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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판타스틱] 15호 리뷰

2008.07.25 22:4807.25





rosebird.egloos.commaskduke@hotmail.com

이건 제가 쓰는 [판타스틱] 마지막 리뷰입니다. 비록 정기구독이 끝나더라도 잡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할 것 같군요. 각설하고, 일단 표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마도 이번 호는 [왓치맨] 출간에 맞춰 특집 성격을 살리려고 했나 보군요. 대충 봐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를 참고한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제 생각에도 그럭저럭 어울리는 발상인 듯해요. 다만 슈퍼히어로를 상징하는 인물은 꽤나 그럴 듯하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배경은 허전하기 그지없네요. 구도의 문제일 거예요. 지구를 감싸 쥐려는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설령 ‘악의 손길’을 의도했더라면 좀더 배경을 넓게 차지했어야 합니다. 거대한 악의 세력에 의해 위기에 처한 지구일 경우, 슈퍼히어로가 흘리는 눈물도 보다 의미가 있겠지요. 그의 벗겨진 코스츔, 아니 마스크가 너무 대충 그려진 것도 아쉽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린이의 순수 창작이었을 테니 갑작스럽게 멋진 디자인까지 해내기엔 무리가 있었겠지요. 오히려 어색한 배경이 차라리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이번 판타스틱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왓치맨]에 대한 소개입니다. 아직 접해보지 않은 이들도 관심 가지기에 충분하더군요. 저는 물론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두 번 정독했습니다만. 영화 개봉 전이긴 해도 많은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크 나이트] 개봉과 맞물려 상승기류를 탄 덕분인지 최근 [배트맨: 허쉬]를 비롯해 [저스티스]까지 활발히 출간되고 있더군요. 더불어 곧 출간되는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도 다룰 의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영화에 대한 소개도 기대해볼만 하겠지요.

단카이 세대에 대해 다룰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미스터리 장르도 굳이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만큼 여러모로 의미가 큰 기획이었다고 봐요. 굳이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작품들이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에 기인했다고 봅니다. 언제가 절감해왔던 문제지만 사회 혹은 시대와 동떨어진 작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와 더불어 시마다 마사히코의 인터뷰도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시마다 마사히코는 한국과 많은 교류가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모를까 작가에 대한 정보는 이제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지요. 잡지 끄트머리에 가서는 비트 세대에 대해서도 짧게 다뤄줘서 이래저래 좋았습니다. 사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나 앨런 긴스버그의 시집 [울부짖음]이 다시 출간되지 않는 것은 크나큰 의문입니다. 키아누 리브스만 해도 이들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다는 사실은 유명하고, 최근 국내 개봉한 <아임 낫 데어>에서도 앨런 긴스버그는 위대한 시인으로 등장합니다. 이래도 말이에요. 소설가 김연수가 대학 시절 번역했다는 [길 위에서]는 대체 어디에서 빛도 못 보고 묵혀가고 있을까요.

이쯤에서 소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물론 [발푸르기스의 밤]은 훌륭해요. 심지어 제목도 어딘지 모르게 일치점을 유지합니다. 그것은 물론 빅터 얀센이라는 만족스러운 주인공이 있어서 가능하지요. 이 소설은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내세우지만 빅터 얀센의 취미는 보다 고풍스럽고 기괴합니다. 그는 스스로 고딕풍의 공포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을 자처해요. 이만큼 잘 짜여 있는 캐릭터는 물론 시리즈물로도 제격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장면 또한 마침 다음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흥미를 드높입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만 계속 추가시킬 수 있다면 이 소설에서 살아 있는 인물들은 얼마든지 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종류의 소설에서 대부분 주인공은 모든 전모를 알아내는 데 능숙합니다. 사실 제 경우에는 아직도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고스트 멜라니의 경우, 엉터리 강령회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어째서 모인 인물들은 모조리 빅터 얀센이 추적하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을까요. 그녀가 자신의 음모도 못 알아차릴 정도로 빅터 얀센을 우습게 본 것이라면 그렇게 빅터 얀센 가까이 존재할 이유 또한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렇듯 사건의 모든 전모가 밝혀지는 과정은 갑작스럽고 불친절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취향 문제이지만, 이미지를 글로써 구현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 작품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조금 많은 상상을 요구해요. 특히 고스트 멜라니가 육체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묘사가 짧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닐 게이먼의 작품은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판타스틱]에서 읽은 작품 중 가장 만족스러웠기도 해요. 제가 셜록키언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H.P. 러브크래프트에 매료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것도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크툴루 신화를 셜록 홈즈 세계관에 도입한 것도 모자라서 캐릭터의 반전까지 의도한 것은 도무지 재미없을래야 재미없을 수가 없겠지요. 사실 그것은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이미 조금쯤 눈치를 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에메랄드색 연구}라니, 멋지네요. 이 훌륭한 소품을 나무랄 수는 없지요.

츠츠이 야스타카의 {약채반점}은 엄밀히 말해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소재주의를 표방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지나친 쾌락과 자극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를 쉼 없이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어떤 결말도 남기지 않고 소재는 그대로 남아버릴 뿐, 연소되지는 못합니다. 말하자면 이야기를 끝까지 집요하게 다루는 맛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은근히 미인과의 성행위까지 집어넣고 말이지요. 사실 이러한 소설은 약채반점이든 뭐든 장소에 기인하기만 하면 어떤 내용이든 다 집어넣을 수 있어요. 기이한 체험이기만 하면 됩니다.

도로시 L. 세이어스의 {얼굴 없는 남자에 관한 미해결 퍼즐}은 지난 리뷰에서의 제 생각을 뒤집어엎었습니다. 저는 분명 뭐든지 추리를 통해 알아내는 탐정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었지요. 그리고 오히려 너무도 그럴 듯한 추리가 그저 헛소리임이 드러나는 순간의 쾌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지켜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오히려 모호한 결말이 소설의 재미를 더 키웠다고 봅니다. 하지만 때로는 주인공의 노골적이기까지 한 지적 취향이 호감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피터 윔지 경의 ‘책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문제 삼으면 노발대발하는’ 성미와 연관 지을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것은 사실 작가 자신에 대한 투영일 뿐일 수도 있겠지요. 우습지 않나요.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아무도 알아듣기 힘든데 굳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한 구절을 낭독하듯 내뱉는 장면 말이에요. 그리고 본인 스스로는 뿌듯해할지도 모른다는 추측 때문에 더욱이.

낸시 크래스의 [스페인의 거지들]이 이렇게 열린 결말을 보이고 끝낸 것은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소설 내부의 배경, 즉 사건들은 아직도 많은 문제를 쌓아두고 있고 주인공 레이샤의 내면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다시 전복될 수 있어요. 다만 [스페인의 거지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끝까지 책임지는 부분만큼은 훌륭했다고 생각해요. 음. 이 작품의 완결과 동시에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중편 [올리트 감옥의 꽃]이 새롭게 수록되었는데요. 사실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예상이 되지 않습니다. 전편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해도 마지막 리뷰인 이상 다음번에 어떤 식으로든 수습할 기회가 없을 듯합니다. 다만 제대로 감상하려면 조금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군요.  

권교정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다면 김남훈 에디터의 걱정은 기우일 뿐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작화 퀄리티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이야기의 힘’은 물론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유시진의 [파문]을 두 번째 보고 있자니 조금은 걱정이 앞섭니다. 물론 작화보다는 연출의 문제입니다. 서기관 두 사람의 다양한 표정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문회를 진행하는 인물들은 시종일관 같은 표정입니다. 읽는 동안 제 표정도 굳어버릴 것만 같았지요. 아무리 다양한 각도를 시도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회상을 통해 지루함을 떨칠 수밖에 없는데 마왕 트라펠이 봉인해서 해방되는 장면 또한 박력이 넘치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가디언 이니어드의 정원을 망가뜨리는 장면이 이렇게 스크린톤 효과로 끝나버려서야 눈이 심심해서 힘들군요. 상인 라프 렛이 마술로 장막을 치는 장면 또한 시점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가끔씩 있는 액션이라도 박력 있어야 이야기가 살아나는데 그렇지 않다니 안타깝습니다.

문효섭의 [TAKE 7]은 차라리 지난 호에서 예고를 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판타스틱에 실린 만화를 보고 이렇게 실망하기는 처음이군요. 무엇 하나 독창적이지도 않고, 갑작스러운 음료수 광고로 마무리 짓는 것도 설득력도 없습니다. 괴물의 체액으로 이루어진 저런 음료수를 누가 마시고 싶겠습니까. 이런 클리셰로 가득한 이미지 속에서 저는 차라리 감상을 포기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왜 이런 것을 장르문학 전문지인 [판타스틱]에 실었을까요. 차라리 숱한 광고 공모전에 내보내면 됐을 텐데 말입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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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7.28 02:16 댓글 수정 삭제
    닐 게이먼의 에메랄드 색 연구를 읽으며 좀 좌절했어요. 젠장, 주석을 보지 않았더라고 알아챘어야 하는데... 베이커가와 레스트레이드에 속았어요. 물론 돋보기랑 담뱃재도 한 몫했지만, 일단 그렇다고 생각해버리고 나서는 좀 이상하다 싶었어도 넘어가 버린 게 제일 큰 문제.
    첫 번째 오는 마차는 타지말 것. 이건 홈즈가 모리어티를 피해 달아날 때, 왓슨을 자기가 머무는 곳으로 부르며 했던 조언입니다. "세 번째 마차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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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7.28 02:17 댓글 수정 삭제
    스페인의 거지들은 원작가보다 번역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 제이님이 고르실 만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나눠 읽는 게 싫어서 완결된 후에 앞에 것부터 몰아보느라 뒤늦게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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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08.07.28 09:46 댓글 수정 삭제
    이크. 마차 부분은 놓쳤군요... 역시 홈즈 팬이란 ㅁㅅㅁ
  • No Profile
    가연 08.08.01 16:00 댓글 수정 삭제
    ... 부끄럽습니다. ( -_))
    면벽 수련 하러 갑니다.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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