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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환상 도서관

2011.12.30 23:4612.30

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김지원 옮김, 북폴리오, 2011년 6월



pilza2 (pilza2@gmail.com)



 이 두껍진 않으나 제법 독특한 표지 디자인을 뽐내는 책을 표현하기 위해서 많은 수식어를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과 도서관을 소재로 다룬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각 단편의 길이도 짧고 내용도 부담이 없다. 개별적인 소재나 아이디어를 봐도 [환상특급] 수준의 가벼운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제목을 보니 연작이 아닐까 싶었지만 개별 단편에 일관성이나 연결된 내용은 전혀 없다.
여기까지 쓴 것만 봤을 때는 굳이 리뷰를 쓸 만한 가치나 있는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필자도 본문을 읽는 도중에만 해도 토막 소개를 통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미의 작가 인터뷰를 보고 이 소설을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일곱 번째 수록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읽을 가치가 있는 인터뷰였다. 그 이유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어느 정도는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르비아에서 활동하는 소수언어 작가의 애환과 영어권에 진출하여 인정받기까지의 험난한 경험과 고난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이 강세인 한국 출판계의 현실, 세계로 진출하겠다고 말만 하는 한국 문학계(그나마 [엄마를 부탁해]로 하나 ‘뜨긴’ 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흔히들 푸념하는 한국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주게 하는 인터뷰였다.

 작가인 조란 지브코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이다. 세르비아어를 쓰는 사람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11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작가는 따라서 세르비아어로 소설을 써봤자 최대 100만 명밖에 읽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2011년 통계로 5000만이 넘었다지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소설이 사라지다시피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데뷔작을 초판 500부 냈다고 한다. 문학상을 받은 후에 500부를 추가했다고 하니 너무나 초라한 실적이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하여 영미 지역으로 진출하고자 마음먹는다. 비용과 시간 등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번역 원고를 쥐었으나 출판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영미 지역에는 세르비아에 없는(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없는) 출판 에이전트 제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들은 작가나 작가 지망생의 원고를 직접 받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잡지 정도랄까. 그래서 영미 지역에는 신인들의 원고를 모집하는 신인상이 비교적 적고, 대신 이미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이 매우 많다. 에이전트 제도가 없는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원고를 모집하는 신인상 제도가 비교적 많다는 걸 감안하면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영미의 작가들은 에이전트를 통해 출판사와 계약을 맺거나 출판 기획을 교환하거나 한다. 즉 에이전트가 첫 번째 독자이자 심사위원이 되는 셈이다. 출판을 원하는 사람의 원고를 받아서 읽고는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에이전트가 작품의 성격에 맞는 출판사를 찾아서 출판 의뢰를 한다. 여기서 출판사 편집자가 두 번째 독자가 되어 검토를 거친 후 출간을 하게 된다. 계약이 이루어지면 이 과정에서 에이전트가 수수료를 받는다.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이 작가에게 출간이나 잡지 수록, 인터뷰 등을 의뢰할 경우에도 역시 에이전트에게 이를 알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작가는 에이전트를 구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영어권 작가가 아니라는 핸디캡과, 소설의 내용이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데 심지어는 이름을 미국식 필명으로 바꾸자는 제안까지 받지만 거절한다.

 이렇듯 작가라면 창작에 따른 고통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덤으로 불필요한 고통까지 겪은 지브코비치는 현재 고향보다 영어권에서 더 알려지고 인정받고 있다. 본작으로 세계 환상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그 일례이다. 이 세계 환상문학상은 이탈로 칼비노, 무라카미 하루키 등 비영어권 작가도 수상한 사례가 있지만 모두 영어로 번역 출간된 다음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름엔 ‘세계’가 붙었지만 상을 만든 사람도 수상하는 사람도 모두 영어를 쓰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결과인 것이다.
소설의 리뷰가 아니라 소수언어 작가의 어려움으로 내용이 엇나간 것 같은데, 비록 길지는 않지만 소설과 출판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할 만한 인터뷰이다.
이하 각 수록작에 대한 내용이다.

* 가상 도서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와 같은 전자 도서관은 이제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느 작가가 우연히 들어간 인터넷 공간의 도서관에 세상의 모든 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에 쓰일 책도 포함한다. 자신이 쓰지 않은, 그러나 미래에 쓰게 될 소설의 목록을 본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소설을 써본, 쓰고 있는 사람들의 감상이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 집안 도서관
 주인공은 우편함을 열 때마다 나오는 신비한 노란색 양장본을 집에 보관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자신의 집이 하나의 작은 도서관이 되고 마는데……. 집착이 되고 마는 책에 대한 애정은 독서광과 애서가들의 연민을 자아낼 것이다.

* 야간 도서관
 비오는 밤 우연히 도서관에 갇히고 만 주인공은 야간 도서관의 사서와 만난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을 쓴 책이 있다는 야간 도서관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이 담긴 미완성의 책을 읽는다. 흔히 인생은 소설 같다고 한다. 그걸 실제로 소설로 써서 자신이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 지옥 도서관
 취조실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지옥이다. 지옥에 떨어진 남자는 책만 읽어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책을 안 읽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일지도 모르지만, 독서광에게 있어 이 독서지옥은 천국이 아닐까?

* 초소형 도서관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받은 책은 펼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인 셈인데, 결말은 [환상특급]이 연상되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 수록작 중에서 가장 해피엔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위대한 도서관
 책의 외양을 중시하는 주인공은 고급 장정의 양장본을 가득 꽂은 서가에 볼품없는 페이퍼백이 한 권 있음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이 책을 혐오하여 빼서 버렸는데 돌아와 보니 멀쩡하게 다시 꽂혀 있었다. 책을 찢고 수장하고 별짓을 다 해도 다시 돌아와 있었는데, 마침내 그가 해낸 해결책은?
지금까지 단편들과 그 성격이 조금 다른 작품으로, 독서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책을 소유한다는 의미는 역시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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