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소설 무랑가시아 송

2012.11.30 23:3611.30


무랑가시아 송
김효현, 기적의책, 2012년 8월

날개 (http://twinpix.egloos.com revinchu@empal.com)



 ‘나무’는 동식물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상징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우주의 상징이 바로 ‘나무’인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오는 행성의 신경망도 거대한 나무목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그야말로 행성을 대표하는 신의 역할이다. 아무르강 유역의 나나이족의 상징물 역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목’으로 샤먼의 역할을 대변한다고 한다. 나무의 형태가 하늘과 땅을 잇기 때문에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서 나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상징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뿌리가 지하로 뻗쳐 근원으로 가며 가지는 하늘로 뻗치는 형상이기 때문에 우주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엘리아데는 이를 <중심의 심벌리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 설정되는 세계수를 비롯해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Evangelion, 1995) 등에서 주요하게 나온 카발라의 ‘생명의 나무’, 세피로트 나무는 신이 표현하는 대우주의 이미지이다.(또한, 만화 [총몽]이나 이영도의 장편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타나는 '나무 되기'의 모티프 역시 세계수의 탄생을 상징한다.)
 이런 우주목, 지모신, 생명수, 죽음과 생성, 우주적 생명령의 상징을 바탕으로 동양풍 세계관을 그린 작품이 있다. 바로 제목에서부터 이런 세계의 근원 같은 나무를 표현한 “무랑가시아 송”이다. SF를 전문으로 출간하기 위해서 1인 출판사로 만들어진 ‘기적의 책’에서 놀랍게도 동양풍 판타지 소설을 출간했다. [무랑가시아 송](김효현, 기적의책, 2012년 8월)은 기적의 책에서 출간된 그야말로 기적 같은 책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단권으로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진 동양풍 판타지 소설은 시장성의 문제로 출간할 만한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적의 책이 있었기에 이 책은 독자들에게 정식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작품의 주요 배경인 ‘무랑가시아 송’을 묘사하는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그 해송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자척, 길 단위로는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다. 밑동은 사방 사백 리에 달하는 나라보다 더 너비가 크고, 뿌리는 본토의 온 나라와 사해四海를 통과한다. 그 어떤 험준한 산맥도 그 해송과는 크기에서 비교가 되지 못했다. 빠르기를 자랑하는 새매가 평생 날아올라도 가지의 끝을 볼 수 없었다. 태양조차 해송 앞에서는 높이 낢을 자랑하지 못했다. 해송의 가지가 하늘보다 높이 뻗어 있기 때문이다.
 서해 바닷물의 중심에 뿌리박은 해송은 전설보다 오랜 세월부터 육지의 성흥과 쇠망을 굽어보며 창파蒼波의 두 세계, 바다와 하늘 사이에 자리해 왔다. 고대인의 믿음에 따르면 심해저보다 깊게 뻗은 뿌리는 지상의 물을 길어 올려 천공을 뚫고 올라간 가지 끝에서 흰 구름을 맺는다고 했다.(62~63쪽)


 이 뒤로도 무랑가시아 송에 대한 묘사는 이어진다. 그야말로 압도적이 신비한 느낌을 독자에게 주는데 신경 쓰고 있다.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는 다른 장르보다 특히 세계관 자체가 소설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2차 세계를 그린 하이 판타지일 경우 세계관의 설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세계관이 곧 주인공이자 주제의식이 될 수 있는 장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랑가시아 송이 제목이자 이 세계의 핵심 배경이라는 것은 유심히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도저히 현실에서 용납할 수 없는 산맥보다 더 넓은 나무가 존재하는 세상은 우리와 전혀 다른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받아들여야지만, 판타지 소설 독자의 기본 전제 조건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즉, 작가와 독자가 전혀 다른 세계관에 대한 수용을 하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동양풍의 세계다. 이름부터 시울비, 무밀로, 이자나리, 안시오, 노휘, 류긴치, 신며늘 같은 이름들이 서양풍의 판타지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세계를 구축한다. 특히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에 질린 독자들에게는 [무랑가시아 송]은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약간씩 새로움이 가미된 세계관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굳이 ‘동양풍이다, 서양풍이다, 한국적이다, 이국적이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관의 색깔이나 특색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선택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필요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그러나 앞선 작품들을 생각 없이 베끼거나 세계관이 대체로 흡사해서 클리셰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다면 독자들은 더욱 만족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랑가시아 송]은 무리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세계관을 펼쳐보여서 세계관 자체를 파악하고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판타지 소설의 매력은 이렇듯 작가가 자기만의 개성으로 구축한 세계관을 읽어나가는 것에도 있다. 그 세계를 읽는 것이 하나의 인물을 읽는 것과 동일하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떨 것인가.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다른 세계를 엿봄으로써 지금 세계와의 대조를 하고 삶 그 자체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환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존 로날드 로웰 톨킨,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년 5월)이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모험인 것처럼, 이 소설에는 ‘성화’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인간을 무랑가시아 송에 데려가는 모험이다. 왜냐하면 종단의 목표가 순수성의 씨앗이라 불리는 ‘성화’를 나무에 데려가면 그 순수성이 하늘로 타고 올라가 온누리에 퍼진 악을 정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흡사, 하늘왕국이 이 땅에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교리 같은 것이다. 세상을 악이 없는 천국으로 바꾸기 위한 종단의 여정이다. 그러나 그 여정은 열 번이 넘게 실패했다. 성화는 백 년에 한 번 나타나기 때문에 천 년이 넘도록 반복되는 여정이다. ‘성화’라는 존재를 지키며 여정을 떠난다는 점에서 [12월의 베로니카](타카네 준이치로, 대원씨아이, 2003년 12월)가 연상되는 면도 있다. 똑같이 성스러운 여자를 지켜 어디론가 향하며 그 과정이 평탄치 않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많이 다르다. 일단 이 작품에서는 ‘악마’라는 존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천 년간 여정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 이유는 악마가 성화가 무랑가시아 송에 도착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모두 죽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여태껏 악마가 어떻게 방해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열한 번째 여정이 진행되는 시점이 이 소설의 시작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미스터리의 형태를 띤다. 그건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악마가 성화와 호위대를 죽였는지, 이번 11번째 여정에서는 어떤 식으로 방해할 것인지가 주요하게 다뤄진다. 소설은 누구나 예상했듯이 호위대 안에 ‘악마’가 이미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미스터리를 극대화한다. 마치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를 골라내듯이 악마를 찾아내는 독자와의 퍼즐 게임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런 지적 유희가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배경과 인물을 소개하는 초반을 넘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하는 중반부터가 이 소설의 끊는 점, 바로 재미가 느껴지며 몰입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은 추리극으로 바뀌고 독자는 긴장감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긴다. 과연 악마는 누구인가.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계속 강조하는 문구가 독자의 뇌리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바로 “악마는 최후에 꼬리를 내민다.”는 말. 그 최후가 언제인가. 독자는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그 최후의 지점을 잡아챌 수가 없다. 정신없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뿐이다.
 깔끔하고 단정한 문장이 소설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낯선 어휘나 설정으로 인해 가해성이 늘어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것은 문장이 정갈하고 차분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소설은 굉장히 읽기 편하며 이야기에 최대한 몰입할 수 있다. 추리극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분량으로도 중편 또는 경장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세계관이 세밀하게 나오거나 거대한 스케일이 드러나지는 않는다.(사실 그래서 이 세계가 제대로 실체가 그려지지 않아서 답답한 면도 있다. 오로지 짧은 여정과 무랑가시아 송에 압도되는 느낌인데, 이러한 선택과 집중은 제대로 된 방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계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지, 호위대의 일상적 삶들, 종단의 구체적 크기와 교리 등 여러 세부 설정, 다른 지역과 풍습에 대한 고찰 등이 그려지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었다. 지나치게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부분만 보여줘서 세계의 단면만 보고 끝나기 때문에 심심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관의 빈약함이 심심함을 주는 면도 있지만, 세세한 설정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 일단 성화와 오빠인 류긴치가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화인 ‘신며늘’은 특이하게도 맹농아이다. 즉,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존재다. 판타지 소설에서 이렇게 큰 장애를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적다. 이런 인물을 심도 깊게 묘사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액션 위주로 펼쳐지는 스토리에서는 전개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른 판타지 소설과 차별화를 이루어 맹농아인 ‘신며늘’로 인해 오히려 미스터리를 풍부하게 하고 그 오빠인 류긴치와의 관계 설정을 유기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류긴치는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일행에 무리하게 합류하는데 맹농아라는 설정이 그것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한편으로 남매가 서로에게 세계임을 보여주고 있어 소설의 목적성을 강화한다. 성화와 류긴치의 유대는 생각보다 깊으며 성화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듭 수예’ 같을 것을 통해 암시와 복선을 설치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기반 설정이 뛰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설의 내적 구조를 탄탄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었다.
 다섯 명의 호위자는 각각 권능을 가지고 있고 적당한 개성을 부여받아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이런 능력들은 판타지 소설의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서양풍 판타지 소설에는 마법이 있듯이 이자나리와 노휘는 TRPG 파티에서 마법사와 프리스트의 위치를 차지하는 주술사이다.)  한편으로는 충분히 내면 서술까지는 들어가지 못해 아쉬운 점도 있긴 하나 이 소설의 분량과 플롯을 생각해 볼 때 모든 면을 다 다룰 수는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용 자체는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유쾌함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도 적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이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재미를 가지고 있다. 미스터리를 겸비한 동양적 환상소설의 매력과 재미를. 한국 판타지 소설에 애정을 가지고 여러 작품들을 이미 읽어본 독자라면 [무랑가시아 송]은 또 다른 분위기와 재미를 주는 소설이라고 추천할 수 있다. 독창적 세계관 안에 약간은 진부하지만 악마를 찾아내는 퍼즐을 엮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 과거 노블레스 클럽으로 나와도 좋을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이 한시적이며, 세계관에 정해진 규칙이 있고,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 윤현승 작가의 [라크리 모사](윤현승, 로크미디어, 2008년 4월)나 [살해하는 운명카드](윤현승, 새파란상상, 2011년 9월)가 떠오르기도 했다. 분명 비슷한 분위기가 있고 재미를 주는 부분도 비슷하고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비슷하다.(막판의 급전개나 퍼즐에 집중한 나머지 세부 설정이 어색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점이 있다는 것 등이다. 마지막에 설명으로 모든 사건을 복기하는 점은 다른 방법이 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게 한다.) 윤현승 작가의 두 작품을 만족스럽게 읽은 독자라면 [무랑가시아 송]도 일독을 권한다.
 전체적으로 잘 쓰인 중편이라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깔끔한 압축이라기보다는 내용을 지나치게 분량 안에 억지로 넣으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개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더 차분하게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한달음에 읽히는 장점을 얻었지만, 그 대신 독자가 어리둥절하고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 나오는 인물들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긴장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아쉽다.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는 당연한 면도 있지만 인물들이 도구적으로 그려져 단조로운 인상을 받았다. 중요한 임무인 점을 상기하더라도 약간 인물들의 개성 부여에 더 신경을 써서 인간미를 주었다면 독자들은 이 소설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비극성은 더욱 강조되었을 것이다. 천천히 인물들을 짚어주면서 세계의 다른 면모도 보여주었으면 독자가 너무 압축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본연의 재미를 충분히 갖고 있다. 초반만 읽었을 때는 쉽게 남들에게 추천하기 어렵겠다, 라는 느낌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적어도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라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결말까지 읽고 나서 전체적으로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놀라운 세계관과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조금 아쉬운 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차별화된 동양풍 세계관 안에서 꽤 수준 높은 구성으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한국 판타지 소설사에서 그냥 묻히기는 아쉬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관과 인물을 소개한 뒤에는 놀라운 속도로 뛰어가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마지막 지점, 악마가 최후에 꼬리를 내밀 때까지 독자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빠른 전개 속도, 안정적인 구성, 단단한 문장으로 무장한 추리극이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세계에 빠졌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그 세계 안에는 산맥보다 더 거대한 나무가 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성화를 호위하는 종단의 호위대와 그녀의 오라버니의 짧은 여정이다. 불안과 긴장 속에 악마는 꼬리를 숨기고 있다. 거듭되는 고난과 의심. 마침내 다다른 무랑가시아 송의 진실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를.
  
 ― 모든 성화 일행이 공통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어떤 순간, 혹은 상황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인 최후에 악마가 꼬리를 내밀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도 그 최후의 순간에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에, 악마에게 목숨을 내어주고 만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야.
  이전까지와는 다른 성질의 침묵이 흘렀다.(85쪽)

댓글 1
  • No Profile
    권담 13.02.04 23:22 댓글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믿어져 왔던 신성한 나무, 오래된 나무에 대한 상징을 이용한 신선한 판타지네요.

분류 제목 날짜
소설 안 그러면 아비규환 2013.05.31
이달의 거울 픽 118호 토막소개 2013.05.01
비소설 몸에 갇힌 사람들 2013.05.01
소설 2004 세계 환상 문학 걸작 단편선 1·2 2013.04.30
소설 부엉이 소녀 욜란드1 2013.03.30
이달의 거울 픽 117호 토막소개 2013.03.29
소설 종말 문학 걸작선 1·2 2013.03.29
이달의 거울 픽 116호 토막소개1 2013.03.01
소설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2013.02.28
소설 7인의 집행관 2013.02.28
소설 7인의 집행관 2013.02.28
소설 오픈 2013.02.28
소설 부엉이 소녀 욜란드1 2013.02.28
이달의 거울 픽 115호 토막소개 2013.01.31
소설 그림자를 돌아보는 법 - <부엉이 소녀 욜란드> 2013.01.31
비소설 겁스 무한세계 : 악마가 고양이의 죽음을 알기 전에 2012.12.28
소설 죽음을 부탁하는 상냥한 방법 : 2012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2012.12.28
이달의 거울 픽 114호 토막소개1 2012.12.28
소설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1 2012.11.30
소설 무랑가시아 송1 2012.11.30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3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