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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개의 힘

2012.05.26 00:2005.26

개의 힘

돈 윈슬로, 김경숙 옮김, 황금가지, 2012년 4월



날개 (http://blog.aladdin.co.kr/twinpix revinchu@empal.com)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을 썼던 돈 윈슬로의 [개의 힘](황금가지, 전 2권)이 출간되었다.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작가의 사설탐정 경험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탐정을 등장시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갔다. 특히, 암시와 복선을 잘 맞춰진 구성은 상당히 근사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인물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나, 대화의 센스도 뛰어나서 한 마디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개의 힘]은 그러한 장점들을 그대로 가지고 간 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펼쳐지는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로 확장시켰다. 멕시코와 미국 등 중남미를 넘나들며 마약 시장을 중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피아와 마약 단속국, CIA, 정부, 경찰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유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적절한 장면 전환과 감각적인 대사들로 끝없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대작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쉴새없이 등장하지만, 인물 하나하나마다 개성이 부여되어 있고, 사정없이 배신과 죽음이 펼쳐지면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빠트린다. 죽음이 너무나도 담담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누가 죽을지,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 결말까지 신나게 달려나갈 수 있는 책이다.

 돈 윈슬로의 특징은 일단 번역된 글임에도 매우 잘 읽힌다는 점이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이야기에 필요한 문장들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서 깔끔하게 읽히며 흡인력이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구성도 치밀하게 쌓아올리기 때문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긴 세월을 다루어도 독자가 혼란을 느낄 여지가 거의 없다.

 때로 너무나 장대하고 완벽하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 힘들 것 같은 책이 있다. [개의 힘]이 바로 그렇다. 장면 하나하나가 영상으로 머릿속에 재생되지만, 인물 한 명 한 명마다 묘사되는 심리와 장대한 시간을 영화 한 편으로 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장면도 버릴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소설이 가장 잘 맞는 매체라고 생각된다. 영화화하기 힘들 정도로 유장하며 근사한 이야기가 [개의 힘]에 담겨 있다. 영화를 보면 되지, 왜 굳이 책을 읽느냐고 할 때, 소설이라는 매체만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영상화하기 힘든 [개의 힘] 같은 작품이 있기에 텍스트의 재미를 만끽한다.


 [개의 힘]은 ‘마약 전쟁’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조금은 낯선 소재일 수 있으나, 각종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에 금세 빠져들 수 있다.

 중요 인물은 일단 마약 수사 전담반에 ‘아트 켈러’다. CIA 출신인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인 아트 켈러는 처음에는 배치된 곳에서 동료들의 무시를 당하지만, 곧 ‘미겔 앙헬 바레라’(티오)의 도움으로 콘도르 작전을 성공시키며 입지를 쌓는다. 그러나 이 작전은 미겔 앙헬 바레라의 1970년대 마약 카르텔의 보스인 ‘돈 페드로’를 없애고 자신이 모든 마약 조직의 보스로 올라서기 위한 계략이었다.

 ‘아트 켈러’는 자신이 이를 돕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미겔 앙헬 바레라’를 독자적으로 수사한다. 이 구도는 마치 만화 [몬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한 남자와 아이 중에서 아이의 목숨을 살린 의사가 그 아이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추적해 나가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아단 바레라’라는 ‘미겔 앙헬 바레라’의 후계자와 반목하게 된다. 아트 켈러는 아트 켈러가 설치한 도청 장치에 의해 내부 배신자가 있다고 의심하게 된 마약 밀매 조직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고 마침내 아트 켈러의 ‘어니 이달고’를 납치해 고문 끝에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아트 켈러가 모든 것을 걸고 평생을 마약 밀매단과의 싸움을 하게 되는 도화선이 된다. 아트 켈러는 국경의 왕이라 불리게 되며 아단 바레라는 하늘의 군주라고 불리게 된다. 국경의 왕과 하늘의 군주의 잔혹한 싸움이 1000페이지 속에서 펼쳐진다. 이 외에도 미국 치미노 조직의 션 칼란은 뉴욕 출신 아일랜드계 10대 소년으로 이야기의 비중으로 세 번째를 차지한다고 할 만한 중요한 인물이다. 냉정하고 대범한 일처리 능력으로 뛰어난 킬러로의 자질을 발휘한다. 이 이야기는 이렇듯 아트 켈러를 중심으로 한 마약 수사 전담반 쪽과 아단 바레를 중심으로 한 바레라 카르텔, 칼란을 중심으로 한 치미노 조직의 세 이야기가 나오며 이 세 인물과 모두 연관을 갖는 노라 헤이든이라는 고급 콜걸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차지한다. 결손 가정에서 자란 노라 헤이든은 헤일리의 눈에 띄어 고급 매춘부가 되는데, 각각의 인물들과 연관이 되고 살벌한 소설 속 상황에서도 로맨스 적인 요소까지 넣고 있다. 이 외에 후안 오캄포 파라다라는 가톨릭 신부가 역시 노라 헤이든의 친구이자,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아트 켈러는 전형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비치지만, 그의 뛰어난 능력에 반해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약 수사에 매달리는 이유가 잘 와닿지는 않는다. 마치 운명에 속박된 듯이 보이는데, 동료가 자신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해도, '미겔 앙헬 바레라'가 자기 때문에 보스가 되었다고 해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이미 '개의 힘'에 빠졌기 때문이리라.(구약성서에 나오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고뇌에 빠뜨린다는 악의 상징. 이 표현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몰아낼 수 없는 악과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을 가리킴.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인물은 인간에게 내재된,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부터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악의 힘을 표출하고 있다. 성직자인 중요 인물 후안 신부까지도 개의 힘에 마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인상적인 군상을 보여준다.)

 션 칼란은 냉정한 킬러면서도 신부의 죽음에 크게 마음이 흔들리면서 독자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만든다. 이후 그는 만화속 주인공처럼 빠른 판단과 정의를 돕는 행등으로 멋있는 면모를 보인다.(전형적인 캐릭터이면서도 역시 매력적이다.)

 노라 헤이든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여성이면서 역할이 부여되어 있고 활약하는 인물이다. 능동적이며 자기 생각이 있고, 이 소설의 전개가 마치 운명의 물살처럼 개인이 어찌할 수 없이 흐르는데도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빛난다. 강인하며 매력적이고 감정이입이 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 빠질 수 없는 매력을 더하는 핵심 인물이다.


 미 정부의 베트남 전쟁부터, 중남미 마약 정책까지 다양한 정치적인 요소를 소설 속에 녹아냈으며, 멕시코시티 지진이라든가, 정치적 암살, 실존인물을 집어넣어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실제로 펼쳐진 듯이 몰입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중요인물만 몇 십 명이 되고, 이야기가 여러 지역을 넘나들며 30년이 넘는 세월을 다루기 때문에 자칫 복잡하지만 빠른 전개와 인물들의 연관성을 부각하는 구성이 탁월해서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왔기 때문에 마약 전쟁이라는 것은 마치 영화속 일로만 느껴졌으며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재미있는 소설 한 권으로 마치 논픽션을 읽는 듯이 북미와 중남미에 마약이 차지하는 위치, 마피아와 마약 밀매단과 정부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묶여 있는지, 그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금 감을 잡게 되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책일 수밖에 없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인물들, 장대한 서사의 힘, 긴박한 스릴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물론 아무리 장대한 스케일이라고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치밀한 서술은 어렵고 특히 인물들의 실수를 하는 장면들이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나, 이런 단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나 이야기가 강렬한다.

 무서울 정도로 잔혹하고 냉정하며 장대한 범죄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독자라면 [개의 힘]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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