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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도 짧은 리뷰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좋은 소설들이 많아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새로운 한국 작가의 작품도 실려 있더군요. 마침 소설가 윤이형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여러 차례 장르소설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바 있다고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판타스틱에 수록된 작품 <황금 네르파>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SF와 판타지, 신화를 넘나들고 있다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장르혼합이 아니라 장르상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이렇게 통일성이 없는 장르소설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일단 시작은 SF처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쩐지 우리가 흔히 듀나체라고 부르는 구어체로 소설이 진행되지요. 물론 듀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말투는 본인의 개성에도 많이 부합된다고 할 수 있어요. 가령 “당연한 일이었지. 깔아야 할 프로그램이 무진장 많은 새 컴퓨터를 선물받은 아이가 눈알이 떨어져나가고 여기저기 스펀지가 튀어나온 낡은 곰인형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으니까.” 같은 소설 초반부 문장에서 저는 듀나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물론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람은 비유를 사용할 때 취향이 쉽게 드러나는 법이지요.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쉽게 알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동물에 대한 우화, 아니면 신화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미래와 과거가 서로 이어집니다. 말하자면 시공간이 뒤틀리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신화가 개입하는 바람에 이 소설을 마음 편히 읽을 수만은 없습니다. 백년 후의 세계와 백년 전의 세계를 이어지는 통로가 바닷속에 떡 하니 존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는 이들은 인간처럼 말하는 물범들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감각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동물들의 언어입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우화적인 요소가 짙게 깔려 있어요. 그런데 우화가 설득성을 지니려면 일단 동물들의 세계에서 전적으로 인간이 배재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우화는 인간사회의 대변이고, 그 속에 인간이 등장하려면 마치 새로운 상위종족을 인간세계에서 받아들이는 것만큼의 충격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여전히 인간은 인간의 시선 속에 존재합니다. 게다가 화자는 존재하지만 숨어 있을 뿐 화자의 처지나 위치는 드러나 있지 않아요. 이 소설은 ‘들려주는 옛이야기’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미래와 과거는 혼합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시도는 좋지만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해요. 과연 성공적이었는지는 저 말고도 다른 독자들이 함께 판단할 문제겠지요.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이칼에 서식하는 물고기, ‘골로먄카’의 등장입니다. 하필이면 어떻게 이 물고기에게만 이상을 일으키는 화학 물질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 대한 어떠한 납득할만한 이유도 나오지 않지만 이러한 사실의 발견은 소설 전체를 아우릅니다. 너무나 작위적이에요. 말하자면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돕기 위해 갑자기 문을 열고 나타나 적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조력자나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여기 나타날 줄은 몰랐는걸, 정말 고마워!

찰스 부코우스키의 <블루스와 날개 달린 외야수>는 영화 <외야의 천사들>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지요. 일단 날개 달린 청년이 등장하여 위기에 처한 팀을 구원한다는 식의 내용인데요. 하지만 사실 이 날개 달린 외야수 지미 크리스핀은 천사고 뭐고 아닙니다. 다만 찰스 부코우스키의 다른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속물에 지나지 않지요. 등장했을 당시에는 정말이지 천사가 아닐까 싶었지만 결국 거친 욕설을 남발하고 여자에게 유혹당해 날개를 잘리고 주정을 부리는 인간일 뿐이지요. 이러한 점이 너무나 찰스 부코우스키다워서 기분 좋았습니다.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네요.

스타니스와프 렘의 <첫 번째 외출 혹은 가르강티우스의 덫>은 사실 뭐라고 이야기해야 될 지 말 모르겠는데요. 일단 제가 아직 출간된 <사이버리아드>를 읽어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 위대한 작가에게 굳이 어떤 감상을 더 보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은 그냥 즐기면 될 것 같습니다. 두 주인공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의 여정은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우주만화>에 등장하는 크프우프크의 이야기처럼 기이하고 신비스럽습니다.

도로시 L. 세이어스의 <얼굴 없는 남자에 관한 미해결 퍼즐>은 아직 전편만 수록되어 있어서 굳이 감상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러한 종류의 추리물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낍니다. 특히 단서들을 찾아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방식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사소한 우연들은 배재한 채 모든 것을 인과율 안에 묶어내는 방식이지요. 모든 결과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일어난 모든 일들을 짜 맞추는 것만으로도 밝혀낼 수 있다면 정말이지 세상 사는 재미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엉터리 추리밖에 못해내는 만화 <가가탐정사무소>의 주인공을 참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김탁환의 <당신은 식인종>에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무모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연극 같나요. 말하자면 대본이 안 주어진 학예회 같았다는 말입니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좋은 캐릭터들만 설정해 나열할 뿐, 정작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금화와 춘하추동이 어째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이러한 연극을 꾸몄어야만 했는지 아직까지도 대체 납득이 가질 않아요. 정작 로즈가 인디언 유모를 먹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조차 별달리 드러난 것도 없고요. 주인공 백지의 활약도 적습니다. 여기서 범인들은 어차피 스스로 알아서 나설 존재였던 것이지요. 난데없는 결말에 당혹했고,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못마땅합니다. 이해 못할 점이 너무나 많아요.

반면에 낸시 크래시의 <스페인의 거지들>은 흥미롭게 읽고 있어요. 드디어 제목의 의미가 밝혀졌고, 예상대로 갈등이 심화되어가고 있네요. 여전히 쌍둥이 동생 앨리스는 주인공 레이샤를 기피하고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군요. 수면인과 불면인의 대립 이유가 제목을 통해 명확해진 것만으로도 이번 회를 읽은 수확은 큰 것 같습니다.

연재 중이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말고도 유시진의 신작 <파문>이 새로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대사가 많은 것은 여전하네요. 그리고 세계관이나 설정 또한 작가의 순수창작이고요. 또 이러한 계보 따위를 이해하려면 집중 좀 해야겠네요. 일단 첫 화의 형식은 재판 구조를 취하고 있고 주로 다양한 인물의 증언을 듣는 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대로 계속 진행되다가는 괴로울 것 같습니다. 인물들은 모조리 앉아 있고 대화만 하고 있으면 만화로서 무슨 재미가 있나요. 물론 독자에게 고민도 던져주고 철학적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실은 현실과 아무런 접점도 없다는 점에서 단지 누군가의 공상을 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이상의 의미는 되지 못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 중 하나였던 <그들의 서가를 엿보다>는 저의 수집욕을 자극하기 딱 좋았습니다. 남의 서가를 들여다보며 알 수 없는 대리만족까지 느껴봤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사는 강철 수트를 입는다>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물론 단순한 정보 제공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그래도 영화 <아이언맨> 때문에라도 관심 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마이너 열전 코너에서 찰스 부코우스키를 다룬 것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독자로서 그의 다른 책들도 속히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더군요.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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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6.28 07:59 댓글 수정 삭제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작가로서, <황금 네르파>가 장르성을 상실한 정체불명의 소설이라는 박종수 님의 평가에 잠시 위안을 얻어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윤이형이라는 작가가 새로운 업계 라이벌로 등장할 가능성을 속 편하게 배제해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박종수 님은 이 글이 듀나식 구어체 SF로 시작했다가 미래에 관한 이야기, 우화 혹은 신화 등을 넘드는 복잡한 구조를 취하면서 결국 장르성을 상실했다는 요지로 말씀하셨는요, 사실 박종수 님 글 본론에는 장르성 상실의 실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단지 듀나 냄새가 많이 났고, 우화에서 인간과 동물들간의 관계 설정이 부적절하고, 화자의 위치나 처지가 드러나 있지 않다고 지적할 뿐, 그 세 가지가 왜 장르성 상실로 이어지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SF와 우화, 신화, 미래 이야기, 인간의 시점과 동물의 시점, 이 모든 것을 넘나드는 게 작품의 가치가 저하되는 원인인가요? 동종 업계 종사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충분히 장악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저는 이 작가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장악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장르문학을 평가하는 박종수 님의 기준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골로먄카’에 관해서, 박종수 님은 이런 물고기가 등장해야 할 근거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소설 안에 복선이 충분히 깔려 있다고 봅니다. 다른 네르파들은 다 골로먄카를 먹었는데 반들머리는 오물omul이라는 다른 물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꽤 여러 차례 반복되거든요. 소설 내부의 스토리 전개에서, 골로먄카의 등장은 전혀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골로먄카가 뭔가 일을 낼 거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니까요. 박종수 님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소설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소설 외부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이른바 SF의 외적타당성 문제인데, 동종 업계 종사자의 입장에서 진짜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장르문학의 지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장악하는 능력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장르소설적인 스토리 전개 능력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위협적인 라이벌이 시장에 진입했다고는.

    이하 사소한 반론들.
    1. 시점 문제: 듀나체가 듀나의 독점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작가 입장에서 아주 독특한 선택이냐. 절대 아닙니다. 1인칭 화자의 말투에 구어체를 입히는 건 전혀 어려운 선택이 아닙니다. 그런 문체가 존재하는 건 분명히 사실이지만, 그걸 왜 듀나체로 불러야 할까요? 그 문체를 쓰는 작가 중에 제일 유명한 작가가 과연 듀나이기는 한 걸까요?
    그리고 서술자가 일관된 시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의 선택일 수는 있어도 다른 작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소설의 시점 이론은 서양 미술의 시점 이론과 밀접하거나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이론을 벗어난 다른 식의 시점 활용 방식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가 갖추어진지도 이미 한참이 지난 것 같습니다. 서양 풍경화는 가장 적절한 감상 포인트 위에 서서 보는 게 적절하지만 동양 풍경화는 그림 앞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부분 부분을 감상해야 되는데 그것은 그림 안에 수없이 많은 시점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도 다중적인 시점의 가치는 입증된 지 오래라고 알고 있습니다.
    2. 개념의 구성타당성 문제: 우화가 설득력을 지니려면 인간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명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명제는 <황금 네르파>가 박종수 님이 정의하시는 방식의 우화라고 가정하고 있는데, 박종수 님도 인정하셨듯이 이 소설은 ‘우화’가 아니라 우화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는’ 소설입니다. 우화의 개념이 논리 진행 각 단계에서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서 중간에 개념 자체가 깨져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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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심 08.06.28 17:24 댓글 수정 삭제
    저도<황금네르파는 불편하게 읽었어요. 동물의 껍질을 쓴 그것들을 산채로 껍질을 벗겨버리고 싶더라구요. 날개가 잘린 천사가 "아 그여자를 앞에 두고 못자다니!"라면서 한탄하는 건 천사와 인간의 유사성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동물은 동물인걸 뻔히 아는데 동물을 끌어들여 인간으로 그려내면서 이 이야기에서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싶었어요. 끝까지 읽었는데, 그걸 못찾아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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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하 08.06.28 18:00 댓글 수정 삭제
    {황금 네르파}를 읽지 못한 상태에서 {황금 네르파}에 대한 감상을 말할 수는 없지만, 배명훈님의 ‘사소한 반론들’ 중 첫 번째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SF 팬덤에서 흔히 말하는 ‘듀나체’는 단순히 1인칭 화자의 구어체 독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팬터지 팬덤에서 비슷한 예를 들자면 번역체는 이영도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흔한 예인 “(물론 팔라레온의 데자크 공작은) 총력을 기울여 황당해하고 있었다” 같은 문장에서 장르 독자들이 반사적으로 이영도를 떠올리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영도의 문장을 효칙하는 아마추어들에 대한 비판은,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존재했습니다. 여기서 이영도를 박민규로 바꾸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거울에서도 58호 독자우수단편 심사평 중 “inkholic님이 읽어 온 글의 향취가 묻어 있”다고 완곡하게 쓰여진 inkholic님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한 심사평은, 사실 “배명훈을 참고했다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었던 것처럼, 적어도 이 좁은 장르바닥에서 듀나와의 유사성을 피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황금 네르파}를 읽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황금 네르파}의 문장이 듀나의 문장과 유사한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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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6.30 10:45 댓글 수정 삭제
    연심님.. 날개 달린 천사 이야기는 <황금 네르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유서하님.. 좁은 장르바닥이기 때문에 일부러 듀나와의 유사성을 피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어요. 1인칭 구어체는 어디까지나 공공재이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듀나를 모르는 사람도 동화나 편지체 소설을 쓸 때는 누구나 그 방식을 떠올릴 수 있어요. 장르 바닥이 좁다는 이유로 영구결번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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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하 08.07.01 03:29 댓글 수정 삭제
    무한하지 않은 전체집합의 원소들 중에서 선점된 경우의 수를 제외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듀나가 1인칭 화자의 구어체 독백을 선점했기 때문에 듀나 이후 작가들은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옳다면, 듀나보다도 한참 이전에 이미 그랬어야겠죠. 그렇지만 이미 말씀드렸듯 흔히 이야기되는 ‘듀나체’는 ‘1인칭 화자의 구어체 독백’이 아니라 그것의 특정한 ‘구성’을 의미합니다. 눈썰미가 약간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덧글 입력창에, 단순한 ‘1인칭 화자의 구어체 독백’이 아니라 듀나가 직접 쓴 소설처럼 느껴지는 몇 개의 문장들을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여기서의 ‘재현’은 캐리커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듀나가 아닌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특정한 목표를 위해 의도적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의깊게 쓰지 못했기 때문에 재현되는 것이라면, 장르문학이라 해서 그것을 변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그렇듯 정도의 차이라는 흐릿한 선이 그어져 있겠지만, 적어도 그 선까지 도달하지 못한 작품들에 대해―――필요 이상으로 엄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만큼이나―――필요 이상으로 너그러울 필요는 없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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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심 08.07.01 22:48 댓글 수정 삭제

    배명훈님//...;; 날개달린 천사 이야기는 동권에 함께 실린 <블루스와 날개달린 외야수>의 등장인물을 빗댄 말입니다. "속물적 모습을 보이는 천사"는 비교적 작가의 의도는 명확했던 반면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는 소재와 우화적 묘사를 취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는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호수가 신화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통로라 할지라도, 또 그것을 찾아내는 물범, 그리고 인간의 대비구조를 연상해보더라도 이것을 전개하는 면에 있어서 글의 서술이 산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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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영기 08.07.03 06:05 댓글 수정 삭제
    '이리해서 저리해서 결론은 황금네르파는 기대에 못미쳤다'가 되는 군요.

    읽을 때는 조금 산만하다는 것을 느꼈구요. 허나 듀나를 떠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윗분들의 글을 읽고 문체를 생각해보면. 지금 막 생각하는 것이지만 듀나는

    여고생 혹은 여중생의 말투가 맛깔나게 담겨져있는 것 같구요. 황금네르파는

    아이들 상대로 인형극할때 쓰는 나레이션투 였다고 생각합니다.

    뭐, 여기서 듀나와의 연관성은 접어두고, 글자체는 아쉽다 혹은 기대미만 이라고

    해두죠. 그럼 여기서~~~

    사람에게는 있고 뱀에게는 없는 것 중 하나

    ㅡ 듀나의 문체에 대한 제 느낌은 '니네 아빠 어딨니?'와 '거울너머로 가다' 만이 생각

    나서 적은 점을 분명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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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7.03 13:49 댓글 수정 삭제
    무리한 결론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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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수 08.07.18 15:22 댓글 수정 삭제
    제가 <황금 네르파>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사실 작가에 대한 신뢰도와 관계 있습니다. 저는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를 만족스럽게 읽지 못했고 <황금 네르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황금 네르파>를 읽을 때 굳이 취향을 개입하지는 않았어요. 이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 즉 사건들을 일부러 분산시키고 있어요. 네르파를 제외한 소설 속의 사건과 인물들은 오로지 네르파들의 운명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움직이는 존재들입니다. 환경파괴, 화성이주, 최후의 북극곰, 사냥꾼, 샤먼, 털 달린 발, 네르파와 유사한 물범, 신들, 폐수와 골로만캬,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배치되었을 뿐, 그들 자신에게는 어떤 매력도 없다고 보는 겁니다. 물론 다양한 사건들이 곳곳에 배치되었다가 하나의 결말을 위해 한꺼번에 응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사건들의 장르적인 성격이 너무 극명하게 달라요. 그래서 거북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미 말했던 대로 이 이야기는 우화의 성격을 띱니다. 결과적으로 네르파들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인간의 언어, 인간의 사고, 관습을 채택했어요. 심지어 인간을 대할 때도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이것은 기존의 우화가 보여주던 인간 배제와는 달라요. 오로지 이처럼 네르파가 사냥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도록 하기 위해 이 소설은 샤먼이라든가 털 달린 발 따위를 등장시킵니다. 원래대로라면 우화에서 인간과 동물이 똑같이 대화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나서 샤먼과 털 달린 발에 대한 이야기는 실종되어 버리지요. 장르가 모호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래도 몇 번 더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훨씬 멋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데군데 감탄할 부분도 있었어요. 때문에 제 리뷰에 지적할 부분이 많았다는 데 동의하고 좀더 감상을 긍정적으로 수정해 봅니다. 하지만 저는 구에체로 된 장르소설과 관련해서 일부러 듀나님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아니에요. 말하자면 어떤 영향이나 취향에 대한 추측입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 그의 패션이나 말투를 보고 “누구누구 닮았네”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우리는 홈페이지나 영화평 등을 통해, 노출되어 있는 듀나의 외적 취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때문에 듀나가 소설에서 사용하는 인물이나 소품 비유를 봐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게는 “당연한 일이었지. 깔아야 할 프로그램이 무진장 많은 새 컴퓨터를 선물받은 아이가 눈알이 떨어져나가고 여기저기 스펀지가 튀어나온 낡은 곰인형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으니까.”와 같은 문장에 담긴 정보가 바로 듀나를 연상하게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연상마저 억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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