓰고 있지 않은가?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말해준다.
  종말 이후에도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듯이, 새로운 매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서도 소설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를 속삭여 줄 것이다. 자, 들어봐. 어떤 남자가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있었어. 그런데 그 남자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기침을 하고 있었지. 그 남자가 감기에 걸린 것일까? 독감? 아니야. 그건 바로…….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지루한 일상 속 다른 세계를 체험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가.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한가. 종말 이후의 모습이 궁금한가. 인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여기, 그 모든 이야기가 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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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n 08.01.25 23:05 댓글 수정 삭제
    다크타워 시리즈가 곧 나온다 하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듯도... 사실 전 스탠드보다 다크타워가 더 좋더라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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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1.26 01:04 댓글 수정 삭제
    셀과 리시 이야기에서 완전 좌절. 여섯 권이나 되는 신간을 찾아봐야 하나에 조금 고민 중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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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그리 08.01.30 12:24 댓글 수정 삭제
    아! 2권까지만 나온걸로 알고 있었는데.. (무지가 죄요.. ㅠㅠ) 언능 사서 봐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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