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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도살장

2008.05.31 00:4005.31



김무명



본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윗 사람들이나 알고 백성들은 그냥 어려운 일 있으면 동사무소 찾아가는 길만 알면 되는 법인데, 어째 세상이 거꾸로 돌아서 윗사람들은 뭐 아는 게 없고 백성들이 외교법에서부터 이름도 어려운 바이러스 이름과 발병원인과 치료법까지 챙겨 알아야 한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힘입어 광우병에 관련된 책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단지 이 책은 띠지 광고와는 달리 광우병에 관한 책은 아니다. 미국의 도축 시스템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잔인하게 사육당하고 도살당하는 동물들의 인권, 아니 동물권 문제를 호소하는 책이다. 그로 인해 인간이 얻는 병에 관한 서술은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 추가된 부분이라 하겠다.

   1958년에 제정된 ‘자비로운 도살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동물을 최대한 고통없이 도살해야 한다는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이 1980년대부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짧은 시간에 적은 노력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동물을 값싸게 빨리 도살하기 위한 도축업자들의 실용주의 정책 때문이다.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 시절의 규제완화에 힘입은 것이다. 3초에 하나씩 컨테이너 벨트에 소가 밀려오는데, 너무 속도가 빨라 도살자는 이들을 ‘제대로 죽일 수가 없다.’ 제대로 죽지 못한 소는 산채로 꼬챙이에 꿰어 매달린다. 다음 사람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면 죽이거나 척수를 마비시키지만, 그나마 초기에 발견되어 죽임당하는 소의 운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어떤 소는 도축과정의 최종단계가지 가도, 전신의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드러날 때까지 아직 ‘죽지 못하고’ 지옥같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적은 숫자도 아니고, 하루에 한 도축장에서 수십마리가 그러하다. 이 광경을 매일 같이 지켜보는 노동자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은 ‘죽지 않은 소가 있다’고 상부에 계속 항의하지만, 상부에서는 철저히 외면한다. 돼지를 죽이는 전기충격기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전압을 낮게 설정하고, 수많은 돼지들이 산채로 끓는 물에 넣어진다.

   그들의 삶 또한 지옥이다. 소와 돼지, 닭들은 움직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감옥에 갇혀 평생을 산다. 닭은 발을 찔러대는 철사 위에서 창살에 몸을 조여가며, 밟혀 죽어 납작해진 동료를 밟으며 살고, 돼지는 누울 공간도 없는 곳에서 자기 배설물 위에서 산다. 성인이 될 무렵에는 다리가 썩기도 한다. 태어난 돼지들은 자기 키보다 높이 쌓인 똥오줌에 빠져 숨을 쉬려고 허우적거고, 그 안에서 질식해 죽어간다.

   3초에 한번씩 들어오는 컨테이너 벨트는 내장배설물과 회충을 제대로 제거할 시간도 없게 만든다. 식탁 위에는 갈려진 동물회충과 똥오줌이 그대로 올라간다. 똥오줌과 오물이 흐르는 바닥에 떨어진 고기는 ‘돈을 아끼기 위하여’ 그대로 포장된다.

   수의사들은 도축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동물을 살리는 직업”을 가진 그들은 “동물을 죽이는 작업”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축장에 발도 들이지 않고 검사서에 사인을 한다.

   이 비위생적인 환경이 유발한 극단적 식중독 중 하나가 1982년에 발견된 0157:H7바이러스에서 온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내장에 구멍이 나고, 엄청난 분량의 피를 쏟고, 창자가 피부를 찢고 나올 정도로 부풀고, 소화기관이 녹아내린다. 한국에 알려진 것은 지금 광우병뿐이지만, 미국에서는 이 바이러스때문에 1등급 고기가 리콜되고 있다.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게다가 묘사도 진득하여, 미국 소고기는 둘째치고 고기 전체에 대한 입맛을 싹 사라지게 만드는 책이다.

   먼 옛날에는 사람들이 직접 사냥하고 자신이 먹을 것을 스스로 죽여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생물들에게 미안해할 줄도 알았고, 감사할 줄도 알았다. 하지만 대량 살인을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원래 구조를 알 수 없는 포장된 음식만 먹게 된 우리들은 그것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는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참치는 캔껍질에 둘러싸인 납작한 원통형의 생물이 되었고, 돼지는 세 개의 줄이 있는 납작한 살코기가 되었다.

   광우병 위협이 가져온 일말의 좋은 점이라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입에 들어가는 생명’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일까.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는 약한 생물들은 몸에 독을 키워, 자신을 먹는 포식자를 죽게 만든다. 현대에 생겨난 음식 관련 질병들은 인간에게 지옥과도 같은 삶과 죽음을 강요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 동물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죽여 만든 독소일지도 모른다.

   템플 그란든이라는 동물학자가 있다. 그녀는 미국 최고의 도살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동물이 편하게 죽게 만드는’ 도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도살전문가라는 것에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잔인한 일을 하는가” 하고 묻는다지만, 그런 사람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폐증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복잡한 보통 인간과는 달리 ‘논리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동물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도살장으로 가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물만을 본다. 하지만 도살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전반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쓰여져 있어,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책일 것이다. 도살장의 실제 풍경과 생생한 묘사는 먹고 있는 것을 토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읽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읽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힌두교는 어렵고 불교나 믿을까 보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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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6.02 01:17 댓글 수정 삭제
    탬플 그랜든의 책 중 '어느 자폐인 이야기'에 직접 소를 도살하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즉, 도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소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에 말이죠.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하게 인용할 수는 없는데 무언가를 먹을 때 그게 어떤 과정을 통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자신이 먹는 것에 더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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