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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성의 프린세스

2008.05.31 00:3105.31





blog.alladin.co.kr/twinpixrevinchu@empal.com시간여행의 비법

시간여행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시간이동을 소재로 삼아왔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시간여행이 가능할까? 누구나 현재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책을 통해서 우리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화성의 프린세스](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백석윤 옮김, 루비박스, 2008년 5월)는 약 100여 년 전에 나온 소설이다. 100여 년 전에 나온 소설이 지금도 재미있을까? 물론 지금 우리가 느끼는 재미는 그때 당시에 느끼는 재미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긴 세월동안 이야기는 다양해지고 이미 수많은 패턴의 이야기들이 나온 뒤다. 독자들은 더욱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고 있는 만큼, 이런 오래전 이야기가 지금에 와서 놀라운 재미를 선사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건 그만큼 새롭지는 않지만 안정적이고 뛰어난 재미를 가진 작품이며, 그동안 다른 작품에 수없이 많은 영향을 끼쳐온 고전 작품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소설은 여전히 뛰어난 활극물이 주는 재미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100여 년 전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받았을 재미와 감동을 비슷하게 느껴볼 수 있다. 마치 100여 년 전으로 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실제 우리 몸이 시간이동을 하지 않더라도,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을 음미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은, 우리는 1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책의 같은 독자라는 입장이 된다.
존 카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가 겪은 모험담을 공유한 독자들이 되는 것이다. 책이란 건 나이와 시대를 뛰어넘어 그 누구와도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게 해줄 수 있는 매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출간된 SF 고전 [화성의 프린세스]는 이 책을 읽어온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모험을 체험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야기가 좀 낡은 면이 있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타임머신을 타는 기분으로 느끼는 맛이 있다.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들판에 나가 화성에 보내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기도했던 수많은 어린이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도 칼 세이건 박사의 연구실 앞에는 ‘바숨(화성)’의 지도가 붙어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그때 당시 들판에 나가 몇 시간 동안이나 팔을 벌리고 있었을 어린이를 상상해 보았다. 찬 밤바람을 맞으며, 책 속의 주인공인 존 카터처럼 화성에 가서 모험을 하고 싶었던 동심. 책을 펼치면 100여 년 전 그 순간의 감정을 체험해볼 수 있다.



소년들의 영원한 로망, 모험!

어릴 적 책이나 만화에서 보는 소년들을 위한 이야기는 모험이 가득했다. 기묘한 세계로 가서 히로인을 구하는 것은 주인공의 역할이었고 소년들은 그 멋지고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에 감탄하며 빠져들었다.
이 책은 화성을 배경으로 했지만 과학적 사실과 무관하기 때문에 SF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것보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세계를 창조한 것이 눈에 띄기 때문에 판타지로 보인다. 따라서 이 소설은 히로익 판타지, 비경 판타지, 모험물, 활극물로 인식하고 읽게 된다. 소설의 배경인 화성도 지금 읽는 독자에게는 화성이라기보다는 그저 바숨이라는 이름의 다른 판타지 세계로 읽힌다.
이 다른 세계에서 주인공은 발가벗은 몸으로 낯선 바숨이란 곳에 주술적인 힘에 의해 이동하게 된다. 이것 역시 어떤 물리적 장치 없이 신비한 힘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판타지 쪽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된다. 또한, 당시 어린 독자들이 들판에 나가 팔을 벌리고 주인공인 존 카터처럼 화성에 가게 해달라고 바란 원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하이라인, 브래드버리 등 많은 SF 거장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 작품을 필두로 한 바숨 시리즈는 이후 SF, 판타지, 모험 소설 분야에서 생겨난 ‘스페이스 판타지’,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 서브 장르들의 원형으로 수많은 모방자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당시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이는 그 당시 새로운 이야기였다는 점과 스토리 자체의 재미가 빼어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서브 장르의 원류이자 기원인 이 작품을 지금도 읽어볼 수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는 다가오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다른 인디언들이 나타났다. 셋, 넷, 다섯. 입구가 좁아 들어오지는 못한 채 동료의 어깨 위로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얼굴은 두려움에 차 있었다. 10년이 지난 뒤에도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뒤쪽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아서 사람들이 더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화성의 프린세스] 26쪽


주인공은 신비스러운 과정에 의해서 화성에 가게 되는데 이 점은 지금 읽어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세련되게 읽혔다. 이런 오컬트적인 분위기는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화성에 가게 됨으로써 화성인들에 비해 더 뛰어난 힘을 얻게 된다. 중력의 차이 때문인데 이는 마치 슈퍼맨이 지구에서 힘을 얻는 것처럼 대부분의 이계 진입물에서 보이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순히 힘이 뛰어나다고 해서 수없이 많은 화성인들을 혼자서 어떻게 좌우 할 수는 없다. 그는 지혜롭게 화성인들을 파악하고 자신이 움직일 순간을 기다린다. 이런 점들은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들지 않고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대체 데자 소리스가 왜 저러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내게 말을 하지 않는 거지?”
솔라는 무척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2명의 인간이 벌이는 이상한 행동을 그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의 다른 행동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쌍한 솔라.
“그녀는 당신이 자신을 화나게 했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이 말만 했어요. 제드의 딸이자 제닥의 손녀인 자신이 그녀의 할머니가 가진 소락의 이빨조차 닦지 못할 존재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나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소락이 뭐지, 솔라?”
“제 손만 한 작은 동물인데 붉은 종족이 데리고 노는 동물이지요.” 솔라가 설명했다.
―――[화성의 프린세스] 127쪽


캐릭터들도 잘 살아 있다. 지금 읽어도 재미있는 스토리라는 건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 캐릭터들에게 공감을 하면서 그들의 운명을 궁금해 하기 때문에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 책은 크게 4명의 주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성격은 단순하게 그려지기 보다는 입체적으로 또한 매력적으로 그려지면서 이야기의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 잘 그려진 캐릭터들의 매력 때문에 우리는 이 낯선 세계에 주인공과 함께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고, 나중에는 이 세계의 인물들을 위해 페이지를 아주 빠르게 넘기게 된다.
독자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낯선 세계에 차츰 적응해나가게 되고 한 가지 비밀이 풀릴 때마다 퍼즐을 맞추듯 재미를 느낀다. 아, 이 세계는 이런 구조로 성립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것이다. 이야기 구조는 조금 구닥다리일지는 몰라도 이런 낡은 소설을 읽는 것은 요즘 소설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멋과 재미가 있다. 게다가 괜찮은 흡인력에 마지막에 가서 여운까지 남기는 결말은 이 이야기가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존 카터의 또 다른 모험을 기대하며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고 유쾌한 사람 그대로였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달랐다. 나는 그가 여러 시간 동안 혼자 앉아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얼굴에는 뭔가를 동경하는 듯한 표정과 고통스런 표정이 함께 있었다. 밤이면 그는 앉아서 하늘을 응시했다. 몇 년 후 그의 원고를 읽기 전까지 그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
―――[화성의 프린세스] 12쪽


‘타잔’과 ‘존 카터’의 창조자,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하나라고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다.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는 빠르고 간결하며 시원시원하게 전개되었고 주인공이나 여주인공 모두 마음에 들었다. 100여 년 전 처음 소년들이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얼마나 열광했을지, ‘바숨’이라는 세계의 매력, ‘존 카터’의 매력, 아름답고 강인하며 사랑스러운 ‘데자 소리스’의 매력까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 이 소설이 국내에 나온다고 하여 스토리나 제목만 들었을 때는 굉장히 유치한 내용이 아닐까 우려했었다. 우리나라에는 그전까지 아동용 축약본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그만큼 아동용 글이 아닐까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읽으면서 생각은 바뀌었다. 낯선 문명에 떨어진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생각보다 실감나게 읽히면서 주인공의 모험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 것이다.
왠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아쉬운 마음이 커졌고 마침내 책을 다 덮었을 때는, 나 역시 들판에 나가 팔을 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행히도 책의 소개를 보면 이 이야기가 끝이 아니고 [화성의 신들], [화성의 장군] 등의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존 카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그의 모험이 또다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분명한 건, 지루함 따위는 찾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을 거란 사실이다.
이 책을 짧게 정의하자면, 어쩌면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잃어버린 세계](아서 코난 도일/김상훈, 행복한책읽기, 2003년 4월)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구가 잘 어울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반쯤 어른인 소년에게
   혹은 반쯤 소년인 어른에게
   한 시간의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댓글 2
  • No Profile
    어릴 때 읽은 축약본?에서는 카터가 눈을 떠보니 다시 화성이었다는, 걸로 끝났었는데 말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
  • No Profile
    슈거 08.06.18 09:38 댓글 수정 삭제
    번역이 참 깔끔하네요. 편집이나 디자인도 맘에 듭니다. 2부, 3부도 빨리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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