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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gmail.com1. 다시 쓴 동화 모음집

대틀로와 윈들링 콤비는 우리나라에서 [마법에 걸린 동화]로 처음 번역 소개된 후, [2004 세계 환상 문학 걸작 단편선]으로 알려졌다. 그로 인해 장편 위주의 판타지 풍토에서 다양한 단편소설에 목말라 하는 판타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런 기대하에 선보인 이번 단편집은 약간 타깃(독자층)을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안타까운 작품이다.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본서의 원작인 [A Wolf at the Door]와 [Swan Sister]는 ‘Fairy Tales Retold’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이게 바로 [Snow White, Blood Red]를 필두로 한 동화 앤솔로지 시리즈와 선을 긋게 만드는 부분이다.
즉 원래 동화 앤솔로지 시리즈는 ‘동화를 바탕으로 쓴 판타지 단편집’이라면 이번 원더 월드의 원작이 된 두 권은 ‘동화를 바탕으로 다시 쓴 동화’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권이 장르문학 쪽에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 것이 당연하며, 인터넷 서점 등에서 볼 수 있듯 독자들의 반응이 그리 좋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판타지 단편집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막상 수록된 작품은 패러디 동화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판형을 바꾸거나 동화책으로 재편집하여 초등학생 대상으로 선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일 듯하다. 성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류의 동화 다시쓰기는 아무래도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다.



2. 동화 다시쓰기의 세 조류

동화를 소재로 한 재창작 단편집은 종래의 잔혹함을 되살린 것,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으로 다시 쓴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여기서 자의적인 관점으로 동화의 재창작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자면, 무대를 현대로 바꾼 현대판 동화, 동화의 소재를 차용하거나 내용을 패러디하여 새로 쓴 것, 기존 동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거나 주인공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용 비틀기라 할 수 있다.
원더 월드의 수록작을 위와 같은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이렇게 나눌 수 있다.

현대판 동화
맨해튼의 열두 달, 알리 바바와 40인의 외계인, 핸젤의 눈, 틸포드 포츈의 아이들, 작은 삶, 백조 동생

새로 쓰기
재투성이 코끼리, 백조, 춤추는 열두 공주, 녹색 아이, 황금 털붙이

동화 비틀기
빅부인, 팔라다, 돌아옴의 일곱 단계, 빨간 망토 소녀와 못돼 먹은 덩치, 깨어남



3. 개별작 소개

수록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보았다.

문가의 늑대 | 타니스 리
먼 미래, 빙하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물우화. 사자를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해 퇴물이 된 존재, 늑대를 변화를 거부한 야생의 자연체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키스(길들임)를 받아들인 야생동물은 유약한 애완동물이 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작품은 자연과 야생을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그걸 (자신에 맞게) 변화시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핸젤의 눈 | 가스 닉스
현대를 무대로 쓴 동화 패러디라는 점에서는 새로울 게 없지만, 과자 대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남매가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로운 모험을 예고하는 결말은 전례가 없어 흥미로웠다.

캐리스 되기 | 케테 코자
기존의 동화 다시쓰기 시리즈에서 찾기 힘든 유형의 글. 동화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서 동화나 판타지와는 무관한 일반적인 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미운 오리새끼와 아인슈타인이 비슷한 위치에 존재할 수 있는 꿈과 희망의 세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에 있어 동화의 범위와 의미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준다는 점에서 하나쯤 꼭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고기 이야기 | 팻 요크
우리가 익히 아는 ‘어부와 아내’ 이야기의 완결편? 그 이야기가 배경이 된 상태에서 마법 물고기가 한 소녀를 만난다. 착안 아이, 괴롭히는 인물(과 그에게 내리는 형벌), 소박한 행복, 되찾은 가족 등 다른 동화의 소재들을 적절히 엮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다락방 소녀 | 로이스 메츠거
레드북의 {캐리스 되기}처럼 얼핏 봐서는 동화의 재창작임을 알기 힘든 글. 그러나 원하는 건 늘 곁에 있으며, 마음의 변화가 행복으로 가는 열쇠라는 점에서 동화의 교훈을 품고 있다.

백조 동생 | 캐서린 바즈
미숙아를 포함한 장애아에게 바치는 연가로 현대판 동화가 보여주는 기적과 감동의 이야기. 판타지의 장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압도적인 경이감과 더불어 아련한 애상을 전해주는,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
댓글 1
  • No Profile
    제가 본 동화를 정치적으로 다시 쓴다거나 한 것들, 대부분이 원래 재미가 상실되면서 그렇다고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그냥 새로 창작한 것보다 못한 경우들이 많았는데, 제 경우 이 두 권은 꽤 흥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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