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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미래교양사전

2008.05.31 00:2505.31



가울 (kasacosa@hotmail.com)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과학문화연구소 소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걸리버 지식 탐험기>, <이인식의 과학나라>, <미래 과학의 세계로 떠나보자> 등등 과학에 관해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을 열 권 이상 출간했습니다. 이 책 역시 특별한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쉽게 여러 가지 현재 과학기술과 담론에 대해 사전식으로 서술한 책입니다. 따라서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는 힘들지만, 여러 분야에 대해 간략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을 읽고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해당 분야를 더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싶습니다. 한 분야에 대해 짧으면 몇 줄, 길어도 몇 페이지 정도로만 서술했습니다. 일반 책보다 크기도 크고, 페이지도 580쪽 가량 됩니다만, 어려운 말이나 내용은 없어서 읽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래교양사전>이라는 제목으로 인해 미래에 나타날 과학들을 현재 기술을 기반으로 상상해서 저술한 것으로 오해할 수가 있는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대 과학기술과 용어들을 소개했습니다. ‘책을 내면서’에 있는 지은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21세기 전반부, 그러니까 2050년까지 인류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이론, 아이디어 또는 지식”을 “과학기술을 비롯해, 경제, 문화, 환경, 군사, 섹슈얼리티, 초자연 현상 등 7대 부문을 중심으로 369개의 열쇠말(키워드)로 백과사전처럼 가나다순으로 배열”했습니다. 소개한 것들을 무작위로 짚어보면, 문화생물학, 미토콘드리아, 유전프로그래밍, 24시간 사회, 지능물질, 창발 등등이 있네요.

내용이 가볍지만 나름 이거저거 많이 넣어서 훑어볼 만은 한데, 읽다가 걸리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일단, 지은이가 남자라서 그런지 몇몇 부분에서 단어 사용이 애매하더군요. 매춘 부분에서도 좀 그랬고, 여류 환경운동가라는 표현도 그렇고요. “여류”, 이 표현 아직도 쓰나요?

‘생물강철Biosteel'이라는 챕터에서는 거미줄이 군사용품에 필요한 신소재의 하나로 각광받고, 그래서 유전공학을 이용해 대량생산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탄복, 낙하산, 거미줄 총 등 군사용품이나 의료 부문에서의 쓰임새를 실컷 열거하다가 갑자기 “누에 실크로 만든 비단옷이 한때 부유층의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던 것처럼 21세기에는 생물강철로 만든 고급 의상이 가난한 여인네들을 가슴앓이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텐데......”로 맺더군요. 읽으면서 이게 뭐라는 거야, 하며 언짢았습니다. 이 외에도 여자분들이 읽으면 불쾌할 법한 표현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어요.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실컷 한 이야기를 엉뚱한 이야기로 끝맺는 경우들도 있고요. 스마트 더스트Smart Dust는 먼지 크기의 센서 기능을 가진 로봇입니다. 스마트 더스트 챕터에서 산불 진압, 아기들 상태를 감시해 위기시 경보 기능 등등 긍정적인 점만 열거하더니 마지막 문장에서 “일부에서 스마트 더스트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제기할 만도 하다.”라고 끝냅니다. 그럴 거면 부작용에 대해서도 서술을 하든가. 단지 기술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은이의 의견도 제시할거면 좀 더 생각을 하고 서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더군요. 논조가 무책임합니다. 챕터 앞 쪽에서 십자말 풀이, 산화방지제 등등이 기억력이 좋아지는 비결이라고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다, 라고 해놓고, 식사 잘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기억력 감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는데, 근거를 든 게 아니라 그냥 지은이의 생각으로 보이더군요. 이렇게 근거 대지 않고 자기 의견 툭, 던질 거면 앞에 것들은 왜 과학적 근거 운운하셨는지.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자면, 스마트 약Smart Drug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죽 하다가(치매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며 제약회사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요.) 부끄러운 과거가 계속 떠오르면 힘들 테니, 사람이 잊는다는 것 역시 축복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다만 치매에 걸려서 사랑하는 가족을 괴롭히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라고 쓰더군요. 치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이 있나요?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쓴 부분으로 보이더군요.

다른 경우로 서로 연관되는 기술들이라 앞 챕터에서 한 이야기와 뒷부분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할 때와 뒤에서 이야기하는 논조가 다른 경우도 있었고요. 이를테면 유전자 오염 항목에서는 제초제에 강한 농산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슈퍼잡초, 슈퍼해충이 나올 것을 우려하며, “21세기에는 유전자 오염으로 지구의 생물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게 될 것 같다.”라고 합니다. 바로 뒤인 “유전자 이식” 항목에서는 레몬 향기가 풍기는 잔디 등의 개발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21세기를 ‘제2의 창세기’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로 끝맺습니다. 어쩌자는 건지.

이 외에도 읽어나가며 짚고 넘어가고픈 부분들이 많이 보였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책에 나열된 지식들은, 지은이가 깊이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썼다기보다는, 다른 문헌을 참고해 정리한 후, 자기 의견을 간략하게 붙인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보이면 좋았을 텐데요.

간편하게 상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정가 29,000원에 580쪽 가량, 일반 신국판보다 큰 책이니 두껍고 크고 무겁고 비싸니 구입하실 분들은 신중히 생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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