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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베오울프

2007.11.30 23:1811.30





pilza2@gmail.com1. 굵고 짧은 정통파 판타지

우선,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몰라도 상관은 없을) 사항들.
* 이 소설은 영화 베오울프와 거의 동시에 나온, '무비 타이업' 소설이다.
* 영화의 원작 소설은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시나리오를 그대로 소설로 옮긴 것도 아니다.
* 그러나 그 중심 구성은 원전인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와 굉장히 흡사하다(의외로 원작에 충실한 셈).
* 그래도 원전과의 결정적 차이점이자 제작진(작가)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원작에서는 베오울프가 그렌델과 어미를 물리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왕이 된 후 용과 싸웠는데 여기서는 적을 물리치고 그대로 그 나라의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 이러한 차이점이 원전과 이 소설/영화가 품은 의식, 세계관,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시발점이 된 셈이다. 원전이 신화, 영웅, 권선징악, 승리와 영광을 이야기한다면 소설은 나약한 인간, 슬픈 괴물, 신화시대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 유명세 덕분에 닐 게이먼이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케이틀린 키어넌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 게이먼은 원작 영화의 시나리오와 설정만 제공하고 키어넌이 실제 소설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렇다고 글이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어쨌든 둘의 공동저작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이 작품은 1권짜리 판타지라는 짧은 분량의 작품이지만 사건 자체의 중량감이 남달라 한 마디로 '굵고 짧은' 이야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1부와 2부의 사이에 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데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레 이해하게끔 만든다.

이런 특징이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한 위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1~2권짜리 분량의 판타지 소설은 번역작밖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나라의 판타지 소설은 대하 시리즈화되어 있다. 더구나 환협지니 퓨전이니 게임 판타지니 하여 판타지, 무협을 섞는 건 기본이고 온라인 게임과 밀리터리를 할 수 있는 한 많이 뒤섞고 패러디하고 뒤집어야 새로운 것처럼 여겨지는 흐름, 파티를 구성해서 돌아다니는 모험담에 군사를 이끄는 대규모 전쟁까지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 한 영웅의 짧은 두 개의 모험만을 다루는 '심플'함은 오히려 독특해보이기까지 하다.

또한 그리스와 인도의 신이 동시에 등장하는 등 세계 각지의 신과 괴물의 이름을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또 그래야 왠지 멋지고 특이해 보일 것만 같은 몰개성적인 퓨전 판타지의 시대에서 오직 북유럽의 세계관 하나만을 깊고 치밀하게 다룬 짧지만 우직한 '왕도' 정통파 판타지 소설이 어떤 위치를 점할지,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흥미롭다.



2. 『13번째 전사』와 『베오울프』

그동안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를 원작으로 재창조한 작품은 영화와 소설을 통틀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면서 신선한 재해석을 가미한 작품이라면 마이클 크라이튼의 『13번째 전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13번째 전사』는 베오울프 서사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픽션이면서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가정하에 이슬람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상의 모험담을 번역한 작품이다. 거짓 사실주의 기법으로 이븐 파들란이라는 실존 인물이 남긴 수기를 번역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펼쳐진 이 소설에서 성을 습격한 괴물은 1500년 전이라는 '최근'까지 생존한 네안데르탈인의 후예이며 용은 그들이 횃불로 만든 존재라는, 서사시를 시대고증과 SF적인 상상력에 의한 이성과 논리로 재구축한 야심찬 시도였다.

때문에 이야기의 구조는 영웅이 괴물을 퇴치하지만 죽음을 맞아 동료들이 장례를 치르고 귀향하는 등 원전과 상당히 달라졌고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원전과 달리 이슬람교와 북유럽 신화의 만남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베오울프』는 이미 기독교 전파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원전과는 달리 기독교가 막 침투하기 시작하여 북유럽 신화와의 만남과 대립을 잠깐 언급하긴 했으나 기본적인 세계관과 얼개는 유사하다. 따라서 둘을 원전과의 유사점으로 비교하는 건 우위를 논하는 근거가 되기에는 약할 것 같고, 원전의 설정(?)만을 차용하여 거짓 사실주의로 재창조한 것이 전자, 원전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상상력을 동원하여 판타지로 재구축한 것이 후자, 라고 구분짓는 게 적절할 것이다.



3. 자연 대 인간, 신화 대 문명

백야(白夜)와 극야(極夜)의 땅, 혹한의 겨울이 닥치는 북유럽의 각박한 환경, 그곳에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높은 성을 쌓고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정복을 떠나는 바이킹이 되었다. 북유럽 사람들에게 야생의 존재는 무서운 괴물이며 태양도 늑대에 쫓길 정도로 험난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인생은 곧 싸움이며 삶은 전쟁이다. 늘 쫓고 쫓기며 전쟁을 치르며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는 북유럽의 신화 자체가 북유럽의 환경을 상징한다.

이러한 북유럽의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존재인 그렌델과 물의 여인, 그리고 용은 인간인 베오울프에게는 해치워야 할 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공포와 피해를 주는 괴물을 퇴치(자연을 극복)하고 국가를 재건(문명의 건설)하는 건 그대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본 필자는 널리 알려진 다른 많은 해석에서 방향을 돌려 이 서사시와 서사시를 다시 쓴 소설을 자연과 인간, 나아가 자연이 낳은 신화 및 전설과 인간이 낳은 문명의 대립구조로 본다. 거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낳은 신화는 주신 오딘을 비롯해 대부분 강인한 전사와 거인족, 해와 달도 삼키는 괴물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세상은 괴물의 시체로부터 만들어졌고, 언젠가 큰 전쟁으로 멸망할지도 모르는 불안하고 험난한 시대에 처해 있다. 여기서 인간은 이러한 자연이라는 괴물을 퇴치하고 인간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영웅을 만들어 내었다.

영웅은 마침내 괴물을 퇴치하고 인간이 세상의 주인임을 선언했다. 이리하여 인간은 신화를 버리고 문명을 선택한다. 그 결과 오늘날 북유럽 신화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이 종교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리스 신화와 같이 그저 신화로 취급받고 있다(분명 1500년 전 북유럽 사람들은 예수나 붓다와 마찬가지로 오딘의 존재를 믿고 그를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 그 이유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바로 자연과 그를 상징하는 신화에 대한 인간의 인식의 변화에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이 공포와 숭배의 대상에서 지배하고 이용하는 존재로 '격하'되었을 때 북유럽의 신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희생제의, 즉 '왕의 죽음'이다.

4. 신화시대의 종언 - 용의 퇴치와 영웅의 죽음

많은 인류학자들은 영웅의 일대기가 동화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가 아니라 영웅의 죽음으로 마무리짓는 것에 주목한다. 죽음 후 부활하여 신이 된다는 결말도 많이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는 비중이 작다. 최고(最古)의 영웅담 길가메시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웅담은 영웅이 고난을 이기고 목적을 성취(혹은 실패)한 후 죽음으로 마무리짓는다. 용을 퇴치했으나 죽음을 맞는 영웅의 이야기는 가장 고전적이면서 상징적인 신화의 마무리이며 원전 및 본작이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왕의 죽음'이라 불리는, 희생양의 죽음을 통해 일종의 구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바뀌는 통과의례로 굳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거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한 이론이다. 베오울프는 괴물을, 용을 퇴치하고 인간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의 완결을 위해서는 그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의 괴물 퇴치는 곧 자연의 파괴(신의 죽음)를 통해 신화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하며, 이러한 과거의 죄악을 모두 짊어지고 희생되는 제물로서 왕의 죽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본작에서의 베오울프 역시 괴물을 퇴치하고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나 '과거'의 상징인 그 자신도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위해 사라져야만 할 신화시대의 존재였던 것이다. 친부 살해를 뒤집었으나 품고 있는 의미는 상통하는 본작의 '친자 살해' 와 함께 이러한 희생양 모티프는 본작이 품은 신화적인 제재를 엿볼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외형적으로 북유럽의 세계관을 다룬 정통파 판타지이면서 내면적으로는 풍부한 신화적 심상을 품고 있는, 그 자체로 북유럽 신화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되었다. 그러한 소설의 결말이 신화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베오울프를 신화시대의 마지막 상징이자 신화를 벗어난 최초의 인간으로 그리려 했기에 장엄하지 않고 소박한 죽음으로 그를 보냈던 결말도 사라져간 신화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지 않을까.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물의 여인이 결국 사라지지 않고 가까이에 있음은, 인간이 신화를 완전히 잊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의미 깊은 결말이 되었다. 신화의 후예들은 오늘날에도 동화로, 소설로, 영화로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아 늘 인간의 곁에 맴돌며 두려움과 환상이 존재하는 거대한 세계가 곁에 있음을 환기시키며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바로 이 작품도 그러한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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